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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 농민은 어떻게 살라고?"

[김성훈 칼럼] 민생 경제와 '3農'의 새 파라다임을 찾아서

이제 한 달이 지나면 갑오년(甲午年)이 가고 을미년(乙未年)이 온다. 그 다음 해는 병신년(丙申年)이다. 을미년엔 쌀 시장이 전면 개방되고 한·중 FTA(자유무역협정)까지 완전히 체결된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 경제영토가 세계의 73퍼센트(%)로 확대됐다는 흰소리가 박근혜 정부 일각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40여 개 나라와 동시다발적으로 FTA를 추진했던 이명박 정권 때의 데쟈뷰(기시감, 旣視感)가 떠오른다.

갑오년의 기시감

새 정부가 들어서도 이태 동안에 벌써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 영연방과 터키, 중국과의 FTA를 타결함에 따라 마치 우리나라 국정운영 주체들이 FTA에 신들린 것 같다. 미국, EU, 중국, 인도 등 세계 최강국들과의 자유무역(관세철폐) 협정이 타결되었으며 금상첨화로 환태평양 12개국과의 동반자 협정(TTP)마저 가입한다면, 대한민국은 실질적으로 세계 최다 FTA 체결 국가로 우뚝 선다. 그만큼 우리 경제가 세계 농업강국들에 완벽하게 포위 예속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농업-농촌-농민' 3농 부문을 이들의 단골 사냥감으로 내주고서도 농업을 가리켜 "미래성장산업"이라 읽는 것이 우리나라 국정운영의 리더십 스타일이다. '창조경제의 문'을 열고 들어가 학습한 결과가 그러하다. 사람을 놓치고 민생을 생략한 것이 창조경제의 허구성이다.

▲ 지난 달 10일 중국 베이징에서 개최된 한·중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한·중 FTA 협상이 실질적으로 타결되었다고 공식 선언했다. ⓒ청와대

그렇다면, 장차 우리나라 민생경제와 농업, 농촌, 농민, 3농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10년 후 2025년쯤엔 식량자급률이 15% 수준이나 유지될까. 60년 후 다시 갑오년 2074년에는 우리 민생의 모습은 어떻게 변해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이 궁금증은 이미 전봉준·손병희 때의 갑오 동학농민혁명 백성들이 즐겨 불렀던 노랫말("가보세(甲午歲), 가보세, 을미적(乙未賊) 을미적 대다가, 병신(丙申)이 되면 못가리")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리고 그 노랫말은 예언대로 이루어졌다. 사대 당쟁과 암우(暗愚)한 지도층, 그리고 외세의 각축으로 민생은 날로 피폐해지고 국력은 쇠약할 대로 쇠약해져, 마침내 500여 년의 조선왕조가 망국의 길로 접어들었다.

동학농민혁명 진압을 구실로 일본, 청국 군대가 한반도에 진주했고 청일전쟁을 일으켜 연달아 노일전쟁까지 승리함으로써 일본제국주의 침략자들은 조선반도를 삼킬 수 있게 되었다. 나라 안에서는 일본제국에 부화뇌동하는 정치집단이 생겨나고, 나라 밖에서는 1905년 6월 일본 총리 가쯔라다로(桂太郞)와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의 특사 W.H. 태프트 미 육군장관 사이에 이른바 '가쯔라-태프트 비밀협약'이 체결됐다. 미국은 필리핀을, 일본은 대한제국을 지배한다는 밀약이었다. 일사천리로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乙巳勒約)이 체결되고, 마침내 1910년 8월 22일 일·한 합병이 이루어졌다. 나라와 백성 할 것 없이 병신(病身)이 돼 버린 것이다. 그런데도 이완용 당시 학무대신(후에 총리) 등 친일파는 "선진국 일본에 합병 귀속되는 것이야말로 국익(國益)에 크게 도움이 된다"라고 역설했다.

