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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와 새누리당, '시종 관계'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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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청와대와 새누리당, '시종 관계'가 됐다"

[정치경영연구소의 '自由人'] 이혜훈 새누리당 전 국회의원

"일 계속할 거면, 결혼하지 마. 영이 씨. 그게 속편해."

인기리에 방영 중인 한 드라마에서 워킹맘인 상사가 신입 여사원에게 한 말이다. 앞서 워킹맘은 임신 중 과로로 쓰러진 동료에게 "애 둘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어떻게 하려고 또 임신을 했대? 참, 이기적이다"라고 비아냥거렸다. 드라마 속 얘기라고? 아니다. 어디까지나 현실이다.

"당시 셋째를 가졌었는데, 그런 분위기에서 임신했다는 말을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가 좀 퉁퉁하고 하니까 옷을 넉넉하게 입고 다니면, 사람들이 '살쪘나 보네'라고 생각했다. 아무도 모르게 하고, 직장을 다녔다. 그러다 출산을 앞두고, 정기 산행이 있었다. 보통 산 정상에서 출석을 불렀다. 등산로 앞 주차장에 주차된 차에서 막 내리려고 할 때 산통을 느꼈다. 급하게 분만실로 가면서 전화로 '출산 때문에 결근하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임신이었느냐?'고 놀라면서 전화를 받더라. 그런데 그다음에 하는 소리가 '그동안 힘들었겠네요'가 아니라, '뭐야! 그럼 출산 휴가 쓰는 거야?'라고 하더라. 연구소인데도 그랬다. 세상에 이럴 수가 있나 싶었다. 등산복 입고 분만실에 실려 오니까 병원 간호사들이 나를 미친 여자 보듯했다."

어머니는 위대하다. 그러나 '슈퍼 우먼'이 못 되면 사회에서 도태되는 것 또한 마땅하게 여겨진다. 냉혹한 현실이다. 하루하루 울분을 삼키던 여성 경제학자는 결국, 안정된 삶을 벗어던지고 불안감을 떠안아야 하는 제도권에 도전했다. 그는 높은 신분이라 땅콩 봉지 하나 스스로 깔 수 없는 재벌에게도 거침없었다.

"공무원이든 정치인이든 어쨌든 공직자라는 건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 헌신하고 봉사하겠다고 결단한 사람 아닌가. 그런데 왜 재벌을 신경 쓰나? 문제는 재벌에서 받았던 관리, 즉 '로비'가 뿌리 깊이 엉겨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김영란법'이 더욱 빨리 통과돼야 한다. (…) 모든 것이 법의 테두리 안에서 심판받고 투명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고용의 88퍼센트(%)를 담당하고 있는 기업 중 99%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이다. 전체 국민의 12%만을 고용한 대기업은 이윤을 꽉 틀어쥐고 아래로 흘려보내지 않은 채 88%를 고용한 중소기업이 문 닫지 않을 정도만 납품 대금을 책정해서 준다. 그러니 밑(중소기업)에서는 남는 돈도 없고, 고용을 늘릴 수도 없다. 거기에 묶여서 연명만 하는 거다. 양극화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으며, '낙수효과'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낙수효과'가 작동하지 않는 사회는 고용을 늘릴 여력이 없다. 대기업을 제재할 수 있는 법적 제도를 충분히 갖췄지만, 활용되지 않는다. 가진 이들의 눈치만 보는 정치권은 '열심히 하면 언젠가 보상받을 거야'와 같은 입바른 소리만 할 뿐, 앞을 향해 달려가는 청년은 외면한다. '이렇게만 하면 저도 정규직 될 수 있는 거죠?'라며, 한 줄기 희망을 향해 어둠 속을 걸었던 비정규직 여직원은 이제 없다.

"우리 시대는 적당히 놀고 적당히 공부하고 적당히 고민했지만, 많은 가능성이 열려 있었고 조금만 열심히 하면 뭐든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노력한다고 얻어지는 시대가 아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한계가 있고 그렇게 노력해도 얻어지지 않는 시대를 사는 젊은 청년들을 보면서 부모 세대로 너무 미안하고 죄스럽고 마음이 아프다."

그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덥석 잡았다. 온기가 전해졌다. 그러나 현실의 암담함을 바라보는 눈길에는 냉철함이 서려있었다. 살얼음판을 걷더라도, 본연의 권리를 스스로 구제할 수 없는 많은 이들을 위해 목소리를 더욱 키우겠다고 한다. 그에게서 위대한 어머니의 면모와 용감한 정치인의 모습이 스쳤다. 이혜훈, 그녀의 치열한 전투를 응원한다.

▲ 이혜훈 새누리당 전 국회의원. ⓒ프레시안(최형락)

- 이혜훈은 어떤 학생이었나? 학창시절 이야기를 들려 달라.

