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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공탄은 박정희보다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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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공탄은 박정희보다 강했다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76> 경제 개발, 두 번째 마당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법이다. 사회 전반의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른바 진보 세력 안에서도 부박한 담론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역사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것이 절실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생각으로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를 이어간다. 서중석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은 한국 현대사 연구를 상징하는 인물로 꼽힌다. 매달 서 이사장을 찾아가 한국 현대사에 관한 생각을 듣고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아홉 번째 이야기 주제는 경제 개발이다. '편집자'

프레시안 : 1960∼1970년대 경제 발전에서 박정희가 맡은 역할은 부분적인 것이었다고 지난번에 강조했다. 아울러 당시 국내외 조건 등 역사의 흐름을 큰 틀에서 봐야만 이 문제를 제대로 인식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이에 대해, 그런 접근 방식은 박정희 정권의 리더십을 온전히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에서 비롯된 것 아니냐는 반론도 가능하다.

서중석 : 박정희 대통령이 18년 집권 기간 동안 어떤 역할을 맡았는가를 이해하는 데 아주 좋은 예가 있다. 바로 산림녹화다. 산림녹화를 다룬 프로그램을 TV에서 여러 번 봤는데, '박정희가 산림녹화를 위해 노력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박정희 때문에 산림녹화가 됐다. 박 대통령이 노력해서 산림녹화가 된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걸 보고 놀랐다. 그것도 여러 사람이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서 참 놀랐다. 박정희 대통령이 산림녹화를 위해 노력했다는 것과 박 대통령이 아니었으면 산림녹화가 안됐을 것이라는 것, 이 두 가지는 엄청 큰 차이가 나는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1960년대에 산림녹화에 많은 노력을 한 건 사실이다. 산골을 비롯한 시골 마을 부근에서 그런 산림녹화의 흔적을 오늘날에도 쉽게 볼 수 있다. 그 당시 국민학생(오늘날 초등학생)들을 아주 많이 동원했고, 마을 주민들이라든가 중·고등학생들도 동원해서 나무를 심었다. 그때 심은 나무들은 쉽게 구별이 간다. 리기다소나무라든가 낙엽송처럼 빨리빨리 자라는 것들, 그리고 밤나무 같은 유실수를 많이 심었다. 밤나무는 무지하게 흔하지 않나.

우리나라에는 참 산이 많고 지금 그 산들이 다 울울창창하다. 그런데 이런 것의 거의 대부분은 자연적으로 나무들이 자란 것이다. 가서 보면 '아 저건 나무를 심고 가꾼 부분이다', '아니 그렇지 않다' 하는 것을 대략 알 수 있지 않나. 산속 절 부근 같은 데 나무가 그렇게 좋은 것은 나무를 가꿨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지역은 들어가기도 나쁘다. 칡넝쿨이 뒤엉켜 있고 그런다. 그런 지역은 저절로 나무들이 자란 것이 틀림없다.

이렇게 산림녹화가 되게 만드는 데 기본적으로 작용한 게 뭐냐 하면 구공탄이다. 난 구공탄이라고 본다. 박 대통령보다 구공탄의 위력이 월등 컸다.

▲ 한때 민둥산이 많았던 한국은 20세기 후반 산림녹화에 성공했다. 난방 연료의 변화라는 큰 흐름 속에서 수많은 국민들이 땀 흘린 결과였다. ⓒ연합뉴스


난방용 연료의 변화와 산림녹화, 그 뗄 수 없는 관계

프레시안 : 산림녹화는 역대 정부의 중요한 과제였다. 그러나 박정희 집권기 이전에는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서중석 : 이승만 대통령 시절에도 산림 문제를 굉장히 중시했다. 1958년 선거에서 (여당은 농촌에서, 야당은 도시에서 강세를 보이는) 여촌야도 현상이 나타난다고 하지만, 그전부터 산림법(산림보호임시조치법)에 의해 농민들이 꼼짝 못하는 걸 볼 수 있다. 산림법에 걸리지 않을 농민들이 그 시기에 거의 없었다. 부자를 빼놓고는 그랬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겨울 추위라는 게 아주 심하지 않나. 그러니 나무를 베어다가 땔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사실 나무를 베어다가 때는 것은 그나마 괜찮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었고, 낙엽조차 박박 긁어다가 때지 않으면 당장 추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아무리 엄하게 산림법으로 다스려도 안 되는 것이었다. 아, 이승만 대통령 담화를 봐라. 그 양반, 아주 엄혹한 말, 심한 말도 많이 쓰지 않나. 나무를 베면 엄벌에 처하겠다고 그렇게 강하게 이야기를 하고 나무 심는 것도 장려했지만, 될 수가 없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산림녹화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며 여러 차례 강도 높게 지시했다. 예컨대 1958년 1월 7일 국무회의에서는 다음과 같이 주문했다. "연탄이란 것은 참으로 신기한 것이다. 그것을 이용하도록 하라. 내무부 장관은 시내에 반입되는 신탄을 일절 엄금하고 (이를 어기면) 군경을 막론하고 잡아넣도록 하라." 이외에도 "산림 감시를 강화하라", "책임 구역제를 철저히 시행하라", "입산을 금지하라", "낙엽 채취를 금하라" 같은 지시를 거듭 내렸다. '편집자')

