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의료원이 문을 닫은 지 1년 반, 경상남도 진주시 상봉동에서 서해석(67) 할아버지를 만났습니다. 서 할아버지는 여전히 진주의료원을 그리워합니다.
서 할아버지는 독거노인이자 기초생활수급자(의료 급여 1종 환자)입니다. 간경화, 고혈압, 당뇨, 관절염, 만성 췌장염, 만성 신장염, 백내장 등을 앓고 있습니다. 간이 좋지 않아 일 년에 두세 번은 꼭 쓰러진다는 서 할아버지에게 공공 병원인 진주의료원은 가난한 환자들도 반갑게 맞아주는 친구였습니다.
"10년 넘게 이용하니까 의사 선생님들이 안색만 보고도 내를 아는 기라. (건강)보험 안 되는 약은 알아서 처방을 안 해. 내가 ‘선생님, 제 얼굴이 왜 시꺼멉니꺼?’ 하믄, '(술 때문인 걸) 몰라서 그래요?' 하고 씩 웃어요."
휴업 직전까지 진주의료원에 입원했던 지난해 4월 쫓겨났습니다. 노인 요양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지만, 한 달 뒤엔 "영 불편해서" 퇴원했습니다. 요양병원에서는 치매 환자와 정신질환자가 많다는 이유로 2층 문을 잠가서 "나 같은 환자와는 맞지 않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수급자 어르신들은 진주의료원을 그리워해요"
폐원 이후 진주의료원 출신 의사와 간호사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진주의료원 출신 의사를 따라 서 할아버지도 인근 종합 병원으로 옮겼지만, 마음이 허전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혼자 살다 보면, 몸 아파 밥 먹기 싫고 그럴 때, 의료원에서 쉬다 오면 나아졌는데, 이제 갈 데가 없는 기라. 기초생활수급자는 다른 병원에서 꺼리거든. 건강보험 환자는 계산하면 착착 나오는데, 나 같은 사람은 여차하면 심사해서 (진료 수가를) 깎지, 늦게 나오지…. 그걸 아니 내 마음이 불편한 기라."
진주의료원을 그리워하는 사람은 서 할아버지뿐만이 아닙니다. 진주시 내 기초생활수급자 어르신 68가구를 담당하는 한 복지센터 팀장은 자신이 담당하는 "60~80대 기초생활수급자 어르신 중에 열에 아홉은 의료원 재개원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저희가 방문하는 기초생활수급자 어르신들은 진주의료원에 심리적으로 의지를 많이 하셨어요. 진주의료원이 옛날에는 중심가에 있는 큰 병원이었어요. 신축 이전하면서 외진 곳으로 자리를 이동했지만, 인지도는 그대로 있는 거예요. 운영 못한 건 모르겠고, 아프면 내가 의지하고 기댈 곳이 없어진 것에 상심하는 거예요."
서 할아버지는 진주의료원의 또 다른 좋은 점으로 장기 입원 환자를 쫓아내지 않는 점과 싼 진료비를 꼽았습니다. 진주의료원에는 쫓겨날 걱정 없이 편하게 입원했지만, 주변 종합 병원은 입원 일수 한도가 15일밖에 안 된다고 했습니다. 또 진주의료원에서는 2주일 입원하고 병원비로 6만~7만 원 정도를 냈는데, 요양병원에서는 같은 기간 19만6000원을 냈다고 했습니다.
'착한 가격', '착한 적자'?
'적자' 때문에 경남도가 폐원 결정을 내렸던 진주의료원의 진료비는 어느 정도일까요? 보건의료노조 진주의료원지부(이하 진주의료원 노조)에 따르면, 타 병원의 70% 정도였습니다. 전문가들은 응급실, 분만실, 중환자실 등 돈 안 되는 필수 의료를 유지하고, 과잉 진료를 자제한 탓이라고 분석합니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비는 어떨까요? 진주의료원 노조가 지난해 제공한 자료를 보면, 진주의료원의 척추 자기공명영상(MRI) 촬영 가격은 28만 원이었습니다. 진주 인근 종합병원(35만~40만 원)과 비교해 적게는 7만 원에서 많게는 12만 원까지 저렴했습니다. 참고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공개한 국내 110개 종합병원의 척추 MRI 평균 가격은 50만7300원입니다.