굉장히 체제순응형 학생이었다. 군인인 아버지와 호랑이 같은 어머니 밑에서 반항 한번 못 한 채 순종적으로 자랐다. 아버지가 '데모하는 곳 근처에는 절대로 가면 안 된다'고 하셔서 데모도 한번 제대로 못 했다. 국회의원 당선자 명단에서 내 이름을 본 대학 동기들이 전화를 많이 했는데, '야 너랑 똑같은 이름 없을 줄 알았는데 있더라?'라고 하더라. 내가 정치를 할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안 했다. 난 정치와는 담을 쌓고 있었고, 또 아는 정치인 이름도 몇 명 없었다.

- 국내에서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1993년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0년대 초 한국에는 여성 경제학자가 10명 남짓이었다. 특별히 경제학을 공부한 이유가 있나.

대학 입학을 앞두고 학과를 선택할 때 부모님께 고고미술사학과를 보내달라고 부탁했지만, 일언지하(一言之下)에 '밥 먹고살기 어렵다'며 내 생각은 하나도 반영되지 않은 채 부모님 결정으로 경제학과로 가게 됐다. 처음부터 들어가고 싶지도 않았었지만, 학부를 마치고 나서도 정말 수학에 흥미가 없었다. 그냥 참고 했다. 그런데 박사는 또 수학만 쓰는 계량 경제학을 공부했다. 영어를 못해 미국에서 살아남으려면, 영어를 안 해도 되는 과목이 필요했고 어쩔 수가 없었다. 이렇게 평생 수학에 묶여서 해방이 안 될 줄은 몰랐다.(웃음) 국회의원이 된 후 사무실을 옮기면서 가지고 있던 계량 경제학에 관련 서적을 모두 버렸다. 책을 버리면서 느꼈던 해방감이라는 건, 아무도 모를 거다. 내 인생에 내가 이 책을 다시 볼 일이 없다는 게 얼마나 기쁜지.

- 인내심이 대단한 것 같다. 그렇게 떠난 유학길에서 남편을 만나 가정을 꾸리고, 또 '아이를 임신한 채 침대에 누워서 논문을 썼다'고 했다. 먼 타국에서 학업과 양육을 책임지는 어머니의 삶이 무척 고됐을 것 같다.

둘째 아이를 출산하기 전이었는데, 논문을 누워서 쓸 수밖에 없는 사정이었다. 태아에게 산소와 영양소를 공급하는 태반이 원래 아이 위에 있어야 하는데 '전치태반'이라고 해서 아이 밑에 태반이 자리 잡았다. 아이가 깔고 앉은 모습이었다. 아이가 크면서 태반이 터지면, 아이도 산모도 사망한다. 엄마가 앉아 있으면 태반이 밑에 위치해 터지게 되므로, 누워 있어야만 한다. 화장실도 못 가고, 아이가 무거워지기 때문에 임신 말기에는 두 달 정도를 누워있어야만 했다. 미국은 지도 교수가 다섯 명이었는데, 그 선생님들 일정에 맞춰 논문 심사 날짜가 정해져 있어, 그 시간에 맞추려면 할 수 없이 침대에 누워서라도 써야 했다. 누운 채 모니터를 높이 올려놓고 논문을 썼다. 미룰 수도 있었지만, 기왕에 할 거 확 해버리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너무 무리를 해 조기 출산했다는 것이다. 결국 병원에 입원했다. 그런데 기어코 병원에 컴퓨터를 옮겨놓고 마무리 작업을 했다.(웃음)

- 어머니란 존재는 참 위대하다. 그런데 사회가 위대한 어머니들을 홀대하는 느낌이다. 우리나라 출산율이 전 세계 최하위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지난 11월 18일 발표된 2014년 세계인구현황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5년까지 우리나라의 합계 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수 있는 평균 자녀수)은 1.3명으로 마카오, 홍콩(각 1.1명) 다음으로 최하위권이다. 편집자)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도 남자들과 비교해 여성들은 상상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영원히 같아질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구 사회라고 해서 여성들이 남성과 같은 삶을 산다고,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보다 조금 나을 뿐이다. 그리고 결혼 전이라고 해도, 출산과 양육이라는 잠재적 가능성 때문에 직장에서 얼마나 차별을 받나.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어마어마하게 받고 있다. 승진이나 채용이나 모든 부분에서 그렇다.

