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후 프랑스 파리는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에 항의하는 집회로 떠들썩했다. "파리가 나치 독일로부터 해방됐을 당시 거리로 나온 100만 명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고 한다. 이날 프랑스 전역과 유럽 곳곳에서 이런 집회들이 열려 수백 만명이 참여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40여 개국 정상급 인사들도 참여했다는 이번 집회의 성격은 주로 "언론 자유에 대한 중대한 도전"에 항의하는 취지였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언론 자유에 재갈을 물리는 극단주의자들의 소행' 차원 정도로 인식만 해서는 또다른 비극이 초래될 것이라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예를 들어 '북한의 존엄'이라는 김정일이나 김정은을 조롱하는 만평을 실은 국내 한 언론사가 북한 무장세력에 의해 공격을 당해 만평가들이 죽임을 당했다면, 이를 일부 극단주의자들에 의한 언론 자유에 대한 테러, 언론 자유를 위협한 사건이라고 규정하면 사건의 본질을 제대로 규정한 것일까?
이 사건을 '언론 자유가 중대한 위협에 처해 있는 사건'으로 규정하거나, 이 주간지가 너무 심한 만평을 했다는 식의 비평을 할 때인가? '언론의 자유'를 논하는 차원을 넘어서, 왜 프랑스 시민권자들이 자국의 언론자유를 짓밟는 테러에 가담했는지 그 의문의 근원을 성찰할 때가 아닐까?
'언론 자유'만 외치면, 대테러 전쟁 이기나?
영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샤를리 에브도 사건'에 대해 "전문적인 공격"이라고 표현했다. 한 공동체 내에서 언론 보도에 대해 '전문적 공격'이 벌어졌다면, 대체로 정권 내지는 정권과 관계된 사조직들이 개입된 것이다. 이런 경우 '언론 탄압' 사건으로 전국적, 나아가 세계적인 항의집회가 벌어진다면 감동적일 것이다.
하지만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언론인들에게 전문적인 공격"을 했다는 사건을, '언론 보도'에 불만을 가진 쪽의 보복이라며 항의하는 차원에 머물게 하는 것은 또하나의 집단주의적 이념공세일 위험이 있다.
이미 세계 곳곳은 서구와 이슬람 세력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실제로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은 '프랑스판 9.11 사태'로 불린다. 미국은 9.11 테러 이후 '대테러 전쟁'을 선언했다. 프랑스 정부도 이번 사건으로 '극단주의와의 전쟁'을 선언했다.
하지만 자국 내에서 벌어지는 테러 위협을 상대로 한 전쟁은 '방어전'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기기도 힘들다. "9.11테러 사태 이후 서구의 젊은이들이 이슬람 극단주의에 빠져드는 것을 막고, 설득하는 데 왜 실패했는지에 대해 더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오히려 '샤를리 사건'은 유럽은 물론, 미국 등 이슬람권과 '대테러 전쟁'을 하거나 이를 지원하는 동맹국들에게 비슷한 테러가 일어날 우려를 증폭시킨 '신호탄'으로 봐야한다.
<타임>은 "안보당국의 대응역량보다 테러 위협이 훨씬 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라고 지적했다.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돌아오는 '자생 테러리스트'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는 것이다.
"테러 위협, 통제수준 벗어났다"
<타임>은 "샤를리 에브도 사건과 식료품점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은 파리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 테러 위협이 통제 수준을 벗어났다는 우려를 증폭시켰다"고 경고했다.
영국의 국내 담당 안보기관인 MI5의 수장 앤드루 파커는 "조직 업무의 절반이 대테러 활동에 집중되고 있다"고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영국의 대외담담 안보기관인 MI6 수장 출신으로 현재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의 초국적 위협과 정치적 위기 분야 최고 책임자인 나이절 잉스터는 "파리 사건은 분화되고 사방으로 흩어지는 테러 확산 징후"라고 진단했다.
특히 그는 이번 파리 사건과 2013년 9월 나이로비 쇼핑몰 테러 사건을 심각한 유형으로 지목했다. 테러조직과 연계되지 않은 '외로운 늑대'들이 일으키는 수준을 훨씬 벗어난 '훈련된 늑대'들이 일으키는 사건이라는 것이다.
잉스터는 "유럽의 무슬림과 이슬람으로 개종한 사람들이 중동으로 가서, 극단적 폭력을 불사하는 자들이 되어서 돌아오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테러 위협에 대한 성공적인 대응을 판단하는 유일한 기준은 테러가 발생하지 않는 것"이라면서도 이런 목표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시인했다.
그는 "2005년 7월 7일 런던 폭탄 테러가 일어났을 때, 이슬람 성전의 중심지는 파키스탄이었으나, 지금은 시리아와 이라크, 리비아 등 유럽과 매우 가까우면서 무정부 상태의 지역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사람들은 이런 전쟁 지역과 유럽 사이에 아무런 차단막이 없다고 느끼고 있다"고 덧붙였다.
영국 왕립국제문제연구소(RIIA)의 저널 편집장 앨런 필립스는 "이슬람에 대한 혐오와 공포는 유럽통합과 이민, 세계화를 거부하는 포퓰리즘적인 노선에 대해 불만들을 덮으려는 수단이 되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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