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남북 상공에 몰려드는 '2월 먹구름'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남북 상공에 몰려드는 '2월 먹구름'

[정욱식 칼럼] 북한의 제안, 한미의 거절이 아쉬운 이유

참으로 안타깝고 답답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충분히 검토할 가치가 있는 북한의 제안을 한미 양국 정부가 일축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북한은 1월 10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미국이 올해에 남조선과 그 주변에서 합동군사연습을 임시 중지"하면 "우리도 미국이 우려하는 핵시험을 임시 중지하는 화답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북한은 이 제안을 "중대조치"라고 일컬으면서 "9일 해당경로를 통하여 미국 측에 전달"했다.

그러나 한미 양국은 즉각 북한의 제안을 일축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따라 금지된" 북한의 핵실험과 "방어용 연례 훈련인" 한미군사훈련을 연계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은 북한의 제안을 "암묵적 위협"(implicit threat)라고 비난했다.

물론 한미 양국이 북한의 제안을 100% 수용하기는 힘들 수는 있었다. 그러나 북한의 제안이 대화와 협상을 통해 상호 만족할 수 있는 방향으로 문제를 풀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건 지금 현재에도 유효하다. 그 이유를 하나씩 짚어보면 이렇다.

먼저 한미 양국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북핵 고도화'를 막는 데에 있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이 추가 핵실험을 통해 핵탄두 소형화를 완성하는 걸 막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한미 양국은 북한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말았다. 북한 내 강경파가 이를 4차 핵실험의 구실로 삼지 않을까 우려되는 대목이다.

둘째, 북한의 제안은 한미 양국이 활용하기에 따라 비핵화 협상의 '새로운 입구'가 될 수 있었다.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북미 대화나 남-북-미 3자 대화를 열어 한미 합동군사훈련 임시 중단(혹은 대폭 축소)의 상응 조치로 북한에 핵실험뿐만 아니라 위성을 포함한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 중단도 요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6자회담 재개를 위한 분위기 자연스럽게 조성될 수 있다. 그만큼 남북대화도 탄력을 받을 수 있다.

셋째, 중국과 러시아에도 한반도 문제를 풀고자 하는 한미 양국의 진정성을 전달할 수 있는 계기였다. 6자회담 참가국이자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인 이들 나라는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를 반대하고 북한이 이를 강행할 시 안보리 대응에 함께 나서왔다. 동시에 한미합동군사훈련의 자제도 요청했었다. 나름대로 공정한 중재자와 문제 해결의 촉진자가 되고 싶어한 까닭이다.

그러나 이번에 한미 양국이 북한의 제안을 일축함으로써 중국과 러시아의 한미동맹에 대한 불신도 커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들 나라는 한미 양국이 북한과의 대화에는 소극적이면서 북한 위협을 근거로 미사일방어체제(MD)를 비롯한 군비 증강과 동맹 강화에는 적극적인 모습에 불만을 토로해왔다. 작년 한반도와 동북아를 강타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논란이 대표적이다.

이에 따라 2월 하순에 한미합동군사훈련인 '키 리졸브/독수리 훈련'이 강행되면, 남북관계 및 북·미 관계는 물론이고 한미일 대(對) 북중러 사이의 갈등도 증폭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안보는 상대가 있는 게임이다. 한미 양국은 북한이 핵실험을 두고 자위적 목적의 정당한 주권 행사라고 주장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북한이 한미군사훈련에 반발하는 것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북한이 과장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 훈련 자체가 세계 최대 규모의 실전 훈련이자 '평양 점령'과 북한 급변사태 대비, 그리고 미국의 핵 타격 수단 반입 등 북한을 자극하는 요소들도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한미 양국은 북한의 제안에 대해 수정 제안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 남-북-미 3자가 핵문제를 포함한 군사 문제를 포괄적으로 논의해보자고 말이다. 북한도 한미 양국의 태도를 문제 삼으면서 이를 4차 핵실험의 구실로 삼으려는 시도를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이미 소개한 적이 있지만, 한반도 핵문제와 군사 훈련 문제가 선순환을 그리면서 대전환의 문턱에 도달했던 적이 있었다. 1991년 말에 한미 양국은 고심 끝에 한미군사훈련 '팀스피릿' 중단 방침을 정하고 이를 북한에 전달했다. 이는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과 남북기본합의서가 채택될 수 있었던 결정적 배경이었다.

이듬해 1월 7일 노태우 대통령과 조지 H.W 부시(아버지 부시) 대통령은 공동기자회견에서 팀스피릿 중지 방침을 공식 발표했고, 북한도 같은 날 국제원자력기구(IAEA) 안전조치협정에 가입해 핵사찰을 받겠다고 선언했다. 한미 양국이 합동군사훈련 중단이라는 선제적 조치를 통해 북한의 획기적인 호응을 이끌어낸 것이다.

그러나 팀스피릿 훈련 중단으로 흥(興)한 남북관계는 이 훈련의 재개로 망(亡)하고 말았다. 92년 대선을 불과 두 달 앞두고 열린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SCM)에서 한국 측의 요청으로 팀스피릿 훈련 재개 방침을 발표해 버린 것이다. 이에 분개한 북한은 1993년 3월 팀스피릿 훈련 재개 및 IAEA의 특별사찰 결의를 강력히 비난하면서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해버렸다. 이를 두고 당시 주한 미국대사였던 도날드 그레그는 이 훈련의 재개야말로 "가장 큰 실수"라고 회고하기도 했다.

당시 '못다 핀 꽃'을 이제는 피워야 한다. 광복과 분단 70년을 맞이한 올해마저도 북핵과 한미군사훈련이 악순환을 그리게 되면, 이것이야말로 '민족사적 실수'가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