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말 박근혜 후보의 대선 승리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집권 이후 2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한일 정상회담은 여전히 요원해 보인다. 독도 영유권 문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교과서 문제 등 한일 간 갈등을 촉발하는 현안이 여전히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한일 갈등은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갈등은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한국에서는 아베 총리의 잘못된 과거사 인식과 일본을 보통 국가로 탈바꿈시키려는 이른바 '우경화' 드라이브로 인해 한일 갈등이 증폭됐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아베 신조의 일본>(세창미디어, 2014년 11월 펴냄) 저자인 노 다니엘 교수는 만약 한 사람의 정치가 때문에 두 나라의 관계가 위기에 처하게 됐다면 이것이야말로 "인류사에 드문 하나의 수수께끼"라고 일갈한다.
저자는 "아베 신조는 과연 많은 한국인이 생각하듯 '우경화'라는 병에 걸린 이상한 사람인가"라며 "그와 그의 추종자들이 한국인의 가슴을 헤집고 두 나라의 관계를 해치는 까닭"과 "지구촌에 사는 교양인으로서 우리가 가져야 할 공정하고 정확한 인식은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책을 집필했다고 밝혔다. 저자는 아베 신조의 성장 환경과 사상적 배경, 아베 총리의 말과 행동이 구체적으로 정치에 구현되는 과정, 한일 관계의 특징을 분석하고 전망을 제시했다.
일본을 보통 국가로 만들려는 아베, 그의 뒤에는
저자에 따르면 기시는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계기로 복권된 뒤 1952년 4월 '자주 헌법 제정, 자주 군비 확립, 자주 외교 전개'라는 슬로건을 내건 '일본재건연맹'을 설립했다. 일본의 교전권을 금지한 평화헌법 9조를 개정하려는 아베 총리의 목표도 기시가 제시한 위의 세 가지 슬로건과 크게 다르지 않다.
기시는 이후 자민당에서 세와이카이(淸和會) 파벌을 형성해 일본의 완전한 독립과 군비 확충, 헌법 개정 등을 주장하기에 이른다. 아베 총리는 중의원에 당선된 이후 자연스럽게 이 파벌에 가입하면서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것을 자신의 정치 인생에서 하나의 중요한 목표로 삼게 됐다.
여기에다 아베 총리는 19세기 중반 막부 시대 말기에 있었던 존황양이(尊皇攘夷) 운동(도쿠가와 막부 말기에 일어난 정치 운동으로 천황을 받들고 이민족을 물리치자는 운동)의 사상적 기반을 제공한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의 영향을 받았다. 저자는 "아베의 이념주의, 특히 그의 우익 사상은 요시다 쇼인에 대한 사상적 동경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 같은 아베 총리의 성장 환경과 사상적 배경을 살펴봤을 때 그가 일본을 '보통 국가'로 탈바꿈시키려는 것은 자신의 정치적인 '신념'이 작동한 결과라고 판단된다. 이른바 '잃어버린 20년'으로 상징되는 1990년대 이후 일본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통 국가 만들기'를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는 분석이다.
저자는 아베가 총리에서 퇴임한 후 2008년 '전후 레짐에서의 탈각'을 목표로 한 '진정한 보수정책연구회'를 만들고, 그 후 이를 '창생일본'이라는 단체로 재조직, 2012년 두 번째 총리를 맡으며 정권의 기반으로 삼았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서도 아베 총리가 일본을 보통 국가로 만들기 위해 침착하고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가해자의 피로감?
일본의 패전 이후 70년이 지났고 일본도 유엔에 가입한 주권국가 중 하나이며 군대를 갖고 전쟁을 할 수 있는 것이 주권국가의 고유한 권리라는 사실을 생각해볼 때 일본을 보통 국가로 만들려는 아베 총리의 시도는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주권국가 최고 지도자의 행보일 수 있다. 그런데 한국과 중국은 이를 예의 주시하며 우려와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아베 총리를 비롯한 일본 우익들이 과거의 끔찍했던 역사를 재현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 아베 총리는 2012년 5월 <산케이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정권에 복귀한다면 무라야마(村山) 담화라거나 고노(河野) 담화라거나 하는 것에 더 이상 묶이는 일은 없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일본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대해 사과 및 반성을 표했던 무라야마 담화와 선을 긋겠다는 뜻이다.
