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곳에서 외치면 닿을 수 있을까. '함께 살자'라는 그 간단한 말을 전하기 위해, 70미터 굴뚝을 오르고 또 올랐다. 2009년 정리해고 이후 그렇게 들어가고 싶었던 공장이었는데, 결국 지상에 닿지 못하고 공중으로 향했다.
"15년 일한 공장이 이제서야 한 눈에 보입니다. 스물셋에 이곳에 들어와 남들처럼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습니다. 여기서 정년을 맞고 싶었습니다. 단 하루를 일하더라도, 공장에서 다시 차를 만들고 싶습니다." (김정욱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사무국장)
15일 오전 경기 평택시 칠괴동 쌍용자동차 공장 남문 앞. 철조망 너머 멀리, 연기를 쉴새없이 뿜어내고 있는 굴뚝이 보인다. 두 명의 해고 노동자(이창근 노조 기획실장, 김정욱 사무국장)가 70미터 굴뚝 위에 있다. 이날로 고공 농성 사흘째.
"여기도 이렇게 추운데 저 위엔 오죽할까요."
'가장 사랑하는 동생 둘'이 "저 위"에 있다며 해고자 김수경(53) 씨가 허공을 향해 연신 손을 흔든다. 김 씨는 전날 밤 이곳에서 밤을 지샜다. 공장 밖 '땅의 동료들'을 향해, '하늘의 농성자' 2명이 팔을 휘휘 저으며 화답한다. '땅의 노동자'들의 걱정을 더할 기세로, 야속하게도 굵은 눈발까지 날린다.
"걱정은 되지만, 이번 농성이 새 돌파구가 될거에요." 김 씨는 단호한 목소리이었지만, 표정엔 근심이 잔뜩 묻어났다.
"차라리 내 아들이라 다행"이라는 어머니
지난달 대법원의 '정리해고 유효' 판결 후, 벼랑 끝으로 더 밀려난 해고자들이었다. 2009년 77일간의 옥쇄파업 이후 '안 해본 것 없이' 싸웠지만, 공장 문은 여전히 이들에게 굳게 닫혀 있었다.
고공 농성만 해도 이번이 벌써 세 번째. 하지만 공장 안에 진입한 것은 2009년 파업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더 절박했다"는 얘기다.
슬픈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었다. 대법원 판결이 나오던 날, 이창근 실장의 아내 이자영 씨는 법원 앞을 찾은 아들 주강이(9)에게 "아빠 이제 집에 더 자주 못 들어오실 거야"라고 했다.
이후 쌍용차 파업 2000일 집회에선 편지글을 통해 "남편 얼굴을 다시 타들어 갈 것이고, 나와 주강이 단 둘이 보낼 시간은 늘어나겠구나, 남편과 조합원들은 더 극단적인 투쟁에 몸을 맡길 수도 있겠구나…대법원 판결의 여파는 저에겐 이렇게 나타납니다"라고 썼다. (☞관련 기사 : 해고자 아들 일기장 "재판 진 날, 아빠 눈물 처음 봤다")
육포 몇 장, 생수 몇 병만 들고 굴뚝에 올랐다. "더 이상 죽이지 말라"며 굴뚝 위로 오르던 날, 또 한 명의 해고자가 세상을 떠났다. 2009년 정리해고 이후, 벌써 26번째 부고장이다. (☞관련 기사 : 굴뚝 오른 날…쌍용차 26번째 사망자 발생)
26명의 죽음 가운데 14명이 유서 한 장 남기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내가 아파트에서 투신한 후, 남편도 통장 잔고 4만 원과 카드빚 150만 원, 두 아이를 남긴 채 뒤를 따랐다. 2009년 '해고는 살인'이라던 쌍용차 노동자들의 호소가 현실로 나타난 셈이다. 그 죽음들을 견디며, 그야말로 억울해서 버텨온 2000일이었다.
