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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볼리'보다 빠른 지렁이들의 '오체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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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티볼리'보다 빠른 지렁이들의 '오체투지'

[기고] 쌍용차 '하늘 사람'의 외침, '지렁이 사람'의 화답

10년. 참 긴 세월입니다. 기륭전자 비정규직으로 파업, 투쟁, 삭발, 단식, 삼보일배, 연행, 오체투지, 고공농성…. 남들 다 하는 연애 한번 해볼 틈 없이 달려온 쉼 없는 세월만 10년이었습니다.

문자해고, 잡답해고가 무슨 말이냐고 노동조합을 만들고 50여 일을 공장점거 파업을 하다 끌려나올 때, 평생의 친구인 김소연이 눈 앞에서 끌려가는 것을 볼 때, 다시 새벽 5시에 배낭 하나 메고 서울시청 광장의 하이서울 페스티벌 폐막식을 위한 광고탑에 고공농성을 하러 올라갈 때, 64일을 단식하다 이러다간 죽는다고 동료들에 의해 강제로 끌려 내려갈 때, 농성장을 깨부수러 온 포크레인 바퀴 아래 누워 죽이라고 버틸 때, 얼마 전 350일을 철야 농성하던 농성장을 스스로 정리하고, 오체투지로 국회와 청와대를 향해 갈 때, 다시 경찰들에 의해 꽉 막힌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에서 7시간을 누워 일어나고 싶지 않을 때…. 눈물 없이, 분노 없이 살 수 없었던 세월이지만, 돌이켜보면 참 인간이란 무엇일까를 찾아나가는 참 아름다운 시간들이기도 했습니다.

청춘을 바친 회사는 '야반도주'하고

우리 기륭전자 노동자들은 노동부와 검찰에서 불법파견 판정을 받고도, 대부분 계약해지라는 이름으로 해고되었지만 부당해고 소송에서 법원까지 단 한 차례도 승소 판결을 받지 못했습니다. 법과 정부는 우리 노동자들을 보호하지 않았고, 벼랑 끝에 내몰린 우리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건 저항과 투쟁 뿐이었습니다. 1895일간의 치열한 투쟁을 통해 국회에서 노사 간에 합의가 이뤄졌지만, 그 합의마저 우롱당한 우리는 또다시 거리로 나서야 했습니다.

사회적 합의 약속을 내팽개친 기륭전자 최동열 회장은 뻔뻔스럽게 회사를 '야반도주'했고, "너희들은 우리 회사 직원인 적이 없다"며 노동자들을 두 번 죽이는 행위를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런 자본가들이 주변에 숱했습니다. 그런 탄압들이 도처에 깔려 있었습니다. 그렇게 사측이 야반도주한 현장을 지키며 싸운 것도 벌써 1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우린 어찌해야 하는 걸까? 지난 10여 년의 서럽고 억울한 세월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습니다. 기륭 최동열 회장은 인수 당시 1000억 원대 회사를 자본금 6000만 원짜리로 만들며 배임횡령을 했지만 경찰 조사는 무혐의입니다. 도대체 그 많은 돈은 어디로 증발한 것일까요. 회사와 사주는 살아남지만 노동자들만 고통 전담인 이런 사회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유령이 되어버린 회사, 돌아갈 일터도 없는 상태. 너무 억울해서 이대로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목숨을 걸고 싸워서 얻어낸 승리마저도 무용지물로 만드는 진정한 고통의 뿌리, 차별과 탄압의 원흉인 비정규직, 정리해고 법제도 전면 폐기를 위한 사회적 행진의 마중물들이 되기로 하고, 오체투지로 다시 길거리로 나왔습니다.

