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주년, 분단 70주년을 맞은 2015년 초, 남북 간 대화 분위기가 조성되는 듯이 보였다.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신년사에서 "최고위급 회담을 못할 이유가 없다"고 했고, 박근혜 대통령 역시 신년기자회견에서 남북 정상회담에 "전제조건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를 천천히 뜯어보면 양측 정상은 남북 정상회담, 넓게는 관계 개선으로 가기 위해 서로에게 요구하는 조건들을 언급해놓았다. 북한은 한미 군사훈련 중단과 체제통일 시도 중단, 남한은 핵 문제를 비롯한 북한의 진정성있는 조치 등을 서로에게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현 상황에서 남북이 서로에게 요구하고 있는 조건들이 충족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 전 장관은 "북한이 정상회담의 조건으로 체제통일을 하지 말라고 남측에 요구한 상황에서 박 대통령은 소위 '체제통일의 전위부대'라고 북한이 인식하고 있는 통준위가 통일정책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며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정상회담을 추진할지 의문"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박 대통령이 사실상 북한의 비핵화를 남북 정상회담의 전제조건으로 걸었다며 "(북핵문제는) 6자회담을 통해 풀어가려고 해도 어느 세월에 해결될지 가늠하기가 어렵다"고 내다봤다. 정 전 장관은 "하다못해 6자회담도 열리지 않고 있는 와중에 북한 비핵화의 진전을 사실상의 조건으로 내걸은 것은 북한의 조건과 마찬가지로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고 평가했다.
한반도를 둘러싼 대외 상황도 남북 간 대화 분위기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미국은 김정은 위원장의 암살을 소재로 다룬 영화 <더인터뷰>의 제작사인 '소니픽처스 엔터테인먼트'의 해킹 배후에 북한이 있다고 판단하고 대북제재를 단행했다.
정 전 장관은 미국의 이같은 행보에 대해 "광복 70년, 분단 70년이라면서 남북이 뼈있는 덕담들을 나누면서 접점을 만들어보려고 하는 와중에 미국이 재를 뿌린 격"이라며 "'아시아로의 회귀'를 공언하면서 중국을 견제해야 하는 미국 입장에서 남북 간 필요 이상으로 가까워지는 것은 국익을 위해 좋은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미국이 제동을 걸고 나온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이런 국제환경에서 박 대통령이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대화를 통해 '올해가 광복 70주년이다. 남북관계 개선하고 남북 대화도 추진해야 한다. 그러니까 한미훈련도 좀 축소하자'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나"라며 "대통령이 결심하면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쉽게 이런 이야기를 꺼낼 환경이 아닌 것도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정 전 장관은 "우리가 미국과 불편한 관계를 만들지 않으면서 얼마든지 그 속에서 긴장을 누그러뜨리는 상황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이른바 '작은 평화', '작은 화해' 정도는 만들 수 있다"며 "이는 정부 의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인터뷰는 지난 13일 서울 동교동에 위치한 김대중 도서관에서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편집자.
프레시안 : 올해는 광복 70주년이자 분단 7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역사적인 한 해를 맞아 남북 관계 개선의 접점을 찾을 수 있을지에 대한 기대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는데요.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신년사에서 정상회담이라고 할 수 있는 이른바 '최고위급회담'도 "못할 이유가 없다"고 했고, 박근혜 대통령도 신년 기자회견에서 정상회담에 "전제조건은 없다"고 밝혔습니다. 양측 정상이 말한 것만 봐서는 올해 남북관계가 이전과는 달라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올해 남북관계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정세현 : 양측 정상의 표현만 놓고 본다면 올해 남북관계는 지금까지와 다른 상황으로 진입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지금 남과 북은 만나서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입장을 일방적으로 발표한 뒤 그에 대한 상대방의 대응을 보고 반응하는 이른바 '성명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70~80년대는 그런 식으로 대화 아닌 대화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접점이 생기면 대화로 넘어가곤 했죠.