역사는 되풀이되는가

불후의 역사학자 토인비는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설파했다. 최근 일본 아베 정권은 미국 케리 국무장관을 만나 대망의 '집단자위권'을 허락받고 일조유사시에 한반도에 진격할 명분을 얻어냈다. 한국은 '전시작전권'을 한사코 더 오래 미군이 맡아달라고 '군사주권(軍事主權)'을 내주었다. 이 와중에 중국은 법을 고쳐서라도 일조유사시에 해외파병을 합법화하려든다. 우리 사회는 바야흐로 정·경·학·문화·생활 전 부문에 대미 일변도의 분위기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이럴 때 만약 우리나라에서 미합중국 국민들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지금 '대한민국(R.O.K.)을 미국의 51번째 주(州)'로 합병하자는 안이 국민투표에 붙여진다면 어떠한 결과가 나올까? 과연 이완용 식 "국익에 큰 도움이 된다"라는 주장을 잠재울 수 있을까? 섣불리 그런 제안(국민투표), 그런 결과를 예단한다는 것은 국가 주권과 애국심에 불타는 대다수 선량한 국민들에게 모욕감만 안긴다.

그러나 연달은 FTA로 인해 우리나라 민생과 3농 부문의 국정 운영이 바야흐로 방향타를 잃고 몰락의 길에 들어서 있어 대한제국 말기 때의 쇠약해진 모습을 노출하고 있음이 정말 안타깝다. 특히 농촌 방방곡곡 도처에 젊은이들은 보이지 않고 노령층과 부녀자들의 한숨소리만 높다. 쌀값과 각종 농산물가격 그리고 농가소득은 1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제자리걸음이다. 농업을 ICT와 연계 복합화하고 스마트화 하자는 사설이 "농업을 직접 챙기겠다"는 말씀의 실체인지, 허약한 농민들을 무한경쟁 속으로 몰아넣는 것이 "농업문제는 시장 경제에 맡길 수 없다"는 후보 시절의 말과 어떻게 다른지 도무지 종을 잡을 수가 없다.

사료곡물을 포함한 식량자급률은 23%대로 떨어졌고 주곡인 쌀의 자급률은 86% 대로 물러났다. 축산업 또한 영연방 국가들과의 FTA 체결로 문자 그대로, 풍전등화(風前燈火) 격이다. 그나마 돈이 되는 식품 제조 가공 무역업은 대부분 대기업 독과점 자본들에 의해 장악되어 식품 제조·가공 산업이 80조 원대로 크게 신장하였다. 소위 국산 식품이 많이 수출될수록 외국 농수산물과 식재료의 수입 물량만 천문학적으로 늘어나는 구조다. 실제 우리나라 농업 농촌 농민의 순(純) 발전과는 완전히 유리된 채 외국의 농부들, 외국의 농업 메이저와 국내 수입·가공·무역업자들만 살찌운다. 그리고 그것을 '창조농업'이라고 읽는다. 예컨대, 쌀 개방에 따라 중국·미국산 수입 쌀로 가공한 떡볶이 기업이 200만 달러를 수출한 것이 이 정권하에선 '창조경제'의 좋은 사례로 거론되고 있다. 라면, 믹스커피, 초코파이, 떡류, 막걸리 등을 수출하는 것과 3농의 민생증진 사이에 희미한 연결고리마저 보이지 않는다.

그리하여 민초들은 묻는다. 정부의 각종 경제정책이 누구를 위하여, 누구의 이익 증대에 보탬이 되는가! 단순히 국민총생산액(GDP)에의 기여도를 높이고 외국산 GMO 식재료를 사용한 식품산업이 우리 농가 소득을 얼마나 높였는가를. 도대체 낙수(trickle-down) 효과라도 일어났는가. '국익'이란 허울뿐이고 농어민들에겐 '그림 속의 떡'이다.

도리어 GNP와 수출액이 높아가는 곳에 민생은 도탄에 빠지고 농촌 경제는 신음하게 된다. 숨 쉴 공기(미세먼지), 마실 물만 탁해지고 국민들이 먹는 음식의 안전성(安全性)이 위협받는 현실이다. 국내 소비자 서민들의 가계와 소득 그리고 식생활의 안전망마저 바람 앞의 등불이다. 대기업, 기득권자들만 잘 살게 하는 정책이 과연 국가 이익이며 미래성장산업이란 말이던가. 민생경제와 삶의 질(quality of life)로 따져 본, 참다운 민생 지표는 마이너스 뒷걸음질을 칠 수밖에 없다. 역사는 과연 되풀이되는가!

