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는 보수가 낫다.' 한국 사회의 오랜 고정 관념 중 하나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고, 오랫동안 국가를 운영해본 이른바 보수 세력이 안보 분야에서는 진보 세력보다 능력 있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다.
정말 그런가? 맞는 이야기라고 쉽사리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상황은 결코 아니다. 고개 돌려 현대사를 돌아봐도, 고개 들어 주변 현실을 둘러봐도 수많은 물음표를 던질 수밖에 없게 만드는 고정 관념이다. 썩은 내를 풍기긴 하지만 그래도 보수 세력이 경제 문제에서는 낫지 않겠느냐는 것만큼이나 위험한 선입견이다.
국가 안보라는 명목으로 국민을 위협하는 권력자들에게 신물이 난 이들이 눈여겨볼 만한 책이 나왔다. <김종대·정욱식의 진짜 안보>(서해문집, 2014년 10월 펴냄)가 그것이다. 김종대 <디펜스21+> 편집장과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가 2013년에 문을 연 팟캐스트 '진짜 안보'에서 지난 1년간 전파를 탄 내용을 정리·재구성한 책이다.
책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다. '가짜 안보에 그만 속고 진짜 안보를 함께 만들어가자.' 책의 핵심 개념인 가짜 안보와 진짜 안보에 대해 김종대는 이렇게 말한다.
최근에는 안보가 본래의 목적에서 이탈하여 자꾸 정치화되거나 권력의 한쪽으로 치우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시민적 가치에 뿌리를 내리고 녹아야 하는 '안보'라는 개념이 마치 군사 조직과 권력이 독점하는 전유물처럼 기능하게 됩니다. 이런 식의 안보는 시민적 요구나 필요에 의해 진행되지 않고 권력 유지와 정치적 목적에 활용되어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리는 참담한 결과를 빚게 됩니다. 그것은 '가짜 안보'입니다. (…) 진짜 '안보'라는 것은 궁극적으로 평화를 위한 것이에요. 저는 평화의 초석이 되는 안보, 국민들이 다 같이 즐기고 공유하고 참여할 수 있는 안보가 '진짜 안보'라고 생각합니다. (9쪽)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저자들은 안보와 관련된 여러 문제를 짚는다. 미국에서도 자국민을 상대로는 하지 못하게 한다는 심리전을 국민들에게 버젓이 시행하는 국정원을 비판하고, "전작권이야말로 정신 전력의 핵심일 텐데 이걸 계속 미루면서 정신 전력 강화를 위해 별도의 기관을 만든다고 하니 정말 어처구니없습니다"라고 정부를 질타한다. "박근혜 정부 들어 거의 남한식 선군 정치가 이뤄지고" 있다는 비판도 빼놓지 않는다.
차세대 전투기, 무인기 파동, 제주 해군 기지, 미사일 방어 체제(MD) 등 논란이 끊이지 않는 굵직한 현안과 관련해서도 '가짜 안보' 논리의 문제점을 하나하나 짚는다. 안보 문제는 그 속성상 국제 정세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법. 저자들은 평화헌법을 무력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일본, 이를 부추기면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일련의 조치를 취하는 미국, 이러한 미국과 일본에 맞서는 중국의 오늘을 짚으며 한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한다.
군사 혹은 국가 안보에 갇히는 대신 인간 안보로 시야 넓혀야
그중 하나는 '한국도 핵무기를 가져야 한다'는 일부 극우 논객 등의 주장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다.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것이 저자들의 생각이다.
