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인데 좀 쉬셨습니까"
"주말이 어딨습니까. 방금 전까지도 일하다 왔는데…."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조합원 이태진(가명) 씨는 일요일이었던 지난 9일에도 저녁 식사 전까지 일을 했다. 숨 가쁘게 돌아가는 국회에서 일하는 그에게 오롯한 일요일은 좀처럼 보장되지 않는다. 밥 먹듯 야근하고, 때로는 밤을 새워 일하기도 하지만 그는 언제든 잘려나갈 수 있는 비정규직이다. 그래도 참고 버틴다. 그는 국회의원 보좌관이니까.
지난 5일 <프레시안>은 전·현직 보좌관들이 출연한 <이철희의 이쑤시개>를 보도했다. (☞ 관련 기사 : 보좌관 '월급 갈취'에 '개털 깎기' 심부름까지?) 갑 중의 갑, 국회의원 등 뒤에서 일하는 보좌진들의 서글픈 사연은 때로는 상상 가능 범위를 넘어선다. 겉보기엔 교양 있고 우아한 '의원님'이지만, 그 밑에서 일하는 부하 직원들로선 '말 안 통하는 꼰대 영감'에 그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 씨를 만나 좀 더 자세한 의원님들 '백태'를 들어봤다. "이런 건 술 안 마시고는 말 못 하지"하며 소주를 따르는 그는 "우리 의원님은 좋은 분이에요"라는 말로 대화를 시작했다. 오해가 있을까 굳이 덧붙이는데, 실제로 이 보좌관의 의원은 품성 좋은 인물이란 평판이 대세다. 높은 열정 탓에 업무 강도가 높아서 그렇지 앞으로 소개할 '천태만상'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백태를 키워드로 일단 쭉 나열해 봐요'라는 말에 이 씨는 "많지~. 쌍욕, 뒤통수 휘갈기기, 성추행, 비인간적 하대, 히스테리 부리기, 사적인 요구 등등. 뭐부터 해야 하나"라며 웃는 이 씨. 그런데 '정말 그래서 그 소문들이 다 사실이냐'고 물으니 "직접 만나 확인할 수 없는 소문도 많다"고 말했다. 그 만큼 '의원 뒷담화'는 쉽지 않은 일이란 얘기도 된다.
그럼에도 널리 널리 잘 알려진 현직 의원 '삼인방'이 있다. 공교롭게도 세 의원 다 초선이다. 19대에 처음 국회에 입성한 이들 의원의 '보좌진 막 부리기'는 사실 이 씨를 만나기 전에도 여러 차례 다른 경로를 통해 들어봤었다. 하기야 한 번 입방아에 오르면 그로부터 잘 해방될 수 없는 것 또한 국회란 곳의 특징이다.
"어느 방(의원실)이 제일 사람을 못 살게 하는지는, 원 구성됐을 때를 보면 딱 알지. 보좌진 교체가 많은 방은 못 버틴단 거예요. 국회 사이트 채용 페이지에 보면 계속 공개 채용 뜨거든. 자주 뜨는 데가 있는데 그런 데는 일단 좀 알아봐야 해" (웃음)
나는 보좌관인가, 대리 기사인가, 해결사인가?
그래도 세상이 좀 좋아졌는지 예전처럼 때리고 할퀴는 전근대적인 일은 적어졌다고 보좌진들은 종종 말한다. 이 씨는 "그럼에도 사적인 일로 사무처에서 월급 받는 보좌진들을 부리는 의원들은 여전하다"고 했다.
"저녁때 자기 지인들이랑 막 술을 먹어요. 그러면 사실상 퇴근한 거잖아요. 업무가 아니거든. 그런데 술자리 끝나면 자기도 아니고 심지어 같이 술 먹은 자기 지인들을 차로 집에 데려다 주라는 의원들 많지. 심지어 여러 명을 각자 사는 데 떨궈주라고 해서 새벽에 이곳저곳을 차로 다니는 일도 있어요. 수행 비서를 대리 기사처럼 쓰는 거야."
