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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암 치약? 파라벤은 발암물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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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발암 치약? 파라벤은 발암물질이 아니다

[안종주의 건강사회] 발암물질 없는 '발암 치약'이 국민 불안 부추긴다

2014년 국정감사를 앞두고 갑자기 발암 치약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이 논란에 소비자들은 한편으로는 어리둥절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불안해하고 있다. 하루에 3번 이상 사용하는 치약에 발암물질이 들어 있다는 이야기는 정말 경악할 만하다. 국정감사를 앞두고 새누리당의 한 의원이 '발암 치약' 문제를 제기해 최근 며칠간 '치약 보존제'가 인터넷과 언론을 달구고 있다. 이 논란을 지켜보면서 20년 전 환경 담당기자로 있을 당시 겪었던 유사 사건을 떠올렸다.

당시에도 국정감사 때가 문제가 벌어졌다. 농어촌 지역의 먹는물(수돗물) 가운데 트리할로메탄과 피시비(PCB, 다염소화비페닐) 등 유해물질의 농도 조사 결과를 제출하라는 국회의원의 요구에 따라 환경부가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는 일부 먹는물에서 인체발암물질(세계보건기구 국제암연구소 분류에서 1군 발암물질)이며 잔류성유기오염물질(POPs)인 피시비가 검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필자는 이 자료를 보고 깜짝 놀라 이를 신문에 단독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환경부는 펄쩍 뛰었다. 검출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정정 기사를 내달라고 했다. 실무자가 집계 과정에서 실수를 해 불검출인데도 상당량 검출된 것으로 국감자료가 잘못 나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내용을 담은 보도자료를 발표하라고 했다. 그러면 정정기사를 내주겠다고 했다. 그러자 환경부 공보관실에서는 그냥 없었던 것으로 하자고 했다. 먹는물 피시비 검출 사건은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다.

아마 식품의약품안전처도 이번 국정감사 자료를 제출하면서 치약 보존료로 널리 쓰이는 파라벤이 기준치를 넘은 제품이 없었는데도 2개 있었다며 잘못된 수치를 내놓아 치약 보존제(방부제) 유해 논란에 일정 정도 기여를 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가 되자 식약처는 자료를 어설프게 내놓았다고 공식 시인했고 이 때문에 관련자 징계 등 곤욕을 치르고 있다.

식약처 자문위원장이라고 한 어느 대학교수, '발암 치약' 논란 키운 일등공신

최근 들어 치약에 사용한 파라벤과 트리클로산 성분이 유해하다는 문제 제기가 소비자고발 프로그램 등을 통해 있었다. 여기에 국정감사 부실 자료를 계기로 식약처 자문위원장(방송에 출연해 어떤 자문위원장인지는 밝히지 않았으며 단지 자문위원장이라고만 답함. 식약처에 문의한 결과 어떤 자문위원장인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음)이라고 하는 박용덕 경희대 치의학대학원 교수가 텔레비전과 라디오 방송 등에 잇따라 출연해 우리나라 치약에 사용되는 보존제 성분인 파라벤과 트리클로산이 독성이 매우 강한 물질이고 고환암, 유방암 등을 일으키는 발암물질이며 정자수를 감소시키는 환경호르몬 물질이라고 지적하면서 '발암 치약' 논란을 증폭시키고 국민 불안을 부채질하고 있다.

그는 방송에서 "이들 물질들은 아주 작은 양이라도 지속적으로 쓰게 되면 구강 내에 잔류하게 되지 않습니까. 이 잔류양이 일정하게 누적되면 특히 여성 같은 경우에는 성 호르몬에 작용을 미쳐서 생리불순을 일으킬 수 있고요. 청소년 같은 경우, 남성 같은 경우에는 성 호르몬, 즉 고환암까지를 일으킬 수 있는 아주 무서운 물질입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또 파라벤은 발암물질이기 때문에 2009년 치약제조회사에게 이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자신이 권고해 일부 회사는 이를 받아들여 다른 종류의 보존제를 사용하고 있지만, 큰 기업들은 자신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은 채 계속 파라벤을 사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의 말대로 파라벤이 발암물질이라면 기업에 사용 금지를 권고할 것이 아니라 당장 리콜조치하고 판매·사용금지 조치를 하는 것이 맞다.