접점을 만들 수 있는 여지가 있는 표현들은 많이 나왔습니다. 시기라는 차원에서 보자면 올해는 분단 70년, 광복 70년입니다. 이런 점에서 올해는 그냥 넘어가는 안 된다는 당위성이 남북 양측 모두에게 있습니다. 이게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광복 70주년, 분단 70주년을 맞아 국민들에게 무언가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무거운 압박감이 양쪽 정부 모두에 있을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러기 때문에라도 양쪽에서 좋은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봅니다.
그런데 사실 쌍방 모두가 남북대화 재개, 나아가 정상회담 개최에 조건을 내걸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조건 때문에 남북 정상이 만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지난 1일 신년사를 발표한 북한의 조건부터 이야기해보면, 북한은 '조건과 환경이 갖춰진다면 최고위급 회담을 못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조건과 환경'이라는 말은 70년대 적십자 회담 할 때부터 북한이 단골로 쓰던 표현입니다. 이른바 '조건환경론'이라는 건데, 당시에는 주한미군 철수, 남한의 반공정책 포기, 보안법 철폐 등등을 거론했었습니다. 물론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용어는 같지만 의미하는 내용은 다릅니다.
일단 김 제1위원장은 제도통일을 추구하지 말라는 언급을 했습니다. 북한은 제도통일을 흡수통일이라는 말과 동의어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했을 때 이는 곧 흡수통일을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북쪽 사람들은 제도통일, 또는 체제통일과 반대되는 말로 '민족통일'을 언급합니다. 민족 간 화해협력과 교류를 하면서 민족 간 적대의식이 사라진 상태를 민족통일이라고 하고, 체제통일은 정부를 하나로 만들고 경제체제도 하나로 만든다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체제통일은 우리 측 통일준비위원회와 연결돼 있습니다. 통준위가 처음 출범했을 때 북에서는 '체제통일의 전위부대'라고 규정했습니다. 북한은 남측이 체제통일을 시도하지 않는다는 조건 아래 남북 최고위급회담을 "못할 이유가 없다"고 했습니다. 물론 "못할 이유가 없다"는 이 표현 역시 단순한 레토릭은 아닙니다. 그 말 속에도 많은 복선이 깔려있긴 합니다.
그런데 "못할 이유가 없다"는 표현의 내막은 잠시 접어두고 보더라도 남북 간 정상회담을 위한 '조건과 환경'을 갖추는 것이 쉽지는 않아 보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 모두발언에서 통준위를 중심으로 통일을 준비하겠다고 했습니다. 북한이 정상회담의 조건으로 체제통일을 하지 말라고 남측에 요구한 상황에서 박 대통령은 소위 '체제통일의 전위부대'로 북한이 인식하고 있는 통준위가 통일정책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언급한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정상 간 만남을 추진하려고 할지 의문입니다.
북한이 내건 '최고위급 회담'의 조건이 또 하나 있습니다. 김 제1위원장은 "남조선 당국은 외세와 함께 벌이는 무모한 군사연습을 비롯한 모든 전쟁책동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는 한미 군사훈련과 같은 대북 적대시 정책을 남쪽이 추구하지 않는다면 정상회담을 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그런데 당장 오늘(13일)부터 동해상에서 한미연합해상훈련이 시작됐습니다. 앞으로 4월 말까지 크고 작은 한미 합동 군사훈련이 계속될 겁니다. 2월 말부터는 키리졸브와 폴이글 등 본격적인 한미 합동 군사훈련이 시작됩니다. 북한이 이걸 하지 말라는 것인데 한국이 이 요구를 들어주기가 쉽지 않습니다. 미국이 응할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남한은 지난해 전시작전권 환수를 사실상 무기한 연기해 놓았을 뿐만 아니라, 이명박 정부 때 밀실추진으로 논란이 됐던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을 '한미일 정보공유 약정'의 형태로 체결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남북대화 해야 하니까 한미 군사훈련 못 하겠다"고 미국에 이야기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결국 북한에서 말한 이런 조건들은 현실화되기 어려운 겁니다.