미국 유학 후 귀국해 연구소에 들어갔다. 연구소라면, 그래도 여성에 대한 차별적 인식이 덜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누가 임신했다더라', '그래서 여자 뽑지 말랬잖아' 등 소위 뒷담화를 너무 자연스럽게 하더라. 당시 셋째를 가졌었는데, 그런 분위기에서 임신했다는 말을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가 좀 퉁퉁하고 하니까 옷을 넉넉하게 입고 다니면, 사람들이 '살쪘나 보네'라고 생각했다. 아무도 모르게 하고, 직장을 다녔다. 그러다 출산을 앞두고, 정기 산행이 있었다. 보통 산 정상에서 출석을 불렀다. 등산로 앞 주차장에 주차된 차에서 막 내리려고 할 때 산통을 느꼈다. 급하게 분만실로 가면서 전화로 '출산 때문에 결근하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임신이었느냐?'고 놀라면서 전화를 받더라. 그런데 그다음에 하는 소리가 '그동안 힘들었겠네요'가 아니라, '뭐야! 그럼 출산 휴가 쓰는 거야?'라고 하더라. 연구소인데도 그랬다. 세상에 이럴 수가 있나 싶었다. 등산복 입고 분만실에 실려 오니까 병원 간호사들이 나를 미친 여자 보듯했다.
- 출산을 앞두고 조심해야 하는 시기인데, 어떻게 등산을 갈 생각을 할 수 있나.

사정이 무엇이든 정상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서 출석을 확인할 게 뻔했으니까 어쩔 수 없었다. 먹고살아야 하니까. 이게 현실이다. 그러니 정말 정치에 관심 없던 사람이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얼마나 오랜 기간 수도 없이 많이 했는지 모른다.

육아 휴직은 너무 당연해서 아무렇지 않게 쓸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 그런데 어느 세월에 정착될지 걱정이다. 채용할 때도 여성을 뽑으면, 직장에 부담이 되는지 피해가 있는지 따져보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 생각이 없어지지 않으면 힘들다. 또 가사 부담이 여성의 몫이라는 생각부터 없어져야 한다. 이런 굴레가 점점 나아지고 있다지만, 아직 멀었다.

- 40살의 젊은 나이에 국회의원이 됐다. 촉망받는 여성 경제학자가 정치인의 길을 선택 한 것은 위와 같은 이유 때문이었나?

날마다 '세상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이래서는 못 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세상을 바꾸려고 수없이 보고서를 써도 그냥 쓰레기통에 들어갔다. '이 방법 말고 다른 방법이 뭐가 있을까?'를 고민했다.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국회 전문성 부족에 대한 문제점도 많이 봐서 답답함도 있었다. 또 시아버님이 생전에 '쟤가 정치하면, 정말 잘할 거야'라고 말씀하셨는데, 돌아가시고 난 후에 그 말이 가슴에 박히더라. 그래서 정치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 학계에 있을 때와 정치 현장에 있을 때 차이가 많을 것 같다. 국회에서 원하는 대로 목적한 바를 이뤘나? 한계는 없었나?

기대만큼은 안 됐지만, 정치권 밖에 있었을 때보다 이룬 게 많은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정치를 하라고 권하고 싶다. 한계는 있지만, 밖에서 노력했을 때보다 열 배 스무 배의 결실을 얻을 수 있다. 정치권 안에 있었을 때 느꼈던 가장 큰 한계는 여성 정치인으로서 느끼는 지점이었다. 남성 정치인들은 자기들끼리 소위 패거리를 잘 짓는다. 그리고 남성 정치인이 여성 정치인을 보는 시선은 아직 일천하다. 여성 정치인을 '난 고리타분한 사람이 아니야', '나도 깨어있는 정치인이야', '나도 여성 정치인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야'와 같은 과시의 수단으로 대하지, 여성을 진정으로 배려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어떻게 보면 자기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여성 정치인 몇 명에게 공천을 주고, 자기 거수기로 이용하는 게 대부분이다. 그래서 아직까지는 여성 정치인이 소신과 철학을 가지고 정치할 수 있는 여건이 제대로 형성되어 있지 않은 게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느끼는 정치의 어려움은 눈에 보이지 않는 유착이 많다는 것. 정치권과 재계, 정치권과 기득권 세력의 유착, 그런 여러 형태의 유착이 뿌리 깊이 형성되어 있어, 개인의 힘으로는 그걸 뚫어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 재벌 문제는 쉽게 건드리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기가 막힌다. 공무원이든 정치인이든 어쨌든 공직자라는 건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 헌신하고 봉사하겠다고 결단한 사람 아닌가. 그런데 왜 재벌을 신경 쓰나? 문제는 재벌에서 받았던 관리, 즉 '로비'가 뿌리 이 엉겨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김영란법'이 더욱 빨리 통과돼야 한다. 재벌의 엄청난 로비로 이권에 관계돼 직접 돈을 주고받는 것뿐 아니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홍보한다. 이런 것도 다 로비다. 모든 것이 법의 테두리 안에서 심판받고 투명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프레시안(최형락)
- "재벌 중심의 고착화된 기득권 구조를 타파하게 되면 중소기업, 중견기업, 벤처기업의 투자가 활성화되고 경제에 새로운 활력이 창출된다. 대기업의 불공정거래 근절이 시급하다"(2013년 7월 TBS 라디오 <열린아침 송정애입니다> 인터뷰 중)라고 했다. 나아가 재벌의 기득권 문제 해결과 일자리 창출에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우리나라 고용의 88퍼센트(%)를 담당하고 있는 기업 중 99%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이다. 전체 국민의 12%만을 고용한 대기업은 이윤을 꽉 틀어쥐고 아래로 흘려보내지 않은 채 88%를 고용한 중소기업이 문 닫지 않을 정도만 납품 대금을 책정해서 준다. 그러니 밑(중소기업)에서는 남는 돈도 없고, 고용을 늘릴 수도 없다. 거기에 묶여서 연명만 하는 거다. 양극화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으며, '낙수효과'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재벌이 쌓아 놓고 있는 현금 수백조 원을 시장에 풀면, 사회 전체적으로 투자도 늘고 고용도 늘어 경제가 활성화된다. 이게 낙수효과다. 일각에선 '네가 그걸 어떻게 아느냐?'라고 하는데(웃음), 이건 통계청 통계가 보여주는 거다. 경제학적으로 경기가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지 않나. 기업의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이라는 것이 있다. 호(好)경기에는 높고 불(不)경기에는 낮은 게 정상이다. 우리나라 대기업 평균은 8.8에서 5.8이다. 근데 중소기업 평균은 5.5로 고정이다. 겨우 먹고살 만큼 고정된 상태에서 호경기라고 한들 올라가지 않는다. 대기업들이 호경기에도 이익을 다 가져간 채 아래로 내려보내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중소기업은 거의 연명 수준에 묶어 두고 납품 단가로 조정하는 거다. 대기업의 이 같은 착취구조를 풀어 주지 않는다면, 중소기업에서는 고용을 늘릴 여력이 없다.

