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지 벌써 7개월이 지났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의 문제들이 총체적으로 드러난 사건이다. 단 한 명이라도 무사생환하기를 바라던 기원이 마지막 한 명의 시신까지 전원 수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바뀌는 동안, 정부와 공무원 전반의 무능력에 대한 불신과 의혹은 커져만 갔다. '가만히 있으라'는 선내방송을 하고 아이들을 버려둔 채 먼저 구조된 선원들을 보면서 청소년의 기성세대에 대한 불신도 깊어졌다. 돈벌이에만 급급한 채 안전은 항상 뒷전이었던 사회 전반의 문제점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도 나왔다.
이런 여러 문제점과 함께 언론의 문제점도 극명하게 드러났다. 세월호 보도의 문제는 단지 방송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인터넷언론을 비롯한 대한민국 전체 모든 언론에서 드러났다. 그러나 참사보도의 경우, 다른 매체보다 방송의 영향력이 크다는 점과 세월호 보도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 또한 방송에서 드러났다는 점에서 방송보도의 문제점 위주로 글을 정리했다.
'전원 구조' 오보, '골든 타임' 구조활동 지연시키는 치명적 역할
언론은 4월 16일 오전 전원구조 오보를 냈다. 이 중에는 재난주관 방송사인 KBS, 공영방송인 MBC, 보도전문채널인 YTN도 포함되어 있다. 한국 재난 보도 역사에 길이 남을 '전원 구조' 오보는 아이들을 살릴 수 있는 ‘골든 타임’에 구조 활동을 지연시키게 했다.
<경향>은 "'세월호 전원구조' 오보, 주범 밝혀졌다"(9/14)에서 감사원의 '세월호 침몰사고 대응실태 감사 진행상황' 보고서를 보도하며, 세월호 전원구조 오보는 행정 관료들의 보고 경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도했다. 진도군청 ㅂ과장이 인명구조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한 브리핑을 확인하지 않은 해경과 전남도청·중대본상황실이 잘못된 정보를 청와대에 보고를 했고, 중앙재난대책본부는 또 이를 근거로 언론브리핑을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잘못된 브리핑을 한 정부로 인해 언론보도의 잘못은 상쇄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언론은 정부가 불러주는 브리핑만을 받아쓰기하는 집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5월 13일 '전국 MBC 기자회'는 "최악의 오보는 막을 수 있었습니다!"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오전 11시 사고 현장을 취재한 목포 MBC 기자들 구조자 숫자가 중복 집계됐을 것이라고 판단해 서울 MBC 전국부에 이 사실을 알렸지만, MBC는 현장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중앙재난대책본부의 발표를 그대로 받아썼다는 것이다. 성명은 이에 대해 깊이 반성하면서 "MBC의 오보는 '단원고 학생 전원 구조'라는 기사가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낸 ‘미필적 고의에 의한 명백한 오보'"라고 선언했다.
재난보도에서 정부의 정확한 공식 집계 결과를 보도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현장 취재이다. 현장을 취재한 기자들이 '전원 구조'일리 없다고 판단한 것을 묵살하고 정부 발표만 받아쓰는 것이 끝이라면, 기자는 사고현장에 갈 필요도 없다. 재난 상황에서는 언론도 또 하나의 방제기관이다. 적극적으로 재난구조의 문제점이나 도움이 필요한 부분, 통계의 의혹들을 밝혀내야 하며, 그 과정에서 문제가 발견되면 당연히 이에 대해 의혹을 품고 지적하는 보도를 했어야 한다.
기레기의 탄생, 대대적 수색작업 중이라는 거짓 보도로 일관한 방송
세월호 침몰 당일인 4월 16일 방송은 이구동성으로 정부·관련부처·기관이 구조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는 거짓이었다. 가장 먼저 도착한 해경은 세월호 주변을 돌며 시간을 허비했고, 선체 내부 진입은커녕, 입구를 코앞에 두고도 들어가 승객을 구하지 않았다. "가만히 있으라"는 선내 방송을 믿고 대기하고 있던 승객들을 향해 "바다로 뛰어내리라"는 지시도 하지 않았다. 세월호가 가라앉자 해경은 구조를 종료하고 해군 등 지원 인력들의 구조 활동도 통제했다. 잠수 요원 수십 명이 선내에 투입되었다는 거짓말도 했다. 그러나 탐사보도 전문매체 <뉴스타파>가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16일 정부는 아무런 구조 활동도 벌이지 않았다. 언론이 분석·비판 기능을 상실한 채 정부가 발표한 내용만 앵무새처럼 보도했다는 의혹이 불거졌고, 결국 언론은 국민들로부터 '쓰레기+기자'의 합성어인 '기레기'라는 비난을 받았다.
