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월여를 사이에 두고 커티스 스캐퍼로티 주한미군 사령관의 발언이 한국을 들었다 놨다 하고 있다. 6월 3일에는 "미국 측에서 사드(THAAD) 한국 내 배치를 추진하고 있고 제가 개인적으로 사드의 전개 요청을 한 바 있다"고 밝혔다. 이 발언을 계기로 사드라는 생소한 무기 체계는 한반도는 물론이고 동북아 정세에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10월 24일에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과 관련해 대단히 민감한 발언을 내놓았다. "북한이 핵탄두 소형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이다. 이 발언은 한미 양국이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조건이 충족될 때까지', 즉 무기한 연기에 합의한 직후에 나온 것이다.
전작권 연기는 불가피, 그리고 사드가 필요해?
북핵 소형화와 관련해 스캐퍼로티는 처음에는 "나는 북한이 현시점에 핵 장치를 소형화할 능력과 잠재적으로는 이걸 운반할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며 "사령관으로서 북한이 거기까지 가지 못했다고 판단할 정도로 여유롭지는 않다"며 호기를 부렸다. 그러나 기자들이 "북한이 작동하는 소형화된 핵 장치를 갖고 있다는 말이냐"고 확인을 요청하자, "잘 모르겠다"며 톤 다운을 시도했다. 그의 발언을 종합해보면, 북핵 소형화에 대해서는 '잘은 모르지만, 그렇게 추정해볼 수 있다'는 정도 수준이었다.
주한미군 사령관이 펜타곤에서 기자회견을, 그것도 한미 국방장관 회담 직후에 한 것 자체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아마도 '북핵이 고도화됐으니 전작권 전환은 시기상조'라는 해석을 유도한 것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스캐퍼로티의 발언 이후 보수 진영은 북핵을 앞세워 전작권 환수 재연기를 옹호하고 나섰다.
또 한 가지. 스캐퍼로티는 식어버린 사드 배치론을 다시 가열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는 작심하고 사드를 주한미군 기지에 배치할 필요성을 역설했다. 태평양 사령관과 펜타곤 부장관은 물론이고 박근혜 정부도 이에 호응하면서 사드 배치는 그 여부가 아니라 시기의 문제처럼 간주됐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가 사드 배치 움직임에 강하게 태클을 걸었고, 그 결과 이 문제는 펜타곤이 결정할 사안이 아니라 미국 대통령이 결단해야 하는 전략 문제로 급부상했다. 그리고 이번 한미연례안보회의(SCM)에선 사드 배치와 관련해 어떠한 언급도 담기지 않았다. (☞관련 기사 : 한반도 재앙의 '사드', 한-미 간에 무슨 일이?) 스캐퍼로티로서는 대단히 아쉬웠을 것이다.
스캐퍼로티에게 가장 유력한 반전 카드는 '북한이 핵탄두를 소형화해 미사일에 장착할 수 있다'는 알쏭달쏭한 가정이다. 그가 기자회견 초반에 확신에 찬 어조로 북한의 핵탄두 소형화를 언급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왔을 것이다. 실제로 그는 사드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한미간에 미사일방어체제(MD) 강화와 한미일 군사정보 공유 필요성을 강조했다.
전작권 연기-북핵-MD의 악순환은 어디까지?
최근 사드를 비롯한 MD, 전작권 연기, 북핵 논란에서 주목할 것이 있다. 이들 세 가지가 서로를 의지해 적대적 공생 관계를 형성하면서 한반도를 악순환의 늪으로 끌고 들어가고 있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북핵 위협을 구실로 전작권 환수를 계속 연기하고 있다. 미국은 이들 정부의 요구를 들어주는 조건으로 MD 강화를 주문하고 있다. 북한은 한미, 혹은 한미일 MD가 대북 선제공격 전략의 일환이라며 "핵 억제력 강화"로 맞서고 있다. '이명박근혜 7년'을 돌아보면 이러한 분석이 한반도 문제를 관통하는 핵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2010년 들어 MB정부가 미국에게 전작권 환수 연기를 요청하자 미국은 이를 한국의 MD 편입을 비롯한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킬 수 있는 지렛대로 삼았다. 실제로 2010년 6월 이명박-오바마 정상회담에서 전작권 전환을 2012년 4월에서 2015년 12월로 연기하기로 합의한 이후 한미와 한미일간의 MD 협력은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한미간에 이지스함을 동원한 해상 MD 훈련을 실시했고, 이 훈련은 곧 일본까지 참여하는 3자 MD 해상 훈련 '퍼시픽 드래곤'으로 확대됐다. 한미 군사훈련에 일본 자위대 장교가 참관하기 시작했고, 미·일 군사훈련에 한국군 장교가 파견됐다. 급기야 해방 이후 최초로 MD 능력을 장착한 일본 이지스함이 부산항이 들어오기도 했다. 한미동맹 차원에서는 확장억제위원회가 신설되어 그 핵심을 MD 협력으로 삼았다. 2012년 6월 국민과 국회 몰래 추진했다가 무산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은 그 백미였다. 한일 군사협정은 한미일 MD로 가기 위한 핵심 가교였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이러한 추세는 계속되고 있다. 작년 10월에 열린 한미연례안보회의(SCM) 공동성명에는 한미 간 MD의 상호운용성을 강화키로 했다. 동시에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을 검토한다"는 구절도 담겼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미국이 한국의 전작권 재연기 요청을 한국의 MD 참여와 연계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SCM 회의 참석차 방한한 척 헤이글 국방장관이 "전작권 전환은 아직 최종적인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며 "MD는 분명히 아주 큰 부분"이라고 말한 것은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해준다.