ⓒ프레시안(선명수)

'하늘 사람'을 지상에 닿게 하기 위해

2005년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투쟁을 시작한 스타케미칼(구 한국합섬)은 회사 파산에 맞서 공장을 재가동하고 고용을 보장하라는 5년간의 끈질긴 투쟁을 통해 고용승계, 단협승계, 노조승계를 이뤄내고 현장으로 돌아갔지만, 1년8개월 만에 또 다시 공장폐업과 분할매각으로 친구이기도 한 차광호가 공장 굴뚝농성을 223일째 해야만 하는 현실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10년을 싸워서 누구는 저 굴뚝 위의 하늘 사람으로, 누구는 오체투지의 지렁이 사람으로 다시 나서야 하는 이런 현실 앞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절망을 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닙니다. 우리를 가엽게 여기고 도와달라는 구걸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반복되는 현실을 확인하고, 이제라도 다른 삶의 길로 함께 나아가자고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우리가 다시 그 길을 뚫는 일점돌파의 송곳이 될 터이니, 저 하늘의 나팔소리가 될 터이니 함께 나아가자는 이야기입니다.

2009년 쌍용차 노동자들의 투쟁은 '해고는 살인이다', '함께 살자'는 사회적 표어를 만든 투쟁이었습니다. 하지만 자본과 이 나라의 정부와 국회 사법부는 앞의 '살인'만 방조 묵인 교사하고, 뒤의 '함께 살자'는 연거푸 짓밟았습니다. 2012년 대한문 사회연대 투쟁이 커지자 쌍용차 정리해고의 문제가 우리 사회가 풀어야할 긴급한 숙제라고 여야가 이야기 했고, 지난 대선 때는 문제 해결을 위해 대통령이 면담하겠다고 이야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프레시안(손문상)

그러나 여당은 무시하고 야당은 모르쇠, 회사는 배 째라 합니다. 그 사이 노동자들의 고통의 크기는 26명의 죽음의 숫자가 이야기합니다. 늘어만 가는 손해배상 금액과 전과기록이 이야기 합니다. 쌍용차는 오는 13일 '티볼리'라는 신차 발매를 할 정도로 정상화 궤도에 올랐고, 새로운 인력 충원 계획도 가지고 있지만, 해고노동자들을 모르쇠하고 있습니다.

대법원은 고법 판결을 깨고 불법적 회계조작에 의한 정리해고가 정당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쌍용차 사측이 고법 판결 이후 새로 선임한 변호사들이 대법관, 고법 부장판사 출신들이기도 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당시 각종 관피아, 해피아, 철피아, 핵피아 등 총체적인 권력 담합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형태는 다르지만 명백히 부정일 수밖에 없는 이런 '법피아'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회사가 어려우면 불법도 합법화되고 정리해고의 요건을 갖추지 않아도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런 답답한 현실을 풀기 위해 절박한 심정으로 김정욱, 이창근이 굴뚝에 오른 지도 24일을 넘기고 있습니다.

미래조차 저당 잡힌 노동자들

콜트-콜텍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8년 목숨 걸고 싸웠는데, 매년 60억 흑자를 내는 회사에서 미래의 경영상의 어려움을 이유로 정리해고가 합당하다고 대법원이 판결을 내립니다. 콜텍도 고등법원에서 부당해고로 판정받았는데, 오히려 대법에서 자본의 손을 들어줍니다. '미래에 다가올 경영상의 위기'만으로도 정리해고가 정당하다고 합니다. 노동자들은 이제 현재만이 아니라 모든 미래조차 저당 잡히고 말았습니다. 미래에 대한 설계는 이제 자본가들의 입맛에 따라 바뀌는 것이지, 노동자들 개인의 것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노동자들은 현재의 노동력을 파는 존재를 넘어, 그 미래에 대한 자기 선택까지 넘겨주어야 하는 현대판 노예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반인간적, 반사회적 판결에 우리 사회는 조용했습니다.

