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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오바마는 루스벨트가 되지 못할까?

[김윤태 칼럼] 제도적 변화를 이끄는 복지정치의 중요성

2008년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는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를 받는다. 1929년 대공황처럼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시작한 금융위기는 세계적 규모의 대기업의 연쇄 파산을 일으키고 유럽의 재정 위기와 세계적 차원의 경제 불황을 일으켰다. 세계 금융위기는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의 일자리와 생활을 위험에 빠뜨리고 생활수준을 악화시켰다. 2007년과 2010년을 비교할 때 미국의 장기 실업률은 10.0%에서 29.0%로 상승하였다. 이는 1929년 대공황 이후 가장 심각하게 세계경제를 강타한 사건이었다.

월가를 점령하라, 그 이후?

금융위기에 저항하는 대중의 반응은 금융 시스템과 경제 체제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되었다. 2011년 미국 뉴욕에서 시작한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운동이 극적인 사례이다. 이러한 저항운동은 1930년대의 대공황 이후 대중운동과 1960년대의 시민권 운동처럼 사회운동이 폭발하면서 복지국가를 확대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예측이 제시되었다. 반면에 정부의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한 긴축 정책을 도입되면서 장기적으로 복지가 축소되고 소득 불평등이 확대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모든 나라가 동일한 정책을 선택한 것은 아니다. 최근 영국 등 상당수의 국가에서 긴축 정책을 추진하는데 비해, 미국 정부는 주요 금융기관의 구제와 경기 부양을 위해 양적 완화 정책을 선택하고, 막대한 정부 예산을 투입하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직후 국정연설에서 “중산층의 즉각 복원”과 “신속한 경제회복”을 공언했다. 2009년 2월 오마바 행정부는 ‘미국 경제회복 및 재투자법’(ARRA: American Recovery and Reinvestment Act of 2009)을 제정하였으며, 총 7,870억 달러 규모의 예산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부시 행정부의 정책과 달리 막대한 재정을 동원한 케인스주의 경기 부양책을 추구했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는 1930년대 대공황 시대의 루스벨트 행정부처럼 실질적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가?

정당 양극화가 복지를 망쳤다

왜 오바마 행정부는 1930년대 대공황 시대의 루스벨트 행정부처럼 사회보장 개혁을 이룩하지 못했는가? 이는 단순히 경제위기의 결과라기보다 제도적 제약과 정치 전략의 실패로 인한 결과이다. 내가 2014년 <비판사회정책>에 기고한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빈곤정책과 복지정치의 변화’ 제목의 논문에서 지적한대로, 미국의 적대적 당파 정치가 의회에서 합의 정치를 추진하기 어렵게 만들면서 복지 확대의 정치가 실패로 끝났다. 1980년대 이후 공화당과 민주당의 이념적 대립이 커지면서 정당 양극화가 심화되고 정당 정책의 타협과 절충을 어렵게 되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공화당의 지도부가 깅그리치 등 강경 보수파로 교체되면서 정치적 양극화가 본격화되었다. 현재의 정치적 양극화는 1890년대의 미국의 도금 시대(Gilded Age)에 필적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1980년대 이후 공화당의 보수적 이데올로기의 등장은 부유층의 정치적 전략의 결과로 보아야 한다. 조세 감면과 복지 축소를 주장하는 공화당의 이념이 더욱 강고해지면서 소득 불평등과 빈부 격차는 더욱 커졌다. 결과적으로 1920년대 대공황 직전과 현 시기는 낮은 수준의 경제 규제, 부와 소득의 집중, 경제 호황에 뒤이은 금융위기라는 사건 전개는 매우 유사한 특징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정치인과 정책 결정자들은 더욱 고소득층의 이익에 반응하는 태도를 보였다. 미국 정치학자 래리 바텔스가 <불평등 민주주의>에서 분석하였듯이, 심지어 민주당 정치인들도 기업의 이익을 옹호하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는 주요 정당, 대학, 언론이 부유층의 이해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만들어 정치의 보수화와 우경화를 촉진하였다.

다른 한편, 미국 역사학자 토마스 프랭크가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에서 지적한대로, 노동자와 저소득층 인구가 투표에 참여하는 비율은 낮을 뿐 아니라 자신의 사회경제적 이익보다 인종주의와 종교적 논쟁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특히 복지 수급자 대다수가 흑인이라는 인종주의적 편견을 가진 백인 노동자의 복지국가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다. 그로 인해 민주당 정치인들도 복지 확대를 지지하는 진보적 이념과 가치를 포기하거나 후퇴하는 경우가 많으며, 심지어 기업과 부유층과 긴밀한 연결을 유지하는 경우도 많다. 결국 미국 정치에서 반(反)복지 정치연합은 친복지 정치연합보다 훨씬 더 많은 자금을 획득하고, 정치적으로 잘 조직되어 있으며, 체계적이고 전략을 구사하면서 효과적으로 복지 확대의 정치를 봉쇄하고 있다.