김득중 쌍용차지부장은 "수많은 노제를 치르며 이제 눈물이 마른 줄 알았다"면서 "하지만 눈물이 마르지 않는다. 끝이 없다. 지난 6년 싸움 중 최근 사흘이 가장 길게 느껴진다"고 했다.
하지만 6년을 거리에서 싸우는 동안, 해고자는 물론 그 가족들도 조금 더 단단해졌다. 전날 평택공장 앞을 찾은 이창근 실장의 어머니는 굴뚝 위의 아들을 향해 "남의 자식 올라가서 고생하는 것보다 내 자식이 올라간 것이 더 다행"이라며 "끝까지 하고 와라"고 했다.
고공 농성이 "생존권 위협 행위"라는 쌍용차
2009년 정리해고 이후 회사는 빠르게 정상화 됐지만, 해고자들이 공장으로 돌아갈 시간은 유독 더디게 흘러간다. 새해 1월이면 3년의 개발 끝에 신차 '티볼리'가 출시된다. 작업 물량도 그만큼 늘어났다. 해고자들이 "신차 출시를 앞두고 필요한 인력 투입에 해고자부터 우선 채용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이유다.
하지만 회사 측은 여전히 완강한 입장이다. 오히려 대법원 판결 뒤 자신감이 한껏 높아진 분위기다. 이날 쌍용차 사측은 보도자료를 통해 "(해고자들의) 극단적인 불법행위는 5000여 전 임직원과 가족, 그리고 협력업체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행위"라며 "절대 타협하지 않고 단호히 대처하기 위해 모든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벼랑 끝에서 6년을 보낸 해고자들의 고공 농성이, 그들을 밀어낸 회사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경찰도 이들의 '불법 행위'에 신속하게 대처했다. 고공 농성이 시작된 13일, 쌍용차 지부가 농성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공장 밖 남문 앞에 천막을 펼쳤다. 경찰은 곧바로 '불법'이라며 천막을 철거했고, 이를 저지하던 해고자 2명을 연행했다. 금새 풀려날 것이라던 기대와 달리, 이들에 대한 구속 영장이 청구됐다.
하늘에 오르는 사람들…"우린 아직 여기에 있습니다"
굴뚝 위의 해고자들은 공장 안으로 들어온 이유를 "옛 동료들에게 손 잡아 달라고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회사도 법원도 이들을 외면한 상황에서, 마지막 버팀목은 공장 안 동료들 뿐이란 얘기다.
"오줌 마려운 강아지처럼 1미터 폭에서 왔다갔다 고개를 빼서 아래를 보고, 눈을 들어 출근하는 동료를 봅니다. 표정을 볼 수는 없는 거리니까 천리안도 되어 봅니다. 굴뚝 아래로 동료들이 조금 더 지나가기라도 했으면 좋겠습니다."
농성 시작 후 처음으로 맞는 월요일 아침. 이창근 기획실장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땅에서의 외침은 사람들에게 잘 들리지 않는다. 목숨을 걸고 하늘에 올라서야만 조금씩 그 얘기에 귀 기울인다. 그래서 스타케미칼의, 씨앤앰의, 쌍용자동차의 해고자들이 하늘로 올랐다.
이 실장은 "이곳 쌍용차 굴뚝은 가장 높은 곳이 아니라 공장 안 동료들과 70미터로 가까워진 가장 낮은 곳"이라고 했다. 가장 위험한 곳이 아니라, "동료들을 24시간 볼 수 있는 가장 따뜻하고 안전한 곳"이란 것이다.
"이창근! 김정욱! 들리나?"
남문 앞에 모인 동료들이 농성자 2명을 향해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다. 혹자는 사진기자의 망원렌즈를 빌려 하늘 위 동료들의 얼굴을 확인했다. '가장 안전한' 70미터 굴뚝 위에서 손을 흔드는 해고자들 위로, 매섭게 눈발이 흩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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