또 일본의 우익들은 식민 지배에 대해, 그리고 그로 인한 피해자들에게 "사과 할 만큼 했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저자는 "일본에는 '그만큼 사과했으면 됐지 언제까지 사과를 되풀이해야 하느냐'라는 생각을 가진 이들이 많다. 일본의 수뇌부를 구성하는 보수주의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요구하는 한국이나 중국을 더 이상 참아서는 안 된다는 논조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저자는 "상당수 일본 지식인은 2012년 8월에 있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뒤이은 '일본 천황 사죄 요구 발언'으로 한일 관계는 새로운 냉각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고 말한다"며 일본이 이른바 '가해자의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저자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 이후 <닛폰노 이부키>라는 일본 최대 우익 단체의 월간지에 나온 한 기고문을 소개했다. 기고문은 "사죄의 근거란 일본의 통치하에 독립 운동을 한 자들의 유족에 대한 사과"라며 "천황 폐하는 실질적으로는 일본의 원수이다. 독립 운동이라는 것은 당시의 일본에 대한 범죄이다. 그에 대하여 사과를 하라니 무슨 말인가"라고 주장했다.
저자는 "한국인의 기분 같아서는 천황이 무릎을 꿇고 '죽을죄를 졌습니다. 용서해주세요'라고 했으면 좋겠지만, 이는 일본인의 언어와 감성 체계 속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라며 "위와 같은 사과는 조직의 처벌을 받게 되어 손가락을 잘리기 직전에 야쿠자 멤버가 오야붕에게 외칠 정도의 상황에 있을 만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저자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 울부짖는 일본 사람들이 없었다는 사실에 놀랐다며 "일본인은 언어나 표정에 있어 담백하고 단순"하다고 평가했다. 이 같은 일본 언어의 특징과 성정을 고려했을 때 헤이세이(平成) 현 일왕이 "우리나라에 의하여 발생한 이 불행한 시기에 귀국의 사람들이 맛본 고통을 생각하며 나는 비통하고 애석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말한 것 이상의 사과가 나오기 힘들다는 분석이다.
한일 관계가 어려운 건 일본을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한 한국 책임?
저자는 "일본이라는 나라는 영원히 한반도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고 그 나라와의 관계는 내용과 성질에 변화가 있을지언정 영원히 존재한다"며 "일본과의 갈등을 언젠가는 해소해야 한다면 우선 갈등의 요인이 되는 것들에 관하여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충분히 들어볼 필요가 있다. '입장을 바꾸어 본다'는 의미의 역지사지가 바로 그것"이라고 강조했다.
저자의 말대로 <아베 신조의 일본>은 아베 총리의 사상적 배경, 현재 일본 정권을 구성하고 있는 일본 우익들의 과거사 인식, 그리고 이를 형성한 일본의 지정학적·역사적 배경 등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를 통해 현재 일본 집권층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내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그런데 저자는 책의 마지막 부분인 '한일 관계를 어렵게 하는 것들'이라는 대목에서 ▲역사상 '패자'였던 한국의 콤플렉스 ▲과도한 한국의 민족주의 ▲한국이 중국에 비해 일본을 경시하는 최근 흐름에서 오는 일본 엘리트들의 서운함 ▲일본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한국 사회 ▲가해자인 일본이 가지는 피로감 ▲피해자로서 도덕적인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 등을 언급하며 위의 이유들이 한일 관계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저자가 책의 도입부에 던진 질문인 한일 관계의 '공정하고 정확한 인식'에 대한 답으로 읽힌다.
