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말을 듣는 등 비인격적 대우를 받아오다 분신해 사망한 경비 노동자 고(故) 이만수(53) 씨의 노제가 11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 신현대아파트에서 치러졌다.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와 유족들은 이날 오전 8시 한양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을 마치고, 9시께 서울 중구 정동 대한문 앞에서 영결식을 한 뒤 11시께 압구정 신현대아파트에서 노제를 치렀다.
고인의 운구차가 아파트 단지 내로 들어오자 유족들은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상복을 입은 동료들도 침통한 표정으로 자리를 지켰다. 고인의 추모곡을 부른 가수 지민주 씨는 "아파트에 주차된 고급 차들이 많이 보였는데, 고인이 평생 타지 못했을 가장 비싸고 큰 차를 죽어서야 타는 게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박문순 서울일반노조 사무처장은 "분신 이후 1~2주일 정도 정신이 있는 상태에서 고인이 간간이 말을 했는데, 가해자가 그날(고인이 분신한 날) '병X 같은 놈'이라고 말했다더라"라며 "그런 폭언이 나오기 전에 고인이 어떤 모멸적인 상황에 있었을지는 안 봐도 뻔하다"고 말했다.
박 사무처장은 "가해자가 5층에서 일상적으로 받아먹으라면서 떡을 집어 던질 수 있었던 것은 '저 사람은 내 아랫사람'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며 "고인은 던진 음식을 먹지 않으면 왜 안 먹느냐고 하실 것 같아서 (가해 입주민이) 보는 앞에서 맛있게 먹었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모멸적인 경험을 한 것은 이 씨뿐만이 아니었다. 현장에서 일하던 한 경비 노동자 김정훈(가명·60) 씨는 "입주민들 대부분은 좋은 사람들이지만, 한 동에 꼭 한 명씩은 괴롭히는 분들이 있다"라며 "유통기한 지난 음식을 주는 경우는 허다하고, 심지어 현관문을 열 때 쳐다봤다고 뭐라고 하는 분도 있다"고 말했다.
김인준 압구정 신현대아파트 경비 노동자 현장 대표는 "이만수 동료께 뭐라 사죄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 장지까지 잘 모시겠다"며 "나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노제를 지키던 고인의 동료들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혓되이 보내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하고 고인의 영정에 국화를 헌화했다.
추도사가 끝난 뒤 유족의 손에 들린 이 씨의 영정은 고인이 생전에 일하던 103동 경비 초소 의자 위에 잠시 머물렀다. 동료들은 "경비 노동자도 인간이다", "경비 노동자 고용안정", "비정규직 철폐" 등의 문구가 적힌 만장을 들고 그 뒤를 따랐다.
일터에 잠시 머물렀던 고인의 영정은 낮 12시께 아파트를 떠났다. 유족들은 고인을 원지동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한 뒤, 이날 오후 4시 30분께 마석 모란공원에 안치할 예정이다.
장례를 치른 뒤에도 동료들에게 과제는 남는다. 앞서 서울일반노조 압구정 신현대아파트분회는 노제가 치러지기 전날인 10일 '고용 승계', '정년 65세 연장', '재발 방지 대책' 등을 요구하며 입주자 대표와 교섭을 벌였지만 교섭은 이날 밤 10시께 결렬됐다.
박문순 사무처장은 "입주자 대표를 만나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자고 요구했지만, 용역회사를 자른다는 답이 왔다"며 "이 때문에 압구정 신현대아파트에서 일하는 경비 노동자들은 자신도 해고될까 두려움에 떨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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