사실 이걸 해결할 법적 제도는 갖추고 있다. 납품단가 '후려치기'를 하면, 처벌받는다. 납품 대금을 제대로 지불하지 않고, 어음으로 제시해도 처벌 대상이다. 법은 선진국에 비해 모자람이 없다. 문제는 법을 어겨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경제 법치'가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당시 새누리당 젊은 의원들이 '경실모(경제민주화실천모임)'를 만들어, '경제 법치해야 한다', '대기업 총수 사면 안 된다'라고 떠들기 전에는 처벌받은 대기업 총수가 없었다. 3년 징역형을 받으면, 5년 집행유예로 늘 풀어 줬다. 판결 이유는 항상 '경제가 위축될까 봐 우려되어…'라는 명분이었다. 우리가 떠들면서 그나마 구속한 사례가 생겼다. 그런데 지금 다시 나오는 논리가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풀어(사면) 줘야 한다’는 거다. 그렇다면 누가, 왜 법을 지키겠나. 중소기업은 연명도 어려운데, 대기업(재벌)은 수백조 원씩 쌓아놓고 있는 게 현실이다. 양극화가 좀 완화될 수 있도록 경제 법치가 되어야 한다.

- 현 상황에서 '경제 법치'가 지켜지기는 무척 어려워 보인다. 해결책이 있다면?

박근혜 정부가 처음 시작할 때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공약했는데, 안타깝다. 현재 재벌과 관련한 불공정 행위는 공무원만 고발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전속고발권'(2013년 6월 공정거래법 개정안 국회통과)이라는 거다. 그런데 공정위 공무원이 몇 명이나 되나. 이 사람들만 감싸면 (적발된 불공정 행위가) 봉쇄되지 않겠나. 특히 의사결정 권한이 있는 공정거래위원장부터 간부 몇 명만 집중적으로 관리하면 된다. 그러나 5000만 국민의 입을 막을 순 없다. 그러니까 국민 중 누구라도 기업의 불공정 행위를 고발할 수 있게 길을 터야 한다. 지금 박근혜 정부는 이를 폐지했다고 주장한다. 우리의 취지는 누구라도 고발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6월 2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통과된 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법(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보니, 고발 권한을 가진 사람에 중소기업청장, 감사원장, 조달청장 등을 추가해 놓고 공약을 달성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취지와 전혀 다르다. 한 마디로, 재벌이나 대기업이 이들에게 밥만 좀 더 사주면 도루묵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공정위가 가지고 있는 전속고발권 제도를 없애고, 피해 받은 사람도 자유롭게 고발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었는데 참 답답하다.

또 대기업이 소비자나 대리점에 엄청난 손해를 가져다주는 계약을 많이 한다. 이 경우 한 사람이 소송을 통해 대기업을 이기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결국 대부분이 '좀 당하고 말지'라며 소송을 포기한다. 그러다 보니까 대기업이 경제적 폭력을 휘두른다. 이를 제재하려면 피해자들이 집단 소송을 해서 재벌이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것도 박근혜 정부의 공약 사항이었다. 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와 더불어, 가맹점에 대한 본사의 불법·불공정한 행위를 규제한 프랜차이즈법(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개정안)만 시핼돼도 재벌은 '악' 소리를 낼 거다. 그런데 정부여당이 프랜차이즈법 통과를 막고 있다. 민감한 부분은 살짝 피한 채 공약을 이행했다고 주장하는 셈이다. 어떻게든 제도를 바꿔야 한다. 그러지 않고는 재벌의 횡포를 이겨 낼 수 없다. 될 때까지 싸우려 한다.