세월호 승객을 구하지 못한 것은 정부의 무능한 대처능력이 가장 큰 원인이지만, 정부의 발표 자료만을 앵무새처럼 옮기며 구조현장의 문제를 제대로 보도하지 않은 방송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KBS 길환영 사장‧김시곤 보도국장 사퇴…마침내 드러난 정부의 공영방송 장악
언론은 세월호 침몰 원인 규명 관련 내용과 구조과정에서 불거진 문제점도 제대로 짚어내지 못했다. 인명 구조를 포기한 5월부터 언론은 정부 재난대응시스템의 부재를 비판하고 수색작업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가졌어야 한다. 그러나 지상파 3사는 '세월호 선장 및 선원 책임론'을, 채널A와 TV조선은 '유병언 잡기'에만 몰두하면서 '정부·대통령 책임론' 언급을 회피했다. 지상파 방송사의 정부 편향적 보도태도는 정부의 공영방송 조정·통제 의혹으로 이어졌다.
5월 초 KBS 김시곤 보도국장이 뉴스 앵커들에게 '검은색 옷을 입지 말라'고 지시한 데 이어, 세월호 희생자 수를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 수와 비교한 망언을 쏟아내 논란이 일었다. 급기야 세월호 유가족들은 여의도 KBS 사옥을 항의 방문하고, 청와대 앞 청운동 주민센터 앞에서 항의 농성을 이어갔다. 결국 5월 9일 김시곤 보도국장은 사퇴했다.
그런데 비난의 화살이었던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이 사퇴 기자회견에서 폭탄발언을 쏟아냈다. 김 국장은 "언론에 대해 어떠한 가치관과 신념도 없이 권력의 눈치만 보며 사사건건 보도본부의 독립성을 침해해 온 길환영 사장은 즉각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뉴스타파>도 5월 9일 방송에서 청와대가 KBS에 사건 무마에 "최선을 다해달라"고 부탁한 사실을 보도했다. 이로써 공영방송이 정권의 나팔수 노릇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 사실로 드러났다. 유가족은 물론 언론단체와 시민사회가 길환영 사장의 퇴진을 요구했고, 결국 KBS이사회는 길환영 사장 해임안을 가결했다.
MBC 유가족 모욕하고 정부 감싸기로 일관하면서 끝까지 사과 안 해
MBC 뉴스데스크는 세월호 유가족의 분노와 증오 그리고 조급증이 잠수부의 죽음을 부르고 각종 해프닝을 빚었다는 최악의 보도를 내놓았다. MBC는 지난 5월 7일 박상후 전국부장의 '슬픔과 분노 넘어서야'에서 "조급증에 걸린 우리 사회가 왜 잠수부를 빨리 투입하지 않느냐며 그를 떠민 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할 대목"이라면서 "실제로 지난달 24일 일부 실종자 가족들은 해양수산부 장관과 해양경찰청장 등을 불러 작업이 더디다며 압박했다"고 덧붙였다. 박 부장은 또 쓰촨성 대지진 때 중국인들은 애국심이 넘쳐났고 동일본 사태 때 일본인들은 평정심을 유지했다면서 "(세월호)일부 실종자 가족들이 현장에 간 총리에게 물을 끼얹고 청와대로 행진하자고 외쳤다"는 것과 비교해 실종자 가족들을 비난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MBC 노조에 따르면, 박 부장은 KBS에 항의하는 유족들을 향해 '그런 X들은 관심을 주면 안 돼'라는 막말을 했으며, 'MBC 보도가 부끄럽다'고 성명을 발표한 후배 기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는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MBC는 정부·여당에 불리하다고 판단되는 내용은 묵살했다. 4월 21일 정몽준 의원 아들의 "국민 정서가 미개하다"는 SNS 막말을 MBC만 보도하지 않았다. 5월 4일 박 대통령의 진도 체육관 재방문 당시에도 실종자 가족의 오열과 항의가 있었으나, "가족들은 철저한 구조 수색과 책임자 처벌을 요청했다"고만 전했다. 그러 이렇게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유가족을 모독한 MBC는 지금까지 단 마디 사과도 없었고, 객관적이고 성숙한 보도태도였다고 자찬하고 있다.
