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즐겁게 마셔라. 독이 된다. 수승화강(水昇火降) 이라고… 물을 올리고 불은 내려라. 차가움은 올리고 뜨거움은 내려라.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 술은 열을 올리거든, 즐겁지 않은 기운으로 술을 마시면 뇌가 울어. 크게 울어. 그러다 후회가 쌓이게 되는 거야.
- <미생> 6권 중에서
웹툰과 단행본 모두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었던 윤태호 작가의 <미생>이 최근 드라마로 만들어져서 인기리에 방영을 마쳤습니다. 사람마다 작품에 대한 느낌은 달랐겠지만, 저는 과연 완생의 인생이란 무엇일까? 어떻게든 견디고 살아남는 것일까? 자신의 철학을 삶에 관철시켜 살아내는 것일까? 그렇다한들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이런 문답을 하며 자못 진지하게 봤습니다. 그러다가 그 다음 프로를 보며 아무 생각없이 웃고 말았지만요.
미생에는 유난히 명대사들이 많이 나오는데, 위의 말은 위궤양 진단을 받은 천 과장이 오늘로 술을 끊는다면서(그 후에도 마시긴 합니다) 장그래에게 하는 말입니다. 머리는 차갑게 깨어 있으면서 가슴에는 열정을 품고 살아야 한다는 의미로 '수승화강'이라는 단어를 인용합니다. 그런데 한의학에서 바라보는 이 말의 의미는 천과장의 해석과는 조금 다릅니다. 한의학에서는 수승화강을 우리 몸의 가장 근원적인 에너지 순환원리로 봅니다. 우리가 건강하기 위해서는 차가운 물의 기운을 위로 올려 머리를 서늘하게(頭寒) 하고, 따뜻한 불의 기운은 아래로 내려 배를 따뜻하게(腹熱)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보통 머리를 차게하고 발을 따뜻하게 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두한족열'이라는 말을 쓰는데, 이 또한 같은 원리에 기반한 말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에너지의 흐름은 불은 위로 타오르고 물은 아래로 스며드는 자연현상과는 상반됩니다. 여기에 우리가 일정한 형체를 이루고 기능을 유지하면 살아가기 위해서는 내면에 외부의 흐름과는 반대되는 에너지의 흐름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한의학의 생명관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야 음양(물과 불)의 기운이 흩어지지 않고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지요. 만약 이것이 깨지면 우리의 생명은 불과 물처럼 위아래로 흩어져 자연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수승화강을 유지하는데는 오장육부가 모든 연관되어 있지만 그 핵심은 심장과 신장입니다. 심장은 불의 장부이고 신장은 물의 장부입니다. 심장의 불의 기운이 차갑게 식기 쉬운 신장을 따뜻하게 덥혀 주고, 신장의 물의 기운이 타오르기 쉬운 심장을 서늘하게 식혀주어야 좋은 건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의 삶이 심신(心腎)을 피로하게 하는 일로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일년 열 두달 밤낮 없이 일하고, 몸을 움직이기 보다는 머리를 과하게 쓰고, 감정의 균형을 유지하기 어려운 온갖 스트레스와 마음과 몸을 과도하게 자극하는 것들에 싸여 살다보면 심장의 불기운은 치성해지고 신장의 물기운은 메마르는 현상이 발생하게 됩니다. 실제로 만성질환이나 만성피로 그리고 홧병과 같은 증상을 호소하는 분들을 살펴보면 위로 기운은 치솟아 오르고 몸의 근본이 되는 장부의 맥은 텅 비어 있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에는 드러난 증상을 치료하는데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우리 몸의 가장 근본이 되는 수승화강의 순환을 정상화 시켜야 건강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드러난 병을 그에 맞는 방법을 통해 다스리면서 생활속에서 수승화강의 순환을 잡아주는 방법을 실천하면 병의 치료와 예방에 좋은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자주 걷기, 천천히 깊이 호흡하기, 족욕과 반신욕, 발바닥 마사지 등은 불필요한 긴장을 풀어내고 위로 치우친 에너지의 균형추를 아래로 내리는데 도움이 됩니다. 또한 입만을 즐겁게 하는 자극적인 맛을 가진 음식을 삼가고 과도한 음주와 흡연 그리고 설탕과 카페인의 섭취를 줄이는 것이 좋습니다. 개인적인 관심이 있다면 태극권과 같은 기공수련법 중에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을 꾸준히 익히고 수련하면 좋은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단단한 신장의 기운과 따뜻한 심장의 기운으로 내면의 수승화강을 잘 유지한다면 예의가 사라지고 열 받을 일로 가득한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조금은 힘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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