그럼 고위급접촉은 열릴 수 있을까요? 우선 대북전단 문제가 있습니다. 국회에서 대북전단 살포를 정부가 중단시킬 것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은 '남북 당국 상호비방·중상 중단 합의 이행 촉구 결의안'이 지난 12일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본회의에서 새누리당 절대다수가 반대하면 모양새가 안 좋으니까 상정을 중지했다고 하던데, 사실 국회 차원에서 결의안이 통과되는지 여부보다는 정부의 조치가 중요합니다. 통일부나 국가안보실이 나서서 최근에 있었던 사법부의 판결을 존중해 전단 살포를 막겠다고 하면 일단 남북 고위급접촉은 1월 말 이전이라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부가 막겠다는 명확한 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에 고위급접촉도 쉽지 않습니다.
박 대통령은 5.24조치에 대해 북한과 만나서 이야기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북한이 회담에 대한 기대를 갖고 고위급접촉에 나오게 하기 위한 인센티브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5.24조치 해제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천안함 문제와 관련해 정부가 결단을 내리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전단 살포 대처 결의안이 외교통일위원회를 통과했음에도 본회의에서 부결되는 것을 두려워할 정도로 정부 여당이 보수층의 눈치를 보고 있다면, 5.24조치를 불러온 천안함 사건에 대한 북한의 사과를 받지 못하고서는 남북관계의 진전은 안 된다는 논리를 가져갈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 입장에서도 천안함 사건은 자신들의 소행이 아니라고 여러 번 공개적으로 이야기했는데, "우리가 했다 치자, 미안하다"라고 이야기하고 넘어갈 수는 없을 겁니다.
특히 박근혜 정부는 천안함 사건에 대해 이명박 정부와 같은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천안함 사건에 대한 북한의 적절한 해명과 사과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인데, 이러한 입장을 여러 번 공개적으로 밝혔기 때문에 대통령이 결단을 내려서 5.24조치를 풀기가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정부 여당이 보수층의 눈치를 보고 있는데 대통령이 결단을 내릴 수 있겠습니까. 5.24조치가 풀리지 않으면 고위급접촉이 열리더라도 성과 없이 끝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게다가 박근혜 정부는 집권 이후 2년 동안 이른바 '종북몰이'로 국내 정치적인 기반을 강화해온 측면이 있습니다. 이게 족쇄가 될 수도 있습니다. 북한에 대한 적개심을 바탕으로 정권의 위기를 극복해왔는데 갑자기 대북 화해협력 기조로 돌아서기도 쉽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국내 정치 기반인 보수층의 반발을 불러올 테니까요.
군사훈련 문제가 남아있긴 하지만, 5.24조치만 해제해도 북한이 이야기했던 '조건과 환경'의 상당한 부분이 풀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천안함 문제를 매듭짓지 못하고 5.24조치를 풀지 못하면 그 이후의 남북대화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북한은 신년사에서 고위급접촉 이후 부문별회담을 진행하고, 이어 최고위급 회담도 못할 이유가 없다면서 나름의 남북대화 로드맵을 제시했습니다. 부문별회담은 이산가족 상봉, 남북 경협 활성화, 개성공단 활성화, 나진‧선봉 진출 문제 등 다양한 방식으로 나올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성과를 내다보면 정상회담도 할 수 있다는 것이 북한의 생각인데, 천안함 문제 때문에 5.24조치를 풀지 못하면 부문별회담으로 넘어가기 어려울 것이고 그렇다면 정상회담도 어려운 것입니다.
1980년대 전두환 정부는 버마 랑군 테러 사건, KAL기 폭파사건 등을 남북대화의 조건으로 내걸지 않았습니다. 1983년 10월 9일 일어났던 랑군 사건은 당시 버마의 재판소에서도 북한의 소행이라는 것이 입증됐던 사건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 해인 1984년 남북 체육회담이 열렸습니다. LA올림픽 단일팀 구성을 위한 회담이었는데, 청와대는 북쪽의 제안을 무조건 받으라고 지시했습니다. 북한이 랑군 사건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는 것을 조건으로 걸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회담운영부장이었던 저는 랑군 사건에 대해 아무런 언급 없이 회담으로 넘어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전두환 대통령은 북한의 제안을 조건 없이 받으라고 했습니다. 회담이 열리는 순간, 랑군 사건은 잊혀진 일이 됐죠. 이처럼 청와대가 랑군 사건에 대해 면죄부를 주고 넘어간 것입니다.