©연합뉴스


오바마의 뼈아픈 정치적 실패

미국 정치의 구조적 제약과 함께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선택도 명백하게 한계를 보였다. ARRA 법안은 금융위기로 인해 빈곤 상황에 빠진 사람들의 지지도 획득하지 못했다. ARRA 법안이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생활 조건을 충분하게 개선하지 못하면서 복지 확대를 지지하는 여론은 소수화되었으며, 친복지 정치연합은 분명하게 약화되었다. 오바마 행정부는 경제 회복에 따라 고용율이 자동적으로 상승할 것으로 예상하고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등 새로운 대안 정책을 추진하지 않았다. 연방정부의 경기부양 예산은 확대되었지만, 주 정부의 부채 규모를 제한하면서 오히려 주 정부는 복지 삭감과 조세 인상을 추진하는 경우도 많았다. 특히 오바마 행정부는 오바마케어에 관한 정치적 논쟁에 발목을 붙잡혀 왜 ARRA의 성과가 충분하지 않았는지, 왜 ‘미국 일자리 법’이 필요한지 국민들에게 설명하고 설득하는 정치적 노력에 집중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2008년 오바마를 지지한 많은 중도파와 중산층은 과도한 복지 지출과 큰 정부가 경기 회복을 방해한다는 공화당의 반론에 휩쓸려갔다.

1930년대 뉴딜을 비롯한 사회개혁을 추진했던 루스벨트 행정부와 달리 오바마 행정부는 미국 복지국가의 제도적 제약을 극복할 전략이 부족했다. 미국에는 사회보장을 제외하고는 단일한 원리로 운영되는 포괄적 복지제도가 없으며, 주 정부마다 상이한 규정을 가진 복잡한 복지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복지제도의 특성은 복지제도의 수혜자들이 복지정책에 대해 긍정적 태도를 갖도록 만든데 장애가 된다. 오바마 행정부는 루스벨트 행정부와 달리 이러한 장애에 도전하는 대신 기존의 복지제도를 유지하면서 예산 규모만 일시적으로 확대하였다. 이러한 일시적, 제한적 재분배 조치로 인해 결국 복지제도에 대한 시민들의 긍정적 태도를 강화하고 복지국가에 대한 정치적 지지를 확보하는데 실패하였다.

분기점: 2010년 선거 패배

오바마 행정부의 복지개혁이 난관에 봉착한 분기점은 2010년 11월 의회 선거의 참패이다. 하원 선거에서 민주당의 득표율은 8.4% 감소했고, 63석을 상실하여 다수당의 지위를 공화당에게 넘겨주었다. 상원에서도 민주당은 6석을 상실하였지만, 민주당을 지지하는 무소속 의원을 포함하여 겨우 다수당을 유지했다. 그러나 하원에서 민주당이 다수당 지위를 잃으면서 오바마 행정부의 입법은 심각한 정치적 어려움에 직면하였다. 게다가 경기 회복의 속도가 느린데다가 여전히 높은 실업률이 유지되면서 정부의 인기는 하락하기 시작했다.

2010년 의회 선거 이후 미국 정치의 적대적 당파주의가 강화되어 공화당의 이념적, 정치적 공격이 더욱 격화되었다. 공화당 원내대표 존 보에너는 2010년 의회 선거에서 미국 유권자들이 공화당의 지출 삭감, 정부의 규모 축소, 중소기업 지원 공약에 동의하며, 오바마 행정부의 ‘예산 잔치, 긴급 구제, 밀실 협상’을 거부했다고 주장했다. 티파티(Tea Party)가 장악한 공화당 보수파는 더욱 강경하게 ‘복지’에 대한 혐오감을 표출하였다. 결국 공화당은 2013년 3월까지 ‘오바마케어’의 폐기를 35번이나 시도했다. 급기야 티파티는 연방정부 셧다운 피해를 불사하고 오바마케어의 폐지를 요구하는 강경한 투쟁을 요구했다.

공화당 티파티의 역공

2012년 대선에서 공화당의 부통령 후보였고, 현재 하원의 예산위원장 폴 라이언 하원의원은 오바마케어가 통과된 이후 공공의료 제도인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의 사영화와 대폭 축소를 주장하였다. 그는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 수급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연방정부가 운영하는 건강보험에 가입한 인구 비율은 2007년 27.8%에서 2012년 32.6%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메디케이드와 메디케어의 혜택을 받는 인구 비율도 증가하였다. 공화당은 연방정부가 운영하는 건강보험의 가입자 증가를 건강보험 미가입자의 감소가 아니라 거대한 정부의 출현으로 해석하였다.