이뿐인가. 보좌진 중엔 하는 의원의 '관계 지킴이'가 되어야 하는 이들도 많다. 지역구에 사는 유지나 지역에서 사업을 기업이 하려는 일에 방해물을 치원 주는 '해결사가' 되어야 한단 얘기다. 구청이나 시청 직원을 만나 의원 대신 '쇼부(勝負·승부의 일본어 발음)를 치고 각종 '인사 청탁'도 해결해 준다.
"누가 인사 청탁을 하냐고? 별의별 사람들이 다 나타나요. 지역 유지의 아들딸은 물론이거니와 조카도 어디 취직시켜달라 해요. 그러면 지역 사무소 같은 데 자리 만들어주거나 민간 기업에 지원서 냈다고 하면 '잘 좀 부탁한다'며 전화 한 통 의원 대신 걸어주는 거지."
더욱 문제는 이 과정에서 멀쩡히 일하던 보좌진들의 일자리도 위태로워진단 것이다. 실제로 이 씨가 '선배'로 잘 따르던 한 의원실의 보좌관은 의원 지인의 한 친인척이 지역 사무소에 들어오면서 순식간에 잘려나갔다.
"그런 사례는 꽤 있어요. 꼭 새누리당만 그런 것도 아니고 새정치민주연합에도 그런 사례는 많아요. 원래 한 방에 9명까지 사람을 쓸 수 있거든. 4급 2명, 5급 2명, 6,7,9급 1명씩 해서 보좌진이고, 인턴 2명 이렇게. 그리고 사람을 더 쓰려면 사비를 들여야 하는데 그러고 싶지 않으니까 있던 사람을 빼거나 월급을 좀 빼돌리거나 그러지요."
의원실의 '보좌진 빼돌리기' 관례도 참 사라지지 않는 악습이다. 국회 사무처에서 정해진 급수에 따라 월급을 받으면, 그 중 일부를 강요에 의해 '토해' 내 의원실 비상금을 마련하는 방식이다. 보좌진 등골을 빼는 이런 일은 심한 경우엔 뇌물 수수의 통로로도 활용된다.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새누리당 박상은 의원실이 대표적 예다.
"왜 그렇게까지 민원을 다 챙겨주느냐고? 그게 다 후원금으로 연결되고 재선 성공 여부에 영향을 끼치니까요. 저거 어떻게 의원 됐지 싶은 사람들 많잖아. 물론 훌륭하고 합리적인 의원도 있지 있어. 그런데 그런 사람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의원들 세계에 물들고 그런 경우도 많더라고요. 아 얘기하다 보니 열 받는다. 술 마시자 술 마시자."
국회를 다니다 보면 의원보다 똑똑한 보좌관들을 만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실제로 똑똑한 의원 1명보다 똑똑한 보좌관 1명이 국회를 뒤흔드는 경우도 제법 된다. 그러나 이렇게 세상 물정 잘 아는 보좌관들도 자신들의 처지는 잘 개선을 못 한다.
"'니가 이런 더러운 걸 이겨내야 진정한 정치인이 되는 거야'란 되게 이상한 도제식 분위기가 팽배해서 그런 거 같아요. 옳은 얘기하고 비판하면 이 동네에서 소문 쫙 나고 찍히잖아. 의원이 재선 실패하면 다른 방으로 옮겨가야 하는 경우도 많은데 소문 나 봐야 좋을 거 없는 거지. 보좌진 생살여탈권을 의원 1명이 쥐는 한 이 세계는 개혁 안 될 거 같아요."
정치를 공부했고, 정치가 좋아서 또는 더 좋은 정치를 하고 싶어 국회에 들어온 수많은 보좌진은 이런 국회 안에서 무엇을 배우고 있을까.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국회는 바삐 돌아가고, '혁신'과 '개혁'을 주거니 받거니 노래할 테다. 어두운 등잔 밑은 꼿꼿하게 외면하면서 말이다. <프레시안> 정치부 기자로서 이 '등잔 밑'을 외면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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