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각국의 독립영화와 독립다큐멘터리가 소개된다. 올 10월에도 중국 독립다큐멘터리 <목화와 청바지>(저우하오, 周浩) 등이 상영되었다. 다른 영화관에 비해 다소 썰렁하긴 했지만 그런대로 일부 영화평론가와 관객이 있기에 해마다 만날 기회를 가질 수 있고, 이는 일부 중국 독립다큐멘터리가 해외기금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고 해외유수영화제에서도 많은 수상작을 낼 수 있는 기반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와는 달리 중국 내부에서는 다소 분위기가 냉랭하다.
1990년대 말 이후 중국에는 민영자본이 투입되면서 독립다큐멘터리는 일부 개인 기금조직이나 민영문화공사의 지원을 받기도 하고, 상영장소도 살롱이나 학교에서 벗어나 미술관, 도서관 등 공공장소에서 이루어지며, 순회공연과 영상전 등을 통해 기획·전파되고 있다.
이렇듯 전반적인 환경이 나아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독립다큐멘터리의 시장성과 전파경로는 열악한 편이며, 관객 역시 일부 유관 전공자와 화이트칼라나 도시의 소지식인들이다. 특히 사회적으로 저소득층의 문제를 다룬 작품은 더욱 전파 경로가 열악해, 이들의 서사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사회적 관심사로 확대되지 못하는 근본적인 원인중의 하나가 배급·유통 문제이기도 하다.
중국 독립다큐멘터리의 시작은 1980년대 말 일련의 정치, 사회적 사건과 연관한다. 당시 일부 문화예술계에서는 권력중심의 이데올로기 틀에서 벗어나 비주류의 목소리를 귀 기울이기 시작하면서 독립다큐멘터리는 '주류 이데올로기문화에 대한 또 다른 방식의 돌파구'로 간주되었다. 사회주의 '계몽과 선전'으로 기능했던 주류 체제의 다큐멘터리와는 구별되는 소외된 주변인들의 일상생활을 렌즈에 기록하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독립다큐멘터리는 체제 자본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인 예산으로 감독의 창작의도에 따라 문제의식을 '독립'적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의도적으로 주류 담론에 대립하고 저항한다기보다는 자신들의 독립적인 관찰과 사고를 견지하면서 중국의 현실을 기록하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들의 시선은 체제와 권력으로부터 멀어진 저층인들의 삶으로 향했고, 이로 인해 1990년대 이후 중국의 현대화 과정에서 출현한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자원을 지니지 못한 약세집단은 점차 중국 사회의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었다.
푸단(復旦)대학 뤼신위(呂新雨) 교수는 이 시기의 다큐멘터리 창작경향을 '신 다큐멘터리운동'이라 부른다. 신 다큐멘터리운동은 1980년대 말 정치적 사건과 1990년대 경제개혁 등의 역사적 내인과 함께 서방의 프레드릭 와이즈먼(Frederick Wiseman), 오자와신스케(小川紳介) 등의 영향으로 추동되었다. '신' 자를 덧붙인 이유는 공리적 목적으로 제작된 '국가 이데올로기 색채를 띤 선전용 다큐멘터리에 대한 상대적인 표현'이며, 그들이 추구하는 '독립정신'은 창작이념과 내용 면에서 외부 체제로부터 구속을 받지 않고 비교적 자유롭게 표현하려는 것이다.
독립다큐멘터리의 제작방식과 창작이념 및 현실제재를 잘 반영한 대표적인 작품 중의 하나가 <점>(算命, 2009년)이다. 쉬통(徐童)의 '유민삼부곡'(游民三部曲)(<수확>(麥收), <탕 노인의 삶>(老唐頭)) 중 한 편이다. 이 작품은 중국의 대표적인 3대 민간영상전 '중국독립영상연도전'(中國獨立影像年度展, CIFF), '중국다큐멘터리교류주'(中國紀錄片交流周), '윈즈난다큐멘터리영상전'(雲之南紀錄片影像展) 및 해외영화제에서 여러 차례 수상한 바 있다.
