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성직자와 신자들이 팽목항에서 광화문까지 도보순례를 한다. 일차적으론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독려하는 목적이다. 아울러 근대 이후 지금까지 한반도에 새겨진 분열의 역사를 되새기고, 역사적 진실을 마주할 내면의 용기를 회복하기 위한 순례이기도 하다.
순례단은 지난달 29일 서울에서 출발해 전라남도 진도 팽목항에 도착했다. 진도체육관에서 하루를 묵은 뒤, 도보순례를 시작한다. 지난달 30일 팽목항을 떠나 오는 18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 도착하는 일정이다. 이들은 순례 동안 매일 글을 쓰기로 했다. 그리고 그 글을 <프레시안>에 싣기로 했다. 도보순례단의 글을 소개한다. 편집자
가을의 화창한 날씨와 맑은 공기가 지리산 산자락 아래 시골길 전체를 덮고 있다. 들녘엔 벼가 노랗게 익어 고개를 숙이고, 코스모스가 가로수로 활짝 피어있다. 나비들도 날고, 가을의 단풍들도 물들 준비를 하고 있다. 이런 아름다운 가을을 함께 즐기고 나눌 수 없는 세월호 희생자와 실종자, 그리고 유가족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너진다. 광화문에서도 유가족이 오래 단식을 해왔고, 바로 얼마 전이었지만, 교황 프란치스코가 방문하고, 유가족들을 만났을 때만해도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는 아주 작지만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분이 가자, 정치권과 검찰은 계속해서 힘 빼기를 하고, 지치고 힘들게 만들었다. 그들이 오히려 사건의 진실을 앞장서서 밝히고, 유가족들의 수고를 덜어주고 위로해야 할 입법부와 사법부 그리고 청와대의 국가최고 권력기관이 아주 냉정하게 유가족에게 등을 돌리는 현실이다. 대한민국의 최고 위치에 있는 분들에게 큰 기대도 하지는 않았지만, 이정도일 줄을 이제야 그들의 실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런 무거운 마음을 안고, 우리 일행은 새벽 일찍 출발하여 성공회 정의사제단과 평신도 일행이 걷고 있는 투쟁의 길에 동참하기 위해 김제에 왔다. 아침 기도회에서 박순철 신부님께서는 오늘의 묵상 과제를 주셨다. 그것은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다. 나는 속으로 지금과 같은 유가족의 어려움, 정치권과 검찰에 대한 실망이 큰 때에, ‘무슨 선물?’하면서, 조금은 무관심한 마음을 가졌다. 걷기가 시작되었는데, 묵언으로 걷는 것은 상당히 좋았다. 자신을 돌아보며, 자연을 볼 수 있었고, 세월호를 다시금 깊게 되뇌게 하는 계기를 주었다. 오후 늦게까지도 이러한 상황에서 ‘하느님의 선물’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안 갔고, 오히려 콧방귀(?)를 뀌었다고나 할까?
그런데 도착지에 거의 다다르나, 몸도 힘들고, 한발 한발 내딛는 것도 지칠 무렵, 별안간 스치는 기억이 났다. 그것은 약 일주일 전쯤인 10월 첫 주에, 세월호의 단원고 사망자 중에 한 어머님께서 광화문 집회에 나오셨다. 어머님은 자기는 이런 집회들에 한 번도 참여해 본 적이 없는 평범한 주부이었다고 인사를 대신했다. 그분은 세월호 이후 진실이 은폐되고, 진상규명이 제대로 되지 않아 이러한 모임들에 참여하였다고 한다. 자기는 교회에 다니는데, 며칠 전 꿈에 아들이 나타나 집에 왔기에, 엄마가 의아해 하면서, “너 00 맞지?” 하는 말을 다섯 번이나 하니, “맞다”고 했다. 엄마가 가슴이 벅차 있을 때, 아들이 “지금 엄마가 하는 일이 옳은 일이예요”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갔다고 전한다. 그래서 엄마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지치지 않고, 장기전으로 나갈 것이라는 말로 마쳤다.
현재 진행되는 재판과정을 보면, 이렇게 국민적 슬픔을 겪은 사건에 대해서, 무성의하다고 할까? 유가족들이 처음부터 사건의 실체를 밝혀 달라고 줄기차게 요구했다. 곧 국가 권력기관들과 세월호 선주와 회사의 구조적인 토착비리와 권력형 비리를 밝혀내, 다시는 정치와 경제와 국가기관이 비리의 유착으로 안전에 무감해지고, 국민들이 희생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 사회구조적인 독버섯은 잠시 피해있는 듯하다가, 곧바로 피어오를 것이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 첫 번째 징후가, 유가족이 원하는 특별검사제를 정치권이 거부한 것이다. 여당은 법, 법, 법 하면서 거절했고, 야당은 유가족의 마음으로 모두가 치열하게 싸우기보다는 적당히 할 만큼 했다는 쇼를 보여주는데 그쳤다. 두 번째 징후는 재판이 시작되자마자, 검찰은 권력 비리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단정지어 발표했다. 앞으로 치밀하게 진실을 밝혀나가야 할 대한민국의 검찰이 서둘러 종결지으려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검찰은 유병언이 죽었기에 더 이상 어떻게 파헤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어쩌면 유병언이 자살이든, 타살이든 죽음으로 인해,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그의 죽음이 곧 면죄를 주기 때문이다. 검찰과 정치권은 유가족들의 억울하고, 한 맺힌 절규와 눈물을 듣는 척, 보는 척 넘어가고, 언론은 지금 재판정에 선 유병언의 아들과 그를 비호했던 사람들의 눈물들을 더 감동적으로 보도하여 진실을 덮어 넘어가려는 인상을 받는다.
세월호 유가족의 김영오 유민아빠의 40일 단식에 이어, 기독교에서 방인성, 김홍술 목사님이 40일 단식을 하셨다. 이들의 죽을 각오의 순교적인 정신의 가장 큰 동기는 바로 ‘진실규명’이다. 전국에서 많은 시민들과 종교인들이 단식에 동조하여 참여하고 있다.
오늘 전주까지 도보 행진을 하면서, 김제와 전주의 시민사회 단체들과 목회자들께서 지원과 후원뿐만 아니라, 함께 도보에 참여도 하셨다. 큰 힘이 되었다. 놀랄 일은 3~4살의 아주 어린 꼬마들도 어른들과 똑같은 속도로 걸었고, 초등학생도 완주했고, 더 어린 아기도 엄마 등에 업혀 함께 했다. 제발 우리 어린 꼬마들이 세월호에 대한 올바른 진실규명을 하여, 안전한 미래 사회를 만들어 달라는 간절한 염원이 담겼음을 느꼈다.
하느님의 선물은, 올바른 일을 하는 것.
- '팽목항에서 광화문까지' 생명평화 도보순례 <2> "우리는 왜 세월호 희생자들에게 미안했던 걸까?" <3> "'죽음의 권세'가 지배하는 세상, 생명의 길을 걷고 또 걷는다" <4> "걸으면 생명이 보인다" <6> "강변 꽃길 대신 매연 가득한 길을 걷는 이유" <8> "세월호 희생자 이름 적은 공책을 품고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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