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남북관계가 달라질까?'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가 지속적으로 악화되면서 매년 연초에 던져보곤 하는 질문이다. 항상 그렇듯이 2015년 남북관계를 예측하는 것도 '장님 코끼리 만지기' 수준을 벗어나기 힘들다. 어떤 면을 보면 좋아질 것 같기도 하고, 어떤 면을 보면 기대하기 힘들어진다. 예측하지 못한 변수까지 고려한다면, 남북관계를 비롯한 한반도 정세는 더더욱 예측하기 힘들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연초가 되면, 남북한 당국은 새로운 다짐들을 하곤 한다. 특히 2015년은 남북관계에 있어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우선 광복과 분단 70년을 맞이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광복과 함께 강요된 분단은 우리가 평화적 통일을 이룰 때 비로소 완전한 광복이 가능해진다는 의미를 되새기게 하기 때문이다.
때마침 박근혜 정부도 임기 3년 차로 접어들었다. 반환점을 도는 올해에도 남북관계 전환점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잃어버린 7년'이 10년으로 연장될 공산이 커진다. 북한도 '김정일 탈상'을 마치고는 본격적인 김정은 시대로 접어들었다. 김정은 정권의 최대 숙제는 인민들의 먹고 사는 문제 해결에 있다. 이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본인 스스로도 강조해온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남북관계 개선이 필수적이다.
무르익은 대화 분위기
일단 연말연시에 남북한 모두 대화 의지를 피력하고 있는 것은 희망적이다. 박근혜 정부의 고위 관계자는 12월 5일에 '반성'이라는 표현을 여러 차례 사용하면서 "남북 대화가 이뤄지면 우리가 원하는 사안과 북한이 원하는 사안이 모두 협의돼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닷새 후에는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미국 워싱턴에서 북한과의 대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리고 12월 29일에는 통일준비위원회 명의로 북한에 1월 중으로 회담을 갖자고 제안했다. 대화 제의 주체가 북한이 '흡수통일 기구'라고 비난해온 통일준비위원회라는 것이 마음에 걸리지만, 정부 내에서 대화 기류가 형성되고 있는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북한 역시 강력한 대화 의지를 피력하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김정은은 1월 1일 신년사에서 "북남 사이 대화와 협상, 교류와 접촉을 활발히 해 끊어진 민족적 유대와 혈맥을 잇고 북남 관계에서 대전환, 대변혁을 가져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서 "남조선 당국이 진실로 대화를 통해 북남 관계를 개선하려는 입장이라면 중단된 고위급 접촉도 재개할 수 있고 부분별 회담도 할 수 있다"며 "분위기와 환경이 마련되는 데 따라 최고위급 회담을 못 할 이유가 없다"고도 했다. 특히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통일을 17번이나 언급하고 작년보다도 남북관계에 대한 입장 표명을 두 배 가까이 늘렸다.
김정은이 직접 남북 정상회담을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신년 기자회견을 비롯해 여러 차례에 걸쳐 "북한 지도자와 언제든 만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올해 3차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북한의 신년사에 대한 통일부의 반응도 호의적이다. 류길재 장관은 1일 오후에 북한이 "신년사를 통해 남북 간 대화 및 교류에 대해 진전된 자세를 보인 데 대해 의미 있게 받아들인다"며, "가까운 시일 내에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남북 당국 간 대화가 개최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작년 북한의 신년사에 대해 진정성이 의심된다는 반응을 보였던 것에 비해 진일보한 반응으로 평가할 수 있다.
군사훈련의 파고를 넘어설 수 있을까?
그러나 남북관계를 비롯한 한반도 정세에는 여러 가지 악재도 도사리고 있다. 우선 북한 인권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올해에도 지속될 전망이다. 북한 인권 유엔 사무소가 올해 초에 서울에 설치될 예정이고, 3월 하순부터는 제네바에서 유엔 인권위원회 회의가 열린다. 여기에 더해 새누리당이 주도하고 있는 '북한 인권법'마저 통과되면, 남북관계는 또다시 출렁일 것이다. 작년 가을 남북관계와 남남갈등의 최대 문제였던 대북 전단 살포도 복병처럼 도사리고 있다.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북·미 관계가 대화를 모색하고 있는 남북관계에도 언제든 찬물을 끼얹질 수 있다. 영화 <더 인터뷰>와 소니 해깅 사건을 둘러싼 연말의 갈등은 올해 들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수 있다. 북한은 일단 <더 인터뷰> 개봉에 대해 "물리적 대응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혀 '출구'를 모색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가 공언한 '비례적 대응'이 변수로 남아 있고, 의회 내에서는 금융제재를 골자로 한 대북 제재 법안 마련에 착수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북한의 신년사도 미국 내 대북 혐오감과 불신을 씻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김정은이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밝힌 것을 두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도 있지만, 이는 소수의 목소리에 그치고 있다.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가장 중시하는데, 김정은은 이번 신년사에서 "핵 억제력" 강화와 병진노선 추진이라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하고 말았다.
올 상반기 가장 큰 변수는 역시 한미군사훈련인 '키 리졸브/독수리'이다. 반면 북한은 남북관계 개선의 가장 큰 걸림돌로 군사훈련을 지목하고 있다. 김정은 역시 "상대방을 반대하는 전쟁연습이 벌어지는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신의 있는 대화가 이루어질 수 없고 북남관계가 전진할 수 없다는 것은 두말할 여지도 없다"며 한미군사훈련 중단을 요구했다.
그러나 북한의 이러한 요구가 받아들여질 공산은 낮다. 우선 한미 군 당국은 작년 10월 한미연례안보회의(SCM)에서 군사훈련 수준을 높이기로 한 바 있다. 또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도 재연기됨으로써 군사훈련의 주도권도 미국이 계속 쥐게 됐다. 그런데 군사훈련이 예정된 2~4월은 미국의 국방예산 책정 기간과 맞물려 있다. 군비 삭감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펜타곤으로서는 한반도 정세 불안을 이유로 군사훈련을 오히려 확대‧강화하려고 할 것이다.
더구나 펜타곤의 수장으로 대표적인 대북 강경파이자 미사일방어체제(MD) 옹호론자인 애슈턴 카터가 기용됐다. 작년 말에 한미일 정보공유 약정까지 체결된 것 역시 미국이 군사훈련을 축소하거나 취소할 가능성을 위축시키는 요인이다.
이처럼 올해 남북관계를 비롯한 한반도 정세는 '대화 모색과 군사 대결의 이중주'로 요약할 수 있다. 1~2월 중에 대화가 열리더라도, 한미군사훈련 문제가 최대 쟁점이 되고 말 것이다. 대화와 관계 개선을 다짐하고 있는 남북한 당국의 유연한 태도와 단호한 문제 해결 의지가 어느 때보다 절실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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