마른 체구에 절름발이 점쟁이 리바이청(歷百程)은 마흔이 넘도록 혼자 지내다가 정신지체에다 귀머거리에 벙어리인 스전주(石珍珠)를 110위안을 주고 데려와 점쟁이로 생계를 유지하며 산다. 그의 점집으로 찾아온 거칠고 기가 세 보이는 탕샤오옌(唐小雁)은 고독한 운명을 타고났다는 리바이청의 점괘에 따라 이름의 끝 자를 12획으로 바꾼다. 사실 그녀의 현실은 혹독했다. 과거 성폭행 당한 음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관련 업종인 '시터우팡'(洗頭房, 안마나 발마사지를 하지만 퇴폐영업도 함)을 운영한다. 태생적 운명이든 현실 속 운명이든 그녀의 삶의 상처는 봉합되지 않은 채 참담한 운명으로 이어진다. 이 외에도 감옥에 갇힌 남편을 빼내려고 안마소에서 몸을 팔며 살아가는 롱샤오윈(龍小雲)의 고단한 삶도 담고 있다.
이밖에도 왕빙(王兵)의 <톄시취>(鐵西區, 2003년)는 중국의 장편대서사 다큐멘터리이다. 20년에 걸친 시장경제의 '대가'를 치르면서 추락하기 시작한 중국의 공업도시 톄시취의 역사적 몰락과 그 속에서 삶을 터전을 잃은 저층 노동자의 삶을 질감 있게 잘 표현한 작품이다. 두하이빈(杜海濱)의 <기차길 옆>(鐵路沿線, 2001년)은 산시(陝西)성 바오지(寶鷄)현 철도 주변에서 쓰레기를 줍고 절도를 하면서 살아가는 버려진 어린아이들의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판리신(范立欣)의 <귀로열차>(歸途列車, 2010년)는 광저우 방직공장에서 일하면서 살아가는 농민공 장창화(張昌華)의 가정현실을 담고 있다.
이러한 다큐멘터리 속 인물들은 사회 속에서 배제되어왔거나 자신의 삶을 변화시킬 사회적 자원을 지니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로서 그들의 삶은 일종의 사회문제이기도 하다. 물론 독립다큐멘터리 한 편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도리어 중국 내부에서는 독립다큐멘터리가 지나치게 저층인들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개인적인 서사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언제까지 저층인은 문학예술의 제재로만 쓰이면서 문화식민으로 살아야 하는가"라는 차이상(蔡翔)의 말에 대한 고민이 한 번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사실 다큐멘터리는 일종의 현실기억을 기록하는 영상의 역사이다. 기억은 인간의 실천의 누적이고 사고의 누적이며 문화의 누적이다. 이런 면에서 저층서사를 다룬 다큐멘터리는 현대 중국의 문제점들을 영상으로 기록한 '문헌역사'라고 할 수 있으며, 실제로 근 20년간 중국 저층인의 사회사와 정신사를 구축해 오고 있다.
이처럼 독립다큐멘터리는 국가·역사와 같은 거대 논리와 문화체계에 가려진 한 사람 또는 한 집단들의 현실적 생존형태를 기록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현실은 종종 배제되거나 묻혀왔다. 현대화 과정에서 파생된 그들의 삶과 사회에 대한 관찰과 반성이 없다면 사회를 향한 그들의 '작은 목소리'는 계속 묻히게 될 것이다.
저층은 사회의 그늘진 변두리에 존재하며 독립다큐멘터리 감독 역시 지식계의 '변두리'에 서있다. 변두리는 또 다른 세계로 연결되는 경계이자 가교의 지점이다. 물론 독립다큐멘터리가 중국의 저층문제를 해결할 수도 그리고 감독 역시 사회적 계몽의식으로 작업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잠겨있던 저층인의 삶과 그들이 안고 있는 사회문제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볼 때, 다큐멘터리는 중국의 '현실을 담는 그릇'이자 미약하나마 '새로운 변화의 가교'로서 작용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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