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코오롱 정리해고에 맞선 10년, 이제 마침표 찍자!"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코오롱 정리해고에 맞선 10년, 이제 마침표 찍자!"

[기고] 12월 13일, 코오롱 최일배 단식 '연대의 날'에 함께해요

학용품 살 돈을 스스로 벌어볼 생각으로 시작한 게 아니었다. 군것질하려고 엄마를 조르다 혼나는 것도 지치고 다 큰 놈이 할 짓도 아니었다. 남들처럼 보란 듯이 과자, 아이스크림을 길에서 먹고 싶은 욕망이 주된 이유였다. 그렇게 초등학교 6학년 때 친구 따라 신문배달을 시작했다. 지역신문이서 구독자는 적었지만 구역은 엄청 넓었다. 1부를 배달하기 위해 2km 이상 떨어진 곳까지 가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 집은 제발 끊어줬으면 하는 마음 간절했다.

비가 오는 날은 짜증이 났다. 몸뚱이보다 신문이 더 중요했다. 몸은 흠뻑 젖어도 신문은 뽀송뽀송한 상태로 배달해야 했다. 비닐봉투에 1부씩 담은 신문더미를 자전거 뒷좌석에 얹고 비닐로 한 번 더 감쌌다. 평소처럼 밖에서 던지지도 못하고 집안으로 들어가 마루에 곱게 나둬야만 했다. 1부 배달하려고 외진 곳까지 가는 게 정말 싫었다. 빼먹고 싶은 마음 굴뚝같았지만 결국 욕하면서 페달을 밟았다. 제작 사고라도 생겨 영업소에 신문이 도착하지 않기를 바라기도 했지만 내가 일하는 동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영업소에서 삽지(광고지)를 넣고 배달까지 마치는 데 3시간 정도 걸렸다. 배달 끝냈다고 일이 끝난 게 아니었다. 영업소로 돌아와 상황을 보고해야 끝이 났다. 간혹 영업소에 신문이 안 왔다는 전화가 걸려올 때도 있었다. 분명히 배달했는데 다시 가야만 했다. 누군가 쌔벼간 것이다.

늘 속상한 일만 있는 건 아니었다. 고생한다고 할머니들이 간혹 간식을 주실 때면 콧노래를 불렀다. 영업소에서 한두 부 더 챙긴 신문을 배달 중 길에서 아저씨들한테 50원에 파는 날은 째지게 좋았다. 월급은 5000원으로 하루 200원꼴이었다. 그나마 첫 월급은 일 시작하고 3개월째에 받았다. 2개월분은 보증금이라 그만둘 때 준다고 했다. 처음 말과 달랐지만 항의도 못했다. 제때 월급 받는 친구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명절에 친구들이 선물로 비누를 받을 때도 난 수습이라고 주지 않았다. 내가 경험한 첫 '노동차별'이었다.

6개월쯤 일하다 영업소장에게 그만두겠다고 했다. 못 받았던 2개월분 월급을 생각하며 내심 들떴는데 영업소장이 나중에 오라고 했다. 며칠째 찾아갔지만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억울하고 서러워서 가슴이 저렸다. 친구들 놀 때 꾹 참고 땀범벅이 되도록 일했는데 월급을 떼이게 되자 화병이 생겼다. 시름시름 앓았다. 밥상에서, 책상에서, 운동장에서 시도 때도 없이 울고 지내던 어느 날 어머니가 도대체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어머니랑 영업소를 찾아갔지만 소득이 없었다. 그렇게 2개월분 월급 10000원을 떼였다. 오밤중에 남몰래 영업소에 돌을 던져 유리창을 깨 봤지만 서러움과 억울함이 풀리지 않았다. 지금도 고향에 가서 그 영업소 앞을 지날 때면 가래침을 뱉는다.

억울함을 풀기 위해 10년째 싸우는 노동자들이 있다. 구멍가게도 아닌 코오롱이 2005년 2월(당시 재계순위 23위) 경영이 어렵다며 78명을 정리해고했다. 노조활동에 적극적이던 이들이 표적이었다. 형편이 어렵다던 회사는 곧바로 용역깡패 120여 명을 고용해 1년간 공장에 상주시켰다. 해고자들은 2005년 7월 코오롱노조 10대 임원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선거 직후 회사가 선관위원장을 회유, 매수해 당선무효 공고를 냈다. 2006년 1월 노동부 특별조사 결과 회사의 부당노동행위(선거 개입) 사실이 밝혀져 회사 인사팀장이 구속됐다. 10년간 삭발, 삼보일배, 천막농성, 단식, 고공농성, 본사 점거, 회장 면담(자택) 투쟁, 구속, 광화문 빌딩 점거농성, 코오롱스포츠 불매 전국 산악 등반 등 안 해 본 투쟁이 없을 만큼 쉼 없이 싸웠다.

지금 최일배 정리해고분쇄투쟁위원회 위원장이 과천 코오롱 본사 앞에서 40일 가까이 곡기를 끊은 채 싸우고 있다. 어린 시절 사용자에게 농락당한 경험을 가진 난 다른 건 잘 모르겠지만 그가 얼마나 억울할지는 짐작이 간다. 합의를 짓밟고 정리해고의 칼을 휘두른 코오롱은 정리해고 10년이 되는 2015년 2월이 오기 전에 12명의 노동자에게 사과하고 복직시켜야 한다. 비록 법과 제도는 그들의 억울함을 외면하고 코오롱 자본의 손을 들어줬지만 사람들은 그들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들의 억울함과 10년 투쟁을 기억하는 3650명이 12월 13일 과천 코오롱 본사를 에워싸고 외칠 것이다. "정리해고 철회하고 사과하라!"
▲ 최일배 정리해고분쇄투쟁위원회 위원장. ⓒ이병관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