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성직자와 신자들이 팽목항에서 광화문까지 도보순례를 한다. 일차적으론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독려하는 목적이다. 아울러 근대 이후 지금까지 한반도에 새겨진 분열의 역사를 되새기고, 역사적 진실을 마주할 내면의 용기를 회복하기 위한 순례이기도 하다.
순례단은 지난달 29일 서울에서 출발해 전라남도 진도 팽목항에 도착했다. 진도체육관에서 하루를 묵은 뒤, 도보순례를 시작한다. 지난달 30일 팽목항을 떠나 오는 18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 도착하는 일정이다. 이들은 순례 동안 매일 글을 쓰기로 했다. 그리고 그 글을 <프레시안>에 싣기로 했다. 도보순례단의 글을 소개한다. 편집자
이제는 내가 걷는 게 아니다. 길이 나를 걷는다. 여전히 머릿속에서 되뇌는 말…. 무슨 말과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이 슬프고 끔찍한 죽음 앞에서…. 유가족의 오열 앞에서…. 불의한 사회구조 속에서…. 틈틈이 세월호 사건 관련 소식을 접하기 위해 인터넷 뉴스를 보다가 다시 보게 된 20여 분간의 ‘세월호 대국민 담화 발표’는 어이없게도 더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여전히 부정당선 의혹을 받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의 담화는 ‘말’로써는 이미 세월호 사건에 대한 견해와 태도를 밝혔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세월호 침몰사고가 발생한 지 오늘로 34일째가 되었습니다. 온 국민이 소중한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의 아픔과 비통함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대통령으로서 국민 여러분께서 겪으신 고통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국민 여러분, 지난 한 달여 동안 국민 여러분이 같이 아파하고, 같이 분노하신 이유를 잘 알고 있습니다. 살릴 수도 있었던 학생들을 살리지 못했고, 초동대응 미숙으로 많은 혼란이 있었고, 불법 과적 등으로 이미 안전에 많은 문제가 예견되었는데도 바로 잡지 못한 것에 안타까워하고 분노하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 이번 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최종 책임은 대통령인 저에게 있습니다. 그 고귀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대한민국이 다시 태어나는 계기로 반드시 만들겠습니다!!” (JTBC <뉴스 특보> 대통령 대국민 특별담화 중, 강조는 인용자)
“(…) 나는 이 나라가 무섭습니다/ 그대들이 죄 없이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동안/ 부자들은 돈을 세고/ 올드보이들은 표를 계산하고/ 이 나라는 그대들의 주검을 세는 게 일이었습니다./ 폐가와 같은 곳에 공작과 감시의 거미줄만 뒤엉켜 있고/ 이윤에 중독된 땅에서 생명들이 돌멩이처럼 울고 있는/ 나는 이 나라가 두렵습니다/ 나는 그대들의 이름을 모릅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시인입니다/ 그러나 단 한 사람도 살려내지 못하고/ 몇 날 며칠 가라앉는 배를 그냥/ 바라보기만 했던 걸 생각하면/ 꺼내달라고 살려달라고/ 뒤집힌 배 안에서 손가락뼈가 부러지도록/ 뭔가에게 매달렸을 그대들에게/ 이 나라가 무슨 짓을 했는지 생각하면/ 나 또한 그런 나라의 금수만도 못한 시인입니다/ 이건 시도 아닙니다/ (세월호 추모시집 “우리 모두가 세월호였다” 고은 외 68인, 박철, 이 나라가 무슨 짓을 했는지 중)
이미 현 정부는 어떻게 해야 할지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전혀 그대로 실행되지 않고 있다. 계속 기다려야 할까?