세월호 국회 국정조사 특위도 소홀히 보도한 방송사, 자성의 목소리보다는 변명만
세월호 '보도 참사'는 5월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자식을 잃은 단장의 슬픔에서 벗어나지도 못한 유가족이 참사의 진상을 규명해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하기 전에 언론은 먼저 발 벗고 나섰어야 한다. 그러나 탐사보도를 통해 세월호 관련 문제점을 짚어내야 할 방송은 국회 국정조사마저도 제대로 전하지 않았다.
6월 2일부터 8월 30일까지 90일간 국회에서는 '세월호 침몰사고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이하 세월호 국조특위)가 열렸고, 6월 30일부터 7월 11일까지 해양수산부와 해경은 물론 국정원과 청와대까지 포함한 22개 기관의 보고가 진행됐다. 특히 기관보고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각 기관의 문제와 책임을 따져보는 자리이기 때문에 참사 진상규명에 가장 핵심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 KBS는 8.5건, MBC는 4건, SBS는 10건을 보도하는 데에 그쳤다. 같은 기간 JTBC가 22번이나 보도한 것과 크게 비교되는 대목이다. 이 기간에 TV조선 3건, 채널A는 4건만 보도해서 세월호 진상규명에 관심이 없음을 보여줬다.
TV조선·채널A의 '유병언 일가 잡기' 보도, 진상규명 회피하려는 정부·여당과 일맥상통
세월호 참사로 전 국민이 슬픔에 빠져 있을 시기, TV조선과 채널A는 세월호를 소유한 청해진 해운의 모기업 '세모그룹' 회장 유병언과 그 일가 잡기에 몰두했다. TV조선과 채널A는 유 씨를 '희대의 범죄자'로 단정하고 온갖 자극적인 표현을 동원해 세월호 참사의 모든 책임을 떠넘겼다. TV조선·채널A는 유병언과 티끌만큼이라도 관련된 내용들을 신변잡기든 강연이든 모두 뉴스거리로 다뤘고, 어깨걸이에 '단독', '특종'이라는 문구를 남용하며 자극적으로 보도했다.
TV조선·채널A의 유병언 일가 관련 선정적 보도의 가장 큰 문제는 당시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할 주요 사건들이 연이어 등장했으나 TV조선과 채널A는 이를 외면하고, 유병언 일가 잡기로 여론을 호도하려 했다는 점이다. 단적으로 유대균 씨가 검거된 7월 25일은 세월호 가족대책위에서는 세월호 선내에서 건져 올린 노트북에서 '국정원 지시사항'이라는 파일을 발견한 날이었다.
TV조선과 채널A의 관음증적 보도태도
TV조선과 채널A의 유병언 씨에 대한 보도는 점차 선정적이고 반인권적인 행태로 나아갔다. 채널A는 "은신처에 체액 묻은 의문의 휴지"(5/28)에서 앵커가 "유병언 씨가 나흘간 숨어있다 달아난 순천의 통나무집에서 체액이 묻은 휴지가 발견됐습니다"라고 보도했다. TV조선은 "30대 여인…'교주와 신도 이상의 관계'"(5/29)에서 신도 신 씨가 "여성으로서 견디기 어려운 검사에도 임했다"고 전하면서 "유 씨와 성관계가 있었는지, 이 과정에서 약물을 복용했는지 등을 파악하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라고 기자가 멘트했다. 이 사안은 유병언 씨에 대한 부정적 정보를 흘려서 실망한 신도들이 수사에 협조하게 하겠다는 목적으로 소위 검찰의 '흘리기'와 언론의 '받아쓰기'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TV조선·채널A 보도의 자극성과 선정성은 7월 25일 유병언 씨의 장남 유대균 씨와 그의 도피를 도운 박수경 씨가 검거되면서 극에 달았다. 채널A는 종합뉴스에서 "좁은 방에서 단둘… 석 달 동안 뭐했나?"(7/26)와 같이 자극적인 제목을 붙여 유대균 씨와 박 씨의 성적 관계를 상상하게 보도했다. 특히 TV조선·채널A 시사토크 프로그램은 끊임없이 두 사람의 성관계를 암시하는 발언을 하고, 박 씨의 사생활을 집요하게 파헤쳤다. 범인을 은닉했다는 이유로 한 사람의 인권을 이렇게까지 난도질해도 되는지, 그럴 권리를 도대체 누가 이들 방송사와 방송인에게 준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참사 진실규명에 힘 쏟고 유가족에 귀 기울인 JTBC