달라져야 할 농정기구와 농정 패러다임

이제 새 농정, 새 비전, 새 패러다임이 나와야 한다. 농가 인구는 이제 총인구의 5.7%로 줄어들었고, 농림업 생산액은 국가 총생산액의 2.1%로 추락했는데도 웬 농림축산 관련 행정 및 공적기관은 그렇게도 경직되고 넘쳐 나는가. 쓸데없이 벌리는 전시 위주 사업과 조직분화 그리고 조직 인원은 왜 그렇게 늘어만 나는가. 어차피 우리 농업이 미국 유럽 중국과 하나의 경제 통상권으로 통합돼 가는 마당에, 그들이야 여전히 월급 수당 연금을 챙기겠지만 '농업-농촌-농민' 3농은 명맥이나 유지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이들 농업 관련 기관들을 개편하고 축소하여 절약되는 각종 비용과 예산을 WTO가 허용하는 농가직접지불 방식으로 되돌린다면, 더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시민단체에 의해 신자유주의 경제 횡포의 대안으로 제시되는 "농가 호당 월 50만 원 기본소득안"의 실현이 가능할지 검토해볼 일이다. 그 길이 오히려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구농(救農) 대책일지 모른다. 갈수록 민생과 3농 발전과는 거리가 멀어지진 영혼마저 없는 공직자들에게 국민 세금을 좀먹게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먹혀들고 있다.

국내 농축산업 자급률이 급속도로 줄어들고 수입량이 그 몇 배로 폭주하면서 농촌에 농가와 농민들마저 급속히 줄어 사라지고 있는 마당에 농림축산식품부는 아예 명실상부하게 '농식품'(輸入部)로, 농협은 'NH은행'으로, 그리고 기초 및 도 단위 농업협동조합과 농수산물유통공사는 그냥 개별 회사체제로 전환시키자는 주장이 더 '창조경제'적으로 들린다. 농촌진흥청과 농어촌공사 사업 중에 비(非) 농업, 非 농민, 非 농촌 부문을 과감히 도려내 본래 설립 때의 이름(정명, 正明)에 걸맞는 고유 기능만 남기고 대폭 축소 개편한다면, 비록 고육책이지만 농가 기본소득 재원(財源)을 더 손쉽게 확보할 수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다. 마치 15년 전 IMF 하 농조·농조련·농업진흥공사를 축소 통합해 이 땅에 수세(水稅)를 완전히 폐지하고, 농·축·인삼협 중앙회를 축소 통합해 농업 금리를 대폭 인하했듯이, 현재의 농림축산 식품 관련 모든 공적 조직과 기능을 엄정히 재평가하여 새로이 재단(裁斷)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명실공히 3농 부문의 '창조경제'가 아니겠는가.

동서고금에 농정이란, 본래 현장(local) 중심, 농민 중심 행정이었다. 그러니만치 농림축산 관련 예산과 권한을 대폭 지방자치단체에 이양하여 지역주민의 자치에 맡겨야 옳다. 중앙농정을 축소정비, 절약하여 지역농정에 이양해 농가실질소득을 높이자는 주장은 도리어 WTO(세계무역기구)체제에 부합한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예산과 세원(稅源)을 현재와 같은 8:2 체제에서, 선진국처럼 2:8 체제, 아니면 적어도 5:5 체제로라도 만들어 진정한 지방자치제를 정립하는 것이 더 선진적이다. 이른바 지방분권제 확립이 3농을 살리는 길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지금 미래 성장산업으로 농업을 육성한다는 명목으로 대기업들을 불러들여 기업적 농축산업과 종자사업, 6차 산업마저 맡기려는 기도가 도처에 나타나고 있다. 그럴 바에야, 아예 사람(농민) 중심의 행정과 권한 그리고 예산과 세수(稅收)를 지자체에 넘기고 중앙정부는 기업적 공장식 농축산업과 유통, 식품제조가공업, 특히 수입업무나 관장케 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는 주장에 겸허히 귀를 기울여야 할 때이다. 그리하여 잔류 농민들은 월 기본소득을 보장받으면서 중앙정부의 획일적 농정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사회경제적 협동농업, 즉 진정한 농민협동조합으로 거듭나게 하여야 한다. 깨어 있는 소비자들과의 연대를 통해 직거래, 꾸러미 사업, 로컬푸드, 슬로우푸드, 기타 농외소득 사업으로 3농을 자생케 하는 것이 선진국 형 창조 농정의 바람직한 모양새다.

