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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따라하는 햇빛·바람 에너지, 어쩌면 '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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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따라하는 햇빛·바람 에너지, 어쩌면 '독'!

[초록發光] 에너지 경관과 재생 가능 에너지 갈등

'위험 경관(riskscape)'이라는 조금은 생소한 개념이 있다. 보통 위험 시설이 있는 곳을 말하는데, 환경 부정의를 다루는 전문가들은 특정 환경 위험을 갖는 장소라는 의미로 환경 위험 경관(environmental riskscape)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오염 시설의 배치가 사회적 불평등과 공간적 불균등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내용을 주로 다룬다.

위험 경관 개념을 발전시키면, 핵 발전과 밀양 송전탑 같은 에너지 시스템의 구성 요소들이 시간적, 공간적 실천 속에서 어떻게 우리 곁에 존재해왔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관련 기사 : 무시무시한 동거, 당신만은 예외? 그건 착각)

그렇다면, 재생 가능 에너지는 이런 위험 경관에서 자유로운 세상으로 안내하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정부와 기업이 주도하는 바람과 태양을 활용하는 크고 작은 사업들이 곳곳에서 지역 주민과 갈등을 겪고 있지 않은가. 환경 훼손, 생존권 박탈, 정체성 파괴를 동반하는 일종의 녹색 개발주의가 문제가 되고 있다. 물론 경제적 편익, 지역 발전의 잠재력, 재생 가능 에너지 확대라는 새로운 기회를 기대하며 찬성하는 주민들도 있다.

이런 갈등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시민 참여적 모델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에너지 협동조합에 참여하는 적극적인 에너지 시민성(energy citizenship)을 갖춘 시민이 적은 상황에서 재생 가능 에너지에 대한 사회적 학습과 수용과 결정이 필요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갈등을 사후적으로 관리하는 데 들어가는 시간보다 더 짧게 걸릴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대규모 핵 발전과 화력 발전에 비해 아직은 국지적인 문제로 인식되지만, 에너지 전환이 가속화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에너지 전환은 현재의 경제적, 사회적 활동의 공간적 패턴이 근본적으로 재구성되고 재배열되는 지리적 과정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에너지 시스템과 그 구성 요소들은 특정 환경에 맞물려 있고, 연결/접속, 의존/종속, 관리/통제라는 특정한 공간 관계를 형성한다. 필요한 모든 에너지를 스스로 생산하고 소비하는 극단적인 미래가 아니라면, 국가와 지방, 지방과 지방, 마을과 마을 사이에는 어떤 식으로든 거기에 맞는 공간적 시스템이 뒤따르게 된다.

특히 재생 가능 에너지 생산이 특정 장소에서 단지화되어 규모가 커질수록, 생산과 소비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이상적인 에너지 시스템보다는 현실의 에너지 시스템에 가까워진다. 아프리카 사막에서 유럽으로, 몽골 사막에서 한국과 일본으로 태양 전기를 보내는 슈퍼 그리드 구상이 단적인 경우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도 에너지 전환의 사회 공간적 측면을 주목해보면 어떨까. 인문 지리학의 경관 연구와 에너지 전환 연구가 만나는 '에너지 전환의 지리학'이 그 예이다.

여기서 말하는 경관은 장소에 걸쳐있는 자연적, 사회적인 특징들과 그 특징들의 상호 작용 과정과 역사의 총합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에너지 경관(energy landscape)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도시 경관이나 경제 경관과 유사한 의미에서 사용한다. 에너지 확보, 변환, 분배, 소비와 관련된 행위들을 둘러싼 사회-기술적 결합으로 묘사한다. 예컨대 유전이나 풍력 단지에서 도시 거주지까지의 에너지의 흐름을 형성하는 사회적 과정의 산물이자 다양한 세력들의 갈등과 협상의 결과인 것이다.

이렇게 에너지 전환은 경관의 변형으로 경험하게 되는데, 에너지 경관은 지금까지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았던 장소와 공동체로 가시적으로 확장된다. 따라서 에너지 경관이 에너지 정책의 논의에서 핵심 영역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에너지 경관이라는 틀거리는 지리적 환경에서 자연적, 물질적, 기술적, 그리고 문화적 요소들의 상호 작용과 그 관계가 시공간에서 얼마나 다양하게 나타는지에 관심을 기울이기 때문에 에너지 전환의 이해에 유용하다. 이런 다양성과 이질성을 재생 가능 에너지 정책과 사업에서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생 가능 에너지에 대해 주민들의 반응이 장소마다 다른 이유에 대해 성찰하는 맥락을 제공해 새로운 실험의 계기를 제공한다. 반대로 말하면 풍력 입지 가이드라인과 같은 정부의 표준은 말 그대로 참조 사항이어야 하지, 특정 장소와 사람들이 맺고 있는 고유한 기억과 경험을 부정하거나 무시해서는 안 된다. 보상과 지원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순간 재생 가능 에너지는 재생을 멈추게 된다.

에너지 경관은 인간 행동의 과정 속에 있는 구체적인 공간 실천으로 변형되는데, 화폐 가치와 교환 가치를 전면에 내세우는 지배적 공간 실천이 계속해서 우세하면, 재생 가능 에너지는 근대적 공간의 또 하나의 근대적 에너지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이것을 재생 가능 에너지의 신화라고 말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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