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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장그래, 정규직 되면 끝? 정리해고 '칼바람' 분다

[박점규의 동행]<46>대림차, 정리해고 4년만에 순이익 1550% 늘어난 비법은?

경남 창원 대림자동차에서 오토바이를 만들던 이경수(46) 씨는 기쁜 연말을 보내고 있습니다. 성탄 전야인 12월24일 대법원이 그를 포함해 동료 12명의 정리해고가 '무효'라고 판결했기 때문입니다. 성탄절에는 아내와 두 딸과 함께 모처럼 외식도 했습니다.

이경수 씨와 동료들은 올해 1월 부산고등법원에서 정리해고가 부당하다는 판결을 받았지만, 불안했습니다. 최근 대법원이 쌍용자동차의 정리해고에 대해 사실상 회사 마음대로 해도 된다며 경영상의 필요와 해고 인원을 광범위하게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5년 전입니다. 2009년 여름 이명박 정권이 경찰특공대를 동원해 쌍용차 77일 점거파업을 진압한 이후, '정리해고 공격'의 1번 타자가 대림자동차였습니다. 회사는 쌍용차처럼 싸우는 것이 두려웠는지 회사 말 들으면 살려준다고 했습니다. 노동자들은 고개를 숙였고, 230명이 강제퇴직을 당했습니다.

회사는 기업노조를 만들어 동료들을 금속노조 대림자동차지회에서 빼내갔습니다. 민주노조를 포기하지 않고 싸웠던 이경수 지회장과 노조 간부들은 모두 정리해고자 명단에 포함되어 공장에서 쫓겨나 61개월을 거리에서 떠돌아다녀야 했습니다.

그는 초등학교 1, 2학년이던 두 딸이 중학생이 될 때까지 아내의 퇴직금으로 생계를 꾸려가야 했습니다. 내년 연말이 정년인 동료 형님은 정리해고를 당한 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경비로 일하다 퇴직하고, 큰 병을 얻어 요양을 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동료는 돈이 없어 큰 아들 대학을 중퇴시켜야 했습니다.

쌍용차 다음으로 '정리해고 공격' 당한 대림차 노동자들

그는 12월 24일 정리해고가 부당하다는 대법원 판결을 듣고 동료들과 축배를 나눴습니다. 소송을 대리한 박훈 변호사도 함께 눈물을 흐렸습니다. 하지만 소송조차 해보지 못하고 공장을 떠난 230명의 동료들이 떠올라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이 혹한의 추위와 강풍이 몰아치는 70미터 굴뚝에 위태롭게 매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쌍용차 김정우 전 지부장과 해고자들이 대법원까지 찾아와 승소를 축하해줬기 때문에 가슴이 더욱 아팠습니다.

▲ 24일 대법원 선고가 끝나고 대림자동차 해고자 이경수 씨(왼쪽)에게 김정우 쌍용차지부 전 지부장이 축하의 인사를 건네고 있다. ⓒ금속노조(성민규)

대법원이 쌍용자동차와 다른 판결을 내린 것은 아닙니다.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와 해고 회피 노력은 합당하다고 인정했는데 노조 활동을 하는 사람에게만 초점을 맞춰 정리해고를 한 것은 '합리적이고 공정한 해고 기준과 대상자 선정'에 부합하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대림자동차 판결에서도 법원이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를 폭넓게 해석해 '다가올 위기에 대비한 정리해고'도 인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대림자동차가 노조 간부들과 평조합원들을 적당히 뒤섞어 해고했다면 대법원 판결은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지난 3월27일 대법원은 2009년 5월 포레시아라는 회사의 정리해고에 대해 "심각한 재정위기에 처해 고용보장에 관한 확약의 효력을 유지하는 것이 객관적으로 부당한 상황에 이르렀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부당해고를 확정하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회사가 정리해고의 절차나 대상자 선정을 잘못하는 실수를 저지르거나, 노동조합의 힘으로 회사와 '고용보장 협약'을 체결하지 않는다면 정리해고가 부당하다는 판결을 얻어내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결론입니다.

매출액 30% 늘었는데 순이익 1550% 늘어난 이유

대림자동차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법원이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를 인정한 2009년 매출액은 2213억 원으로 2008년 2424억 원과 별반 차이가 없었습니다.

정리해고를 하고 난 후 매출액은 2010년 2968억 원에서 2013년 3886억 원으로 31% 늘어나는데 그쳤습니다. 그런데 같은 기간 당기순이익은 12억 원에서 198억 원으로 무려 1550% 늘었습니다. 이런 놀랄 만한 기적이 어떻게 벌어졌을까요?


비밀은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 있었습니다. 2010년 대림자동차에는 250명가량의 사내하청 노동자가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2014년 7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고용형태공시에 따르면 정규직 434명에 '소속 외 인원' 즉 사내하청 노동자가 788명으로 세 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대림자동차는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경제위기로 인해 일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는데 이를 이용해 대규모 정리해고를 하고 그 자리를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로 채워 넣었습니다. 비정규직을 사용해 저임금 장시간 노동으로 인건비를 줄여 당기순이익을 크게 늘린 것입니다.