최근 일본 방사능 문제 등으로 인한 수산물 기피 파동을 겪는 등 위해 관리와 관련해 정부 부처와 정부기관에 대한 국민 불신이 아직 상당하다. 이런 가운데 식약처 자문위원장이라고 하는 치의학 교수가 정부 발표나 설명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소비자들은 헷갈릴 수밖에 없다. 소비자들에게 자문위원장은 정부쪽과 매우 가까운 사람으로 인식된다. 그런 사람이 하는 이야기인 만큼 치약 보존제에 정말 심각한 문제가 있으려니 여기기 쉬운 것이다.

ⓒ연합뉴스

국제암연구소 발암물질 목록에 파라벤과 트리클로산 들어 있지 않아

실제로 박 교수의 발언을 전해들은 누리꾼들은 "파라벤 치약 유해 논란, 식약처-박용덕 교수, 대체 누구 말을 믿어야 해", "파라벤 치약 논란 해명, 그래도 불안하다. 많이 헹구면 괜찮은 걸까", "파라벤 치약 논란 해명, 무서워서 치약 못 쓰겠네. 그냥 소금으로 이 닦는 게 맘 편할 듯" 등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발암 치약' '유해 치약' 그 진실이 무척 궁금했다. 6일 하루 종일 이 두 물질과 관련한 논문과 각종 자료, 관련 사이트 등을 뒤졌다. 어떤 물질이 발암물질인지 여부를 알아보는 간단한 방법이 있다. 과학자의 세계에서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바이블로 통하는 발암물질 목록이 있다. 바로 세계보건기구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분류·발표해놓은 발암물질 목록이다. 이 목록과 관련 보고서 어디에도 박 교수의 주장처럼 이들 두 물질이 유방암과 고환암을 일으키는 발암물질이라는 사실은 없었다.

발암물질 분류에 관한 한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국제암연구소는 세계 각국의 과학자들이 벌인 최신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최고 전문가들을 한데 모아 각종 (유해)물질 또는 (유해)인자의 발암성 여부와 인체 발암 정도를 평가한다. 또 한 번 평가를 한 물질이라도 발암과 관련한 새로운 자료가 축적되면 재평가를 해 다시 분류한다.

평가 결과 사람에게 암을 일으키는, 충분한 증거가 확보된 것에 대해서는 인체발암물질(그룹 1)로 분류하고 동물에게서는 발암성이 있으나 사람에 대해서는 그 증거가 불충분할 경우에는 인체발암추정물질(그룹 2A)로, 동물에게서 암을 일으키는 증거가 있기는 하지만 아직 충분치 않은 경우는 인체발암가능물질(그룹 2B)로 분류하고 아직 인체 발암성 여부를 분류할 만한 자료가 없는 것은 그룹 3으로, 인체발암물질이 아닌 것으로 추정되는 물질은 그룹 4로 각각 분류한다.

현재 인체발암물질은 석면, 피시비 등 모두 114개 물질(인자)이고 인체발암추정물질은 68개 물질(인자)이며 인체발암가능물질은 모두 283개 물질(인자)이다. 그룹 3에 해당하는 물질(인자)은 504개 물질(인자)이며 그룹 4에는 단 한 개의 물질만 속해 있다. 이 물질(인자)들을 모두 더하면 970개인데 파라벤과 트리클로산이란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다시 말해 박 교수가 발암물질이라고 주장한 이들 두 물질은 발암물질은커녕 발암추정물질, 발암가능물질도 아닌 것이다.

파라벤 환경호르몬 근거 미약, 독성 매우 낮은 편

박 교수는 이들 물질이 또 내분비계장애물질, 즉 환경호르몬이라고 지적하고 있으나 이 또한 근거가 아직까지는 미약하다. 동물실험 결과 파라벤은 매우 약한 에스트로겐 구실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생체(in vivo) 실험 결과 치약 보존제로 주로 쓰이는 부틸파라벤은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라디올보다 호르몬 효과가 10만 배나 더 낮은 것으로 드러났다.

파라히드록시벤조에이트(para-hydroxybenzoate) 계열의 화학물질을 화학산업계에서는 보통 파라벤(paraben)이란 이름으로 부른다. 전 세계적으로 파라벤은 화장품이나 제약업에서 보존제로 널리 쓰이고 있다. 파라벤은 여러 형태로 효과적인 보존제 구실을 한다. 파라벤화합물과 그 염은 주로 항균·항진균제로 쓰인다. 파라벤은 샴푸, 보습제, 면도용젤, 메이컵, 치약 등에 들어가며 식품첨가물로도 사용되고 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슈퍼푸드로 엄청난 각광을 받고 있는 블루베리에도 박 교수가 문제 삼은 '발암 치약' '유해 치약' 성분인 메틸파라벤이 들어 있다면 어떤 생각을 하겠는가. 이것은 사실이다. 여기서 메틸파라벤은 항균제 역할을 한다. 대부분의 파라벤들은 식물에서 천연적으로 존재한다.

