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너도나도 바리바리 '겁나' 풍성한 마을밥상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너도나도 바리바리 '겁나' 풍성한 마을밥상

[살림 이야기] 여주장아찌·소고기여주볶음·가죽나무순부각

"아니, 마당에 풀 좀 봐. 물을 줘 가며 키웠어요? 동네 사람 들이 흉 안 봐요?"

한때 농부였다가 지금은 도시에서 직장 을 다니는 친구가 휴일에 놀러왔다가 마당과 텃밭에 우거진 풀을 캐내며 밉지 않게 지청구를 던진다. 누렇게 영글어 타 작할 때가 된 콩과 들깨, 늙은 호박과 잎이 창창한 케일 몇 포기가 대충 심긴, 서너 평 되는 대문가 텃밭에는 무성한 풀들이 작물보다 더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작물들도 지난봄 친구가 일일이 돌을 고르고 밭을 일궈 부지런하게 심고 간 것들이다. 그는 가끔 와서 귀농 2년 차라 아직 농사에 서툰 나를 대신해 김도 매고 밭도 가꾸곤 한다. 요리하고 밥 짓고 상 차리는 일이 더 즐거운 나는, 옛날에 어머니가 차려준 것 같은 '촌티 나는 밥상'을 차려 친구에게 보답하곤 한다.

"또 왔구먼. 김매는 걸 봉게, 농사지어 본 양반인감만? 이 집 주인은 풀도 안 맨당께. 마당이 안방처럼 훤해졌구만."

울도 담도 대문도 없는 우리 집 마당을 지나던 앞집 할머니와 아랫집 다연아빠가 한 마디씩 정겨운 치사를 던진다. 전북 장수군 산서면 등동마을은 모두 해야 대여섯 가구에 열 명이 채 안 되는 아주 작은 마을이라 사람을 귀히 여겨 낯선 이에게도 스스럼없이 말을 건네며 자기 집 손님처럼 살갑게 대하곤 한다.

"맛있는 거 많이 달라 그랴. 밥값 겁나 했구먼."
텃밭의 풀도 안 매고 사는 내 체면을 살렸는지 구겼는지 모르겠지만 따가운 가을볕을 받으며 호미질하느라 애쓴, '겁나' 밥값을 한 친구를 위해 특별한 밥상을 차렸다. 이름하여 '등동마을밥상'.

▲ 반찬 한 가지씩 가져왔을 뿐인데 밥상이 넘쳤다. 반찬도 풍성하고, 밥도 고봉밥이다. 밤과 콩과 은행을 잔뜩 넣어 꼭꼭 눌러 담았다. ⓒ최덕현

시골 살림 달인들의 요리와 막걸리

깨진 시멘트 틈새로 올라온 풀까지 호미질로 남김없이 캐낸 바람에 안방처럼 말쑥해진 마당에 커다란 상을 펼치고 온 동네 사람들을 초대했다. 초가을 볕이 기울어가는 이른 저녁, 느닷없이 동네잔치가 열렸다. 앞집과 뒷집 할머니도 오시라 하고 아랫집 다연 엄마 내외도 부르고 조금 떨어져 있는 소막집 정숙 씨네 부부도 불렀다. 그래봐야 열 명이 안 되지만 마을 사람들이 거의 온 셈이다. 집에 있는 반찬 한 가지씩, 가져올 만 하면 가져 오고 없으면 그냥 와도 좋다고 했건만 너도 나도 이것저것 음식을 들고 온 덕에 상차림 이 잔칫상처럼 푸짐해졌다.