1987년 11월 29일 KAL기 폭파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사건 이후 바로 그 다음 해인 1988년 7월 7일, 노태우 정부는 7.7선언을 발표했습니다. KAL기 폭파사건은 자연스럽게 역사속의 한 페이지로 넘어가게 된 것입니다.
정상회담 성사시키기 위한 남한의 조건은?
프레시안 : 통준위 고위관계자는 최근 기자들과 만나서 지난해 12월 29일 통준위 차원에서의 대화 제의와 1월 1일 류길재 통일부 장관의 대화 제의에 북한이 응답을 늦게 하면 이는 곧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 문제에 대한 진실성이 없다고 본다"고 밝혔습니다. 이산가족 상봉 문제에 대한 북한의 입장이 남북대화를 하려는 북한의 진정성을 알아보는 지표라고 간주하고 있는데요.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에 목을 맬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산가족 상봉을 인도주의적인 문제라고 보지만 북쪽은 자신들의 체제 유지에 정치적 부담이 많은 문제로 봅니다. 이산가족 상봉 과정에서 북한 주민들한테 어떤 메시지가 전달될지를 생각해보면 북한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분단이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는 남북 간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남북의 격차는 그 차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습니다. 서로의 생각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우리 쪽 가족들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데 북쪽에서는 훈장을 줄줄이 달고 나와서는 "수령님 덕분에, 장군님 덕분에 잘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북은 상봉하러 나가는 가족들에게 체제 옹호 발언을 하라고 교육시킵니다. 감시원도 있습니다. 남쪽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 중간에 그 이야기를 자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는 곧 북쪽체제가 남쪽체제보다 열악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반증입니다.
뿐만 아니라 기술적·행정적인 측면에서도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을 부담스러워 합니다. 우리는 이산가족 명단이 전산화돼있기 때문에 북쪽에서 명단이 넘어오면 가족을 찾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바로 전산처리해서 본인 동의 얻어서 북쪽에 통보해주면 됩니다. 실질적으로 우리는 보름 정도면 확인 작업을 끝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북쪽은 전산망이 갖춰지지 않아서 수작업으로 확인을 해야 합니다.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북쪽에는 가족들 중에 월남자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서 추후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실제 월남자들 중에 성공한 사람들이 북쪽 가족을 찾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월남 이후에 남한에서 사회적으로 출세했다는 이야기는 그만큼 남측 정권에 협조했기 때문이라고 북쪽에서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즉 북쪽에서는 소위 '반북'의 최일선에서 뛰었던 사람으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럴 경우에 그동안 가족 중에 월남자가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살았던 북쪽 사람이 남쪽 가족들이 찾음으로 인해 정체가 드러나서 불이익을 받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실제 월남해서 남한에서 장관, 총리 지낸 분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분들은 대체로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하지 않습니다. 왜 안하느냐고 물어봤더니 북쪽의 가족들이 자신의 존재를 숨기고 잘살고 있을 텐데, 도와줄 수도 없는 처지에 괜히 찾아서 무엇 하느냐는 겁니다. 즉 이산가족 상봉 문제는 북쪽 정권에게도, 북에 있는 이산가족에게도 굉장히 부담스러운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북쪽 입장에서는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반대급부가 있어야 합니다. 인도주의적인 문제니까 당연히 이산가족 상봉에 호응해야 한다는 것은 대단히 남측의 '자기 중심적인' 생각입니다.
