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일간지인 <워싱턴포스트>가 올해 <세계일보>와 <한겨레>, <시사저널> 등 언론을 상대로 전방위 고소를 벌인 청와대의 행태와 관련해 한국에서 언론의 자유가 위협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11일 '한국에서 언론인들이 정부 단속을 두려워한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27년 동안 지켜져 왔던 언론 자유가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위협받고 있다며 이같이 지적했다.
신문은 언론 전문가인 '뉴 패러다임'의 피터 벡의 말을 인용해 "박근혜 대통령이 독재자 아버지가 쓴 대본을 이어받고 있다"고 진단했다. 신문은 박 대통령의 아버지인 박정희 대통령의 유산이 최근 한국 사회에서 빈번히 나타나고 있다며 박근혜 정부가 "법적인 체계를 통해 많은 언론인들에게 소송을 걸고 있다"고 전했다.
신문은 "한국 사회에서는 그동안 언론 보도에 대해 광범위한 차원에서 '명예훼손'의 예외가 인정됐으나,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에는 그렇지 않게 됐다"면서 <한겨레>, <시사저널>, <세계일보>, <조선일보> 기자 개인에게 건 소송과 더불어 일본 <산케이신문>에 제기한 소송을 차례로 소개했다.
우선 <세계일보>의 청와대 문건 보고와 관련해 신문은 "한국에서 반향을 일으킨 동시에 대통령에게 엄청난 정치적인 골칫거리가 됐다"며 청와대가 해당 신문사를 고소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유명희 청와대 외신대변인은 <워싱턴포스트>에 세계일보의 보도와 관련 "사실을 확인하려는 최소한의 노력도 없다"고 평가했다. 유 대변인은 이 보도가 사회적 혼란을 초래했으며 정부의 평판에 "엄청난 일격"을 가한 사건이라고 말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산케이신문>의 전 서울 지국장인 가토 다쓰야(加藤達也)에게 건 소송에 대해 신문은 정치적인 관점이 작용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신문은 "<산케이>가 일본의 가장 보수적인 신문 중 하나이고, 이 신문이 일본군 위안부 한국인 피해자들을 매춘부라고 규정짓고 있다"며 이러한 신문의 논조가 소송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가토 전 지국장은 <워싱턴포스트>에 "이 사건은 박근혜 대통령이 어떤 리더이며 그의 성격이 어떤지 보여주는 것"이라며 "이런 종류의 정부가 정권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 한국 민주주의의 현재 상태를 보여주는 두드러진 특징"이라고 주장했다.
한국 언론, 소송에 겁내지 않고 있어
신문은 박근혜 정부가 언론을 상대로 줄줄이 소송을 벌이고 있는 것과 관련, 각계의 비판적인 평가를 실었다.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에게 패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의원은 언론사를 상대로 한 소송, 특히 <산케이신문>에 소송을 제기한 것과 관련해 "산케이 주장에 동의하지는 않으나, 잘못된 사실을 보도했다고 기소하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는 않다"며 "표현의 자유는 최고의 가치로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변호사인 브렌든 카는 이러한 경향이 언론을 움츠러들게 할 것이라면서 "이것은 박근혜 정권이 바라던 바로 그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 연구소장은 "박근혜 정부가 한국 언론들에게 정권에 부정적인 기사를 쓰면 안 된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에 대해 유명희 외신대변인은 "한국 정부는 언론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를 존중하고 있다, 한국에 있는 모든 언론은 표현의 자유를 누린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국가 기밀 유출과 개인 명예를 훼손하는 등 공공이익을 해치는 것까지 허용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신문은 정부가 이처럼 언론을 상대로 소송을 걸고 있지만 언론은 겁내지 않고 있다며 지난 3일 <한겨레>에 ''국정 농단' 눈감고 '유출·보도'에만 성낸 대통령'이라는 제목의 사설 한 구절을 소개했다.
"청와대가 자체 생산한 문건을 스스로 '찌라시'라고 규정하는 나라가 '비정상적'이지, 청와대 보고서를 보도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언론의 사명이다. 이런 비정상적인 나라를 만든 자신을 탓하기는커녕 오히려 언론에 화를 내는 박 대통령은 얼마나 염치없는 대통령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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