뿔뿔이 흩어진 공공사업
진주시내 장애인복지관에서 만난 박길재(54) 씨도 진주의료원 단골 환자였습니다. 26년 전 교통사고로 평생 휠체어를 타게 된 박 씨는 진주의료원에 장애인 전용 치과가 있어서 자주 갔었습니다. 장애인에게 진료비를 깎아주지는 않았지만, 그는 "(휠체어를 타고 다니기에) 치료실과 장애인 전용 주차장이 넓고, 직원들이 친절해서" 진주의료원이 좋았습니다.
진주의료원은 2011년 7월 장애인 전용 치과를 개원했습니다. 개원 첫해에 720명, 2012년 460명이 방문했습니다. 장애인 치과는 다른 지자체들이 벤치마킹을 검토할 정도로 성공적인 사례로 꼽혔습니다.
하지만 폐원 이후 진주의료원이 하던 공공사업들은 경남도가 인근 민간 병원에 맡기면서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장애인 전용 치과와 산부인과 사업은 진주 고려병원이, 보호자 없는 병동(365 안심 병동) 사업은 진주 반도병원이 맡아 하고 있습니다.
고려병원은 진주의료원이 보유했던 장애인 전용 치과 진료 의자를 도에서 기부받았고, 휠체어가 이동할 수 있도록 경사로를 설치하는 공사를 지원받았습니다. 치위생사 2명 인건비, 재료비, 홍보비로 지난해와 올해 10월까지 각각 8000만 원, 8100만 원을 지원받았습니다. 하지만 이 사업을 한다고 해서 딱히 병원에 이득인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고려병원 관계자는 "장애인 치과와 산부인과 시설을 위탁받았다고 해서 병원의 수익이 창출될 만큼 환자가 오지는 않는다"며 "(진주의료원 폐원 이후) 환자들이 갈 데 없다는 이야기를 듣지 않기 위해 우리가 맡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장애인 환자를 받는 데 딱히 애로사항은 없지만, (사업을 잘하려면) 도비 지원이야 많을수록 좋다"고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365 안심 병동' 사업을 위탁받은 반도병원 관계자는 “경남도가 간병인 인건비를 지원해주고 있다”며 “의료 수급자는 하루에 간병비가 1만 원이고, 건강보험 환자는 2만 원”이라고 밝혔습니다. 진주의료원이 제공하던 가격과 같습니다.
전국 병원에서 환자나 보호자들이 내는 평균 간병비는 하루에 6만~8만 원 정도입니다. 하루 간병비로 1만~2만 원만 받고서는 적자가 납니다. 이 사업이 도비나 국비로 인건비를 지원하지 않고는 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실제로 경남도는 총 20명의 간병사(5인실 5곳, 한 병실당 4명씩) 인건비로 지난해와 올해 10월까지 각각 2억8741만9000원, 3억7200만 원을 반도병원에 지원했다고 밝혔습니다.
뿔뿔이 흩어진 환자들 "이제 쓰러지면 의지할 병원이 없다"
진주의료원에서 하던 공공사업이 흩어졌듯이, 환자들도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만성폐쇄성 질환을 앓고 있는 윤정부(74) 할아버지가 그런 경우입니다. 지난해 진주의료원에서 쫓겨난 윤 할아버지는 지금은 버스로 1시간 반 거리에 있는 경남 창원의 한 요양병원에 입원했습니다.
폐가 좋지 않아 코에 산소 호흡기를 달고 사는 윤 할아버지는 40년 가까이 진주의료원 단골 환자였습니다. 진주에 사는 윤 할아버지는 "진주의료원이 폐원되지 않았다면, 거기 남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윤 할아버지는 진주의료원 건물을 서부청사로 활용한다는 경남도의 방침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의료원 옛날부터 다녀농께네. 의사, 간호사도 다 알고 간병인하고도 친했는데, 마음이 안타깝지. (도에서) 급하게 없애버리니께네. 애초에 지을 때부터 나라에서 해가지고 진주의료원이라고 지은 긴디, 뭐 한다고 도청으로 넘어가노?"
정신을 잃을 때마다 진주의료원으로 실려 가곤 했던 서 할아버지도 "이제 쓰러지면 의지할 병원이 없다"고 한탄합니다. 서 할아버지와 윤 할아버지는 진주의료원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 이 기사는 미디어 다음과 공동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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