시골 살림 고수인 여든 다 된 옆집 할머니는 들과 산에서 나는 온갖 산야초 조리법에도 통달했다. 삼채, 양파, 풋고추로 담근 짭조름한 3종 장아찌 말고도 딸과 사위들이 올 때나 조금씩 만든다는 가죽나무순부각을 가지고 오셔서는 마을의 젊은 여인네들과 손님 앞에서 기름에 튀겨 내는 시범을 보이셨다. 봄에 집 뒤에 있는 가죽나무 어린 순을 따 삶고 얼려 두어 아끼던 것이란다. 손이 많이 가고 정성이 들어간 만큼 맛도 좋아 예전에는 잔치 때나 먹던 아주 귀한 음식이다. 옆에서 군침을 흘리며 구경하다가 한입 베어 먹으니 파삭하고 향긋한 게, 꽁꽁 숨었던 철없는 봄이 느닷없이 가을에 돌아온 듯하다.

고샅길에서 마주칠 때마다 "젊은 사람이 들어와 사니 고맙구먼"이라고 말하며 따듯하게 격려해 주시는 뒷집 할머니는 "젊은 사람 입에는 짠 가, 어쩐가 몰라" 하며, 전날 텃밭에서 뽑아 양념을 듬뿍 넣어 먹음 직스럽게 담근 열무김치를 들고 오셨다.

올해 여주농사를 잘 지은 아랫집 다연엄마는 여주로 장아찌도 담고, 즙도 만들고, 가루도 내고, 썰어 말려 차도 만드는 등 여주요리 를 연구하는 재미에 푹 빠졌나 본데, 새로 개발했다며 소고기여주 볶음과 여주밤조림과 장아찌를 들고 왔다.

예전에 마당가나 밭가에 관상용으로 조금씩 심곤 했건만 여주가 부작용이 없는 천연인슐린 덩어리로 당뇨에 좋고 고혈압 등 성인 병에 효과가 탁월하다고 알려지면서 약용식물로 인기를 끌고 있다. 나도 다연엄마가 나누어 준 말린 여주를 한 주전자씩 끓여 냉장고에 넣어 두고 수시로 마시고 있다. 말린 여주는 가루로 만들어 우유나 요구르트에 타서 먹기도 한다. 여주는 원래 쓴맛이 강한데 요리 재료로 쓸 때는 소금물에 담그거나 끓는 물에 데쳐 쓴맛을 빼내고 쓴다. 다연엄마의 새로운 요리를 맛본 마을 사람들이 "쌉싸름하니 맛있다"라고 후한 점수를 주었다. 여주요리의 달인이 탄생한 것이다.

나는 추석에 먹다 남은 포기김치와 총각김치, 들기름에 볶은 고구마순나물을 한 접시씩 담고, 가을을 맞아 마을 뒷동산에 잠깐만 올라도 한 소쿠리씩 주울 수 있는 밤과 길바닥에 떨어져 뒹구는 은행을 까 넣고, 동부콩도 넣어 계절에 맞는 영양밥을 지어 상에 올렸다. 마을 사람들이 합심해 차려낸 시골밥상에 막걸리는 필수. 마침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사는 지인이 놀러 오면서 막걸리 몇 병을 들고 와 밥상에 화룡점정을 이루었다. 약주를 즐기지 않는 앞집과 뒷집 할머니도 이 날만큼은 즐겁게 잔을 받아 드셨다. 젊은 사람 나이 든 사람, 마을 사람 타지 사람, 구별 없이 함께 건배~!

여주장아찌
재료
여주 400g, 청양고추 15개, 마늘 20쪽, 진간장 3컵, 설탕 2컵, 식초 2컵, 매실액 1컵

만드는 법
① 여주는 길게 반으로 갈라 씨를 긁어내고 0.7cm 두께로 반달 모양으로 썬다. 썬 여주를 끓는 물에 굵은 소금을 약간 넣어 데치고, 찬물에 한 시간 정도 담가 쓴물을 뺀다.
② 청양고추를 송송 썰고, 마늘은 껍질을 까서 깨끗이 씻는다.
③ 소독한 유리병에 준비한 여주와 청양고추, 마늘을 차곡차곡 담는다.
④ 진간장, 설탕, 식초, 매실액을 함께 넣고 팔팔 끓여 뜨거울 때 유리병에 붓는다.
⑤ 식으면 냉장고에 보관해 먹는다.