김대중 정부 때 이산가족 상봉 사업을 우선순위 1번으로 올렸습니다. 국내적으로도 호소력이 있었지만 이산가족 상봉 문제를 구실로 비료와 쌀 등 대북 인도적 지원을 이와 연결시켜, 남북 간 고리를 강화해 보고자 하는 전략적 계산이 있었습니다. 이게 계속되니까 이산가족 상봉을 10여 차례 넘게 하게 된 겁니다. 북한에게 정치적, 행정적 부담을 상쇄하고 남을 만큼의 이득이 있었다는 겁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이산가족 상봉 문제를 접근하는 방식을 보면 막말로 인도적인 문제라는 미명하에 공짜로 하려는 것 같습니다. 북쪽은 혹시나 싶어서 상봉에 응했지만 경제적 반대급부가 사실 아무것도 없으니까, 더 이상 여지가 보이지 않으니까 상봉 정례화 등 이렇다 할 진전이 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쪽의 주요 관심사인 이산가족 상봉을 성사시키려면 북한에 상당 정도의 경제적 반대급부를 줘야 하는데, 현 정부는 이러한 점을 도외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프레시안 :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기자회견에서 남북 정상회담에 전제조건이 없다고 말을 하면서도, 그 뒤에는 비핵화를 언급하면서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데 평화통일을 이야기할 수는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걸 우리 쪽의 전제조건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요?
정세현 : 전제조건이 없다는 말을 하긴 했지만 사실상 비핵화 조건을 걸었다고 해석됩니다. 박 대통령은 남북대화 또는 다자협의를 통해 비핵화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이 말이 남북대화와 북핵 해결 병행으로 들리기도 하는데, 박 대통령이 비핵화의 진전이 없으면 평화통일 이야기를 할 수 없다고 언급한 것으로 보아, 결과적으로 북핵 문제 해결을 조건으로 내걸고 정상회담을 수용하는 모양새가 됐습니다.
핵문제는 다자협의인 6자회담을 통해 풀어가려고 해도 어느 세월에 해결될지 가늠하기가 어렵습니다. 20년이 넘도록 해결되지 못한 문제 아닙니까? 하다못해 6자회담도 열리지 않고 있는 와중에 북한 비핵화의 진전을 사실상의 조건으로 내걸은 것은 북한의 조건과 마찬가지로 다소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안타깝게도 북한은 핵문제를 남북 간 협의 대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남북대화로 북핵 문제의 진전을 달성하고 싶어도 북한이 응하지 않는다는 거죠. 김대중 정부 말기인 2002년 10월 고농축 우라늄 문제가 터지면서 북핵 위기가 고조됐었습니다. 당시 장관급 회담이 평양에서 열렸는데 이 때 남북 간 핵문제를 협의해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핵문제는 남북 간 협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과 결판낼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1994년 10월 21일 제네바 합의를 체결했을 때도 남한은 빠졌다면서 말입니다.
북한은 미국의 책임하에 한국이 경수로 사업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까지는 받아들이겠지만, 결정권은 미국이 가지고 있다면서 미국과 협의할 테니 한국은 빠지라는 입장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우리는 다자대화를 통해서 한다는 조건이 있어도 좋으니 장관급 회담 공동 보도문에 '북핵 문제'를 넣자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핵이라는 단어를 하나 넣기 위해 밤새 씨름했는데도 북한이 받질 않더군요.
물론 통일부 장관급 회담에서 북핵을 이야기하고 합의를 이끌어낼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북한의 기본 입장이 위와 같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러면서 북한은 "남한이 (북한)핵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느냐"라고 반문합니다. 미국이 정보를 제공해야 그제서야 알게 되고, 미국의 결정에 따라가는데 무슨 결정권이 있느냐고 따집니다. 이런 이야기를 꺼내면 정말 자존심 상합니다. 북핵 문제를 남북대화의 의제로 삼으려고 하면 회담의 시간만 길어지고 결국 나중에 모욕만 당하는 것이 현실이라는 점을 알게 됐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핵문제에 대해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6자회담 같은 다자대화가 재개됐을 경우 6자회담에서 남북이 서로 협조하는, 협력하는 모양새가 갖춰진다면 합의를 하는데 우리가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한미, 한중, 남북 협력의 세 채널을 가동해서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입니다. 다만 남북관계 개선과 북핵문제 해결 병행이라는 원칙을 채택한다고 해도 북핵 문제를 남북대화의 의제로 만들기는 어렵습니다.
