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원 교수 영전에
이렇게 갑자기 떠나다니요. 내가 김 형, 당신에 대해 이런 글을 쓰게 될 줄 그 누가 알았겠습니까. 몇 달 전 독일 안식년을 마치고 귀국한 참여연대 정현백 대표로부터 김형의 독일 생활을 크게 칭찬하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독일어 공부까지 하며 열공하고 있다는 소식이었지만, 나는 공부꾼 김 형답다고 부러워하면서도 마음 한켠으로는 걱정도 했었습니다. 허약한 몸을 잘 돌봐야 할텐대 너무 많은 짐을 진다는 생각 때문이었지요. 최근에야 김 형이 말기 간암 때문에 귀국했다는 슬픈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빨리 돌아갈 줄은 전혀 몰랐군요. 먼길 가기 전에 김 형의 손이라도 한 번 잡아보지 못한 것이 후회되고 너무 미안합니다.
김 형, 당신은 이 땅에서 많은 시간 어두운 시대를 살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짙은 어둠을 밝히기 위해 실천적 경제학자로서 온 힘을 다해 당신의 생애를 바쳤습니다. 전두환이 주도하는 신군부가 5월 광주를 붉게 물들이고, 무고한 학생과 시민들을 죽이고, 그래 놓고도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던 암울한 때였습니다. 우리가 함께 관악산을 오르 내리며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숨죽이며 읽고 토론하고 했던 시절이 기억나는지요. 그 때 김 형은 누구보다 정치경제학 원리에 대해 투철한 탐구 정신을 보였습니다. 이론적 뒷받침없는 막연한 실증연구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었지요.
그렇지만 김 형이 한결같이 추구한 길은 훈고학적이거나 교조적인 연구, 이 땅의 구체적 현실과 동떨어진 수입이론, 관념적 좌익소아병 및 탁상 공론과는 거리가 한참 멀었읍니다. 그건 김 형의 직성과 맞지 않았던 것이지요. 김형, 당신은 미군정기 귀속재산 문제를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쓸 때도, 한국사회경제학회를 창립하고 운영할 때도, 그리고 민주화이후 참여연대의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운동에 관여하며 본격적인 재벌연구를 수행할 때도, 언제나 이 땅의 역사와 현실에 튼튼히 뿌리내린 구체적 연구 길을 추구했습니다. 그 길은 당신의 대표적 저서인 <미군정기의 경제구조>와 <재벌개혁은 끝났는가> 등으로 큰 결실을 맺었습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은 김형을 경제학자로서는 한국의 대표적 재벌 연구자와 재벌개혁론자로 기억할 것입니다. 재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적 책임을 다하도록 살리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한 대안 경제학자로 말입니다. 그렇지만 김형의 안목은 재벌 연구에 기반을 두면서도 더 넓은 쪽을 향해 있었습니다. 당신은 성찰과 혁신을 모르는 한국의 진보 '진영'에 대해 닫힌 경계를 허물 것을 요구한 통렬한 비판자였습니다. 당신은 진보와 보수의 구분과 별도로 개혁과 수구를 구분할 것을 제안했읍니다. 그 핵심 메시지는 당신이 남긴 <한국의 진보를 비판한다>라는 책 그리고 '개혁적 진보의 메아리'라는 블로그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습니다.
하늘이 무심합니다. 냉철한 머리와 따뜻한 가슴을 지닌 한국의 대표적 참여 경제학자, 생의 마지막 시간 이국땅에서 스러지는 몸을 부여 잡은채 한반도 평화통일을 준비했던 우리의 귀한 동시대인, 나의 신실한 오랜 친구, 김 형 아까운 당신을 하늘이 이처럼 일찍 데려가는 까닭을 나는 알 수가 없습니다.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그러나 이제 당신을 놓아 주어야 할 때입니다. 김 형, 비록 당신의 육신은 떠난다해도 당신의 학문적 영혼인 개혁적 진보의 울림은 길이 남을 것입니다. 이승에서 못다 이룬 무거운 짐 모두 내려 놓으시고 부디 환한 빛속에서 편히 쉬소서.
2014년 12월 10일
이병천 강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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