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에 걸친 싸움이었다. 2005년 세 살이었던 한 해고자의 아이가 이젠 중학교 입학을 앞둘 정도로 긴 시간이었다.
꼬박 39일을 굶었다. "단식을 하다보니 하루가 열흘처럼 길었"지만, 10년 세월에 비할 바는 아니다. 건강을 우려해 단식 중단을 호소하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지금 끝내야 할 것은 단식이 아니라 10년 싸움"이라고 한다. 코오롱 해고자 최일배 씨(코오롱정리해고분쇄투쟁위원장) 이야기다.
"10년 싸움 끝내자"며 시작한 최 위원장의 단식이 13일 어느덧 39일을 맞았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의료진이 이날 과천 코오롱 본사 앞 농성장을 찾았지만, 그는 수액을 맞는 것조차 거부한 채 단식을 이어가고 있었다. 김소연 전 기륭전자 분회장은 "저혈당이 심해 우려되는 상태"라고 전했다.
여느 장기투쟁 사업장이 그렇듯, "안 해본 것 없이" 싸운 세월이었다. '코오롱의 잔혹사'는 2005년, 재계순위 23위였던 코오롱이 78명의 구미공장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하면서 시작됐다.
2004년 코오롱 노사는 정리해고를 하지 않는 조건으로 임금 30% 삭감에 합의했지만, 사측은 그해 12월 구미공장 노동자 1400여 명 중 430여 명을 희망퇴직 시켰다. 이후 사측은 나머지 노동자들에게 임금 15%를 삭감하면 정리해고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서도, 2005년 2월 78명을 정리해고 했다.
해고자들은 곧이어 부당해고라며 소송을 냈지만, 대법원은 2009년 해고무효 소송에서 사측의 손을 들어줬다.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는 사이, 78명의 해고자 중 복직 투쟁을 계속하는 이는 이제 12명 뿐이다. 3년 전, 이곳 코오롱 본사 앞에 천막을 세울 당시 농성장을 지킨 이는 최일배 위원장을 포함해 2명 뿐이었다.
10년에 걸친 싸움과 함께 최 위원장의 단식도 끝내기 위해, 이날 시민들이 과천 코오롱 본사 앞을 찾았다. 코오롱 투쟁 10년을 상징하는 '3650인의 화답' 집중 집회가 예정된 날이었다.
"이제 지긋지긋하니 그만 하라고요? 누가 제일 지긋지긋하고, 끝내고 싶겠습니까. 여러분 도와주세요. 최일배를, 이창근을, 김정욱을 살리고 싶습니다. 이 추위에 육포 몇 장과 물 몇 병만 들고 70미터 굴뚝에 오른 이창근을, 30일 넘게 곡기를 끊으며 누워있는 최일배를 살려야 합니다."
쌍용자동차 해고자의 아내인 권지영 와락센터 대표는 마이크를 잡자마자 눈물부터 터뜨렸다. '3650인의 화답'이 예정됐던 이날 새벽, 쌍용차 해고자인 이창근·김정욱 씨가 평택공장 내 굴뚝 고공 농성에 돌입했다. 강추위 속 위험천만한 농성에 돌입하면서도, "오늘은 평택공장에 오지 말고 모두 코오롱 앞으로 모여 달라"던 쌍용차 해고자들이다. (☞관련 기사 : 쌍용차 해고자 2명, 70미터 굴뚝 농성 돌입)
오후 6시께 시작된 문화제에선 부쩍 마른 모습의 최 위원장이 무대 위에 섰다. 이날 집회가 기획됐을 때, "10년을 싸우면서 2000명 이상 모인 집회를 한 번도 해 본적이 없는데, '3650명의 화답'이니 처음으로 2000명 넘는 집회를 해보는가, 이런 기대감과 설렘이 있다"고 했던 그였다. (☞관련 기사 : 해고 후 10년…"단식 아니라 10년 싸움 끝내야")
그런 기대와 달리 집회는 조촐한 규모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오롱 해고자들은 "여전히 우리가 여기에 있다"고 외치고 있었다.
무대에 오른 최 위원장은 참가자들을 향해 "염치가 없지만 간곡하게 부탁드린다"고 했다.
"단식 30일이 넘어가니 하루가 열흘처럼 길고 힘듭니다. 하지만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습니다. 10년의 투쟁, 올해 안에는 이제 끝내고 싶습니다. 투쟁 현장이 너무 많아 죄송하고 염치 없지만,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이제 끝낼 수 있도록 한 번 더 힘을 모아주십시오."
해고자들이 원하는 것은 그저 '대화'다. 10년 동안 싸우면서 회사와 대화 테이블에 마주앉았던 것은 단 한 번. 남의 일처럼 외면하지 말고, 이제 이야기를 들어달라는 것이다. 코오롱 해고자들과 이들을 지지하는 과천시민들이 '코오롱 불매운동'까지 돌입한 것은, 10년간 외면해온 회사를 압박하기 위한 마지막 수단이기도 하다.
최 위원장은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조금만 더 힘내서 올해는 반드시 끝냈으면 좋겠습니다. 힘들어서 또 다시 단식투쟁 할 엄두가 안 나니까요"라고 썼다. 코오롱 해고자들은 내년이 오기 전 긴 싸움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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