다른 한편, 2013년 9월 공화당이 장악한 하원은 앞으로 10년 동안 보충영양보조(일명 푸드 스탬프)의 예산을 400억 달러 삭감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수급자의 수를 많이 줄인 주 정부에게 재정 지원을 확대하는 법안을 제정했다. 1996년 클린턴 행정부의 복지개혁의 시기처럼 다시 복지 수급자를 비난하는 ‘복지 의존’ 논쟁이 재연되었다. 급기야 미국 민주당이 다수인 상원에서도 10년간 보충영양보조 예산을 40억 달러를 삭감하는 법안이 제출되었다. 상원에 보충영양보조 예산의 삭감이 제출된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오바마 행정부 2기의 사회정책의 제약성은 공화당이 장악한 하원의 반대뿐 아니라 대중의 정치적 지지를 확대하지 못한 정치적 결과이기도 하다. 미국 경제학자 폴 그루그먼이 비판한대로, 오바마 행정부는 2008년 집권 초기 경기부양을 효과적으로 추진하지 못했으며, 정부의 재정적자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금융위기 전후 사상 최고 수준에 달한 불평등의 악화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강력한 정치적 의지를 보여주지 않았다. 반면에 2010년 만기가 예정되어 있던 부시 행정부의 감세는 오바마 행정부에 의해 2012년 말까지 2년간 연장되었다. 실제로 조세정책의 변화 없이 사회보장 확대를 추진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였다.

포스트민주주의의 등장?

영국 사회학자 콜린 크라우치는 현대 정치를 '포스트 민주주의(post-democracy)'라는 새로운 용어를 사용하여 분석했다. '포스트 민주주의'는 형식적으로 절차 민주주의가 작동하고 법의 지배가 유지되지만, 민주주의의 근본적 목적을 배신하는 정부가 등장하는 역설적인 상황을 묘사한다. 이러한 비판은 대의민주주의의 딜레마에 대한 지적만이 아니라 신자유주의가 사회 전체를 지배하는 정치적 과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크라우치는 2차 세계대전 이후 1970년까지 발전했던 서구 사회의 '민주적 시기'가 1980년대 자본주의의 지구화로 붕괴되었다고 주장한다.

1980년대 이후 서구에서 확산된 복지국가에 대한 이념적, 정치적 공격은 분명하게 민주주의의 후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하지만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빈곤율과 실업율이 급증한 사태는 명백하게 미국 민주주의에 경종을 울리는 사건이었다. 그 후 조세와 사회정책을 둘러싼 정치투쟁이 본격화되고, 오바마 행정부는 과거의 부시 행정부와 다른 정책 방향을 선택했다. 이러한 정책 변화는 미국의 정치제도와 선거제도와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 합의민주주의와 연정의 전통이 발전한 유럽에서는 정권의 교체에 따른 급격한 정책의 변화가 적은 반면, 다수제 민주주의와 대통령제를 유지하는 미국에서는 정권의 교체에 따른 정책 변화가 큰 편이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 정치와 같이 적대적 당파주의가 극심한 경우 소수정부 또는 소수파 대통령의 권력은 심각하게 제한될 수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부시 행정부와 다른 새로운 정책을 추진할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지만, 정책의 성과는 제한적 수준에 그쳤다. 가장 큰 이유는 오바마 행정부의 사회보장 개혁은 대부분 시기가 한정된 임시적 프로그램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정치적 수사에서 일자리와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실제로 실업과 빈곤에 대한 대담한 전략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정부의 개혁 조치가 만기가 되면서 빈곤 가구 지원과 경기부양 조치의 성과는 사라졌다. 더욱이 2010년 의회 선거에서 민주당이 패배한 후 오바마 행정부는 지속적으로 정치적 난관에 직면하였으며, 공화당과 타협하기 위해서 보충영양보조와 같이 핵심적 빈곤 정책이 후퇴하는 상황에 내몰리게 되었다.

복지정치의 중요성과 교훈

세계 금융위기 이후 오바마 행정부의 경험은 다른 나라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경제적 논리가 복지 축소의 정치를 결정하지 않듯이 정당의 정치적 전략이 복지 정책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 복지 축소와 확대를 둘러싼 정치투쟁은 사회의 정치적 역학관계와 대중의 정치적 지지를 통해 결정된다. 이런 점에서 광범위한 정치적 지지를 획득하는 정치 전략과 효과적인 복지정책의 계획이 복지 확대 정치의 성공을 좌우한다고 볼 수 있다. 복지 확대는 정치인의 선량한 의도가 선거의 승리에 의해 자동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복지 확대는 정치제도의 제약과 기존 복지제도의 한계를 넘어서 광범한 계층이 참여하는 복지연합을 만들 수 있는 정치적 역량이 있어야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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