장면 정부 후반기를 보면, 너무 짧은 집권이어서 후반기라 하기도 뭐하지만 하여튼 1961년에 가면 대규모로 국토 개발 사업을 벌인다. 이렇게 대대적으로 벌인 국토 개발 사업의 대부분은 산림녹화와 연결된다.

이렇게 집권자들은 민둥산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 없는 것 아니었나. 다들 총력을 기울여 푸르게 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왜 1960년대 중후반부터 나무가 많이 자라게 됐느냐. 그게 앞에서 이야기한 구공탄의 위력이다. 그 점에서도 박 대통령은 운이 좋았다.

프레시안 : 구공탄은 5.16쿠데타가 일어나기 훨씬 이전, 즉 한국전쟁이 마무리될 무렵 보급되기 시작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쳤나.

서중석 : 우리나라 사람들은 수천 년 동안 온돌로 겨울을 지냈다고 이야기하는데, 한국전쟁이 났을 때도 서울에서는 대부분 나무를 가져다 땠다. 그리고 한강물을 길어다 먹는 경우가 많았다. (19세기에서 20세기 전반기에) 북청 물장수가 있지 않았나. (20세기 전반기에 상수도 시설이 서울에 들어서긴 했으나 불충분했고 특정 지역에 집중돼 있었다. 그래서 상수도 등장 후에도 물장수가 활동했다. '편집자')

이 시기에 나무꾼이 서울에 참 많았다. 그런데 1952∼1953년경부터 무연탄으로 만든 구공탄이 보급됐다. 구공탄이 그 비싼 나무, 신탄(薪炭)을 때는 것보다 얼마나 유리한 게 많나. 편하기도 하고. 그러니까 서울 사람들이 상당히 빠른 속도로 구공탄을 가정에서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면서 정부에서 1957년에는 임산 연료의 도시 반입을 금지하고 무연탄 사용을 권장했다. 다시 말해 나무꾼이 서울에 못 들어오게 된 것이었다. 들어오면 잡아가버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사실은 1956년 신문을 보면 이미 나무꾼이 서울에서 사라지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나무를 팔려는 사람이 이제는 서울에 안 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예전처럼 사지 않으니까. 다른 말로 하면 많은 사람이 이미 구공탄을 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때쯤엔 대도시가 대개 그렇게 된다. 1960년대에 가면 이제는 군청 소재지, 읍면 소재지에서도 나무를 때지 않고 구공탄을 사용한다. (1960년대 신문을 보면, 정부가 전국 주요 도시를 임산물 반입 금지 구역으로 설정하고 주요 도로에 임산물 검문소를 설치해 단속한다는 내용도 나온다. '편집자')

내가 1970년대 초에 고향 집에 갔더니 어머니가 구공탄을 때고 계시더라. 그런 시골에서도 구공탄을 때게 되면서 이제는 산에 나무하러 가는 사람이 없게 된다. 우리나라는 비도 적당히 오고 땅도 그렇게 나쁜 땅이 아니다. 그래서 좋은 나무를 못 심더라도 나무들이 자랄 수 있는 토질을 가진 나라다. 그렇게 산에 나무하러 가는 사람이 점차 사라지면서 1960년대 중후반부터 산림녹화가 이뤄져 1970년대 어느 때부터는 울울창창하게 된다. 나무들이 너무 빽빽하면 좋지 않기 때문에 일부 나무를 베어놓아야 할 때도 있지 않나. 그런데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가 되면 그런 이유로 산에 나무를 베어놓아도 그 나무를 가져가는 사람이 없는 식으로 돼버렸다. 그렇게 우리 사회가 변해간 것이다.