“현관문 열어두마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 네 방 창문도 열어두마 한밤중 넘어올지 모르니/ 수도꼭지 흐르는 물속에서도 쏟아진다 엄마 엄마 소리/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지는 빗줄기 뚫고 널 맞으러 가마/ 네가 오지 않으니 내가 가마 맨몸으로 가마 두들겨 맞으며 가마/ (…) 얼마나 추웠니 아가야 이리 오렴 젖은 기저귀 갈아줄게/ 다리 힘차게 차며 발랑거리는 아가,/ 알처럼 동그랗고 하얀 배는 영영 내일을 낳지 못하겠구나/ 가뭇없이 사라진 물의 나이테처럼 영영 나이 먹지 않겠구나/ 사랑해요 저를 용서하세요,/ 물에 찍힌 마지막 말./ 말이 되지 못한 공기 방울/ 사랑한다 아아 아가야 용서해다오 온통 눈물뿐으로/ 출렁이는 저 바다처럼 우우 우릴 용서하지 마라/ 기다려 너에게로 갈게……/(…)”
(세월호 추모시집 “우리 모두가 세월호였다” 고은 외 68인, 김해자, 아기단풍 중)
이 상황에서도 우리는 어렵게 희망을 말하지만, 정작 우리도 세월호라는 나라에 살고 있음에, 힘겹게 입을 열었다가도 다시금 할 말을 잃게 만든다. 그래서 온 몸으로 도보순례 길에 오르며 슬픔에 우는 이들과 함께, 정의에 기뻐하는 이들과 함께 하면서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나와 우리 그리고 근현대사를 돌아보며 외롭고 힘없다는 이유로 잘못된 권력 앞에 천대 받는 이들을 위해 온몸으로 부대끼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부대끼며 하나가 되어가나 보다. 이제는 내가 걷는 게 아니다. 길이 나를 걸으며 근현대사의 아픔을 기억해 달라, 제발 변해라 호소하기도, 미안하다며 내 앞의 시선에 있는 길이 발바닥으로, 각 마디마디 관절로, 온 몸으로 스며들더니 이내 대지의 일부분으로서 하나가 된다. 온 몸 마디마디 관절과 발바닥과 무릎관절이 받아들이기엔 너무나도 정들기 힘들었던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마저도 어느새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며 한 몸이 되고, 그 아스팔트를 빠른 속도로 달리던 승용차 이용자도 다시 돌아와서 드릴 게 이거밖에 없다며 건네주는 팔뚝만한 고구마와도, 사과와 김밥과 홍시(감) 피로회복제와도 따뜻한 정과 함께 내 안에 모심으로 한 몸이 되고, 들꽃과 새소리, 파이팅을 외쳐주시는 이들, 순례단 앞사람의 발걸음 소리와 나무지팡이 소리, 바람과 함께 묵주 돌리는 소리, 해 기울기에 따라 또 다른 나와 함께 발맞춰 동행 하는 그림자 그 적막함의 길…. 우리는 점점 더 큰 하나가 되어간다.
힘든 여정이지만 곳곳에서 베풀어 주신 따뜻한 마음과 표현의 손길, 위로와 평안의 인사와 나눔의 시간, 각자의 고백과 확신 그리고 헌신, 시련을 극복할 수 있는 응원들로 인해 끝내 진실의 배는 육지를 항해 하더라도 좌초되거나 부서지지 않고 끝까지 승리를 향해 전진할 수 있을 것이다. 힘(권력)없이 산다지만 그 어떤 힘이 더 필요할까. 이 구조악에서도 살아있음 자체가 대단한 힘과 삶의 투지 아닌가.
“슬프다니요/ 절망스럽다니요/ 당신 안에 적이 있군요// 권리를 빼앗기는 것은 속상한 일이지만/ 나날이 새로워지는 생의 의무를 망각하는 일은 더 슬프고 나쁜 일이에요”
(송경동, 싸우는 그대에게)
탄원하듯 나부끼는 노란현수막의 마중을 받으며 마침내 안산에 들어와 분향소의 영정들을 마주하고 흐릿해진 눈망울로 다짐한다. '진상규명이 이루어질 때 까지 끝까지 간다!'
이제 우리는 곧 최종 목적지인 서울 광화문까지 갈 것이다. 그리고 그 최종 목적지는 또 하나의 시작점이 될 것이다.
- '팽목항에서 광화문까지' 생명평화 도보순례 <2> "우리는 왜 세월호 희생자들에게 미안했던 걸까?" <3> "'죽음의 권세'가 지배하는 세상, 생명의 길을 걷고 또 걷는다" <4> "걸으면 생명이 보인다" <6> "강변 꽃길 대신 매연 가득한 길을 걷는 이유" <8> "세월호 희생자 이름 적은 공책을 품고 갑니다" <14> "한국판 킬링필드를 걷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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