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사건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정부 발표가 나온 지 나흘 뒤인 2010년 5월 24일에 정부는 대북 교류협력을 단절하고 북한을 압박하는 5.24 조치를 발표한다. 무언가 북한에 센 걸 보여주고 싶어하는 국방부는 "미국의 항공모함이 참여한 서해 한미연합해상훈련을 실시한다"며 미 항모의 서해 전개를 요청한다.
그러나 웬걸. 미 측은 "항모 훈련은 1년 스케줄이 이미 다 잡혀있다"며 냉정하게 거절했다. 국방부, 합참, 연합사의 대미 접촉창구가 총동원되어 읍소에 읍소를 거듭했으나 중국의 협력으로 이란 제재 결의안을 유엔 안보리에 회부한 미국은 요지부동이었다. 급기야 6월에 싱가포르를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이 국방장관회담(샹그릴라 회의) 참석차 와 있던 게이츠 미 국방장관을 만나 부탁하였지만 소용없었다.
그런데 7월 23일에 하노이 아세안지역포럼에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남중국해의 영토 분쟁 해결이 지역 안정의 핵심"이라고 언급한 다음 "중국이 이 수역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발언했다. 이에 즉각 중국 관영 매체 <환구시보>가 "미국이 중국의 눈을 찌르려 하고 있다"며 클린턴 장관의 발언을 강력히 규탄하고 나섰다. 중국의 공격적 태도에 화가 난 미국은 8월 5일에 미국은 서해에 항공모함을 보내지 않겠다는 입장을 번복하고 "(한미) 양국군의 해·공군 훈련이 계획 중"이라며 "조지워싱턴호가 서해 훈련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갑자기 미·중 간에 긴장이 고조되자 중국은 한국정부에 "만일 서해에 미 항모가 전개되면 11월 10일로 예정된 서울의 G20 정상회의에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이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통보해 왔다. 이 말에 혼비백산이 된 한국정부는 G20의 성공을 위해 서해에 일체의 해상 군사훈련을 중지하고 미국에 "항공모함을 진입시키지 말아달라"고 거꾸로 요청하기 시작했다.
이에 중국이 9월로 예정된 후진타오 주석의 미국 방문도 취소하고 미국의 훈련에 군사적으로 대응할 뜻을 보이자 워싱턴도 중국과 마찬가지로 충격에 휩싸였다. 미 항모가 이미 서해로 출발한 9월 5일, 어떻게든 항모 진입을 막으려던 우리 정부는 묘안을 생각해냈다. 마침 북상하고 있던 태풍 말로를 핑계로 요코스카에서 출발한 조지워싱턴 항모에 "얼른 돌아가라"고 통보한 것. 그리고 6일부터 예정된 서해 한미연합훈련 자체를 취소시켜 버렸다.
그러나 서해로 온다던 태풍은 제주도에조차 상륙하지 않은 채 남중국해를 거쳐 동해로 빠져나갔다. 하필이면 태풍을 피해 필리핀으로 항로를 바꿔 순항하던 조지워싱턴호는 그 태풍을 고스란히 뒤집어썼다.
한편 필리핀에서는 연거푸 항공모함이 들어오자 그 의도를 두고 정국에 파란이 일었다. "왜 자꾸 미 항모가 들어오냐"는 야당의 추궁에 대통령이 대답을 못해 쩔쩔맸다. 그런데 9월 9일에 제프 모렐 미 국방부 대변인은 연기된 서해 연합훈련이 9월 하순으로 정해졌음을 알리면서 또다시 "조지워싱턴호는 서해에서 다시 훈련에 참가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나섰다. 또 비상이 걸린 한국 정부는 "훈련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항모 진입을 막아섰다. 한미 관계가 거의 파국으로 갈 뻔한 사건은 10월 19일에 일어났다.
이날 오전 10시에 미래기획위원회(위원장 곽승준)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국방산업 G7 발전전략'을 보고하는 자리에 김태영 국방장관 대신 이용걸 차관이 참석했다. 이날 오전 8시 국무회의에 참석했던 김태영 장관이 대통령 보고 행사에 참석하지 않은 것은 그 시간에 게이츠 장관에게서 "항모 조지워싱턴호를 10월 20일에 서해로 들여보내겠다"는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김 장관은 "청와대와 협의해봐야 하니 항모 진입을 보류해 달라"고 말하곤 긴급히 청와대와 이 문제를 협의했다. 11시경에 김 장관은 게이츠에게 전화를 걸어 "10월 20일은 곤란하니 11월 말로 연기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게이츠는 "당신네 청와대가 그런 식이라면 나는 백악관과 협의할 테니 기다려 달라"고 차갑게 응수했다. 더불어 엄청난 외교 전문이 밀려왔다. "언제는 보내 달라던 항모를 보내주는데 왜 거부하냐"는 것이다.
그러더니 오후 2시가 거의 다 되었을 때 게이츠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한국 정부가 하자는 대로 서해 훈련을 11월 말로 연기하겠다"는 통보였다. 국제회의 의장을 맡으면 신이 되는 걸로 아는 이명박 대통령은 어떻게든 중국과 북한을 자극하지 않고 G20 회의를 성사시키는 데 전력을 집중했다. 안보고 뭐고 국방부는 그 의도를 충족하느라고 움직이는 하수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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