- 새누리당에서 위와 같은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많은가?

우리 경실모(경제민주화실천모임) 회원 몇 사람이 다다.(웃음) (경실모는 2012년 6월 출범 당시 30여 명 이상이 모였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대표 공약이었던 '경제민주화'가 흐지부지되면서 세가 약해졌다. 현재는 김세연 의원(부산 금정구)이 경실모 대표를 맡고 있다. 편집자)

- 현재 새누리당 내에서 개헌 논의가 한창이다. 현재 대통령의 권한이 막강한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개혁 요구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폐해가 분명히 있고 또 수정·보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 보완책으로 주장되는 게 '대통령 4년 중임제'다. 이에 대해서는 생각이 다르다. 가뜩이나 대통령의 힘이 너무 세서 문제인데, 연임하면 지금처럼 힘센 대통령제 하에서는 자동적으로 8년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본다. 보완이 아니고 개악(改惡)이 될 것이다. 또 내각제를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세월호 참사 국면에서도 유가족과의 관계를 풀지 못해 국회가 거의 5개월을 공전하지 않았나. 이런 국회인데, 내각제가 되면 국회가 언제라도 해산될 상황이 만들어지게 된다. 가까운 일본을 봐도 국회가 수도 없이 해산 되느라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선거를 계속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우리도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 없다. 4년 중임제보다는 5년 단임제의 골격은 유지하되, 예를 들면 대통령을 견제할 수 있는 국회의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감사원 같은 행정부 감시 기능 기관을 국회로 가져온다던지 하는 여러 방법을 통해 국회 기능을 더 강화해야 한다. 그렇게 막강한 대통령의 권한을 견제하는 것이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 하지만 국회와 청와대가 독립적이지 않는 것이 문제다. 여당과 정부가 한팀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국회 독립성이 가능하겠는가.

원래 당청 관계가 건강하려면, 협의는 하되 견제도 있어야 한다. 일방적 관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지금은 일방적인 관계를 넘어 '시종 관계'가 돼 버렸다고 말한다. 사실 당청 관계의 균형이 깨진 것은 공천의 영향력이 크다. 청와대가 공천에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그 균형을 지킬 수가 없는 거다.

- 지난 7.30 재·보궐 선거에서 공천심사위원회 결정에 반발해 공천 신청을 철회하고, "백의종군할 것"이라고 했다. 여야 가릴 것 없이 공천 절차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 사실인데….

어떤 조직이든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 법과 제도보다 그걸 운영하는 사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어떤 사람을 선발하느냐 하는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다. 정당도 발전과 개혁 문제는 '공천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래서 정부도 인사가 제일 중요하고, 당도 공천이 제일 중요하다. 요즘 '오픈프라이머리'에 대해서 많은 사람이 정치 선진화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전제조건이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 최악이 될 수가 있다. 지금 특정 지역에서는 특정 정당이 공천을 주면 끝나지 않나(선출되지 않나). 근데 오픈프라이머리로 하면, 현역 의원은 100퍼센트(%) 당선된다. 문제 있는 의원들이 하나도 걸러지지 않는 셈이다. 국민들에게도 오픈프라이머리가 선거 개혁인 것처럼 박수를 받으니까 몇몇 사람들에게는 두 배 더 좋은 일인 것이다. 새누리당이 들고 나오면 새정치민주연합도 분명 따라 올 거다. 현역 의원들에게 너무 좋은 제도니까 박수까지 받으면서 자기 이해관계를 확실히 챙길 수 있다. 가장 민주적으로 보이는 시스템이라고 해도, 결과는 최악이 될 수 있다. 현실과 이상이 꼭 일치하진 않는다. 온 국민이 오픈프라이머리에 참여하면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겠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결국 돈 있는 사람이 유권자를 동원하는 등 선거 자체가 부패하기 쉽다.

- 대안이 있다면?

