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연합훈련을 임시 중단하면 핵실험도 임시 중단하겠다는 북한의 제안을 두고 설왕설래가 많다. 한미 양국 정부는 두 가지 사안은 별개라며 거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여기에는 북한이 4차 핵실험의 구실을 만들려고 한다는 '음모론적 해석'이 똬리를 틀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가 북한의 제안을 "암묵적 위협"이라고 비난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김정은 정권이 어떤 의도를 갖고 미국에 이러한 제안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미리부터 핵실험을 하기 위한 수순 밟기를 염두하고 있었을 수도 있고, 미국이 제안을 거절하면서 한미 군사훈련을 강행하면 사후적으로 핵실험에 나설 수도 있다. 아예 핵실험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런데 음모론적인 해석은 미국을 향해서도 가능하다. '미국 내 일각에서 북한이 핵실험을 해주길 바라는 세력이 있는 게 아닌가'하는 것이다. 기우이기를 바라지만, 이런 생각이 드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들이 있다.
우선 북한이 4차 핵실험을 강행하면, '코리아 엔드 게임'을 향한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고 여길 수 있다. 북한의 핵실험은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모색하고 있는 한국과 일본을 미국의 품 안으로 다시 끌어들이는 데 더없이 좋은 구실이 된다. 북한과의 관계 복원을 저울질하고 있는 중국과 최근 대북 관계 개선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러시아도 견제할 수 있게 된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미국의 독자적인 대북 제재의 수위도 크게 높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북한을 무너뜨려 한미동맹 주도의 통일도 가능해진다고 여길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북한이 추가 핵실험을 하면,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rebalance) 전략도 상당한 탄력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미국은 아시아 재균형 전략에서 한미일 3자 군사협력 강화를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로 간주한다. 북한의 추가 핵실험은 이를 위해 더없이 좋은 구실이 될 것이다. 작년에 미국이 타진했다가 중국 및 러시아의 반발로 유보되었던 사드(THAAD) 한국 배치도 다시 추진할 수 있게 된다. 북한 위협 증대를 이유로 군사비 삭감을 최대한 줄이면서 한국에 대한 무기 판매도 크게 늘릴 수 있다. 미국 군산복합체에겐 북한의 핵실험이 '남는 장사'가 되는 셈이다.
미국 국내 정치적으로도 북한 핵실험은 유용한 가치가 있다고 여길 수 있다. 이제 임기가 2년밖에 남지 않은 오바마 행정부는 적대국 외교에서 두 가지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하나는 이란과의 핵 협상 타결이고, 또 하나는 쿠바와의 관계 정상화이다. 그런데 공화당은 물론이고 민주당 내 일각에서도 이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다. 특히 공화당이 이란 핵 협상을 좌초시키기 위해 새로운 제재법을 만들려고 하면서, 행정부와 의회의 갈등도 커지고 있다. 반면 북한 문제와 관련해서는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초당적 협력을 과시하고 있다. 이를 통해 오바마 행정부는 결코 독재 정권에게 나약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쿠바 및 이란 문제 해결에 박차를 가하려고 한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의 핵실험 강행 시 미국이 입게 될 타격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우선 북한의 추가 핵실험 강행 시 한국과 국제사회에서는 북한을 비난하면서도 미국이 핵실험을 막을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저버렸다는 비판도 거세질 것이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는 이러한 생각을 강하게 갖게 될 것이다. 그 결과 대북 제재를 강화하고 북한과의 관계를 단절하는 것은 미국의 음모에 말려드는 것이라고 여길 수 있다.
또한 북한이 4차 핵실험을 강행한다면, 그만큼 미사일 장착이 가능한 핵탄두 소형화의 문턱에 가까워지거나 넘어선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이 실체가 불분명한 '사이버 공격'을 이유로 북한과의 대화는 거부하고 제재를 높이면 실제적 위협, 즉 북한의 핵 능력 강화를 방치하게 된다는 지적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북한이 '굶주린 맹수'가 되는 것은 미국을 포함한 그 누구에게도 바람직하지 않다. 국제적 고립화와 제재로 인한 경제난의 심화와 핵 능력의 강화가 만나면, 북한의 군사 모험주의가 기승을 부릴 공산이 커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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