소고기여주볶음
재료
소고기 200g, 양파 1개, 당근 반 개, 홍고추 2개, 진간장 2큰술, 설탕 3큰술, 참기름 2큰술, 현미유·참깨·참기름·통깨·후춧가루·다진마늘 약간

만드는 법
① 여주는 길게 반으로 갈라 씨를 긁어내고 0.5cm 두께로 반달 모양으로 썬 다음 끓는 물에 굵은 소금을 넣어 데쳐 내 찬물에 한 시간 정도 담가 쓴물을 뺀다.
② 소고기는 불고기용을 가늘게 썰어 진간장, 후춧가루, 설탕으로 밑간을 해서 현미유를 두른 팬에 볶는다.
③ 양파는 채 썰고 홍고추는 반으로 갈라 씨를 털어 내고 굵게 채 썬다.
④ 여주와 양파, 홍고추를 넣어 살짝 소금 간을 해서 볶는다.
⑤ 따로 볶은 소고기와 여주를 함께 담아 볶은 다음, 불을 끄고 참기름을 섞어 접시에 담고 참깨를 뿌려 낸다

가죽나무순부각
재료
삶은 가죽나무순 200g, 찹쌀풀 3컵, 현미유

만드는 법
① 삶은 가죽나무순은 물기를 빼 잘 펴서 건조하지 않을 정도로 꼬들꼬들하게 말린다.
② 다시마육수를 넣어 되직하게 끓인 찹쌀풀을 가죽나무순에 골고루 발라 채반에 가지런히 펴 널어 햇볕에 2~3일 정도 바짝 말린다.
③ 160℃ 정도의 끓는 기름에 찹쌀풀을 발라 말린 부각 재료를 넣고 앞뒤 뒤집어가며 고루 튀겨 접시에 담는다.
화실떡, 목동떡 모두 모여 화기애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호미질 친구'가 스스럼없이 할머니들께 "엄니, 엄니는 뭔 '떡'이에요?(표준어로 옮김 : "할머니는 어디 댁이세요? 그러니까 혼인하기 전에 어디에서 살고 계셨나요?") 하고 묻자, 앞집 할머니가 곧바로 대답했다.

"뭔 떡? 으응 난 화실떡, 여긴 목동떡."

"응, 떡을 다 아네."
뒷집 할머니께서도 기분 좋게 한마디 거드시며 막걸리 잔을 비우셨다.

"난 등동떡이여."
평소 툭툭 던지는 썰렁한 유머로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곤 하는 부지런하고 흥 많은 아랫집 다연아빠의 한마디에 모두 웃음보가 터졌다. 다연아빠의 고향은 전북 장수군 산서면 오성리 등동마을이다. 바로 우리 마을.

서산마루가 붉게 물들고 마당에 어둑발이 내리도록 누구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밥상 위의 음식 그릇을 비워가며 잔을 기울이며 시멘트 바닥이 차가워지는 줄도 모른 채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날 나눈 정담들이 살랑살랑 바람을 타고 가을 밤하늘에 떠올라 별이 되어 빛났대나 어쨌다나. 우리 마을 등동에 없던 전설 하나가 생겼다.

▲ 앞집과 뒷집 할머니, 여주요리 달인 다연엄마, 호미질 친구가 모두 한 자리에 모였다. 약주를 즐기지 않는 할머니들도 이 날만큼은 즐겁게 잔을 받아 드셨다. 젊은 사람 나이 든 사람, 마을 사람 타지 사람, 구별 없이 함께 건배~! ⓒ최덕현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우리나라 대표 생협 한살림과 함께 '생명 존중, 인간 중심'의 정신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한살림은 1986년 서울 제기동에 쌀가게 '한살림농산'을 열면서 싹을 틔워, 1988년 협동조합을 설립하였습니다. 1989년 '한살림모임'을 결성하고 <한살림선언>을 발표하면서 생명의 세계관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살림은 계간지 <모심과살림>과 월간지 <살림이야기>를 통해 생명과 인간의 소중함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살림이야기> 바로 가기)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