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화와 탈중국화
중화권 매체들이 꼽은 올해의 신조어로 '아태시간(亞太時間)'과 '중국세기원년(中國世紀元年)'이 있다. '아태시간'이란 지구 문명의 주축이 '구미(歐美)'에서 '아태'로 변경되었다는 뜻이다. 11월 중국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을 그 분기점으로 삼는다. 지난 5월 상하이에서 "아시아인의 아시아"를 역설했던 시진핑은 11월 베이징에서 "아태몽(亞太夢)"을 강조했다.
'중국세기원년'은 국제통화기금(IMF) 발표에 따른 것이다. 실질 구매력에서 중국이 미국을 앞질렀다. 명실상부 가장 큰 경제 규모가 된 것이다. 1872년 미국이 영국을 제치고 수위로 등극하고 나서 140년 만에 자리가 바뀐 것이다. 그 추세는 더해갈 것이다. IMF의 전망을 빌면 신중국 건국 70년이 되는 2019년에는 미국과의 격차가 1.2배로 벌어진다. 2049년에는 3배 이상이다.
그러나 중국세기의 원년이라 해서 아시아 태평양이 화평하지는 않았다. 미국 탓, 일본 탓만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반중(反中) 시위가 유독 거세었다. 대만(타이완)과 베트남에 이어 홍콩까지 반중 시위가 끊이지 않았다. '화평굴기'가 무색한 한 해였다.
그러나 모순과 착종으로 보이는 '중국세기'와 '반중시위'야말로 동시대의 정곡을 짚는다. 동아시아의 20세기를 지배했던 제국주의-반제국주의, 식민주의-탈식민주의, 동서냉전의 동학이 옛 일이 되었다. 어느덧 역내 역학구도의 중심에 중국이 자리하고 있다.
중국화와 탈중국화의 길항, "탈중국을 위한 중국화"로 작동했던 중화 세계의 오래된 규정력이 재가동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일본의 '우경화'조차도 중화 세계의 경계에 외따로 있었던 왕년의 양태와 흡사해지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그 만큼 동아시아의 미래는 역사와 포개어지고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이 홍콩(1997년), 마카오(1999년), 대만(2???년)을 품어가는 과정 또한 대청제국의 서진에 빗대어 볼 수 있다. 중원의 유교 문명과 일선을 긋는 불교와 이슬람 문명권을 '번부(藩部)'로 아우르는 과정과 흡사하다. 영국, 포르투갈, 일본의 식민지였고 자본주의 체제를 경험했던 주변부를 '일국양제'로 포섭해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질적인 체제를 내부로 품어 가면 갈수록 중국은 20세기형 국민 국가에서 벗어나 왕년의 복합적 문명 국가, 즉 중화 제국적 속성을 회복해 갈 것이다. 아니 얼마나 제국성을 복원해내느냐에 따라 '중국의 세기'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중화 제국의 재림은 늘 그렇듯 동아시아로 한정되지도 않을 것이다. 실제로 '중국의 세기'를 상징하는 변화의 바람은 태평양이 아니라 서역에서 불고 있다. 유라시아의 대륙풍이다.
일대일로(一帶一路)
지난 12월 9일, 마드리드 역에 특별한 열차가 도착했다. 1000톤 화물을 실은 이 기차의 출발역은 중국 저장성 이우(義烏) 시. 11월 18일에 출발했으니 3주가 걸렸다. 이우에서 마드리드까지는 총 1만3000킬로미터, 시베리아 횡단 철도보다 40%가 더 길다. 새천년 유라시아 횡단 철도의 개막을 알리는 세기적인 장면이었다.
아랍 세계와 중화 세계를 잇던 이우가 유라시아의 최서단 유럽까지 가닿은 것이다. 열차의 이름도 상징적이다. 이신오우(義新歐), 이우에서 신장 위구르 자치구를 거쳐 유럽으로 이어진다는 뜻이다. 실제로 카자흐스탄, 러시아, 벨로루시, 폴란드, 독일, 프랑스, 스페인 등 7개국을 거치는 노선이니 중화 세계와 이슬람 세계와 유럽 세계를 한 줄로 엮는다.
러시아의 시베리아 횡단 철도와 미국의 대륙 횡단 철도는 20세기를 예비하는 사건이었다. 러시아는 동진하고 미국은 서진하여 각각 태평양에 닿음으로써 '태평양의 세기'를 기초했다. 21세기는 중국과 유럽이 직통한다. '신 동방 무역'의 시대, '유라시아의 세기'이다.