국제학술지에 발표된 논문을 보면 설치류를 대상으로 파라벤의 급성·만성 독성 영향을 조사한 결과 사실상 독성이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파라벤은 박 교수가 이야기한 것처럼 미량이라도 인체에 농축돼 심각한 악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급속히 흡수돼 대사를 거쳐 몸 밖으로 배출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파라벤이 유방암을 일으킬 수 있다는 논란은 2004년 영국의 분자생물학자인 필리파 다버(Philippa Darbre) 등이 발표한 논문에서 시작됐다. 이 논문에서 연구 샘플로서는 매우 작은 숫자인 20명의 유방암 조직 그램당 평균 20나노그램(10억 분의 1그램)의 파라벤이 검출됐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이런 발견과 함께 몇몇 파라벤은 부분적으로 유방암 발달에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 에스트로겐을 모방하는 능력을 지닌다는 기술 때문에 어떤 이들은 유방조직에 존재하는 파라벤이 유방암 발생과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현재까지의 연구 결과로는 둘 사이의 연관관계는 없으며 연구가 충분히 더 이루어져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번에 일부 국회의원과 박 교수 등이 파라벤과 함께 문제 삼은 또 다른 치약 보존제 성분인 트리클로산, 즉 5-chloro-2-(2,4-dichlorophenoxy)phenol도 파라벤처럼 항균·항진균 효과를 지니고 있다. 트리클로산은 1970년대부터 병원 소독제로 널리 사용되어 왔으며 현재는 비누, 샴푸, 치약, 입안닦이, 탈취제, 설비 세정과 함께 침대, 장난감, 항균양말, 항균 쓰레기봉투, 부엌용품 등을 포함한 각종 소비자용품에 쓰인다.

치약에 항균용으로 사용한 트리클로산은 충치 감소와 치석, 치은염, 치은 출혈을 줄여준다고 보고되고 있다. 래트(쥐) 실험 결과 트리클로산이 갑상선호르몬과 테스토스테론의 농도를 낮춘다는 연구보고가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고농도의 트리클로산에 노출됐을 경우의 이야기다.

'발암 치약' 논란은 상술의 하나(?), 제 2의 커피믹스 인산염 논쟁(?)

트리클로산 사용이나 규제에 대한 국제적인 흐름을 보면 점차 규제를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에서는 2010년 천연자원보전위원회가 식품의약품청(FDA)이 트리클로산 함유 제품에 대한 독성을 재검토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고발한 적이 있다. 또 FDA가 트리클로산과 매우 유사한 화합물인 헥사클로로펜에 대해 사용 금지를 내리자 일부 학자들은 최근(2014년) 미국 내에서 트리클로산을 완전 사용금지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현재 미국에서는 트리클로산 함유제품은 반드시 이를 표기토록 하고 있으며 유럽에서도 화장품에 트리클로산을 사용할 경우 의무적으로 표시토록 규제를 하고 있다.

한편 미국 FDA는 2013년 12월17일 트리클로산과 관련한 박테리아 내성, 발암 잠재성, 내분비계장애 및 발달 영향 등에 관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는 점을 거론하면서 손 소독제로서는 일반적으로 안전한 것으로 본다는 초안규정을 발표했다. 이런 가운데 미네소타 주지사는 지난 5월16일 미네소타 주 안에서 팔리는 대부분의 가정위생용품에 트리클로산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이 법안은 2017년부터 발효된다.

이번 발암 치약 논란을 지켜보면서 지금은 논란거리가 되지 않고 조용해졌지만 한 때 소비자를 불안케 했던 커피믹스의 카세인나트륨과 인산염 유해 논란이 떠올랐다. 당시 이 논쟁은 새로운 제품을 내놓은 회사가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전략에서 비롯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와 유사한 일이 치약 시장에서도 이번에 벌어지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마저 든다. 물론 어떤 물질이 지금 발암성이 없거나 독성이 없다고 해서 완전히 면죄부를 받은 것은 아니다. 끊임없이 의심하고 연구를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오늘의 안전한 물질이 내일의 위해물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번 '발암 치약' 논란을 계기로 치약을 듬뿍 묻히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치약을 사용한 뒤 입안을 헹구는 횟수는 더 많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불필요한 '발암 치약' 논쟁은 시민들로 하여금 언론의 자질과 전문가의 전문성을 의심케 만든다. 건강한 사회에서는 건강한 논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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