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읽는 독자가 화상을 입었다고 가정해 보자. 가스레인지가 폭발할 수도 있고, 일하다가 다칠 수도 있고, 뜨거운 물에 델 수도 있다. 대부분은 본인의 잘못 없이, 혹은 한순간의 실수로 원치 않게 사고를 당한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병원이다. 화상을 입으면 국민건강보험 제도의 구멍을 체감하게 된다. 2001년 화재 사고로 전신 55%에 화상을 입고 장애 판정을 받은 김효수 장애인자조모임 활동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자가였던 집이 전세로 바뀌고, 전세가 몇 개월 만에 월세로 바뀌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화상을 입으면 어느 정도 비용이 들기에 그럴까?
2010년 화상 환자 200명을 대상으로 한 '화상 장애인 욕구 조사 결과' 보고서를 보면, 응답자들은 전체 의료비 6997만 원 가운데 평균 3234만 원을 본인 부담금으로 지출했다. 이들은 평균 2년 3개월 전에 화상을 입었다. 2년 3개월 만에 3000만 원을 넘게 쓴 것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화상 후유증은 평생 간다. 피부 이식 등 급한 치료가 끝났다면, 퇴원 이후에도 보습제와 보습 연고를 발라줘야 한다. 전신 50% 이상 다친 화상 환자의 경우, 이 비용이 초기에는 월 300만 원 정도 든다.
게다가 앞으로 재건 수술을 몇 번을 더 해야 할지 모른다. 이 비용도 회당 수백만 원이다. 재건 수술비용이 많이 드는 이유는 정부가 일부 화상 재건 수술을 '미용 성형 수술'로 분류해 건강보험을 적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재건 수술이 미용 성형?
재건 수술에 건강보험을 적용하지 않는 방식도 여러 가지다. 대표적인 사례가 횟수 제한이다. 예를 들어 현행 제도상 안면 화상 장애에 대한 재건 수술은 첫 회만 건강보험이 적용되고, 2회부터는 '미용 성형 수술'로 분류된다.
문제는 재건 수술이 한 번에 안 끝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이런 현실은 환자뿐 아니라, 의사들이 보기에도 부당하다. 화상 전문 베스티안 병원의 김선규 부장(화상 재건외과)은 이렇게 말했다.
"재건 수술은 화상 치료의 연장선이에요. 급성기 화상 치료하고 나을 때까지는 나라에서 건강보험 처리를 해주는데, 그 이후로 잘 안 해주는 건 난센스죠."
재건 수술이 건강보험을 적용받으려면, 신체 기능이 심각하게 저하됐음을 증명해야 한다. 화상으로 코가 녹은 사람을 예로 들면, 코로 숨을 쉬기 힘들 때는 '신체 기능 장애'로 분류돼 코 복원 수술에 건강보험이 적용되고, 숨 쉬는 데 지장이 없을 때는 '미용 성형'으로 분류되는 식이다. 입을 다쳤다면, 화상 흉터 때문에 말을 제대로 못하거나 음식을 제대로 먹을 수 없을 정도여야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식이다(단, '재건 수술' 행위에 건강보험이 적용된다고 해도, 치료 재료가 비급여라면 환자가 부담해야 한다).
재건 수술에 '미용'적인 측면이 포함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재건 수술은 미용 수술과는 달리, '의학적으로 필요한 치료'라는 것이 김선규 부장의 설명이다. 화상 재건 수술을 하는 곳을 '성형외과'가 아니라 '재건외과'라고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화상 재건 외과가 하는 첫 번째 일은 환자의 신체 기능을 원래대로 복원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화상으로 손가락이 오그라들어 손을 제대로 쓸 수 없는 환자에게 손가락 기능을 원래대로 복원하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의사는 수술하면서 환자의 '미용적인 측면'을 고려한다. 그런데 이 두 가지는 실제 수술 과정에서 잘 구분되지 않는다.
재건 수술은 한 번에 안 끝난다
화상을 어느 정도로 심하게 입었는가에 따라 재건 수술은 한 번에 안 끝나기도 한다. 김효수 활동가는 여러 번 '재건 수술'을 받아야 하는 중증 환자의 절박함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국민건강보험 급여 확대가 가장 필요한 이유를 화상을 입은 친척, 친구 등 지인이 있다면 다 아는 사실인데, 정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만 모른다. 외상 완치 후 일상생활이 가능해지면 신체의 기능적인 부분을 조금이나마 살리고 싶은 것은 당연하다. 그런 이유로 절박한 마음으로 수술을 받는다. 경증인 경우 1~2회를 받고, 2도 화상 이상, 전신 30% 화상 이상, 특히 손과 발, 목, 겨드랑이, 안면 화상일 경우 일반적으로 최소 15회 정도는 받는다." (김효수 활동가, 화상 장애인 욕구 조사 결과 발제문, 2010)
15회 재건 수술 중에 몇 회가 지나면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으니, 환자들은 발을 동동 구른다. 김선규 부장은 "구축(관절이 잘 움직이지 않는 현상)이 없더라도 의학적으로 수술이 필요한 경우가 있는데, 구축이라고 하기에도, 아니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상태라면 환자들이 (건강보험을 적용받지 못해) 비용 때문에 좌절한다"고 안타까워했다. 화상 환자 자조모임인 해바라기의 오찬일 회장도 "(재건 수술이 미용 수술로 분류되면서) 수술비용이 '부르는 게 값'이 돼버렸다"고 거들었다.