아이러니하게도, 당의 1인자가 자기 정치 생명을 걸고 한 공천이 역사상 가장 훌륭했다. 다른 당은 모르겠지만, 공천에 대한 문제의식을 많이 느껴서 새누리당(과거 한나라당) 역사를 쭉 찾아보니까 가장 좋은 의원을 배출했던 때가 15대와 17대 총선이었다. 1996년 15대 당시 누가 공천을 했는지 찾아봤더니, YS(김영삼 전 대통령)가 아들인 김현철 씨가 후보를 공천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 공천이 성과가 가장 좋았다. 김문수, 김무성, 홍준표, 이재오 등 지금까지 장수하는 정치인들이 그때 다 나왔다. 17대 국회의원 또한 좋은 의정 활동을 하고 있다. 2003년 당시 '김문수'('보수혁신'이라는 기치로 당 혁신위원장 및 공천심사위원장을 맡았었다)라는 깨끗한 정치인이 전권을 가지고 사심 없이 했다. 공천하는 사람이 욕심 없이 하면 가능한 일이다. 문제는 그렇게 공천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그래서 아예 정치 현장을 떠나서 다시는 정치를 하지 않을 사람에게 공천을 맡기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국회의장들은 다시 정치할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적어도 20년 이상 정치를 했기 때문에 어떤 사람인지와 같은 평가가 다 나와 있다. 그들 중 가장 사심 없이 공정하다는 평가를 받은 전직 국회의장 한 사람이 공천을 책임 지면 좋을 것 같다. MBC <나는 가수다>와 같은 방식을 취해도 되고. 국회의장을 역임한 한 사람 정도면, 이미 국회 안팎의 좋은 사람을 두루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영입할 능력도 있다. 이 또한 하나의 방법이라고 본다.

- 지난 3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사회적 약자의 어려움에 해결사로 나서 문제를 해결했을 때 자신이 가장 멋있게 보인다"고 했다. 우리 사회의 약자는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경제적 약자의 경우, 물질적인 빈곤이 꼭 빈곤 그 자체로 끝나는 게 아니라 본인들이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자기 권리를 스스로 구제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경제적 여력이 없기 때문에 제대로 된 변호의 기회 또한 갖지 못한다. 그래서 경제적 약자가 사회적 약자의 큰 범주 중 하나라고 본다. 또 사회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계층이 있다. 여성도 그런 계층 중 하나다. 예전에 농협에서 있었던 일인데, 모 국장이 여직원에게 아주 심각한 성추행을 했다. 여직원은 해고당할 게 분명하니 문제제기도 못한 반면, 성추행한 국장은 밖에서 자신의 성추행 사실을 소문내고 다녔다. 피해 여성은 남편에게 행실 문제를 추궁당한 끝에 이혼했고, 또 어떤 여성은 친정집에서 '네가 꼬리를 쳤겠지'라며 역으로 문제제기를 당해서 오갈 데 없이 정신병원에 간 된 사례도 있었다. 결국 형편이 어려운 농협 여직원들이 집단 소송을 냈다. 이기기 쉽지 않은 싸움이었는데 3심까지 이겼다. 그런데 농협은 성추행 가해자인 국장을 경질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국장 자리를 여직원 자리 뒤쪽에 배치해 계속 욕설을 하게 만들었다. 농협에 연락을 해서 국장을 인사 조치하라고 했더니, 조합장이라는 사람이 반말로 "네가 뭔데 그러느냐!"며 오히려 따지더라. 그래서 "사법처리당한 사람이다. 당신들이 징계해야 한다"고 했더니, 회사 정관에 성추행은 징계사유가 없다고 하더라. 그래서 정관에 미풍양속 침해 등도 있지 않느냐고 아무리 따져도, 없다고 부인했다. 그래서 당시 농협중앙회가 정부 예산 1000억 원을 받아 가야 하는 게 있었는데, 이를 지원하지 않겠다면서 버텨 그 국장을 겨우 해직시킨 적이 있다. 이런 것부터 시작해서 억울하고 부당한 일을 당해도 스스로를 구제할 수 없는 사람이 많다. 이런 사람 누구든, 사회적 약자라고 생각한다.
- 농협 성추행 건은 직접 발견해 해결한 운이 좋은 케이스다.

맞다. 결국 제도적인 틀을 만들어야 한다. 사회적 약자 스스로 자신을 방어하고 구제 및 보호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드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고 국회 필요 이유다.