프레시안 : 박 대통령은 "열린 마음으로 진정성 있는 자세가 꼭 필요하다"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상대의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는 건데 이것 역시 하나의 조건으로 읽힙니다.
정세현 : 박근혜 정부 들어서 부쩍 북한의 ‘진정성’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대화하자고 하면서 항상 '진정성'이라는 단어를 씁니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진정성 타령입니다. 그런데 남북이 과연 서로 진정성을 이야기할 만큼 신뢰할 수 있는 사이입니까?
남북은 지난 70년 동안 경쟁해왔던 관계입니다. 국제법적으로는 유엔에 동시 가입했으니까 국가 대 국가의 관계지만 국내법적으로는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헌법상으로도 상대방 지역을 자신의 영토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런걸 '특수관계'라고 하죠. 우리는 헌법에 북한을 반국가단체라고 명시하고 있고, 북한은 조선노동당 규약에 남한을 공산화의 대상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남북이 대화를 하려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통일은 좀 나중 일이라고 치고, 서로의 필요에 의해 대화를 통해 남북 간 긴장을 줄여보자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대화를 하려고 하는 순간에도 남과 북은 상대방에 대한 비수를 감추고 있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통일 대박은 북한이 보기에 소위 "녹여 먹으려는" 속셈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북한에만 진정성을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진정성과 관련해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소련을 변화시키고 냉전을 종료하게 만든 것은 레이건 대통령 재임 시절 대(對)소련 정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1970년대 중반부터 미국과 서유럽이 합동으로 소련과 동유럽에 경제지원을 했고 이 과정에서 사회문화적 교류를 확대시켰고, 그러면서 인권 상황을 개선하라는 요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소련과 동유럽에게 계속 우리의 지원을 받고 싶으면 인권 상황을 개선하라고 요구한 겁니다. 이렇게 인센티브를 주면서 나중에는 군축협상까지 들어갔습니다. 이렇게 발전된 것이 이른바 1975년 '헬싱키 프로세스'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레이건 대통령은 소련을 "악마의 제국"이라고 규정했습니다. 마치 부시가 2002년 북한, 이란, 이라크를 악의 축이라고 했던 것처럼 말이죠. 그러나 레이건은 부시와는 달리 "악마의 제국이기 때문에 그들과 대화를 계속해야 한다. 대화를 통해 협상을 하고, 대화를 통해 나쁜 짓을 못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대화의 이면에서는 헬싱키 프로세스를 좀 더 확장해서 계속 소련과 동유럽에 대한 경제지원을 하면서 이들이 대화에서 이탈하지 못하도록 붙들고 있기도 했습니다.
결국 미국과 서유럽의 경제력, 문화적 우위에 동유럽이 빨려 들어왔습니다. 그러면서 사회주의권도 붕괴됐습니다. 만약 그때 레이건이 "소련과 대화하려면 그들의 진정성을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면 이와 같은 대화는 없었을 것입니다.
악마한테 무슨 진정성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애초에 진정성은 기대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대화를 통해 계속 감시한다는 전략을 세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다보면 이쪽에서 지원이 가는 것이 있으니까 이를 받아먹기 위해서라도 저쪽이 변할 수밖에 없다는, 이른바 '평화적 이행전략'을 추진해야 합니다.
어차피 북한을 못 믿기 때문에 진정성이라는 말이 강조되고 있지만, 북한이 약속을 위반했기 때문에 진정성을 확인하고 대화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약속을 밥 먹듯이 어기고 있으니까 이를 관리하기 위해서라도 진정성 타령만 하지 말고 대화를 더 많이 해야 하는 겁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말, 통준위 명의로 북한의 통일전선부에 남북대화를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남북간의 대화 채널을 기존의 통일부에서 통준위로 바꾼 것인데, 이것이 남북 대화 재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정세현 : 일단 통준위와 통전부는 법적인 지위 면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북한의 통전부는 조선노동당 제1비서의 지휘를 받는 부서로, 대남정책의 총괄부서이긴 합니다만 당의 기구입니다. 반면 통준위는 대통령이 위원장이긴 하지만 정부 기구입니다. 정치적으로 보자면 크게 문제될 것은 없지만 법적으로는 맞지 않는 회담 파트너입니다. 행정부와 정당 간 기구가 대화를 하는 것인데, 가까운 시일 내에 이뤄지긴 어려워 보입니다.
