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이라크전과 관련, '리크게이트'라는 사건이 있었다. 미국이 허위사실에 입각해서 이라크 공격을 단행했다고 주장한 조지프 윌슨 전 이라크주재 미국대사에 대해서 2003년 미국 언론은 윌슨 대사가 부인인 CIA 비밀요원을 통해서 정보를 얻었다고 폭로했다. 상식적으로 사건의 본질은 이라크 공격이 허위사실에 입각한 것이냐 아니냐가 되어야 한다.
정윤회 사건과 미국의 리크게이트
하지만 복잡하게 얽히면서 전개된 공방은 결국 CIA 비밀요원의 이름을 공개한 것에 대한 문제로 모아졌다. 미국정부는 조지프 윌슨 전 대사를 궁지로 몰아넣게 위해서 CIA 비밀요원의 이름을 <뉴욕타임스> 기자에게 흘렸다. 그 비밀요원은 윌슨 대사의 부인이었던 것이다.
CIA 비밀요원의 이름을 알린 사람은 당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칼로브 백악관 정치고문이었다. CIA 비밀요원의 이름을 언론에 알릴 경우 연방법 위반으로 최고 10년 형에 처해질 수 있었다. <뉴욕타임스> 기자는 비밀요원의 이름을 알린 것에 대한 책임을 지고 감옥에 갔다. 취재원 보호 차원에서 칼로브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감옥을 선택했다. 언론인은 자신의 임무를 다했으나 미국 정부는 부도덕했다. 칼로브는 조지프 윌슨을 궁지에 몰기 위해 온갖 비열한 수단을 다 동원했던 것이다.
이 리크게이트라는 사건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페어게임>(Fair Game)과 <거짓 혹은 진실>(nothing but truth)이라는 영화이다. 미국 수정헌법 1조가 표현과 언론의 자유이다. 이 조항이야말로 미국을 자유와 민주주의의 대표국가로 만든 조항이다. 그런데 두 영화에서도 진실을 말한 사람들이 감옥에 간다. CIA 요원에 의한 대한 기밀보호는 미국법에서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CIA와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내정자 낙마
박근혜 정부 출범 당시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이 낙마했다. 김 후보자가 해외에서 성공한 비즈니스맨이라, 관료조직에 신선함을 불러 넣어줄 수 있겠다는 기대를 가졌던 국민들도 제법 있었다. 이런 입장에서는 그의 낙마가 좀 아쉬웠을 수 있다. 언론에서는 김 후보자의 낙마를 좀 의외라고 말하기도 하고, 또 미스테리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 후보자의 사퇴는 미스테리가 아니다. 그의 CIA 관련 사실을 가지고 쉽게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다.
김종훈 씨 논란도 이런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 두 영화를 보고 '리크게이트'를 이해한다면 김종훈 씨 사퇴가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는 미국 시민권자이고 CIA와 관련이 있다. 그의 사업으로 볼 때 CIA의 기밀과 관련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그가 어떤 또 다른 CIA와 관련성이 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가정이지만 CIA가 김종훈 씨의 시민권 포기를 받아들이지 않았거나 포기의 대가로 한국의 미래부 장관보다 더 큰 것을 희생으로 요구했을 수 있다. 영화에서는 기자에게 정보 소스를 밝히기 위한 압박수단으로 신문사에 엄청난 벌금을 부과한다. 실제 리크게이트에서도 <뉴욕타임스>에 벌금을 부과했다.
김종훈 씨의 장관 임명으로 생길 수 있는 정보 유출 가능성을 막기 위해 CIA가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다고 본다면 CIA가 전지전능하다고 보는 것과 똑같은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일 게다. 박근혜 정부는 김종훈 후보자의 CIA 관련 사실이 얼마나 민감한 것인지에 대해 아무런 감이 없었다. 이런 사례에서 보수정권의 안보에 대한 무감각과 무능을 엿볼 수 있다.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사건에 대해서 청와대는 문서유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런데 이 사건이 사실이라면 이는 미국 공화당 정권이 리크게이트 사건에서 보여줬던 부도덕한 모습보다도 훨씬 더 심각한 것이다. 권력 암투이기 때문이다.
NLL 허위사실 유포와 '찌라시'
대통령 선거기간 동안 새누리당은 북방한계선(NLL)과 관련해서 온갖 허위 사실을 유포하였다. 안보를 정치에 이용한 것이다.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대통령선거본부장은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읽었다. 국가기밀에 대한 정보를 어디서 얻었냐는 물음에 대해 찌라시에서 본 것이라고 둘러댔다.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 사건 의혹에도 찌라시가 등장한다. 청와대 보고서가 찌라시를 모은 것이라는 게 청와대의 입장이다.