사실 '서현이 사건'(계모가 의붓딸을 학대해 숨지게 한 사건)의 경우도 아동학대에 관한 특별법이 없어서 사각지대가 많았던 것이다. 아동 폭력에 대해서 법이 딱 두 개 밖에 없었다. 하나는 '형사소송법'이었고, 다른 하나는 '가정폭력에 관한 특별법'이었다. 가정폭력의 관한 특별법의 경우, 가정을 우선시하기 때문에 아이가 폭행을 당해서 신고가 들어오면 다시 아이를 가해자가 있는 가정으로 돌려보낸다. 이웃집 사람이 서현이가 가축과 비슷한 대접을 받는 걸 보고 신고하면, 경찰은 한 시간 만에 다시 계모가 있는 집으로 돌려보냈다. 이런 상황이 몇 번이나 반복됐다. 형사 소송의 경우 합의가 우선이다. 그런데 때린 사람이 계모인데, 아이(피해자)와 계모(가해자)가 합의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렇다 보니,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도망갈 수도 없고 자신을 방어할 수도 없는 아동의 경우, 특수하기 때문에 두 개의 법만으로 해결할 수 없으니 '아동폭력에 관한 특별법'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17대 때부터 주장했지만 안 됐다. 이 법이 통과되면 해당 사건의 주무부처가 법무부가 아닌 여성가족부로 넘어가기 때문이라고 했다. 결국 부처 싸움으로 그 난리를 쳤다는 것이다. 이 사람들은 법무부에서 통과시키지 말라고 지령이 내려오면, 안 한다. 자기 소관 업무가 없어지면 '과'(담당 부서)가 줄고 인력이 줄기 때문이라고 한다. 2013년 당시 '하늘로 소풍 간 아이들'이라는 온라인 카페 어머니들 덕분에 힘들게나마 바꿀 수 있었다. 어머니들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한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여러 사람이 될 때까지 계속했다. 그렇게 쟁취한 법이 '아동학대 방지 및 처벌 특례법'이다. 하지만, 그 사이 귀중한 한 아이가 목숨을 내놓아야 했다. 가슴이 아프다. 약자들을 위한 제도적 안정 장치가 앞으로도 꾸준히 만들어져야 한다.

ⓒ프레시안(최형락)

- "'세월호 참사'라는 것이 그동안 우리 사회에 씨줄·날줄로 엮여 있고, 관행으로 뿌리박혀 있는 부패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미래가 없고 희망이 없다는 것 때문에 생겨난 것 아니겠습니까"라고 말한 인터뷰(지난 6월 30일 평화방송)를 봤다. 300명이 넘는 희생자를 떠난 보낸 지난 4.16일 이후, 8개월이 지났다.

사실 그 이후로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다. 이런 기회를 정쟁으로 날려버린 것에 대해서 정말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여권에 속한 사람이 이런 말을 하면, 또 정치공방으로 비칠까 걱정이 되지만 '세월호 특별법' 협상과 동시에 재발 방지를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제도를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에 대한 공론화가 같이 이뤄졌어야 했다. 특별법이 막혀 있다고 해서 공론화 역시 한 발짝도 못 나가고 세월호 참사와 무관한 민생 법안도 진행되지 못했다. 이건 정말 정치 지도자들의 책임이며, 석고대죄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는 그것대로 따지고, 공론화는 공론화대로 제도적으로 고쳐야 할 것과 제도적 안전장치에 대한 논의가 있었어야 한다. 세계 10대 강국에 속하는 우리나라가 21세기 현재 왜 이렇게 됐나 하는 생각이 든다.
- 이 밖에 국회에 있을 때 뿌듯했던 입법 활동이 있나?

고리대 법정이자율을 낮춘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지만, 법정이자율 상한을 낮춘 것과 해외의 금융계좌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 다 신고하게 만든 것이 기억에 남는다. 후자의 경우 법을 바꾼 게 아니라, 없던 법(해외금융계좌 신고제)를 만들었다. 매번 전직 대통령이 스위스 계좌에 돈을 빼돌렸느니 하는 말은 많았어도, 한 번도 규명된 적은 없었다. 다른 나라의 경우, 어떻게 하는지 찾아봤더니 해외에 있는 계좌까지 다 신고하게 하더라. 그래서 같은 방법으로 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그런 법이 없다고 하더라. 그래서 법(2009년 '국제조세조정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 법률안'과 '조세범 처벌법 일부개정 법률안' 발의)을 만들어서 냈더니, 자동 상정돼야 하는데 상정도 하지 않았다. 재경부(기획재정부)는 격렬하게 반대하며 난리를 쳤다. '기업이 비자금을 못 만들어 경제가 죽는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를 폈다. 당시 '공천 안 준다'는 협박도 받았다. '경제를 죽이는 경제통'이라고 사설이 계속 나오고, '악법을 만드는 국회의원'이라면서 재벌이 운영하는 신문사는 '국회에서 퇴출 되어야 한다'는 기사를 계속 썼다. 그럼에도, 몇 년 동안 고생한 끝에 통과시켰다. 이후에는 국세청이 해당 법에 의거해 추징한 세금만 한 분기 만에 6000억 원대라고 보도 자료를 냈다. 점점 확대가 돼 이제는 몇 조 원씩 걷는다고 하더라. <뉴스타파>의 '조세피난처' 보도가 이 법으로 처벌이 가능했던 경우다. 고생은 많았지만, 보람 있게 생각한다.

- 당내 주류 세력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소신 발언하는데 어려움이 많을 것 같다. 외롭진 않은가.