더 중요한 문제는 북한이 통준위에 대해 가지고 있는 거부감입니다. 북한은 박 대통령이 지난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통일대박'을 두고 흡수통일을 전제로 한 것이라는 의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북쪽 사람들은 통준위를 '흡수통일, 체제통일 준비위원회'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통준위와 대화하려고 하겠습니까? 그래서 김 제1위원장의 신년사에 통준위나 통준위-통전부 회담이 단 한 차례도 거론되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가 통준위를 내세워서 북한과 접점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통준위에 북한 전문가뿐만 아니라 각계 전문가들이 총망라돼 있다는 것도 북한이 통준위를 '흡수통일 준비위원회'로 인식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북한이 보기에는 통일문제의 전문성을 가진 인사들이 모였다기보다는 분야별 민간 대표들이 흡수통일 이후를 생각하고 계획을 세우는 것처럼 볼 수 있습니다.
북한은 남한의 이북 5도 도지사도 북한에 대한 실지(失地) 수복개념이 들어있다면서 질색을 하던 사람들입니다. 남북대화가 잘될 때도 이북 5도 이름으로는 북한과 접촉이 되지 않았습니다. 흡수통일에 대한 공포를 제거하기 전에는 북한이 통준위를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전방위적으로 북한 압박하는 미국, 남북관계 '훈풍' 가능한가?
프레시안 : 남북이 정상회담에 각자의 입맛에 맞는 조건을 걸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대화 자체에 대한 의지는 보이면서 올해 남북 간 어떤 식으로든 접촉하려는 움직임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 힘을 얻고 있는데요. 그런데 한반도를 둘러싼 대외적인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선 미국은 김정은 제1위원장 암살을 소재로 한 영화 <더인터뷰>(The Interview)의 제작사 소니픽처스 엔터테인먼트의 해킹 배후로 북한을 지목하고 강력한 대북제재를 시행했습니다.
정세현 : 미국이 작심하고 시작한 것이라고 봅니다. 광복 70년, 분단 70년이라면서 남북이 뼈있는 덕담들을 나누면서 접점 만들어보려고 하는 와중에 미국이 재를 뿌린 격입니다. '아시아로의 회귀'를 공언하면서 중국을 견제해야 하는 미국 입장에서 남북 간 필요 이상으로 가까워지는 것은 국익을 위해 좋은 상황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일단 <더인터뷰>라는 B급 코미디 영화가 미국 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 내에서 일종의 북한을 비하하는 정서가 조성되고 있는 것입니다. 북한을 코미디 소재로 만들면서 상대할 만한 가치가 없는 곳으로 만드는 겁니다.
소니픽처스가 사기업인데 미국 정부의 정책이 영화에 투영됐다고 보기 어렵지 않느냐는 시각도 있지만, 사실 할리우드 영화만큼 미국적 가치를 세계화시키는 첨병 역할을 하는 것을 찾아보긴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1950~60년대 백인과 인디언이 나오는 영화가 많았는데, 항상 백인은 좋은 사람이었고 인디언은 나쁜 사람이었습니다. 서부 개척에 방해가 되는 요소로 그려졌죠.
<더인터뷰>도 마찬가지로 미국적 가치가 들어갔다고 봅니다. 북한은 악의 축이 아니라 우스꽝스러운 존재, 그러니까 대화조차도 필요 없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미국은 이 영화를 통해 북한은 없애버려야 할 나라라는 이미지 메이킹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해킹의 배후가 북한이라는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결론에 대해 미국의 주류언론인 <뉴욕타임스>를 비롯해 대부분의 컴퓨터 전문가들이 의문을 표시하고 있는데도 오바마 대통령은 휴가 중인 지난 2일(현지시각) 대북제재를 황급하게 추진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북한 인권 문제의 책임자를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제소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북한 인권결의안을 유엔총회 때 통과시켰고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의제로 상정시키기까지 했습니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 때문에 김 제1위원장이 국제형사재판소에 서는 모습을 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지만, 이런 행위 자체가 가지는 상징성은 무시하지 못할 수준입니다. 이번 조치로 북한에는 최악의 인권 침해국가라는 딱지가 붙었습니다.
