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깨달았습니다. 기업은 사람의 안전을 먼저 생각하고 이윤을 추구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단원고 고(故) 김아라 학생의 아버지는 딸의 영정 밑에 고이 둔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아버지는 누구를 향해 편지를 썼을까? 나는 편지의 수신자는 'IMF' 17년차를 사는 지금의 한국인이라고 생각한다.
'IMF 사태'는 끝나지 않았다. 현재 진행형이다. 비정규직이 800만 명이다. 세월호의 선장과 선원들도 비정규직이었다.
IMF 사태는 무엇이었나? 1997년의 사태가 일어나기 2년 전인 1995년에 한국은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넘었다. 1977년의 서독이 그러했듯이 이 시기는 한국이 '숙련경제'로 도약해야 하는 때였다.
숙련경제는 인권경제이다. 사업장의 의사결정에서 배제되고, 저숙련 단순 작업을 반복하는 근로자가 혁신을 만들 수 없다. 인권은 경제에서도 핵심 가치이다.
숙련경제는 과거 제조업 전성 시대의 옛 노래가 아니다. 2007년의 독일을 보자. 정보기술(IT), 컨설팅, 연구 개발, 금융 등 숙련 서비스업에 약 680만 명이 취업했다. 베르너 아이호스트의 논문에 의하면 이는 1991년의 370만 명 취업자보다 크게 늘어난 일자리이다. 중국이라는 강력한 저임금 국가의 대두와 세계화 속에서도 숙련 경제는 성장할 수 있다.
숙련경제와 인권경제는 인적 자원의 나라인 한국에게는 운명과도 같은 길이다. 국민소득 1만달러를 돌파할 1995년 당시, 한국은 숙련경제 도약의 조건을 차츰 갖추고 있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1996년까지 해마다 평균 9%의 임금 인상이 있었다. 이를 근거로 하여 상당한 내수 시장이 형성되었다.
그러나 1997년의 'IMF 사태'는 한국이 숙련경제로 도약할 사다리를 걷어 차 버렸다. 강만수 당시 차관의 책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을 보면, IMF는 달러를 꾸어 주는 대신 그 조건으로 '사전 조치 사항'과 양해각서를 요구했다. 나는 그 가운데 다음의 세 가지에 주목한다. 첫째 외국인의 주식 소유 한도를 26%에서 55%로 올릴 것, 둘째 외국 금융기관이 국내 금융기관을 합병 인수하는 것을 허용할 것, 셋째 정리해고를 쉽게 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과연 이 조치는 한국 경제를 위한 것인가? IMF는 외국인 주주의 이익 극대화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경제를 만들었다. 잘못된 처방이었다. 투자 이익을 가능한 빨리 그리고 많이 회수하려는 주주 자본주의에서 근로자에게 숙련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주 관심사가 아니다.
모든 것이 IMF 때문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IMF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 한국은 IMF 사태 후 17년이 지나도록 숙련경제로 도약하지 못했다. 나는 그 근본 원인은 승자 독식의 대결적 양당제를 극복하지 못한 데에 있다고 생각한다. 1986년 6월 항쟁 이후 전국 방방곡곡의 사업장에서 노동자들은 자주적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숙련경제의 한 축이 성장하였다. 그러나 대결적 정치는 이 싹을 키우지 못했다. 마구 짓밟거나 동원했다.
숙련경제를 만들려면 합의의 정치, 숙련 정치가 필요하다. 정체성이 명확한 정당이 존재하고, 정당은 국민의 정치적 의견에 정확히 비례한 국회 의석을 안정적으로 가지면서 국민을 대표할 수 있어야 한다. 이 틀이 있어야 숙련 경제의 한 축인 노동자의 요구를 안정적으로 대표할 수 있다. 그래야 분단체제 속에서도 주주 자본주의를 숙련경제로 바꿀 수 있다.
단원고 학생의 아버지가 슬픔 끝에 건져 올린 염원은 기업은 사람의 안전을 먼저 생각하고 이윤을 추구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희망은 온 국민이 함께 바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룰 수 있는 꿈이다. 국민의 꿈을 정치가 현실로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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