나를 죽이려고 한다. 좌초시키려고, 공천도 안 주며 쫓아내려고 하는 게 무엇보다 가장 어렵다. 외로움은 내가 극복할 문제인데, 제도권 밖으로 쫓아내면 일을 못하니까 그게 답답하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웃음). 아니, 무릎 꿇을 생각은 없고 힘을 더 키우는 수밖에 없다. 힘을 합해서 자꾸 사람들한테 이게 왜 필요하고 중요한지를 얘기할 수밖에 없다.

- 이 시대에 여성 정치인이 상징하는 바는 무엇일까.

정치 문화가 금권 정치, 패거리 정치로 변질됐다. '끼리끼리'하면서 원칙 없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남이가, 이건 봐줘야지'라면서 룸살롱 다니고 전화 몇 통만 하면 해결되는 것이 정치뿐 아니라 사회에 뿌리박힌 문화다. 그러나 여성은 여기서 좀 자유롭다. 동창이라도, 고향 선후배라도 원칙대로 한다. 이게 우리가 말하는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 아닌가. 주요 결정권을 가진 자리에 여성이 많이 진출할수록 우리가 그런 사회로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특히 정치권에 여성 정치인이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상식과 원칙, 법대로 가는 정치 문화가 자리 잡는데 여성 정치인이 산소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특히 '여성'의 이름으로 할당량을 받고 여성 정치인이 됐다면, 주체성을 더 가지고 활동해야 한다. 다만, 그렇지 못한 모습이 종종 있어 안타깝다.

- 이혜훈의 꿈을 듣고 싶다.

힘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부당한 일을 당하고 그 부당함에 대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세상은 이제 끝냈으면 좋겠다. 다 가진 것과 상관없이 동등하게 대우받을 수 있는 세상. 그런 세상을 만들겠다는 것이 정치하는 사람이 가진 꿈이고, 그런 세상으로 바꾸고 싶다.

- 동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해줄 말이 있다면?

첫째로, 참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우리 세대를 돌아보고 또 아들들을 보면, 참 복이 많았던 세대가 아닌가 싶다. 우리 아들은 내가 살았던 때보다 훨씬 더 치열하게, 열심히 살고 있다. 밤낮도 없이 공부하며 스펙을 만드는 것에 너무 찌들어 사는데, 결과적으로는 우리보다 얻는 게 훨씬 없다. 우리 시대는 적당히 놀고 적당히 공부하고 적당히 고민했지만, 많은 가능성이 열려 있었고 조금만 열심히 하면 뭐든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노력한다고 얻어지는 시대가 아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한계가 있고 그렇게 노력해도 얻어지지 않는 시대를 사는 젊은 청년들을 보면서 부모세대로 너무 미안하고 죄스럽고 마음이 아프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는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다. 또 한 가지 부탁하고 싶은 것은 정치인이 싫다고 해서 정치를 싫어하고 무관심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정치인이 싫으면 싫을수록, 정치에 더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정치라는 것이 내가 싫다고 해서 자유로워지는 게 아니다. 관심을 갖고 자신이 싫어하는 정치인들이 발목을 잡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 유권자가 되던, 정치인이 되던 둘 다 정치에 참여하는 방법이다. 어떤 식으로든 정치에 참여해서 정치를 좀 바꿔주었으면 좋겠다.

- 이혜훈에게 자유란 무엇인가?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전제는 있어야겠지만, 어쨌든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가지고 독자적인 결정을 할 수 있도록 장애나 구속이 없는 상태 아닐까? 우리 사회는 선천적 이유에서든 후천적 이유에서든 그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회적 약자들이 주로 그런 계층이라고 보는데, 그들 또한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만들고 개인적으로 도와주는 게 정치인의 소명이라고 본다.

이 연재는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정치경영연구소의 기획, 취재, 집필에 의해 진행됩니다. 인터뷰는 한림국제대학원대 정치경영전공 김예리 학생이 했으며, 정리는 김예리 학생과 조경일 선임연구원이 같이 했습니다.
정치경영연구소가 하는 일 중의 하나는 '진보적 자유주의'의 한국적 함의를 정치 및 정책적 맥락에서 찾아내는 일입니다. 과연 자유는 진보적인 걸까요? 그렇다면 그 구체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진보적 의미의 자유를 스스로 누리고 있거나 타인을 위하여 퍼트리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나의 자유와 타인의 자유,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자유, 그리고 자유와 평등은 상호 어떠한 관계에 있어야 하는 걸까요?
정치경영연구소의 청년 연구원들이 자유와 관련된 이 많은 문제를 현실에서 해결 또는 극복해가고 있는 분을 직접 찾아 나서기로 작정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자유 이론가 혹은 실천가들께 (자신과 타인을 위한) 자유를 실천하는 방식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여쭤보겠다는 겁니다. 아마도 그분들은 젊은 저희에게 자신들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들려줄 겁니다.
앞으로 모든 인터뷰 내용은 잘 정리하여 여기 이 자리에 항상 올려놓겠습니다. 여러분도 저희와 함께 이 자유의 향연을 즐겨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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