공교롭게도 저자가 평가한 한일 관계를 어렵게 하는 요인들 중에 일본 우익들의 과거사 인식은 포함되지 않았다. 저자가 책의 에필로그에 "일본의 정치 엘리트들이 신고 있는 신발을 한번 신어보고자 하는 독자들을 위하여 내가 아는 한 공정하고 정확하게 그 신발의 크기, 내부 구조, 심지어 냄새까지 재현하고자 노력하였다"는 설명이 무색할 정도의 편향적인 평가다.
물론 저자가 책에서 평가한 대로 "한국의 언론은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강한 민족주의에 사로잡혀 있으며, 이를 강한 언어로 표출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일본의 식민 지배로 인해 상당수의 한국인이 고통을 받았고, 이러한 역사가 제대로 치유되지 못한 채 70년이 지났기 때문이라는 역사적인 배경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한국 언론과 국민들의 민족주의를 단순히 한일 관계를 어렵게 만드는 장애 요인이 된다고만 치부하는 것은 편향적인 인식이라고 볼 수 있다.
일본이 계속 사과하는데 한국이 받아주지 않아서 일본 사회가 피로했다는 분석도 일본 중심적, 가해자 중심적인 판단이다. 저자는 일본의 언어와 일본인들의 성정을 이야기하며 차분하고 담백한 일본의 특성상 한국인이 원하는 사과는 나오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한국은 일본의 그러한 특성을 이해하고 일본의 사과를 받아들여야 하나? 한국이 일본의 언어적 특성과 분위기를 고려해야 한다면, 왜 일본은 피해자인 한국의 언어적 특성과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해 그에 맞춘 사과를 하지 못하는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저자가 언급한 '도덕적 포지션' 문제 제기는 억지스러운 수준이다. 저자는 "종군 위안부 문제에 있어서 한국은 일본에 대하여 '도덕적 우위'에 있다는 생각"을 가지기 쉽지만 "피해자가 진정으로 도덕적으로 우위에 서기 위해서는 가해자와 똑같이 도덕적 수준(moral integrity)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한국 사회는 과연 국제 사회에서 도덕적 수준이 높은가?"라고 되묻는다.
저자는 한국 사회의 도덕적 수준을 가늠하는 좌표로 일본 사회 내에 한국 국적의 불법 체류자를 언급한다. 그는 이들이 "돈을 벌기 위해 대부분 주요 도시의 역 근처에 있는 유흥업소에서 일한다"고 밝힌다. 그러면서 그는 "G20의 '국격'을 자랑하는 한국의 역사 인식 공세가 역설적이거나 위선적으로 들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저자의 지적대로 한국인들이 비위가 거슬리면 일본 사람들을 "왜놈"이라고 욕하면서, 한편으로는 돈을 벌기 위해 일본에 불법 체류하고 있다는 사실은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며 시정돼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이것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촉구하는 부분에 있어서 한국의 '도덕적 우위'를 심각하게 해치는 것인지, 그리고 이것이 '위안부' 문제 해결과 어떤 연관 관계가 있는지 의문이다.
일본을 이해하는 것과 일본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일본의 패전 후 70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한일 관계, 중일 관계가 껄끄러운 근본 이유는 기존 일본 집권 세력이 피해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사과나 행동을 하지 않았고 현 집권 세력 역시 앞으로도 그런 사과를 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다가 과거 제국주의 시절의 야욕을 버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 일본의 잘못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전후 세계 질서 구축을 위해 일본이 필요했고 그 때문에 '전범' 일본의 잘못을 '탕감'해준 미국, 한일협정을 졸속 체결한 당시 한국 정부, 그리고 현재까지도 그 해독이 한국 사회에 뿌리 깊게 남아 있는 친일파와 그 후예들 모두 전범국인 일본에 '면죄부'를 준 공범이다. 그리고 일본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 한일 관계가 어려운 이유에 대해 일본 우익과 아베 신조를 이해하지 못하는 한국에 책임이 있다는 뉘앙스를 드러낸 저자 역시 혐의에서 벗어나긴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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