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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폭주기관차 '금융', 제동장치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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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폭주기관차 '금융', 제동장치 없나

[작은것이 아름답다] 지속가능한 세상을 이끄는 돈

금융기관은 돈의 운용과 관리를 위임받은 수탁자로서 맡긴 돈을 잘 운용하고 관리할 의무인 '수탁자 책무'를 지고 있다. 금융기관의 수탁자 책무는 이제 재무 성과뿐만 아니라 환경, 사회, 지배구조 같은 비재무 측면도 함께 고려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돈만 잘 버는 곳에 투자하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그 밖의 여건에서 오는 위험까지도 잘 평가하여 투자하라는 것이다.

우리 속담에 '개같이 벌어 정승같이 쓰면 된다'고 했다. 원래는 비천하고 어렵게 번 돈이라도 떳떳하고 보람 있게 써야 한다는 좋은 뜻이다. 하지만 요즘은 '법을 어겨가면서라도 물불 가리지 말고 벌어 떵떵거리며 쓰라'는 나쁜 뜻으로 해석되는 세상이 된 것 같다. 돈 잘 버는 사람들 가운데 법을 어겨 감옥 가는 사람이 익숙할 정도로 많아진 탓이다.

ⓒ연합뉴스

그래도 자기 물건 만들어 팔아 돈 버는 제조업 하는 사람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자기 돈도 아니면서 마치 자기 것인 양 마음대로 써대는 금융업을 보면 울화통이 터진다. 은행이나 보험이나 아니면 새마을금고나 모두 자기 돈으로 장사하는 게 아니다. 그들이 빌려주는 돈의 원래 주인은 예금자나 보험 가입자들이다. 금융기관은 이들의 돈을 운용하여 이익을 남기지만 언젠가는 원래 주인에게 약속한 원금과 이자를 돌려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금융기관은 돈의 운용과 관리를 위임받은 수탁자로서 주인들에게 최대한 이익을 남길 수 있도록 맡긴 돈을 잘 운용하고 관리할 의무를 지고 있다. 이것을 우리는 수탁자 책무(fiduciary duty)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 금융기관들은 수탁자 책무를 별로 의식하지 않는 것 같다. 몇 년 전 있었던 저축은행 사건은 약간의 금리 차를 노리고 돈을 맡긴 예금자들의 재산을 마치 자기 돈인 양 불확실한 프로젝트에 투자해 막대한 손실을 끼쳤다. 은행들도 마찬가지다. 한낱 직원이 수억씩 횡령을 해도 모르고, 주인들의 개인정보가 해킹당해도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우리나라 금융이 이처럼 돈을 가장 많이 버는 사업에 투자하여 최대의 이익을 주인에게 남기라는 책무를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에 반해, 최근 국제 사회에서는 수탁자 책무의 범위가 단순히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 이상으로 확대되고 있다. 돈만 잘 버는 데 투자하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그 밖의 여건에서 오는 위험까지도 잘 평가하여 투자하라는 것이다. 돈 되는 사업이라고 해서 투자했다가 예기치 않은 사건으로 갑자기 망하거나 주가가 폭락해 예기치 않은 손해를 끼치는 일이 자주 생기면서 수탁자 책무의 내용이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2010년 4월 20일 멕시코 만에서 발생한 해상 기름 유출 사고로 원유 67억 톤을 유출한 영국 비피(BP) 사는 사고 뒤 석 달 만에 주가가 48.3퍼센트(%) 하락했다. 1996년 소년 노동을 이용한 축구화 제조 사실이 밝혀진 나이키 사는 자신들의 잘못을 부인하다가 대규모 불매운동을 당해, 결국 1997년 말 주가가 반토막이 되고 영업이익도 지난해 대비 37%나 줄어드는 일을 겪어야 했다.

이보다 더 나쁜 경우도 있다. 미국 엔론(Enron) 사는 1985년 창립해 불과 15년 만에 매출액 1110억 달러를 달성한 가장 촉망받던 에너지 기업이었다. 하지만 2001년 최고 경영자와 회계법인이 공모해 회계 부정을 저지른 사실이 들통 나 이듬해 결국 파산하게 된다. 이 기업들은 모두 돈을 잘 버는 유명한 기업이었지만 환경사고, 인권 침해, 나쁜 지배구조를 이유로 주가가 폭락하거나 파산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투자를 결정하게 하는 금융기관의 수탁자 책무는 이제 재무성과만이 아니라 환경, 사회, 지배구조(Environment, Social, and Governance, ESG) 같은 비재무적인 측면도 함께 고려하는 쪽으로 확대되고 있다. 그리고 이들 ESG 요소를 고려하는 투자를 우리는 사회책임투자(Socially Responsible Investment, SRI)라고 부른다. 아무리 돈을 잘 번다고 해도 환경을 파괴하거나, 인권을 침해하거나, 지배구조가 나쁜 기업이나 사업은 지속적인 투자 수익을 보장하지 않을 위험이 크다는 사실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이다.

