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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사영기업가들, 자본가 계급인가?

[차이나 프리즘] 사영기업가의 등장이 가져온 중국의 변화

개혁기 중국, 사영기업가 부활하다

1980년대 중반 중국, 1950년대 초 사회주의 건설과정에서 사라졌던 사영기업가(私營企業家)가 부활했다. 이때부터 30년 후인 2012년 말 기준으로 사영기업과 개체공상호(個體工商戶 : 개인사업자)는 각각 1060만 개와 4000만 개로, 이 둘을 합친 개체사영기업은 중국 전체 GDP(국내총생산)의 60%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법률에 따르면 사영기업은 8인 이상을 고용한 영리성 경제조직을 가리킨다. 7인 이하를 고용한 소규모 기업은 개체공상호라고 부른다. 특히 사영경제가 발달한 저장성(浙江省)의 경우 2012년 말 기준 성 전체 GDP의 71%, 고용의 90%, 세수의 60%를 사영기업이 차지했다. 사영기업의 지위에 대한 중국정부의 공식적인 입장도 1990년대에는 '공유제(公有制)에 대한 보충'에서 2000년대 들어 '사회주의 경제의 중요한 구성 부분'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사회주의 국가'에서 부활한 사영기업가의 의미에 대해서 당초 학계에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상반된 해석이 존재했다. 첫 번째 해석은 사영기업가의 등장은 시민사회를 발전시키고 이것은 다시 정치변화와 (부르주아) 민주주의 달성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낙관론'이다. 두 번째 해석은 개혁기 중국의 사영기업가는 출현과 성장에 있어서 당-국가의 관료기구에 의존적이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중요한 세력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비관론'이다.

최근 학계의 주된 견해는 낙관론과 비관론 모두 국가와 사영기업가의 관계를 영합적(zero-sum) 갈등관계로 인식하는 서구중심적 시각에 기초해있다고 본다. 즉 이상의 두 해석은 사영기업가 등장의 정치적 의미를 사영기업가와 당-국가의 대립이라는 관점에서만 이해하고 사영기업가가 국가로부터의 자율성을 추구하는가, 추구한다면 얼마나 추구하는가라는 문제에만 집중함으로써, 사영기업가의 등장이 개혁기 중국의 국가-사회 관계에 가져온 좀 더 복합적인 의미를 밝혀내지 못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영기업가의 정치사회학적 의미

그렇다면, 개혁기 중국에서 사영기업가 등장의 정치사회학적 의미는 무엇일까? 첫째, 관료주의적 위계구조(hierarchy)하에 승진이 유일한 상향유동(upward mobility)이었던 중국사회에서 사적 부문에서의 부(富)의 축적을 통한 상향유동의 통로가 생겨났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개혁기 이전 사회주의 중국에서는 사영기업가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고, 개인은 자신이 속한 도시의 단위(單位), 농촌의 인민공사(人民公社)에서 주로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퍼포먼스에 대한 평가에 기초하여 좀 더 높은 지위로 이동할 수 있는 가능성만이 있을 뿐이었다. 따라서 개혁기 사영기업가의 등장은 정치나 이데올로기가 아닌 물질적인 부에 의한 계층상승의 가능성이 열렸다는 중대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둘째, 사영기업가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1990년대에도 공산당은 공식적으로는 이들이 '통일전선정책'의 대상이라는 입장이었지만, 2001년 장쩌민(江澤民)의 '삼개대표론'(三個代表論)으로 이들의 공산당 입당을 공식 허용하여 공산당은 이들을 새로운 엘리트로서 수용했고, 사영기업가도 경제적 기여를 통해서 당의 정책변화를 유도했다는 점에서, "당 밖으로부터의 정치적 요구를 억압하고 수용하지도 않는다"는 중국 공산당의 레닌주의적 속성에도 일정한 변화가 생겨났다.

셋째, 사영기업가는 공산당 입당이라는 '정치적 시민권' 획득을 통해서 자신의 영향력을 증대시키려 하지만, 당-국가로부터의 자율성을 추구하려 하지 않고, 정치변화나 정치발전과 같은 사회적인 문제에는 관심을 두지 않으며 사업을 위한 협회나 조직을 제외한 정치적 결사체 같은 것은 구성하지 않는다.

넷째, 따라서 이들은 자신의 이익추구를 위해서 국가와 연계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국가와의 갈등도 집단행동이나 대결을 통해서가 아니라 주로 개인적 사적 채널을 통해서 해결하고, 자본과 기술을 조달하는 부분에서 여전히 국가에 의존적이다.

사영기업가 계급정체성과 행동전략의 지역적 맥락

이상과 같은 학계의 주류 견해는 앞서 지적한 '낙관론'과 '비관론'이 가진 영합적 관점과 서구중심적 시각을 극복하여, 중국 정치사회의 현실에 근거를 두고 사영기업가의 등장이 가져온 변화와 의미를 다양한 측면에서 평가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런데 주류 견해는 사영기업가를 전국적 통계적 수준에서 파악하고 이들이 추상적 수준의 국가와 어떤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지에만 분석의 초점을 맞추는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통계로 포착되지 않는 지방 수준의 구체적 사영기업가의 정체성과 행동전략을 지방정부와의 관계 속에서 평가해야 한다는 새로운 주장들이 제기되었다.

이 주장들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994년 '분세제'(分稅制,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재정수입원을 분리하는 정책) 개혁에 의해 기존 지방정부의 최대조세수입원이던 부가가치세의 75%가 중앙정부에 귀속되게 되자, 필요한 조세수입 확보를 위해 지방정부가 지역의 경제성장에 업무의 중점을 두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지방정부는 지역적 조건에 부합되는 '정치경제적 환경'(경제구조, 관료기구, 재정구조 등)을 발전시키고, 해당 지역의 사영기업가들도 자신이 직면한 정치경제적 환경과 이를 창출한 지방정부의 성격에 따라, 자신의 정체성, 인식, 대응전략을 발전시키게 된다.

간단히 말해서, 1990년대 중반 이후 지방정부는 경제성장이 가장 핵심적인 정부업무가 되었고, 해당 지역의 조건에 맞는 경제성장 전략을 설계하고 이를 추진하는데, 이 과정에서 해당 지역의 사영기업가도 지방정부의 정책과 성격에 적합한 아주 다양한 '계급적 정체성'과 '행동전략'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주장들은 앞서 지적한 '낙관론'과 '비관론'이 가지는 영합적 관점과 서구중심적 시각에도 물론 비판적이다. 이 주장들에서 주목할 점은, 사영기업가를 국가적 중앙정부적 수준에서 하나의 '계급'으로 포착하고 이들이 국가와 어떤 관계를 구축하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추상 수준의 분석에 그치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현실'로 내려와서 지방적 수준에서 사영기업가가 자신이 맞닥뜨린 지방정부의 성격과 정책에 대응하여 어떤 정체성과 전략을 가지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분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지역적 구체적 수준의 분석을 통해 보면, 중국에서 전국적 수준의 '사영기업가 계급'의 형성은 아직 제한적이며, 국가-사회 관계도 지역적 맥락과 환경에 따라서 아주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개혁기 중국의 사영기업가는 서방의 경험에서처럼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가져올 '자본가 계급'이 당연히 아니고, 지역적 맥락과 환경에 따라서 사영기업가가 지방정부와 맺는 관계, 즉 지방수준의 국가-사회 관계도 다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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