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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의 '그늘', 경제적 최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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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의 '그늘', 경제적 최약자

[이정전 칼럼] 경제정의와 FTA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 가장 큰 선거공약이었던 경제민주화의 핵심은 경제정의였다.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 국내에 소개된 이래 부쩍 큰 관심을 끌고 있는 소득분배의 불평등 역시 경제정의의 핵심을 이루는 문제다. 얼마 전 한‧중FTA(자유무역협정)가 실질적으로 타결되었다는 발표가 있었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을 1% 증가시킬 것이라는 주장이 정부 쪽에서 흘러나오면서 앞으로 예상되는 산업별 득과 실의 계산에 온통 관심이 쏠려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소득분배의 불평등 문제가 심각하고 사회정의가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에서 정의의 차원에서 한‧중FTA를 짚어보는 노력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과연 정의의 차원에서 한‧중FTA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정의라고 하면 으레 미국의 철학자인 롤즈(John Rawls)의 『정의론』을 떠올리게 된다. 서구사회에서는 그리스의 철인, 플라톤이 정의에 대한 이론을 제시한 이래 매우 오랫동안 정의에 대한 학술적 관심이나 연구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냥 성경말씀을 잘 따르는 것이 곧 정의라는 단순한 생각이 서구사회를 오랫동안 지배해왔기 때문이다. 롤즈의 『정의론』은 종교의 지배에서 벗어난 현대 서구사회에서 정의에 관한 관심과 연구에 다시금 불을 지핀 획기적 업적으로 꼽힌다. 잘 알려진 대로 이 명저에서 롤즈는 정의에 관한 세 가지 원칙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소득분배의 불평등 문제에 관한 원칙이다.

롤즈는 자본주의 시장에서 결정되는 소득이 사회적 협동의 결과임을 강조한다. 생산에 참여한 사람들 각각이 아무리 똘똘하고 부지런한들 이들이 서로 잘 협동하지 않는다면 높은 성과를 올릴 수 없고 따라서 높은 소득을 올릴 수도 없다. 허나, 다수의 사람들이 일정기간 동안 협동해서 창출한 소득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는 매우 중요하면서도 또한 매우 풀기 어려운 문제다. 물론, 경제학자들은 이 문제를 시장에 맡겨두면 자동적으로 해결된다고 주장한다.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결정된 소득은 생산에 기여한 정도를 잘 반영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이나 믿음은 그 시장이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완전경쟁시장임을 전제한다. 그러나 현실의 시장은 그런 교과서의 시장과는 거리가 멀뿐만 아니라 날이 갈수록 멀어지고 있다.

시장에서는 생산성이 높은 사람에게는 높은 소득이 배당되고 생산성이 낮은 사람에게는 낮은 소득이 배당된다. 그러다 보면 자연히 소득이 불평등하게 분배된다. 롤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근로의욕을 높이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소득분배의 불평등이 필요하다는 점을 십분 인정한다. 문제는, 소득분배를 시장에 맡기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빈부격차가 점점 더 벌어진다는 것이다. 이것이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나라에서나 선진국에서 실제로 목격되는 현상이다. 사회가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 소득분배의 불평등이 심해지면 사람들 사이의 신뢰와 협동이 무너지면서 생산성도 전반적으로 떨어지고 사회가 활기를 잃게 된다. 지금 우리 사회가 이런 꼴을 당하고 있다.

요컨대, 경제적 인센티브를 살리기 위해서 소득분배의 불평등이 어느 정도 불가피한 면이 있지만 그렇다고 불평등을 너무 방치하면 사회의 안위 그 자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소득분배에 관한 정의의 문제는 그 불평등을 어느 정도까지 허용할 것인가로 요약된다. 롤즈는 소득분배의 불평등을 허용하되 사회의 최약자에게도 이익이 되는 불평등만을 허용하자고 주장한다. 이 원칙을 흔히 ‘최약자 보호의 원칙’ 혹은 ‘차등의 원칙’이라고 부른다.

이 원칙은 소득에 관한 한 정부의 모든 정책이 사회적 최약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최우선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과거 우리 사회를 여러 차례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자유무역협정(FTA)을 예로 들어보자. 이것이 늘 격렬한 사회적 저항을 받았던 한 가지 큰 이유는 특정 부문이 큰 이익을 얻는 반면 다른 부문이 큰 타격을 입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통상 최약자 계층이 큰 타격을 입는다. 예를 들어서 자유무역협정 체결의 결과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상황이 예상된다고 하자.

협정 체결 이전: 총 150억 원어치의 소득이 창출, 최약자에게 2억 원어치의 소득 발생
협정 체결 이후: 총 200억 원어치의 소득이 창출, 최약자에게 5억 원 어치의 손실
창출되는 총소득의 규모면에서는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는 것이 더 바람직해 보인다. 따라서 경제학자들은 협정의 체결을 적극 추천할 것이다. 이들은 총량만 생각할 뿐 누가 얼마나 이익과 손해를 보는지는 고려하지 않는다. 하지만, 최약자 보호의 원칙에 의거해서 판단한다면, 자유무역협정 체결이 사회 최약자 계층에 미치는 효과를 보아야 한다. 두 가지 상황 중에서 사회적 최약자에게 더 큰 이익을 주는 상황은 협정을 체결하지 않는 상황이다. 그러므로 롤즈의 정의의 원칙에 의하면, 협정을 체결하지 않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협정 체결을 강행하려 한다면, 큰 명분이 있어야 한다. 경제학자들은 최대 수혜 부문에 떨어진 소득이 결국 사회적 최약자에게 흘러들어가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낙수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허나, 지난 십여 년 동안에 우리 사회에서 낙수효과는 거의 없어졌다는 것이 중론이다. 만일 낙수효과가 있었다면 소득불평등이 이렇게 심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경제학자들이 제기하는 또 하나의 대안은 최대 수혜 부문에 귀속되는 소득의 일부를 환수해서 최약자에게 나누어준다는 것이다. 위의 가상적 예에서 자유무역으로 창출되는 총 200억 원의 소득 중에서 최소한 7억 원을 사회적 최약자에게 재분배한다는 것이다. 만일 7억 원이 재분배된다면, 사회적 최약자의 입장에서 볼 때 협정이 체결되는 상황과 체결되지 않는 상황(현 상황)은 동등하다. 따라서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 실제로 정부는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저항이 일어날 때마다 사후적으로 이익의 재분배를 약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무역협정 때마다 반대운동이 끊이지 않는 한 가지 이유는 배달사고라든가 행정상의 어려움 탓으로 이익의 재분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어떻든, 이번 한‧중FTA의 경우에도 총량이나 산업 부문별 득과 실의 계산에만 관심을 쏟지 말고 이것이 우리 사회의 최약자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악영향이 있다면 이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를 최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정의가 요구하는 사항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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