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학교 송도 국제캠퍼스가 청소·경비 노동자 해고 문제로 시끄럽다. 연세대 측의 용역 최저입찰제에 따라, 도급 금액이 대폭 '삭감'된 인력업체가 청소·경비 노동자 대량해고를 시도하면서 불거진 문제다.
노동자들과 노조가 나서 신촌캠퍼스에서 농성을 벌이는 등 집단행동을 이어가자, 업체 측은 인력 구조조정을 안 하는 대신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임금삭감안을 노동자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11월 말부터 시작된 송도 국제캠퍼스 사태가 해를 넘겨 이어지고 있다. 지난 14일부터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에서 다시 농성을 시작한 송도캠퍼스 청소·경비 노동자들이 19일 연세대학교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연세대 본부가 나서 근로조건 저하 없는 고용승계를 보장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용역업체, 연세대와 재계약 성공했는데 고용승계 갈등 왜 불거졌나?
통상 청소·경비 노동자의 연말 연초 해고 문제는 용역업체 변경 과정에서 비롯된다. 신규 업체가 기존 인력의 고용승계를 못 하겠다고 나오면서 불거지는 갈등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송도 캠퍼스는 기존 업체가 재입찰에 성공했는데 문제가 불거졌다. 국제캠퍼스 기숙사 청소·경비·행정업무를 담당하던 용역회사 세안텍스는 지난해 말 연세대와의 재계약에 성공했다.
문제는 연세대가 시행하는 최저입찰제에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기 위해, 이 업체가 계약 총액을 대폭 낮춰 제시하면서 시작됐다. 재입찰에는 성공했지만, 해당 업체가 줄어든 도급금액을 이유로 22명 해고 방침을 통보한 것이다. 기존 인원 72명의 약 30% 수준이다. 이것이 지난 11월 말의 일이다.
노조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버텼고,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와 국제캠퍼스를 다니며 면담을 요청했다. 지난해 12월 23일에는 신촌캠퍼스 백양관에서 하룻밤 농성을 벌였고, 그제서야 학교 측은 면담 일정을 잡아줬다.
12월 26일 있었던 노조와 연세대학교 행정대외부총장, 총무처장 면담에서 학교는 "회사에 고용승계와 최저임금 이상의 임금 지급을 공식적으로 요구했으며 정부가 제시한 용역근로자 보호지침을 준수하겠다는 근로조건 이행 확약서를 서면으로 제출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업체는 전원 고용승계를 위해서는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임금 삭감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미화 노동자 이인숙 씨는 "하루 5.5시간, 월 95만원의 근로조건에 동의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지난해 하루 8시간 근무에 월 120만 원의 급여를 받고 일했었다. 상여금(연 60만 원), 식대(10만 원), 교통비(5만 원)까지 포함하면 월평균 이들의 급여는 140만 원 수준이었다.
이들의 입장에서는 근로조건의 저하인 셈이다. 노동자들이 이같은 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버티면서 노사협의가 공전을 거듭하자, 업체 측은 새해 들어 근로계약 1년 미만자 23명의 출입카드를 정지시켰다. 이인숙 씨는 "새해에 출근하니 카드가 정지돼 기숙사 출입도 못 하고, 청소카가 있는 창고 출입도 안 돼, 어쩔 수 없이 일을 할 수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지난 5일 있었던 세안텍스와 노조의 노사협의회에서도 이같은 입장 차이는 좁혀지지 않았고, 이들은 지난 14일부터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에서 본교 측의 사태 해결을 촉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연세대, 22명 자르지 않으면 운영 못할 조건으로 계약해놓고 책임 없다?"
19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은 하나같이 연세대 측의 책임있는 자세를 촉구했다. 연세대는 지난해 12월 26일 총무처장과 노조의 면담에서 "우리 대학교는 입찰 진행 및 평가에서 어떠한 식으로든 회사 측에 무리한 인원 감축이나 업무 조정을 요구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지만, 이는 연세대의 주장일 뿐 "이번 사태는 운영비 절감을 희망하는 학교 측의 필요에 의해 시작됐다"는 판단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2일 세안텍스가 노조에 처음으로 인력감축 계획을 밝히며 보낸 공문을 보면 이런 판단의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이 업체는 공문에서 "학교 측의 운영비 절감 및 투명성 확보를 위해 공개입찰을 실시했으며 입찰경쟁이 치열해 현재 수준의 도급금액을 정하면 입찰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어 도급 금액을 낮췄다"고 밝혔다. 또 업체는 "아울러 배치인력도 대폭 축소 조정될 수밖에 없다"면서 "축소된 인력으로 최종적으로 연세대학교와 계약이 체결된다면 인원 축소가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구권서 민주노총 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서경지부 위원장은 "업체가 22명을 자르지 않으면 운영을 못할 조건으로 계약해 놓고 이제와서 우리가 그런 요구를 한 적이 없다니 어처구니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도 "이들의 고용주는 세안텍스가 아니라 연세대"라며 "'반값 고용' 연세대는 '갑질'의 차세대 주자로 떠오르고 싶냐"고 비판했다.
학생들 '기숙사 노동권 수비대' 꾸려 청소·경비 노동자 지원…"대학이 기업이냐"
학생들도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 발벗고 나서고 있다. 지난해 말 송도캠퍼스 기숙사에서 '기숙사 노동권 수비대'라는 모임을 만들어 기숙사 까페, 독서실 입구 등에 실명 대자보를 써 붙이기 시작했던 학생들은 이날 기자회견에도 함께 자리했다.
경제학과 14학번 양동민 씨는 "지금도 인력이 부족해 1인당 5개층을 청소하면서 관절염과 어깨 통증에 시달리는 청소 노동자들인데 이제는 파트타임으로 1인당 10개 층을 청소하라고 하는 것이 말이 되냐"며 "우리 사회도 이제 학내 노동자의 고귀한 노동에 제대로 된 대우를 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세대학교 총학생회의 이슬아 부총학생회장은 "매년 수백억의 적립금을 쌓는 학교가 노동자들의 최소한의 노동조건 요구를 왜 이해관계로 취급하는지 모르겠다"며 "학교를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돈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는데 여기가 기업이냐"고 되물었다. 이슬아 부총학생회장은 "이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학생들도 물러서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연세대 "등록금 동결 상태에서 인건비 줄일 수밖에"한편, 이 사태와 관련해 연세대 측은 "학교가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라고 본다"며 "법과 원칙에 따라 대처하는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연세대학교 관계자는 <프레시안>과 전화 통화에서 "용역 입찰 공고를 내면서 학교는 고용승계를 기본 조건으로 내세웠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관계자는 "업체는 연세대학교가 아닌 다른 사업장에서 이들의 고용을 승계하는 방안을 내놓았고 노동자들은 연세대학교가 아니면 안 된다고 해서 (갈등이 풀리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최저입찰제를 통해 사실상 학교가 청소·경비 노동자의 근로조건 저하를 부추기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이 관계자는 "몇년째 등록금이 동결 상태인데 각종 비용은 계속 증가하고 있어 학교는 다양한 형태의 자구책을 마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비용의 가장 큰 부분이 인건비인만큼 학교 교직원도 최근 몇 년 사이 100명 이상 줄이고 있으며 미화경비 쪽도 같은 맥락에서 접근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청소·경비 노동자들의 면담 요구에 대해서도 이 관계자는 "대화는 지속적으로 하고 있지만 접점을 찾기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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