"예를 들어 얼굴에 화상을 입어서 웃을 때 입꼬리가 내려가는 사람이 있어요. 웃으면 입꼬리 당김 현상 때문에 힘들어해요. 이건 신체 기능적인 문제잖아요. 그런데 정부에서는 한 번만 건강보험을 적용해주고 두 번째부터는 미용 수술이라고 하니 문제예요. 그러니 재건 수술에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점을 악용하는 일부 성형외과들이 있어요. 그런 데선 '부르는 게 값'인 거죠."
"왼쪽 볼 수술했는데, 오른쪽 볼은 건강보험 안 되면 황당"
해법은 없을까? 김선규 부장은 "의학적으로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만큼이라도 재건 수술에도 건강보험을 적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무한정 (건강보험을 적용)해달라는 얘기는 아니고. 얼굴을 예로 들면, 얼굴에 '미용 단위'라는 말이 있어요. 보통 얼굴 수술을 할 때, 이마 따로, 눈 따로, 코 따로, 입 따로, 볼 따로, 즉 '미용 단위'대로 해요.
수술할 때 미용 단위당 한 번씩은 건강보험을 적용해주면 좋겠어요. 왜냐하면 양쪽 볼이 크게 흉터가 남은 사람에게 두 군데를 한 번에 다 수술하긴 어려워요. 양볼 다치고, 귀도 다친 사람이라면, 귀하고 양 볼을 수술하려면 24시간 내내 해도 시간이 모자라요.
문제는 환자들은 전신마취를 하기 때문에 수술시간이 4~5시간이 넘어가면 곤란하다는 거예요. 의사 집중도나 환자 컨디션을 생각해서 수술을 부위별로 나눠서 해야 해요. 그런데 첫 수술에서 볼 한쪽 딱 하고, 그 다음에 다른 쪽 볼 하려는데 건강보험이 적용 안 되면 황당해지는 거예요.
귀 따로 한 번, 볼 따로, 코 따로 이런 식으로 건강보험을 적용해줘야 해요. 그리고 (건강보험 재정) 여력이 남으면 마사지 치료, 재활 치료까지 건강보험이 감당해줘야 해요. 지금은 그런 비수술적인 면은 거의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거든요."
"재건 수술은 삶의 질에 대한 문제"
"정확하게 얘기하면 운명 때문에 그래요."
화상 전문 병원인 베스티안 병원의 김선규 부장(외과 전문의)은 쿨하게 답했다. 왜 하필 화상 재건 수술을 전문으로 삼았느냐는 질문을 던진 뒤였다.
그는 상처 하나를 꿰매더라도 예쁘게 해야 직성이 풀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환자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고 싶었다. 사람 생명도 살리고, 적성에도 맞는 곳. 그는 화상 전문 병원을 택했다.
처음에는 급성기 환자를 치료해 사람 살리는 일을 했다. 사람을 살리고 보니, 그 사람이 앞으로 겪을 고통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지금은 재건 수술을 담당하고 있다.
"다른 의사들은 급성기 환자를 열심히 치료하는데, 뒤를 안 보더라고요(급한 화상 치료가 끝난 다음에 재건 수술이 필요한 환자들). 그래서 기왕이면 내 성격에 맞으니, (재건은) 내가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다음은 김선규 부장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 환자들이 어떤 점을 힘들다고 호소하는지?
김선규 : 주로 신체적인 고통을 호소하죠. 그런데 경제적, 신체적, 심리적으로 어느 하나 안 힘든 게 없어요. 신체적 고통 때문에 일을 못해서 경제적 고통이 생기고, 그 때문에 가정 문제가 생기고, 심리 문제가 생기고 줄줄이 사탕이죠. 화상 문제는 외모적인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에요. 꼬리에 꼬리를 물다보면 삶의 질에 대한 문제가 돼요. 제가 하는 일은 삶의 질 중에서 외형적인 면밖에 없어요. 심리적, 경제적인 지원은 나라에서 신경을 써줘야겠죠.
-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는지?
김선규 : 냉동 창고 화재 사고로 남편은 죽고 본인은 얼굴이 다 다치신 분이 있어요. 일한 지 한 달 만에 그렇게 된 거예요. 개인적으로 안타까워서 계속 열심히 수술해 주던 환자예요. 아이들 중에는 손이 다 붙어서 아무것도 못하는데, 다 펴준 아이들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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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여성 환자들은 외모 변화에 민감해요. 얼굴을 다친 여성분이 왔는데, 그 분이 우울증 약을 드시고 계셨어요. 자기 소원은 인간답게 사는 거래요. 음악 하시는 분이었는데, 사고 이후 (바뀐 외모 때문에) 일도 못했어요. "사람 만날 때마다 얼굴 숙이고 다녀서,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울면서 얘기하시더라고요. 그 모습이 기억에 남아요.
- 사고 이후 시선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재건 수술 이후 환자들의 반응은?
김선규 : 재건 수술을 아무리 해도 완벽하게 다치기 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그래도 환자들은 그것만으로 만족해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그것조차도 불충분하죠. 아무리 수술을 잘 해놔도 일종의 거리감 또는 혐오감이 표시되는 거예요.
그런데 이게 전염병도 아니고, 맞닥뜨리고 얘기한다고 누가 흉하게 변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대부분 사람들이 일하다가 그러던가 아니면, 잠시 실수한 거예요. 내가 죽겠다고 몸에 불 지르는 경우는 100에 1도 있을까 말까 해요. 대부분은 한순간의 실수로 빚어진 일인데, 전염병 옮는 사람처럼 취급하는 것은 사람들이 꾸준히 인식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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