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기사만큼은 '정치적 논조', '진영논리', '눈길끌기' 용으로 통계자료를 왜곡 해석해서 쓰지는 말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 사회에 대한 비판을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너무 무리한 해석을 해버리면, "무지 또는 고의"라는 역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8일 최재성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국세청 자료를 근거로 국정감사용으로 충격적인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상위 1%가 배당소득 70%, 이자소득 44.8%를 독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진보진영 언론은 사설까지 동원해 "금융자산에서 발생하는 소득의 불균형이 수치로 확인됐다"면서 큰 의미를 부여했다.
그런데 도대체 통계의 모수가 어떤 성격의 것인지 보도자료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 보도자료를 인용한 대다수 언론들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전체 부의 불평등을 보여주는 통계분석 결과처럼 보도되고 있다.
"우리가 무슨 아프리카 독재국가도 아니고...부의 불평등이 이 정도로 심할까"라는 의문이 들어 확인해보니, 금융소득 중 배당소득이 발생한 개인 882만 여명과 이자 소득이 발생한 4700만 여명이 이 통계의 모수다. 이것이 최 의원이 분석했다는 '2012년 소득별 100분위 자료'의 실체다.
국내 전체 부의 불평등 보여주는 통계인가
그런데 배당 및 이자소득의 전체 모수는 법인까지 포함하면 훨씬 크다. 게다가 비과세와 비거주자에 해당하는 경우는 이 '2012년 소득별 100분위 자료'에서 빠져 있다.
또한 금융소득은 그 자체가 "돈이 돈을 버는 소득"이다. 만일 이 '2012년 소득별 100분위 자료'에 나오는 소득이 국내에서 발생하는 소득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고, "상위 1%가 70%를 가져가는 비율"이 그대로 적용된다면 정말 충격적일 것이다.
그런데 '2012년 소득별 100분위 자료'에 나오는 금융소득은 배당 11조 3000억 원, 이자 24조 8000억 원 정도로 합해서 36조 원 정도다. 반면 근로소득 규모는 422조 원에 달한다. 근로소득의 경우 상위 1%가 6.4%를 차지한다. 종합소득은 상위 1%가 22.9%의 소득을 올린 것으로 나타난다.
만일 국내 부의 불평등을 지적하기 위해 "상위 1%가 부의 70%를 차지하는 것"으로 오인하게 만든다면, 오히려 현실의 문제점에 무감각하게 만드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최 의원의 보도자료를 보고 일각에서는 요즘 유행하는 토마 피케티의 이론이 한국에서 이미 실현되고 있다는 증거로 받아들일 태세다. "돈이 돈을 벌어들이는 세습 자본주의가 이미 한국에서 끔찍할 정도로 실현되는 것을 보여주는 통계"로 받아들일 만하기 때문이다.
장하성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는 <한국자본주의>라는 신간을 통해 "한국에서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낮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는 주장을 통계자료를 근거로 제시했다. 그는 각종 인터뷰에서 "비판을 하더라도 외국의 수입이론을 그대로 한국에 적용해서 비판하지 말고, 한국의 현실이 정말 어떤지 알고서 비판하자"면서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겪지도 못할 정도로 제대로 된 시장경제를 거치지 못한 한국에서 신자유주의의 잣대로 비판하는 것은 넌센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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