2014년 5월 8일 새누리당의 윤상현 수석부대표는 2012년 대선 기간 동안 그렇게 정치공세를 했던 NLL에 대해서 노 대통령이 NLL을 포기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지금 와서 보면, 야 정말 노무현 대통령이 NLL 포기했냐, 안했냐. (그걸 두고) 여야가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것을 기억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NLL 포기란 말 한 번도 쓴 적 없다. 김정일이 포기란 말을 4번 쓰면서 포기란 단어를 유도했다.
어떻게 일국의 대통령께서 NLL를 포기할 수 있겠나. 국가 최고 통수권자가 어떻게 우리나라 영토를 포기할 수 있었겠나. 그것은 아닐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NLL을 뛰어넘고 남포에 있는 조선협력단지, 한강 허브에 이르는 큰 틀의 경제협력사업이란 큰 꿈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사료된다." (2014.5.8)
윤상현 의원의 말은 마치 대선 때 민주당이 주장했던 것을 반복하고 있는 착각이 들 정도이다. 윤 의원이 뒤늦게 인정한 것처럼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보면 노무현 대통령이 NLL 포기발언을 하지 않은 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오히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포기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 정권은 국가 1급 비밀인 남북 정상회담의 대화록을 공개하였다. 아무리 선거가 급하고 승리에 목말라도 정치지도자라면 국익과 국가기강 유지를 위해 해서는 안 될 일이 있다. 새누리당은 안보를 중요시 여기기보다도 안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데 능숙했다. 허위사실 유포로 국기를 흔들어 놓고 찌라시 핑계를 대는 습관은 비선 실세의 국정개입에 대한 청와대 문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청와대 안보기구 비대화와 공직기강 해이
박근혜 정부 들어와서는 청와대의 외교안보 컨트롤타워가 기형화되었다.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에는 노무현 정부 시대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이명박 정부의 외교안보수석실, 박근혜 정부가 신설한 국가안보실이라는 세 개의 안보부서가 모두 존재하고 있다. 청와대 국가안보 기능이 너무나 복잡하고 비대해져 버렸다. 심플한 조직이라는 튼튼한 안보를 구현하기 위한 기본원칙은 이미 무너졌다. 그 결과는 불행하게도 안보무능으로 이어진다.
2014년 5월 20일 중국어선을 단속하기 위해 NLL을 넘어온 북한 함정에 경고사격을 하였다. 북한이 이에 강력히 반발하면서 우리 함정에 보복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서해는 긴장이 고조되고 분위기는 험악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5월 22일 북한이 우리 함정을 향해 2발의 포를 쐈다는데 그 순간 120억 원을 들여 구입한 대포병레이더인 '아서'가 가동되지 않았다. 국방부는 북한이 어디서 무슨 포를 쏜 지도 모르고 있었다. 이 때문에 북한한테 조롱당하는 꼴이 되어버린 어처구니없는 안보무능상황이 발생했다. 북한은 자신들이 포를 쏘지 않았고, 물제비가 발생한 것을 가지고 "북한이 포를 쏘았다"며 남한이 억지를 부린다고 말했던 것이다.
또 2014년 봄, 추락한 무인기가 발견되자 북한제로 확정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송골매'라는 우리 무인기 전력을 공개해 버렸다. 북한 무인기에 공중이 뚫렸다는 안보무능을 은폐하기 위한 졸속 조치였다. 그리고 나서 송골매는 북한 영공을 침범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는 자가당착적인 변명을 덧붙였다. 부서진 화장실 문 조각을 북한 무인기로 성급히 발표하기도 했다. 82차례 무인기 오인신고가 있었을 때와는 달리 서둘러 발표한 것에는 정치적인 의도가 다분히 있다는 의심을 받았다.
공직기강은 해이해졌다.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에 대한 의혹은 나라를 뒤흔들고 있다. 박근혜 정부 들어와서 인사에 대한 논란이 유난히 심했다. 이 모두 비선의 개입이기 때문이라는 의혹이 늘어나고 있다. 박근혜 정부 들어와서 청와대 국가안보 기구들이 비대해졌지만, 공직기강의 해이, 비선의 인사개입과 국정농단은 기구의 비대화에도 불구하고 국가안보에 무능하게 대응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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