이미 남북정상회담에 관련된 갖가지 보도들이 쏟아졌지만 <프레시안>은 현장 동행 취재기자의 방북취재기를 싣기로 했다.
지난 5일 발행된 방북취재기 1편은 주로 남북 정상간 치열한 신경전과 힘겨루기로 시작해 '정상선언'이라는 성과를 낳기까지의 막전막후와 에피소드를 담았다. 이번 2편에서는 <프레시안> 기자의 눈에 비친 '2007년 10월, 오늘의 평양'을 전하고자 한다. 이 취재기는 3편까지 게재될 예정이다. <편집자>
'가슴이 벅차오르진' 않았다. 버스를 타고 군사분계선을 통과할 때도, 먼 발치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실제 모습을 봤을 때도, 기네스북에 올랐다는 아리랑 공연을 봤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감정이나 감동보다는 따져보기를 앞세우는 개인적·직업적 성향 탓인지 아니면 평소와 다른 취재·기사작성에 대한 중압감 때문인진 지금 돌이켜봐도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랬다.
"'아리랑'에 아무나 참가하진 못한다"
북한이 '아류 봉건적 사회'라는 비아냥을 들을 만큼 명분에 집착하는 곳이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고 이번 방문에서도 쉽사리 확인할 수 있었지만, 다른 사회와 마찬가지로 그 명분은 나름의 실리와 효율성으로 작동되고 있었다.
논란의 여지가 많았던 집체극 '아리랑'과 관련해서도 그 실리는 확인됐다.
공연을 관람하고 돌아오는 차 속에서 김일성 종합대학 동창인 정부 연구기관 연구원을 아내로 두고 있다는 북측 안내원은 "평양 부모들은 아리랑 공연에서 카드섹션 및 집단체조 하는 아이들을 보내고 싶어 한다"면서 "아이들이 거기 참여하고 나면 키도 크고 자기만 아는 의식도 없어지고 규율성이 생기고 조직을 알게 된다"고 말했다.
"학교마다 참가 숫자를 정해줘서 원한다고 다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는 말과 "우리 애들은 다 참여했지"라는 자랑이 곧 뒤따랐다.
'태자당'과 '올리가르히' 그 다음은?
일반 대중이 엘리트로 상승하기도 하고 통치엘리트가 일반 대중으로 하강하기도 하는 것이 사회적 유동성이고 그 유동성은 사회적 격변기일수록 강해질 수밖에 없다. 파레토는 일찍이 '역사란 곧 귀족의 무덤이다'며 엘리트 교체를 통한 사회 변화를 강조했었다.
하지만 급진적 개혁 개방을 통한 급작스런 변화든, 자신들이 바라는 대로 '점진적 경제발전'을 통해 체제를 유지하면서 경제성장을 이루든간에 그 때도 북을 실제로 움직이게 될 엘리트들은 아리랑 공연에 참가한 저 아이들이 아닐까 싶었다.
일사불란하게 '김일성 민족, 태양민족이라 행복해요'라는 카드섹션을 펼치는 아이들에 대해 '인권적 문제의식'이 떠오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념무장이 투철해서'가 아니라 이미 선택받은 이들이기에 저들이야말로 어떤 변화라도 가장 먼저 느끼고 가장 먼저 적응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중국 경제를 움직이는 것은 뼛속 깊이 혁명정신이 깃든 '태자당'이고 러시아 자본주의 자원경제를 주무르는 것도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KGB 출신의 '올리가르히'이지 않은가?
훗날 북한판 '붉은 자본가'들은 "나도 어릴 적엔 아리랑 공연을 했었지"라고 되뇌일 것이고 지금 별 볼일 없는 '기본계급 인민'들은 나중에도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그래도 우리식 사회주의가 나았다"며 '사회변화의 걸림돌' 취급 받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입맛이 씁쓸했다.
기우일지, 아니면 영양실조 환자를 바라보면서 비만을 걱정하는 것일지 모르겠지만 평양에서 머무르는 내내 이같은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이같은 우려는 서울로 돌아와서 더 깊어졌다. 자사의 발행부수만큼이나 보수적 성향을 자랑스러워하는 한 신문의 논설실장은 기명칼럼을 통해 정부에 '과감한 대북투자 자유화'를 주문했다.
그는 "한국 기업인들은 중국과 러시아, 동유럽 같은 공산독재 국가에서 어떻게 최고 권력자에게 접근, 그들의 관료주의 장벽을 뚫고 돈을 벌 수 있는지 경험을 쌓았다"면서 "독재자나 공산당을 상대하는 기술에서 기업인이 공무원보다 훨씬 경쟁력이 있다고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 주장에 너무나 공감했기 때문에 오히려 '기우는 아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북측 엘리트'와 '독재자 상대하는데 있어선 경쟁력을 갖춘 남측 기업인'이 결합해 도출할 시너지 효과를 상상하긴 어렵지 않다.
'조화사회' 미리 준비하자
하긴 1인당 국민소득이 3000달러 정도는 돼야 사회 전반에서 민주주의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고 7000달러 정도는 돼야 환경 이야기도 나오기 시작한다는 말이 있다.
'사회주의 모범'국가인 중국의 경제발전 드라이브는 '흑묘백묘론'과 '선부(先富)론'으로 시작됐다. 불균형 발전으로 인한 민공(民工) 문제가 이슈화되고 중국 지도부가 그에 대한 대안으로 '조화사회론'을 들고 나온 것도 불과 얼마 안 된 이야기다.
그렇다면 오늘의 북한에 이런 잣대를 들이대는 건 시기상조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통일을 대비한다면,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남북사회통합을 준비한다면 이 역시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남측에서든 북측에서든 이에 대한 고민이 심화되어야 한다는 깨달음이 이번 방북에서 얻은 개인적 성과 중에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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