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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헌법재판소, 통진당 해산 진퇴양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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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헌법재판소, 통진당 해산 진퇴양난

[기고] 정당해산심판과 헌법재판소의 명운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의 구두변론 절차를 종료하고 선고를 위한 심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결론이 어떻게 내려지건 헌재의 역사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될 것이다. 헌정사상 초유의 정당해산심판을 통해, 헌법상의 복수정당제에 기초한 민주적 기본질서의 규범적 의미를 분명히 제시하고 그 적용의 사례를 남기게 되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번 사건에 관여한 헌법재판관 개개인의 족적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새로운 역사를 만든다는 그 무게감에만 비춰보면 이번 사건은 애당초 헌재의 손에 맡겨지지 않는 편이 나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민주공화국을 보위해야 할 헌법적 책무를 진 대통령이 정당 해산이라는 민주주의 근간에 충격을 가하는 극단적 처방을 요구하면서 진중한 숙고와 심의의 과정에 참여하지 않고 해외순방 중에 전자결재 방식으로 전격적으로 처리할 만한 긴박성은 심리 자체가 1년을 넘기면서 무색해진 모양새다.

정당 해산의 필요성을 뒷받침해줄 것으로 인식되었던 소위 '이석기 내란음모사건'도 대법원의 최종결정이 남아있긴 하지만, 사실판단에 대해 권한을 가진 항소심의 결론대로라면 기껏해야 일부의 일탈이라는 범주를 넘어서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도대체 정당 해산의 기준인 당 전체 차원의 반체제 활동을 이끌 조직의 존재 자체가 명확히 확인되지 않았다.

이런 사정을 반영한 듯 변론과정에서 정부는 해산 요건인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 '활동'의 측면보다는 '목적'이라는 이념적 지향의 위험성을 입증하는 데 주력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민주주의 근간인 정당의 해산에 관한 현대 민주주의의 상식적 규범은 이러한 이념적 지향에만 의한 정당 해산이 법치국가의 원리에 저촉될 수 있는 위험을 내재하고 있음을 분명히 경고하고 있다.

유럽평의회의 베니스위원회(Venice Commission / European Commission for Democracy through Law)가 제시한 정당 해산 지침은 정당의 해산을 '사법기관에 제소하기 전'에 그 정당이 자유민주적 정치질서나 개인의 권리에 '실제적 위험(actual danger)'이 됐는지, 이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 덜 극단적인 조치가 있는지를 판단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심판에서 법치주의가 요청하는 정당 해산의 긴절한 필요성을 증명하는 것은 물론, 제소마저도 최대한 신중해야 한다고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이번 사건에서 주된 논지로 삼고 있는 '진보적 민주주의'나 '민중' 혹은 '일하는 사람이 주인되는 세상' 등의 이념이나 용어는 민주사회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관용되어 온 이념과 용어라는 점에서 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제적 위험이 된다고 단정하기 쉽지 않다. 설령 실제적 위험이 인정된다손 치더라도 국가보안법이나 형법과 같은 덜 극단적인 조치만으로 이 위험이 예방되지 않는다고 볼 만한 사정이 있는지는 '이석기 사건' 자체가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냉전의 산물인 1956년 독일공산당 해산결정에서 독일 연방헌법재판소가 '체제 전복을 위한 구체적 행동이 없더라도 정치노선만으로 정당이 해산될 수 있다'고 본 기준을 적용하더라도, 공산주의 노선을 직접 천명한 공산당과 달리 민주사회에서 통용되는 당 강령의 용어만으로 민주적 기본질서를 저해하는 것으로 단정하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 단지 북한의 존재가 이러한 이념이나 용어에 정치적 현실감을 더해 줄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북한 위협론은 그 자체가 자충적(自充的) 논변이라는 치명적 결함이 있다. 김일성이나 북한이 사용했다는 이유만으로 자유민주체제에서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사상이나 정치적 견해를 금지할 수 있다는 것은, 북한의 주장이 곧 헌법 판단의 기준이라는 황당한 결론에 도달하는 논리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주장만을 잣대로 판단한다면, 북한이 우리 정치에 개입할 수 있도록 대문을 활짝 열어주는 것이다. 오히려 그런 논리가 반헌법적이고 민주질서 위배에 해당하는 자가당착이 되는 것이다.

애당초 헌법 제정자들이 헌재에 정당해산심판과 같은 민감한 정치적 사안의 심판을 맡긴 이유는 정치적 다수의 횡포를 통제해 정치적 소수자를 반체제가 아닌 민주체제로 포용해 내기 위한 것이다. 만일 헌재가 민주주의를 질식시킬 수 있는 소수자 억압의 장치로 오용된다면 이는 자유민주주의의 조종(弔鐘)을 울리게 될 것이다. 유신독재 시절 극성했던 사법의 정치 예속화가 한국 민주주의의 질곡에 기여했던 사실이 그런 부작용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정당해산 제도는 전형적으로 소수자 배제를 위한 제도이므로 관용의 원칙 및 정치의 사법화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자제되어야 했던 것이다.

정부의 섣부른 정당해산심판 제소는 헌재를 벼랑끝으로 몰아간 셈이다. 헌재는 자유민주주의에 필수적인 정당 해산의 헌법적 준거를 엄격히 적용하느냐, 분단 상황이 강요하는 체제 수호 필요성을 내세워 현대 민주주의의 상식적 규범이 되고 있는 정당 해산의 기준을 완화하느냐 하는 기로에 서 있다. 법치주의에 따른 엄격한 요건을 무시하고 어슬픈 정치논리로 정당 해산의 결정을 내리게 되었을 때 인권과 민주주의의 보루로서의 헌재의 권위는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게 될 것이다.

반면 정부가 체제 수호를 명분 삼아 헌정사상 초유로 밀어부친 정당 해산을 기각했을 때의 정치적 후폭풍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헌재가 그 존립 근거와 권위에 심각한 위협을 받을 수 있는 정치적 환경에 처하게 된 것이다. 입헌주의의 안정적 발전을 위해 최대한 회피돼야 할 진퇴양난의 지경으로 헌재를 이처럼 몰아붙여서 도대체 누가 이득을 볼 수 있는가? 헌재가 더 이상 인권과 민주주의의 보루로서 기능하지 못할 때, 독재적 폐습만 창궐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북한 세습체제를 반대하는 이유는 시대착오적인 독재체제이기 때문이다. 정당을 함부로 해산하는 것은 북한처럼 정치적 입장이 다른 것을 용납하지 않는 체제로 치닫게 된다. 이제 남겨진 것은 벼랑 끝의 헌재가 오로지 무엇이 자유민주주의의 본질인지, 헌법적 권위를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에 기대어 헌법 정신에 투철한 결론에 도달하는 방법뿐이다.

정당을 해산해야 할 명백하고도 현존하는 위험이 있고, 정당해산 외의 어떤 방법으로도 이 위험을 제거할 수 없는 상황적 존재를 국민들에게 설득할 수 있을 때라야 해산 결정을 정당화할 수 있다. 애당초 국민의 정치적 선택에 맡겨야 할 정당의 운명을 헌재에 전가시킨 정부의 결정에 대해, 자유·민주 헌법의 정신에 따라 준엄한 평가를 내려야 한다. 이번 결정을 맞아 헌재가 그 명운이 걸린 위기를 현명하게 극복하고 그 존재 의의를 더욱 굳건히 하는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는 예지(銳智)를 발휘하기를 충심으로 고대한다.

*원제 : 정당해산심판과 헌법재판소의 명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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