이런 국제환경에서 박 대통령이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대화를 통해 "올해가 광복 70주년이다. 남북관계 개선하고 남북 대화도 추진해야 한다. 그러니까 한미훈련도 좀 축소하자"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박 대통령이 결심하면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쉽게 이런 이야기를 꺼낼 환경이 아닌 것도 사실입니다.
프레시안 : 북한이 한미군사훈련을 하지 않으면 자신들도 핵실험을 중지하겠다고 제안했습니다. 현실적으로 이뤄지기 힘든 제안이었다는 평가가 많았는데요. 미국은 예상대로 이를 거절했습니다.
정세현 : 김 제1위원장이 최고위급회담 개최 조건으로 한미 군사훈련의 중단을 요구했을 때 우리 국방부는 군사훈련은 한미 간 합의한 사항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히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북한은 "그래? 어차피 너희는 전작권도 없고, 결정권이 없지"라고 생각하고 미국에 직접 이야기하자고 결정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한미훈련에 대한 미국의 정책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압박 차원에서 핵실험과 연결시킨 것입니다.
물론 미국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한미합동군사훈련과 핵실험 연계는 부당하다고 했죠. 한미합동군사훈련은 방어적인 훈련이고 연습인데 북한의 핵실험은 도발적이고 위협적인 것이기 때문에 맞바꿀 만한 성격의 사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결국 북한이 남북관계 개선 조건으로 내걸었던 한미 군사훈련 중지, 즉 대북 적대시 정책 중지가 현실적으로 어렵게 됐습니다.
프레시안 : 미국은 이란과 핵협상을 하고 있고 쿠바와는 관계 정상화를 선언했습니다. 반면 남북관계에서는 남측이 운전석의 주인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즉 미국이 아닌 남측의 주도권을 인정한다고 말하면서도 이번에 남북이 가까워지려고 하니까 대북 제재를 통해 견제에 나섰습니다. 오바마 정부가 과거 적대국이었던 이란 및 쿠바와는 관계정상화에 나서면서 유독 북한에 대해서는 적대적 태도를 강화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정세현 : 미국은 이란이나 쿠바를 압박해서 얻을 수 있는 국제정치적인 실익이 없다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국익을 증대시키는 데에도 별다른 이익이 없죠. 그렇지만 북한은 다릅니다. 인권이든, 해킹문제든 핵문제든 간에 북한을 압박하면 그 반대급부로 미국에 주어지는 실익이 적지 않습니다. 북한을 핑계 삼아 중국을 견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부상에 따라 발언권이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견제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동아시아에서의 미국의 절대적 우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미국은 북한 때리기를 계속 하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결국 지정학적으로 차이가 있는 것인데요. 쿠바나 이란, 북한이 가지고 있는 지정학적 가치가 다르기 때문에 나오는 결과라고 봐야 합니다.
쿠바와 이란 뒤에는 미국이 압박하거나 견제해야 할 나라가 없습니다. 즉 미국과 경쟁하는 국가가 없다는 겁니다. 또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뒷마당에 있는 쿠바와 관계를 푸는 것이 도움이 되겠죠. 그러면 동아시아에 '올인'할 수 있으니까요. 우크라이나 사태로 러시아와 각을 세우고 있는 마당에 전선을 줄이는 것이 미국에 이익이라는 것을 생각해봤을 때, 북한을 이란과 쿠바처럼 다룰 수 없게 됩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 개선의 출구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미국과 불편한 관계를 만들지 않으면서 얼마든지 그 속에서 긴장을 누그러뜨리는 상황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이른바 '작은 평화', '작은 화해'정도는 만들 수 있습니다. 이는 정부 의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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