이승만·김일성은 못 이룬 산림녹화, 박정희 때 성공한 이유

프레시안 : 금지하는 것만으로는 산을 지킬 수 없다는 점은 18세기 조선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온돌을 오래전부터 썼지만 조선 중기까지는 온돌이 없는 집도 적지 않았으며, 온돌 난방이 보편적으로 이뤄진 건 18세기 무렵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 시기에 도성을 둘러싼 네 개의 산(낙산, 인왕산, 남산, 북악산)이 점차 황폐하게 되는 일이 벌어진다. 산에서 나무가 대거 사라지면서 개천의 유량이 줄어드는 문제도 발생한다. 온돌이 널리 보급된 것에 더해 도성 및 그 주변 인구가 크게 늘면서 땔감 수요가 폭증한 탓에 생긴 일이다. 이 시기 도성의 인구 증가는 농촌의 계층 분화가 심화되면서 땅을 잃은 가난한 농민이 늘어나고 그중 상당수가 서울 쪽으로 몰려든 것 등과 관련 있다. 이런 상황에서 조정은 도성을 둘러싼 네 개의 산에서 소나무 등을 베지 못하도록 금지령을 내리지만,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 힘없는 백성들이라 하더라도 가만있다가 얼어 죽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18세기이건 해방 이후이건 이런 사례들은 산림녹화가 난방용 연료 문제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다시 돌아오면, 북한의 산들이 민둥산으로 변해버린 것과 대비하며 박정희 대통령의 산림녹화 업적을 강조하는 이들도 있다.

서중석 : 산림녹화가 박정희에 의해 이뤄진 것인가 하는 부분은 북쪽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1971년에 남북 적십자사가 교류하고, 그러면서 남북이 왕래하게 되지 않았나. 그때 북한에 처음 갔다 온 사람들이 놀라버렸다. 왜냐하면 개성에서 평양까지 차를 타고 간 모양인데 나무가 없는 것이었다. 우리가 꼬맹이 때부터 북한은 산이 많고 나무가 많은 지역이라고 배웠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나도 평양에 여러 번 가보고 개성과 평양 사이도 가보고 평양에서 묘향산도 여러 번 가고 그랬는데, 나무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건 북쪽에 간 사람이 모두 느끼는 것이다. 백두산 근처는 울울창창하고 좋은 나무가 많다지만, 사람들이 사는 데에는 나무가 없다.

세상에 이럴 수가 있느냐, 개탄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그 이유는 뻔한 것이다. 북한은 유연탄도, 무연탄도 많이 난다. 남쪽보다 석탄이 월등 많이 난다. 그런데 빨리 경제 발전을 시키려고 석탄을 산업용과 수출용으로만 사용한 것이다. 우리처럼 구공탄이라는 아주 쉬운 걸 만들어서 집집마다 사용하게 하는 게 결과적으로 훨씬 좋은 것이었는데, 그걸 북한에서 안 하다가 나중에 가서야 조금 변형된 형태로 새로운 연료를 개발하고 한 것이다. 그게 북한의 산림을 저렇게 황폐하게 만든 것이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북한은 지독한 독재 국가라고 배우지 않았나. 물론 남쪽은 독재 국가라고 배우지 않았지만. 그렇다면 북한에선 아무도 나무를 베어선 안 되는 것 아닌가. 얼마나 무섭게 했겠나. 그렇지만 추위 앞에선 아무도 못 견디는 것이다. 앞에서 이승만 때를 이야기하지 않았나.

그러니까 저렇게 산림녹화가 된 것은 한두 사람이 호령하고 사람을 동원해 나무 좀 심는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그것은 엄청난 새로운 힘이라고 할까, 기제가 작동해야 하는 것이다. 박정희 경제를 이해하는 데는 이 점이 아주 중요하다고 본다.

1960년대 이후 경제 발전을 하면서 고층 콘크리트 건물이 점점 늘어난다. 그러면서 이제는 연탄에서 석유로 옮겨가고, 석유를 대량으로 사용하게 된다. 그리고 1960년대에 이미 가스가 사용되기 시작했지만, 1970∼1980년대에 가면 가스를 사용하는 주택이나 호텔이 늘어나게 된다. 내가 1980년대 초에 강원도에 갔다가 깊숙한 산골에 있는 집에서 가스로 방을 덥힌 걸 보고 놀란 적도 있다. 이제 우리는 석유와 가스가 없으면 못 사는 나라로 바뀌지 않았나. 그렇다면 이렇게 생활을 바꾸게 된 힘들이 어디에 있었는가 하는 건, 경제 발전을 하게 한 힘들이 어디에 있는가와 같은 논리 속에서 우리가 찾아나가야 한다고 본다.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일흔일곱 번째 편도 조만간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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