2014년 4월에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는 이러한 주고받기가 더욱 안 좋은 방향으로 합의되었다. 오바마 행정부는 "전작권 전환의 시기와 조건을 재검토"하겠다는 선물(?)을 주고는 박근혜 정부로부터 "MD의 상호운용성 증대" 및 "한미일 3국간 정보공유"를 선물(!)로 받았다. 이건 2013년도 SCM 합의를 정상회담 수준에서 재확인하면서도 "한미일 3국간 정보공유"라는 혹까지 붙인 것이었다. 그리고 5월 30일 싱가포르 샹그릴라 대화 기간 중에 열린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서는 10월에 열리는 SCM 회의에서 전작권 재연기에 대한 합의를 시도키로 했다. 그리고 다음날 열린 한미일 국방장관회담에서는 3자 간 군사정보협정을 양해각서 형태로 추진키로 했다.
그리고 올해 SCM 회의에서는 사실상 마침표를 찍었다. 전작권 전환을 사실상 무기한 연기하는 대신에 MD를 더욱 가속화하기로 한 것이다. 양국 국방장관이 "북한 미사일 위협을 억제 및 대응하는 동맹의 능력을 강화시켜 나가자는 약속을 재확인"한 것은 한미간에 MD 능력을 강화하고 상호운용성을 강화하겠다는 의미이다. 또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한·미·일 정보공유의 중요성을 재확인"한 것은 한미일이 모두 갖고 있는 이지스함과 일본에 2개에 배치된 X-밴드 레이더, 잠재적으로는 사드의 한국 배치까지 포괄하는 한미일 MD의 기반을 닦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전작권 연기할수록 한국은 미국의 '호갱'이 된다
이처럼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전작권 환수 연기에 집착할수록 한국은 미국이 다루기 쉬운 상대가 되고 만다. 가령 이런 것이다. 전작권을 갖고 있는 미군 사령관이 '사드를 비롯한 MD가 확보되어야 대규모의 주한미군 주둔에 대한 미국 의회와 국민의 협조를 구할 수 있다'고 말하면 한국 정부가 반박하기 힘들어진다. 마찬가지로 미국은 우월적인 지위를 이용해 한국에게 각종 무기 구매 압력을 행사할 수 있고, 자신의 필요에 따라 전략폭격기 등 전략 무기를 한반도에 수시로 배치할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전작권 연기에 우선순위를 두다 보니 북핵 문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 전작권 환수 연기 및 MD 확대를 위한 최적의 환경은 북한의 위협이 증대될 때 조성된다. 이는 대화를 통해 북한의 위협을 관리하고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치적 의지의 부재와 동전의 앞뒤 관계에 놓여 있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는 물론이고 박근혜 정부 역시 6자회담 및 남북관계 개선에 극히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북핵 때문에 전작권 환수가 시기상조라면, 핵문제 해결도, 전작권 환수도 영원히 불가능해지고 한국이 MD 늪에는 더더욱 깊숙이 빨려 들어갈 것이라는 데에 있다. 한미 양국이 북한과의 대화는 기피하면서 북한의 위협을 근거로 공격력 증강과 MD에 매달릴수록 북한도 핵과 미사일 전력 증강에 나선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에 가깝다.
박근혜 정부는 '킬 체인'과 '한국형 미사일방어체제'(KAMD)가 구축되는 2020년대 중반에는 전작권 환수가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북한이 이때까지 군사력 증강을 동결하면서 기다려줄 리가 만무하다. 오히려 이 추세대로 간다면, 북한은 2020년대 중반에 100개 안팎의 핵무기와 다양한 핵 투발수단을 확보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한국의 '따라잡기'와 북한의 '도망가기'가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고, 박근혜 정부가 말하는 전작권 전환의 '조건'은 영원히 오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관련 기사 : 군사주권 '외주화' 한 박근혜, 군통수권자 맞나?)
경제학 용어를 빌리자면, 전작권 연기라는 공급은 MD라는 수요를 창출하고, MD가 공급될수록 북핵 위협이라는 수요도 창출된다. 물론 이 역의 관계도 성립된다. 세 가지의 ‘연관 효과’가 커질수록 그 비용과 피해는 고스란히 한반도 주민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 하여 전작권-MD-북핵의 악순환이야말로 오늘날 한국 외교의 가장 참담한 현실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