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연말정산 환급액 축소 논란과 관련, 정부·여당이 일부 세액공제 확대 등의 대책을 마련하고 소급 입법을 통해 올해 정산분에도 그 내용을 적용하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았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21일 오후 긴급 당정협의를 열고 "국민의 우려에 인식을 같이한다"며 "이번 연말정산이 완료되는 대로 3월말까지 그 결과를 면밀히 분석해 보완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당정은 특히 올해 정산분 소급 적용 문제에 대해 "이번 보완책과 관련한 소득세법 개정안은 4월 국회에서 처리될 수 있도록 하고, 소급 적용 방안은 새누리당에서 야당과 협의해 입법 조치를 추진하기로 하고 정부도 결과에 따르기로 했다"고 밝혔다.
당정은 이날 논의 결과 △자녀세액공제(현행 1인당 15만 원, 3인 이상 20만 원) 수준을 상향 조정하고, △자녀 출생·입양에 대한 세액공제를 신설하며 △독신자에 대한 표준세액공제(현행 12만 원)를 상향 조정하기로 했다. 또 △연금보험료 세액공제(현행 12%)도 확대하고, △연말정산으로 인한 추가 납부세액은 분납을 허용키로 했다.
결국 세액공제 범위를 일부 확대해 환급액을 늘려주는 방안에 정부와 여당이 의견을 모으고, 이를 올해 정산분부터 소급 적용하는 문제는 '여당이 야당과 합의하면 정부는 이에 따르는' 방식으로 사실상 합의한 셈이다.
다만 야당 일각에서 세액공제율 자체를 15%에서 20%로 상향 조정하자는 주장이 나오는 데 대해 주호영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은 "현재로선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잘랐다. 주 의장은 "복지 예산이 증가돼 있는데 증세를 안 한다고 하니 재원은 없는 상태 아니냐"며 "야당은 복지 확대는 요구하면서 재원 대책을 말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주 의장의 "재원"이라는 말은 '증세 없는 복지'라는 박근혜 정부 기조의 허구성을 드러낸다는 평이 나온다. 연말정산을 소득공제 방식에서 세액공제 방식으로 바꾼 것은 정부가 강조하는 소득 재분배 효과 외에 세수 증대 효과가 있음에도 이를 '증세가 아니다'라고 우기면서 발걸음이 엉킨 모양새라는 것. 최 부총리는 20일 "소득공제의 세액공제 전환에 따라 약 9300억 원의 재원이 확보될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 바 있다.
이날 '박근혜의 입'으로 불렸던 친박계 핵심 이정현 최고위원이 "세목을 늘리거나 세율을 높이는 게 아니기 때문에 증세와는 관계가 없다"고 했지만, 김무성 대표는 "세금을 더 내는 국민들은 증세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즉각 반박하기도 했다. 친이계인 심재철 최고위원은 "'증세 없는 복지'라는 도그마에 갇혀, 세 부담이 늘었는데도 증세가 아니라고 하고 '편법 증세'를 선택한 것"이라고까지 했다. (☞관련기사 : 김무성 "매우 죄송" 이완구 "원점에서 재출발")
전문가들은 당정의 이번 조치를 일종의 포퓰리즘으로 보고 우려 섞인 비판을 보내고 있다. 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조세 정치'의 실패"라며 "세액공제라는 원칙이 지켜지는 방식으로 보완되는 것은 다행이지만, 결국 연소득 7000만 원 이상 고소득자를 빼고는 다 세금이 줄게 됐다. 보편복지 시대에 복지와 세제를 어떻게 병행 발전시켜야 하나 아쉬움과 우려가 남는다"고 평가했다.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장도 "'부자 감세' 철회 후퇴 아니냐"며 "소득세 부문에서 보편 증세가 후퇴된 것"이라고 더 비판적으로 평가했다. 홍 소장은 "정치권이 여론에 떠밀려 어쩔 수 없는 현실을 고려해야겠지만, 조세제도 정상화라는 방향에서 보면 후퇴인 것은 분명하다"며 "연소득 5000~9000만 원이면 상위 20%이상인데 이게 어떻게 '서민' 증세냐"고 했다.
정창수 경희대 교수도 "세액공제로의 전환이라는 방향은 맞는데, 정부가 행정적으로 바보 같은 짓을 했다"며 "다자녀, 출생, 독신자 등 여론이 가장 안 좋은 것만 골라 수정한 것인데, 종합적 검토 속에서 만들어진 정책을 이렇게 여론에 따라 부분적으로 바꾸면 전체 디자인이 어긋나게 되는 것 아니냐"고 했다.
정 교수는 "감세가 본질적 방안이 아닌데, 추가 세원을 어디서 확보할 것인지 형평성에 대한 고려가 없다"며 "여론이 안 좋다고 위기를 임시 방편으로 넘기려다 (세제가) 누더기가 되는 게 아닌지 우려된다"고 이번 사태는 정부의 "무능"이 초래한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나아가 소득세만을 놓고 밀고 당기기를 할 것이 아니라 "세목 간의 형평성"(오 위원장)을 고려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오 위원장은 "궁극적으로는 세제 간 형평성과 조세 정의의 문제"라며 "법인세나 금융소득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겠다는 내용이 들어갔어야 한다"며 "논란을 미봉책으로 봉합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 교수는 "법인세는 절대 올릴 수 없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사고방식"이라며 "(소득세에서의 '연말정산 축소'처럼) 법인세의 비과세·감면만 줄여도 실효세율이 올라갈 텐데, 소득세 감면만 줄여서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 아니겠느냐"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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