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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뜸 뜨고 피 뽑고…세다고 다 좋은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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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뜸 뜨고 피 뽑고…세다고 다 좋은 건 아니다"

[김형찬의 동네 한의학] 뜸과 사혈요법에 대하여

"오늘도 허리가 아파서 오셨어요?"
"시골에서 마늘을 좀 보내와서 깠더니 허리가 끊어질 것 같네."

일주일에 한번쯤은 허리가 아프다고 오시는 단골환자 분인데, 이번에는 시골에서 농사짓는 동생이 마늘을 보내와서 그것을 정리하시다 탈이 나신 모양입니다. 허리 관절을 다스리는 자리에 침을 놓고 근육을 풀어 드렸더니 좀 가볍다 하십니다. 그런데 이 분을 치료할 때면 늘 허리에 남아있는 뜸 자국이 눈에 띱니다. 젊어서 일을 무리하게 하다가 허리를 다쳤는데 그 때 동네에 있는 사람이 뜸을 떠줬답니다. 안 뜨거웠냐고 물으면 "살이 타는데 안 뜨겁겠어? 아파 죽겠으니까 참고 뜬 거지"라고 대답하시지요. 환자분들을 치료하다 보면 이 분처럼 허리와 무릎 같은 관절부위에 뜸자국이 있는 분들을 심심찮게 보게 됩니다. 최근에는 뜸을 이용한 건강법이 유행하면서 젊은 분들 중에도 팔과 다리 그리고 등에 뜸자국이 있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물어보면 다들 몸에 좋다니까 떴다고들 하는데 이런 분들을 보면 조금 걱정이 됩니다.

뜸을 뜨는 방법은 뜸쑥과 피부 사이에 물체를 두거나 기구를 이용해 공간을 두고 쑥이 타면서 발생하는 열기를 전달하는 방법과, 쑥을 말아서 살 위에 직접 올려놓고 불을 붙여서 뜨는 방법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전자의 방법은 열기에 따라 적절히 조절하면서 뜰 수 있기 때문에 화상을 입지 않지만, 후자의 방법은 쑥이 타면서 화상을 입기 때문에 반복적으로 뜨면 그 흉터가 평생 남게 됩니다. 병을 고치고 건강하게 사는데 도움이 된다면 작은 흉터 정도야 감당할 수 있다고 할 수도 있지만 이게 그렇게 간단치가 않습니다.

뜸은 침을 놓는 것과 마찬가지로 특정한 치료작용을 가지고 있는 혈자리에 뜹니다. 혈(穴)은 경락을 따라 흐르는 기혈의 흐름을 조절하는 역할을 하는데 자리마다 다른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유하자면 경락이 강물이라면 혈은 강물의 수량과 그 방향을 조절하는 수문의 역할을 합니다. 우리 몸에 이상이 생겼을 때 이 수문들을 조절해서 다시 제 기능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피부에 직접 뜸을 떠서 그 자리에 흉이 지면 조절기능 을 일부 상실하게 됩니다. 마치 수문에 녹이 슬어서 잘 열고 닫히지 않게 되는 것처럼 말이죠. 이렇게 되면 같은 병이 오더라도 치료하는데 애를 먹게 됩니다. 실제 진료를 해보면 앞서 이야기한 환자분과 같은 경우 비슷한 상황의 다른 분들에 비해서 좋아지는데 더 많은 시간이 걸리거나 증상이 만성화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사고나 수술 등을 통해 큰 흉터가 남은 분들에게서도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치료법을 쓰면 안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꼭 필요한 경우에 한정해서 써야 한다는 것이지요. 우리 몸이 가지고 있는 본래 기능을 일부 상실하는 것을 감수해도 좋을 만큼 병이 중하거나 위급한 경우에 한해서 말입니다. 하지만 단지 건강증진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이러한 방법으로 뜸을 뜬다면 도리어 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필요한 자리에 뜸의 기운을 간접적으로 전달해도 충분한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뜸은 침을 놓는 것과 마찬가지로 특정한 치료작용을 가지고 있는 혈자리에 뜹니다. ⓒ연합뉴스


강한 치료법에 대한 선호는 다른 방식으로도 나타납니다. 환자분들 중에는 어디가 아프기만 하면 그 자리에서 피를 빼달라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몸의 상태가 좋지 않거나 그럴 필요까지 없다고 판단되어 다른 방식으로 치료를 해드리면 약간의 불만족스러움을 표현하시지요. 그런 분들 중에는 다음에 내원하셨을 때 피를 뺀 흔적을 훈장처럼 달고 오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사혈요법은 세계의 거의 모든 문명권에서 이용되었던 방법으로 작은 혈관을 잘라서 문제가 있는 부위에서 피를 빼내거나 거머리나 부항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 치료원리는 나쁜 피를 제거해서 체액을 정화하고 몸의 균형을 회복하게 한다는 것이지요. 현재도 타박상으로 멍이 들거나 체액의 순환이 과도하게 정체되고 어혈이 있을 때 선별적으로 이용하면 효과적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너무 자주 그리고 과도하게 이용된다는 것입니다.

▲김형찬 다연한의원 원장. ⓒ프레시안
사혈을 과하게 할 경우 생기는 문제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혈액이 빠져 나올 때 우리 몸의 기운도 함께 소모되어 몸에 부담이 된다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와 노인들에게 사혈을 금하거나 신중을 기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지요. 다른 하나는 같은 자리에 반복적으로 사혈을 할 경우 그 자리의 피부가 손상되고 병이 만성화 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피를 자주 뺀다는 환자들을 보면 피를 뺀 자리의 피부의 색이 어둡고 생기를 잃고 딱딱하게 굳어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형태는 다르지만 살 위에 직접 뜸을 떠서 흉터가 생긴 것과 같은 상태입니다. 이러한 상태가 되면 그 부분에 만성적인 불편함이 생기게 되고 다른 방법으로는 잘 풀리지 않으니 또 피를 빼게 되는 악순환을 되풀이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점점 더 병은 깊어지게 되지요. 이런 경우에는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몸에 부담이 되지 않는 부드러운 방식으로 문제가 된 부분을 풀어내고, 우리 몸이 스스로 회복하려는 힘을 북돋아 줘야 합니다. 과도한 사혈요법은 잠깐의 시원함은 줄 수 있지만 더 큰 갈증을 가져오는 탄산음료와 같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 폐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강한 치료법들이 자주 쓰이고 선호되는 것은 왜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빨리 낫기를 바라는 환자의 심리와 자극이 강할수록 치료가 잘 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강한 치료법일수록 우리 몸이 그것을 받아들이는데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소 잡는 칼로 닭을 잡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아마도 그 닭은 먹을 수 없을 지경이 될 것입니다. 치료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병의 원인을 찾아 이를 해결하고 내 몸이 충분히 감당할 만한 치료를 통해 건강을 회복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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