정서적으로는 이해가 가는 측면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나라들은 갖고 있는데 우리만 못 갖고 있다', '우리만 못 하게 한다' 같은 불만이 있을 수 있거든요. (…)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국이 핵을 갖는 건 곤란합니다. 첫 번째 문제는 한국이 핵을 가짐으로써 얻게 되는 실익이 없다는 것이고요, 두 번째는 가질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북한처럼 쪽박 찰 각오를 하지 않는 한, 망국을 각오하지 않는 한, 국가의 존폐를 각오하지 않는 한 핵무장은 불가능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 결국 한국이 핵무기를 갖겠다고 하는 것은 미국의 핵우산을 못 믿겠다는 얘기 아닙니까? (…) 그럴 경우에는 한미 동맹의 파기를 감수해야 합니다. 그러면 지금의 한국 안보 현실에서 동맹의 파기까지 감수할 만큼 핵무장의 가치가 있느냐, 이걸 또 따져봐야 하는 것이고요. (136∼138쪽)
나머지 두 가지는 초대 손님으로 팟캐스트에 출연한 이들의 이야기다. 우선 박근혜 정부가 내세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관한 문정인 연세대 교수의 생각을 들어보자.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라는 구상 자체는 지지합니다. 문제는 북한이 신뢰할 만한 행동을 해야 신뢰 프로세스가 가동이 된다면, 이건 신뢰 프로세스가 아니라는 겁니다. 북한이 신뢰할 만한 행동을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여러 가지 정책적 노력을 통해서 북한의 행태를 바꿀 때, 비로소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이루어지는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돌아가는 것 같지 않아서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208쪽)
이건 사실 문 교수만이 아니라 여러 전문가가 지적한 사항이다. 그럼에도 아직까지는, 안타깝게도 쇠귀에 경 읽기에 가까운 상황이다. 이 책에서 다룬 다양한 사안을 한국인들이 주체적으로 풀어갈 열쇠를 찾을 수 있을 것인지가 상당 부분 이 문제와 닿아 있다는 점에서도 문 교수의 이야기는 되새길 만하다.
다른 하나는 핵발전 문제다. 안보와는 거리가 먼 사안이라고 여기는 이들도 있겠지만, 안보라는 개념을 좁은 틀에 가두려는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면 문제는 달리 보인다. 진짜 안보를 강조하는 저자들이 "안보의 관점을 단순히 군사나 국가 안보에 국한할 것이 아니라 '인간 안보', (…) 사람 중심의 안보 혹은 국가와 개인이 공존할 수 있는 안보로" 시야를 넓힐 것을 주문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의 말을 들어보자.
체르노빌 사고가 났을 때 일본 찬핵주의자들이 호언장담하길, "일본의 원자력발전소는 체르노빌과 노형이 다르다. 우리는 안전장치가 훨씬 많다"고 했거든요. 후쿠시마 사고 후, 한국의 찬핵주의자들도 똑같은 얘기를 했어요. 일본에 있는 것과 한국에 있는 것은 다르다고요. 물론 다르죠.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그것에 대해서는 대비책을 세우지만 다음 사고는 다른 곳에서 터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 가령 부산의 경우 고리 원전 반경 30킬로미터에 320만 명이 삽니다. 기장, 고리에 이미 여섯 개 원전이 돌아가고 있고, 앞으로 이 지역에 지어질 6개까지 합치면 모두 12개거든요. 여기 사는 320만 명은 아무리 피폭을 많이 받더라도 대피시킬 수 없습니다. 그냥 살아야 돼요. 또 하나는 그 인근 지역에 우리나라 최대 항구인 부산항이 있고, 울산에는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등이 다 모여 있다는 거예요. 사고가 나면 그걸 다 포기해야 합니다. 이것만큼 큰 안보의 위협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수명이 다 된 것을 연장하고 발전소를 더 지으면서 계속 문제를 일으키는 건 진짜 우리나라의 안보를 위협하는 거죠. (115∼116쪽)
저자 정욱식은 말한다. "원전 증설은 가짜 안보"라고. 그리고 저자들은 묻는다. "북한이 핵미사일로 남한의 핵발전소를 공격한다면?" 생각만으로도 끔찍한 가정이지만, 가짜 안보가 판치는 세상에서는 그런 일이 생기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최선은 전쟁이 필요 없는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드는 것"이라고 저자들이 힘주어 말하는 이유다. 소박한 행복을 꿈꾸는 평범한 시민들이 진짜 안보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딱딱하게 여기기 십상인 사안들을 다뤘음에도 <김종대·정욱식의 진짜 안보>는 술술 읽힌다. 이 책이 지닌 미덕 중 하나다. 각 주제의 사이사이에 들어간 11편의 '진짜 평화 칼럼'은 읽는 맛을 더한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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