이번 세월호 참사 관련 보도를 통해 가장 두각을 나타낸 방송언론은 JTBC였다. JTBC는 세월호 참사 당일부터 현재까지 명확한 선박침몰 원인규명의 당위성과 희생자·실종자 가족들의 입장을 세심하게 전하는 데 초점을 맞춰 보도했다. 특히 4월 16일부터 200여 일 동안 팽목항에 담당 기자를 배치해 수색작업 및 실종자 가족의 소식을 매일같이 전한 것은 지상파 방송사의 보도태도와 비교되며 높이 평가받고 있다. JTBC의 세월호 관련 보도는 정부 보도자료를 앵무새처럼 읊거나 사안을 표면적으로 전달한 여느 방송언론들과는 양적·질적으로 달랐다. JTBC는 기소·수사권이 부여된 강력한 진상조사위를 통한 명확한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대책 마련을 요구하던 세월호 유가족의 입장을 지속적으로 보도하고 힘을 실어줬다.
세월호·국정원 연관성 의혹을 외면하는 방송
한편 '제대로 된 세월호특별법' 세월호 가족대책위와 일반인 유가족 대책위는 7월 25일 기자회견을 열고 "세월호 업무용 노트북 복원 결과 '국정원 지적사항'이라는 문건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사실 세월호와 국정원의 연관성 의혹은 참사 초기부터 제기됐지만 국정원은 이를 부인해왔다. 7월 10일 국정원 기관보고에서도 정의당 정진후 의원이 세월호 관련해 국정원이 한 일이 있다면 보고하라고 했지만 별 대답이 없었다. 그러나 '국정원 지적사항' 문건이 나오자 뒤늦게 해명을 했고, 이틀 뒤 다시 해명을 했는데 이전과 내용이 달라서 스스로 의혹을 증폭시켰다. 국정원의 해명을 사실로 확인하기 위해서는 일단 문건을 작성한 선원을 조사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31일 국정원은 "문건 작성자는 지난 5월 15일 (사망한 채) 발견된 세월호 직원으로 추정된다"고 보고했다.
이처럼 세월호와 국정원이 깊은 연관성이 있음을 입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정황이 있음에도 언론은 이에 대해서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다. 이는 언론이 국민의 알 권리를 완전히 차단한 것으로 비판받아 마땅한 대목이며, 명백한 직무유기이다. 그나마 세월호-국정원 연관성 의혹을 가장 분석적으로 보도한 방송은 JTBC였다. JTBC는 세월호 가족대책위가 제시한 의혹을 문건 내용과 함께 전했다. 국정원 측의 해명을 보도한 뒤에는 자체 분석 내용을 근거로 반박했다. 지상파 방송사 중에서는 SBS가 유일하게 관련 내용을 보도했다.
40여 일 동안 단식농성을 한 '유민 아빠' 김영오 씨와 그의 주치의 이보라 씨에 대한 JTBC의 보도도 돋보였다. 김영오 씨의 '장기 단식농성'은 '제대로 된 특별법' 제정에 대한 유가족들의 절박한 심경이 '단식'이라는 극단적인 방식을 통해 국민들에게 전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민아빠가 8월 24일 병원으로 이송되면서 언론의 조명을 받자마자 그에 대한 각종 루머가 양산됐고, 국정원이 그를 사찰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루머 확대·재생산에만 열을 올린 TV조선·채널A와 그 외 방송언론과 달리 JTBC는 루머에 대한 사실관계를 밝히며 비판적으로 보도했다.
* 계간지 <생협평론>은 (재)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가 펴내는, 협동조합을 다루는 본격적인 전문잡지로서 협동경제·나눔·평화에 대한 의견들이 교환되는 공간입니다. 정보지이자 실천적 교육서로서 협동조합 활동가뿐 아니라 협동조합에 관심 있는 모든 이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전달하고, 협동조합을 둘러싼 다양한 사회·경제·문화적 이슈를 다룹니다.(☞ 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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