이러한 사회 책임투자 규모는 2011년 말 기준 세계에서 13.6조 달러로, 약 1.5경 원에 이른다. 지역별로 보면 유럽이 64.5%, 이어 미국이 27.6%를 차지하고 아시아는 가장 적은 0.65에 그치고 있다. 이들 사회책임투자 자산이 총 운용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미국은 11.2%, 유럽은 48%이고 아시아는 3%가 채 되지 않는 수준이다. 우리나라 사회책임투자 규모는 6~7조 원 수준으로 아직은 걸음마 단계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추세를 반영해 유엔은 2005년 6개 항으로 구성된 이른바 '유엔책임투자원칙'(UN Principles for Responsible Investment, UNPRI)을 발표하고, 금융기관들이 이 원칙에 서명하고 준수할 것을 약속하도록 하고 있다. 현재 총자산 45조 달러를 운용하는 1260개 금융기관이 서명기관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 원칙의 핵심은 금융기간이 수탁자로서 투자 의사를 결정할 때 ESG 요소를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단 투자가 이뤄지면 자동으로 수익이 생기기를 기다릴 게 아니라 투자 대상 기업이 환경 보호, 인권 존중, 지배구조 개선 같은 노력을 하도록 요구하는 '능동적 소유주(active owner)' 역할을 해야 한다.

우리 기업들도 이 능동적 소유주들의 시야를 벗어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면화 캠페인(Cotton Campaign)' 사례를 보자. 현재 이 캠페인에는 우즈베키스탄 정부가 면화를 수확할 때 농부는 물론이고 소년, 학생, 교사에게 강제로 노동할 것을 강요하는 것에 대한 국제 사회 항의로 인권단체, 노동조합, 사회책임투자기관, 기업 조직들이 주로 참여하고 있다.

2007년에 시작된 이 캠페인은 우즈베키스탄의 강제노동을 종식시키기 위해 여러 각도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특히 이 나라 섬유 산업에 30%를 투자하고 있는 대우인터내셔널과 한국조폐공사 같은 한국 기업이 주요 목표가 되고 있다. 이들은 한국 정부에 대해 한국에 본부를 두고 있는 기업이 국제 인권기준을 준수하도록 특별한 노력을 해줄 것을 요구하고, 한국 정부가 나서지 않을 경우 그로 인해 한국은 높은 수준의 위험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들은 실제 서방 기업들에게 대우인터내셔널과 원면 거래를 하지 말라고 요구한다. 영국 대형 유통업체인 테스코(Tesco)를 포함한 150여 기업이 우즈베키스탄에서 생산된 면화를 쓰지 않기로 이미 약속했다.

환경이나 인권 문제를 고려한 금융을 실천하자는 움직임은 은행 업계로도 확산되고 있다. 댐 건설이나 광산 개발 같은 대규모 프로젝트에 자금을 조달하는 대형은행들이 2003년 발표한 '적도원칙(Equator Principles)'이 좋은 본보기이다. 이것은 신용도나 담보 대신 사업계획과 수익성 같은 요소를 보고 자금을 제공하는 프로젝트 파이낸스(Project finance, PF)에 있어 환경과 사회적 위험을 평가, 관리, 감시하는 일련의 정책과 절차로 1000만 달러 넘는 개발 프로젝트가 환경 파괴를 일으키거나 해당 지역 주민들의 인권을 침해할 경우 자금을 대지 않겠다는 금융회사들의 자발적 협약이다.

이 원칙이 나오기 전부터 사실 '열대우림 행동네트워크(Rainforest Action Network, RAN)' 같은 여러 비정부기구들은 개발도상국의 환경을 파괴하는 개발 프로젝트에 돈을 쏟아붓는 씨티은행 같은 대형 은행의 행태에 대한 반대 투쟁을 강화해오고 있었다. 그럼에도 환경과 사회 이슈에 대한 뚜렷한 기준이나 지침이 없어 프로젝트 파이낸싱이 시행착오를 거듭했다고 보고, 개발도상국의 민간부문에 대한 프로젝트 금융과 보증업무를 취급하는 세계은행 그룹의 국제금융공사(IFC)가 대출 시 준수해야 할 환경, 사회적 정책 기준을 정한 것이 바로 적도원칙이다. 적도원칙은 35개 나라 80개 은행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이 세계 프로젝트 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0%가 넘는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 은행 가운데는 아직 참여한 곳이 한 군데도 없어 우물 안 개구리 신세가 되고 있다. 하지만 국내 기업이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하려면 이 원칙에서 정한 원칙과 절차를 엄격히 따르면서 외국 은행에서 융자를 받거나 아니면 국내 은행의 융자에 의존하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럴 경우 국내 자금 조달 금리가 다른 곳에 비해 비싸기 때문에, 그만큼 우리 기업은 불리한 입장에 서게 되는 것이다.

누구나 돈을 벌고자 하고 돈 앞에 약해지기 때문에 금융은 사실상 권력자가 된다. 따라서 남의 돈을 굴리는 금융업은 그 어느 부문보다도 높은 도덕을 요구하는 원칙을 지켜야 하며, 이 세상을 지속가능하고 살기 좋게 만드는 견인차 역할을 해야 한다. 권력을 가진 자는 그 권력을 남이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으로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조만간 권력 자체를 잃게 될 것이다. 자기 돈이건 남의 돈이건 돈을 굴리는 사람들이 명심해야 할 지점이다.

* 월간 <작은것이 아름답다>는 1996년 창간된 우리나라 최초 생태환경문화 월간지입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위한 이야기와 정보를 전합니다. 생태 감성을 깨우는 녹색생활문화운동과 지구의 원시림을 지키는 재생종이운동을 일굽니다. 달마다 '작아의 날'을 정해 즐거운 변화를 만드는 환경운동을 펼칩니다. 자연의 흐름을 담은 우리말 달이름과 우리말을 살려 쓰려 노력합니다. (<작은것이 아름답다>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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