순이익 늘고 주가 올라도 정리해고 하는 한화

대림자동차 해고자들이 6년 만에 행복한 연말을 보내고 있는 것과는 달리 금융권 노동자들은 최악의 겨울을 보내고 있습니다. 여의도 63빌딩에 있는 대한민국 최초의 생명보험회사 한화생명은 지난 11월 회사가 어렵다며 노조에 정리해고를 통보했습니다. 노조는 파업찬반투표를 하고 63빌딩 앞에서 집회를 하며 반발했습니다.

11월26일 노사가 희망퇴직에 합의해 520명이 퇴직을 신청했습니다. 상반기 퇴직한 301명을 포함하면 무려 821명이 회사를 떠났습니다. 직원 4589명 중 18%가 회사를 그만뒀는데도 성이 안 찼는지, 회사는 40여 명의 장기근속 여직원을 강제로 지방 발령을 내렸습니다. 결국 20명이 희망퇴직을 신청했고 문제가 커지자 노사가 태스크포스(TF)를 꾸려 근거리 발령을 하기로 했습니다.

한화생명의 당기순이익은 2010년 4748억 원, 2011년 3197억 원, 2012년 5119억 원이었고 지난해에도 4908억 원을 기록했습니다. 몇 년 동안 6000원대이던 주식이 현재 8400원으로 올랐습니다. 회사는 자사주를 매입하고 있고, 매년 주주 배당도 하고, 신입사원까지 뽑고 있습니다.

이렇게 멀쩡한 회사가 '다가올 위기'를 이유로 직원들에게 정리해고를 협박해 1년 만에 1000명에 가까운 노동자를 쫓아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2년 전인 2012년 12월26일,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는 재벌 회장들을 만나 "경영의 어려움을 돌파하기 위해 구조조정이나 정리해고부터 시작할 게 아니라 근로자들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지혜와 고통 분담에 나서주실 것을 부탁한다"고 말했습니다. 임기 내에 비정규직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습니다.

2013년 1월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이 횡령과 배임으로 구속되자 한화는 계약직 2043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올해 2월 법원이 김승연 회장에게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이라는 '재벌 전용 판결'을 내렸고, 김 회장이 경영 일선에 복귀하면서 한화생명보험에서만 1000여 명을 쫓아낸 것입니다.

쌍용차 대법 판결 이후…전국에서 정리해고 칼바람

전국에서 정리해고의 칼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KT는 올해 4월 8300여 명을 내보냈고, CJ제일제당은 제약 사업부를 분사시키면서 1200여 명을 한꺼번에 줄였습니다. LG디스플레이 1051명, 삼성생명 996명, LG전자 823명 등 재벌들이 앞장서서 대규모 해고를 단행하고 있습니다.

증권가에서는 동양증권 837명, 삼성증권 547명, 우리투자증권 457명 등 1년 사이에 5000명 이상이 증권사를 떠났습니다. 쌍용자동차의 정리해고가 정당하다는 대법원 판결 이후, 기업에서 정리해고를 위협한 강제 퇴직이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실제로 경영상 '긴박한' 정도의 어려움이 있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대부분은 정규직이 나간 그 자리를 비정규직이 채우거나 업무를 외주화해서 하청노동자들이 대신합니다. 대림자동차처럼 재벌들은 가만히 앉아서 더 큰 돈을 주무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지난 22일 '2015년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면서 노동시장 구조개혁과 관련해 노동시장 유연성과 안전성 제고를 위한 종합대책을 조속히 마련하고 노사정위원회 논의를 거쳐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12월 29일 경 발표 예정인 정부의 '비정규직 종합대책'은 해고를 쉽게 할 수 있도록 규정을 명확히 하고 임금과 근로조건을 유연화하며, 파견업종을 확대하고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4년으로 연장하는 내용입니다.

<미생>의 장그래가 천신만고 끝에 정규직이 되어도 성과를 못 냈다고 해고할 수 있게 한다는 것입니다. 박근혜 정부가 정리해고 요건을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지키기는커녕 공약과 정반대의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직장인들과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대림자동차 이경수 지회장은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도 이제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정권에 맞서 힘을 모아 싸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학교를 졸업한 우리 아이들은 이 회사, 저 회사를 1~4년 계약직으로 떠돌아다니고, 늙어서는 파견업체를 통해 이 공장, 저 공장을 헤매고 다닐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 지회장은 조만간 조합원들과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싸우고 있는 굴뚝을 방문하려고 합니다. 2009년 쌍용자동차가 홀로 싸우다 깨지자 정리해고의 쓰나미가 대림자동차를 거쳐 전국을 강타했던 경험을 잊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는 2011년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309일 동안 고공농성을 했던 김진숙 지도위원이 희망버스의 연대로 정리해고를 철회시키고 살아 내려와 동료와 가족들 품에 안겼던 것처럼 김정욱, 이창근 두 해고자가 무사히 내려오기 위해 함께 싸우려고 합니다.

쌍용차 스타케미칼 씨앤앰 해고노동자들이 매달려있는 바람에 흔들리는 굴뚝과 광고탑은 2014년 우리 노동자들이 발 딛고 서 있는 현실입니다. 정부도 언론도 외면하는 벼랑 끝 노동자들. 다행히 최근 시민들의 응원과 연대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경수 지회장은 이효리 씨가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손을 내민 것처럼, 2015년 새해에 많은 이들이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장그래의 손을 잡아주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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