지난 200년, 바다길이 초원길을 압도했다. 지금도 지구적 컨테이너 교역의 9할이 바다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러나 앞으로는 달라질 것이다. 중국은 유라시아 횡단 철도를 통한 교역 혁명을 도모하고 있다. 미래를 향해 과거로 돌아간다. 역사를 더욱 높은 수준으로 복구해 낸다.
실크로드의 후광을 재활용하고 있다. 비단길과 초원길은 문명 간 연결과 통합의 상징이었다. 19세기 이래 강대국 정치(Great Game)에 참여하는 대신 경기의 규칙(Rule of Game)을 바꾸려하고 있다, 지정학적 분할 지배(divide and rule)로 갈라졌던 유라시아를 중화망(中華網, Chinese Network)으로 (재)통합하려는 것이다.
11월 베이징 APEC에서는 새로운 규칙도 마련되었다. 아시아인프라 투자은행에 22개 아시아 국가들이 가입했다. 새 은행을 제안한 지 1년 만이다. 이로써 유라시아의 동서남북을 (다시) 잇는 통신망, 교통망, 에너지 망이 구축될 예정이다. 특히 브릭스은행 출범에도 합작했던 인도가 적극적이었다.
지난 5월 출범한 모디(Modi) 신정부가 유라시아 (재)통합에 호의적이다. 아시아의 오래된 양대 문명국이 아시아 신질서 건설에 의기투합한 것이다. 그래서 은행 출범 취지에 굳이 '정의, 공평성, 투명성'을 명기했다. 1966년 미일 주도로 발족한 아시아개발은행을 겨냥한 것이 분명하다.
중국은 이미 남아시아와도 연이 깊다.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의 최대 교역국이자, 스리랑카와 네팔에서는 두 번째 교역국이다. 남아시아 15억, 동남아시아 6억, 중국 14억이 하나로 통합되는 35억의 유라시아 통합 시장이 머지않았다.
중국의 '개혁 개방'이란 미국/일본이 주도했던 아시아 태평양에 뒤늦게 접속하는 전략이었다, 그래서 동남부 연안이 거점이었다. 외국 자본을 유치하여 세계 체제에 편입했던 것이다. 이제 는 적응을 마쳤다. '개혁 개방'을 개혁하고 개방하고 있다.
서부 대개발은 중국내 지역 불균형 해소에 그치지 않는다. 중국 자본의 대외 진출과 신용 제공을 통해 유라시아 연결망을 복원하는 사업이다. 중국식 표현으로 "일대일로(一帶一路)"(실크로드 경제 벨트와 21세기 해상 실크로드), 대안적 세계 체제 건설에 발동을 거는 것이다.
더 나은 세계 체제일지 단언할 수는 없다. 더 못한 세계 체제가 되지 않으리란 법도 없다. 하지만 퍽이나 다를 것임은 분명하다. 미국은 구세계와 단절한 신세계(Brave New World)의 정점이었다. 반면 중국은 오래된 세계의 정수이다. 미국(과 소련)이 진보(Progress)의 유토피아였다면, 중국의 이상은 늘 역사의 복원, 중흥(中興)에 있었다. 2014 갑오년, 중흥의 밑바탕이 그려졌다.
동/아시아와 동/유라시아
APEC 국가들 가운데 아시아인프라 투자은행에 가입하지 않은 국가들이 있다. 미국, 일본, 호주(오스트레일리아) 그리고 한국이다. 반면으로 연말에는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한-베트남 FTA가 타결되었다. 베트남은 러시아와 관세 동맹도 체결했다. 유라시아의 시공간 압축이 갈수록 역력하다.
돌아보면 1990년대 초 한-소련(러시아), 한-몽골, 한중, 한베트남 수교 이후 일관된 흐름이었다. 세계화의 실상이란 분리 지배당했던 문명권 내부와 문명권 간의 교류를 회복해가는 과정이었다. 한국 또한 유라시아의 (재)통합에 깊숙하게 편입되어 있었다. 다만 20세기 머물러 있는 허위의식이 새 천 년의 변화를 자각하지 못했을 따름이다. 백 년의 관성이고 적폐이다.
그럼에도 작금 지배 세력의 수준과 반체제 진영의 실력을 보건대 반동과 퇴행의 세월이 조만간 그칠 성 싶지가 않다. 장기전을 준비해야 하겠다. 동/아시아만으로는 부족하다. 동/유라시아에서 전개되고 있는 신구(新舊)와 고금(古今)간의 거대한 반전을 담아내기 힘들다. 더 큰 그릇이 필요하다. 한반도를 (다시) 유라시아와 접속하는 방법을 연마할 필요가 있겠다. 이제는 유라시아를 물을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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