▲ 11월 20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은행 앞에서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농민단체 회원들이 쌀값 안정과 한·중 FTA 중단 등을 촉구하며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땅에 농부·서민으로 태어나서

그동안 대외경제정책연구원과 정부의 발표대로라면 45여 개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과 최근의 대형 FTA 타결로 순(純) 국민총생산액은 추가적으로 매년 3~4%씩 늘고 순수출액도 크게 늘었어야 했는데 웬일인지 GDP나 수출액 증가는 FTA 하기 전보다 더 더디고 수입량만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경제영토가 73%로 더 늘어난 것이 아니고 도리어 수입 영향이 92% 이상 확대돼 농촌 경제의 파탄부터 불러들이고 있다.

그 결과가 다름 아닌 안전성이 결여된 수입 농산 식품의 홍수 범람이며, 농촌 경제 침체, 서민 경제 악화이다. 순풍순우(淳風淳雨)하여 고추·마늘·양파·배추 농사를 잘 지어봤자, 뭐하겠는가. FTA가 아직 체결되지 않았는데도 중국산 김치가 20여만 톤이나 수입돼 관련 농산물가격이 풍비박산 2년 째 반 토막이다. 이제 FTA 좀비들이 판치는 완전 수입 개방 세상이 되면 농민들에겐 뭐 하나 돈 되는 것이 남아 있을 리 없다. 아직 한중 FTA가 국회비준도 되지 않았는데 지레 올해의 가을 쌀값과 농산물가격들은 꽁꽁 얼어붙어 우수수 떨어지고 있다. 심지어 고사리, 도라지, 더덕, 약초 농사마저 흔들흔들 추락직전이다. 현행 40% 관세 하에서도 외국산 쇠고기와 돼지고기, 낙농제품들이 이미 시장의 과반을 점령했는데 이제 영연방국가들과 FTA가 발효되면 우리나라 농축 산업은 사라질 날만 카운트다운 해야 한다. "뭐 돈 되는 것 없소?" "해 볼만한 품목은 뭐가 남았소?" 농부들은 산과 내와 들에서 서로 묻고들 있다. 이 시대, 이 땅에 농부 서민으로 태어나서 요즘처럼 무기력하고 무위무능한 무(無)존재의 신세가 된 적이 또 언제 있었던가! 농민들은 차라리 '자조, 자립, 협동'의 새마을 깃발아래 "우리도 이제 잘 살아보세"라고 아침마다 곡괭이 들고 들과 밭에 나가 노래 부르던 박정희 시대가 그립다. 그 영애의 시절이 왔는데 봄볕은커녕 엄동설한이 1년 열두 달 365일인가!

"을미적 을미적 대다가는 병신된다"하더니 2015~6년 을미·병신년이 오기도 전에 밤 보따리를 싸야 하나? 아니, 싸야할 보따리도 없는 고령층·부녀자 3농은 송두리째 밀려나야 하나? 농업이 미래 첨단 기술 집약 산업이라고 국내 농업과 유리된 농산물 수출 100억 달러 달성을 위해 정부는 대기업을 불러들여 정부 보유의 쌀, 보리, 콩 등 곡물 종자 사업마저 GMO(유전자조작 생물체)로 만들어 황금 종자 사업이라며 널리 퍼뜨린다면, 그것이야말로 3농을 더 빨리 망하게 하는 지름길이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의 '농(農)'자 붙인 좀비족들은 행여나 하고 개방찬가를 읊조리며 정부와 국회, 기업 주변 언저리를 어정대고 있다. 가련할 손, 농투성이 농민들일랑은 태평가나 부르며 텅 빈 가슴을 달래야 할까 보다.

"이 풍진 세상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네 마음이 족할까…."

* 필자주 : 이 글의 주요내용은 <한국농어민신문> 2일 자 '農薰칼럼'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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