이렇게 재벌들과 기업주들만 잘 살고 노동자들은 만성적인 불안과 절망, 모멸과 가난에 허덕이게 하는 정리해고 비정규직 제도는 없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비정규대책을 세운다면서 더 많은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법을 만들겠다고 합니다. 정규직 노동자들을 과보호해서 비정규직의 일자리가 없다는 해괴한 논리를 펴며 더 손쉬운 정리해고를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작년 연말 기륭전자분회는 10년 투쟁을 되돌아보며 하나의 결론을 내렸습니다. 우리가 못나서, 못 싸워서, 잘못해서 진 싸움이 아닙니다. 근본적인 사회구조를 뜯어고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결론으로 지렁이처럼 기어서 "비정규직법제도 전면폐기"를 걸고 5일간 오체투지를 했습니다. 너무나 절박한 마음뿐이었습니다. 잘못된 법 제도와 맞서 싸우기엔 숫자도 적고 힘도 겨웠기에, 몸뚱이가 전부인 우리들이 선택한 투쟁은 오체투지였습니다. 한 겨울 얼어붙은 땅을 지렁이처럼 기어서라도 이 절박한 마음을 국회와 청와대에 전달하기로 했습니다. 물론 청원하러 간 게 아니고 선포하러 간 것입니다. 또한 더 이상 죽지 않고, 우리만 깨지지 않고, 이 사회의 주인이 되어 싸우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

ⓒ프레시안(선명수)

진심은 통한다고 많은 분들이 격려를 해주셨습니다. 남의 얘기가 아니라, 내 자신의 얘기를 대신해 준다며 고맙다고 얼어붙은 손에 뭔가를 쥐어주고 가셨습니다. 오죽하면 눈 오는 날에 기어서 갈까? 라는 말을 조용히 하면서 힘내라고 음료수를 사다주고 가시는 분들, 횡단보도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져도 화를 내거나 항의의 목소리를 높이는 분들보다 안타까운 눈길로 쳐다봐 주고, 선전물을 받아가는 분들이 더 많았습니다. 가는 곳마다 서러운 비정규 노동자들의 삶이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같은 처지의 농협비정규직, 교직원공제회콜센터지부, 국민체육진흥공단 비정규직, 기아차 비정규직,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나섰고, 씨앤엠, 엘지유플러스 등 노동자들이 함께 했습니다. 신부님과 목사님, 인권활동가, 교수, 문화예술인들, 언론인, 촛불시민이 잠시라도 함께 고통을 나누기 위해 오체투지를 해주셨고, 따뜻한 식사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무엇보다 정리해고 되어 싸우고 있는 쌍용차, 콜트콜텍 동지들이 오체투지와 행진을 함께 하며 마음을 나누었습니다. 참 고마운 분들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 온기를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앞을 가로막는 것은 무자비한 공권력이었고, 끝내는 기어서라도 가겠다는 우리의 의지를 꺾고 5일 동안 방송차를 끌어주신 전해투의 백형근 님을 폭력적으로 연행하는 사태까지 만들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포기하지 않고 당당하게 싸웠습니다. 막힌 그 자리에서 2차 행진을 하겠다고 선포를 했습니다. 이유는 아직도 비정규직법제도와 정리해고법제도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고 했듯이 사람을 차별하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잘못된 법이 존재하는 이상 우린 억압에 맞서 싸울 권리가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2차 행진을 제안을 했습니다. 2차 행진으로는 "쌍용차 해고자 전원 복직! 정리해고 철폐를 위한 오체투지 행진"이 결정되었습니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화는 한 뿌리의 종양입니다. 1월7일부터 11일까지 다시 5일간입니다.

ⓒ프레시안(선명수)

1차 비정규직법제도 전면폐기 투쟁이 기륭전자분회의 투쟁이 아니라 비정규직법제도 자체의 폐기에 대한 투쟁이었듯이, 이번 투쟁도 쌍용차 노동자들 단사만의 투쟁이 아니라, 정리해고의 고통으로 싸우고 있는 콜트콜텍, 스타케미칼 노동자들이 함께하고, 10년의 세월 투쟁 속에서 느낀 기륭전자분회 노동자들 등 모든 비정규 노동자들이 온 마음을 모아 정리해고 없는 세상을 꿈꾸며 함께 합니다. 우리의 이 느린 길이 조만간 민주노총을 비롯한 모든 노동자들의 총궐기로 이어질 것이라는 꿈을 꿔보기도 합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천리 길도 한걸음부터 듯이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이 모아지는 행진이 되기를 간절히 몸으로 말하겠습니다. 하루든 한나절이든 그 느린 달팽이들의 길에, 지렁이들의 길에, 송곳들의 길에 '당신'께서 함께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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