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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잃은 부모는 표현할 방법이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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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잃은 부모는 표현할 방법이 없어서…"

['팽목항에서 광화문까지' 생명평화 도보순례·<7>] 진도아리랑

성공회 성직자와 신자들이 팽목항에서 광화문까지 도보순례를 한다. 일차적으론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독려하는 목적이다. 아울러 근대 이후 지금까지 한반도에 새겨진 분열의 역사를 되새기고, 역사적 진실을 마주할 내면의 용기를 회복하기 위한 순례이기도 하다.

순례단은 지난달 29일 서울에서 출발해 전라남도 진도 팽목항에 도착했다. 진도체육관에서 하루를 묵은 뒤, 도보순례를 시작한다. 지난달 30일 팽목항을 떠나 오는 18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 도착하는 일정이다. 이들은 순례 동안 매일 글을 쓰기로 했다. 그리고 그 글을 <프레시안>에 싣기로 했다. 도보순례단의 글을 소개한다. <편집자>

보현이를 본 적이 없지만, 길 가다 불쑥 ‘아저씨~’하고 나타날 것만 같구나.

진도 앞바다를 낭만적, 혹은 역사적 장소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게 웬일인가 싶구나. 너를 만나러 간 첫 날, 비가 내리더구나. 말없이 파도치는 바다를 바라보며 예배를 드리는데 어떻게 했는지 기억에 없단다. 귓가에는 어디에선가 들리는 ‘우르릉 꽝’ 하는 반복적인 소리만 기억한다. 먹먹한 가슴에 눈물도 나오지 않았고, 소리 내어 기도도 하지 못했다. 보현이가 그토록 보고 싶어 하고 안기고 싶었던 엄마가 계신 진도체육관에 들러, 네가 배 안에서 구명조끼를 입고 친구들과 기도하면서 엄마 핸드폰으로 보낸 사진을 엄마한테 건네받아 보는 순간 비로소 슬픔과 화남과 부끄러움에 밀려 나오는 눈물을 엄마에게 보일 수 없어 높은 천장만 바라보았단다.

아저씨는 평소 묵주를 이용한 기도를 해 본적이 없단다. 이번에 진도 앞바다를 찾으면서 왠지 축복 받은 새 묵주를 가지고 가고픈 마음에 신부님께 청해 출발하기 직전 받아 내려왔다. 15개의 큰 구슬이 있고 나머지 작은 구슬 합해서 35개가 있더구나. 그래서 15개의 기도 제목을 적어 한 구슬 한 구슬 돌려가며 원하는 바의 기도에 맞는 단어를 되뇌어가며 도보 순례를 하고 있단다. ‘생명, 평화, 환경, 나라, 사회, 안전, 상식, 학교, 교회, 부조리, 건강, 하는 일, 어머니, 아내, 아이들….’ 15개의 둥글고 돌하르방 같은 검은 구슬을 돌려가며 기도 제목을 떠올릴 때마다 두 번째에 있는 구슬이 조금 떨어져 나간 상처에 손이 부딪힐 때마다 마음에 걸리고, 이것에 해당하는 단어가 무엇일까 궁금해 하며 한 걸음 한 걸음 걷는데 유독, ‘안전, 상식, 학교, 부조리’ 같은 단어에 걸리곤 해 걸음을 잠시 멈추고 비 내리는 하늘을 보곤 했단다. 아마 보현이를 만나려 했던 느낌이 든다. 진도 체육관에서 잠을 못 이루고 출발해 진도를 벗어나고 해남을 지나 목포를 들어서는 다리를 지나면서 슬픈 마음을 이제는 벗어버리려고 했단다. 오늘(5일) 광주 5.18 민주 묘지를 참배하면서도 민주 영령보다는 너희들의 명복을 비는 분위기로 일관되는 예배 과정에 따갑고 눈부신 햇살 핑계로 마지막 눈물을 쏟았단다.

오늘 도보 순례 7일 차에 담양 대나무 숲에 자리 잡은 작은 민박집에 고단한 몸을 기대었다. 안주인 배려로 죽순으로 만든 차를 마시고, 바깥주인장의 흥겨운 북소리에 맞춰 별빛 쏟아지는 작은 마당 평상에 둘러앉아 음식을 나누며 창을 듣고, 마지막에는 덩실 덩실 춤까지 추는 시간을 가졌단다.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새는 ‘추임새’라며 분위기를 잡아가는 주인장의 장단에 녹아 들어간 것은, 다름 아닌 아리랑 때문이었다. 각 지방의 특색에 따라 아리랑 음률이 각양각색인데 그 중 ‘진도 아리랑’이 가장 역동적이고 흥겨운 가락이라고 하더구나.

보현아, 그거 아니? 우리 민족은 가장 슬플 때 오히려 역동적인 가락과 춤사위의 진혼곡을 만들어 불러 왔다는 것을….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는 후렴에 무슨 내용을 읊조리고 어디서 추임새를 넣어야 할지 몰라 처음에는 머뭇거렸지만 이내 어우러지는 가락과 슬픈 내용에 눈물이 나면서도 위안이 되더구나.

‘이 땅에 꽃 피거든, 나 없다고 슬퍼 말아요. 내 갈 길 조금 멀어, 먼저 떠났다고 생각해 주세요. 바람처럼 지나온 날들이 너무 짧아 마음 아프겠지만 살아서 못 이룬 내 소원을, 봄 오면 꽃이 되어 피어나리다’라고 하면서 보현이가 어서 나를 꺼내 달라고 말을 하는 듯하는데, 오히려 네가 이제 평안 할 것이다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보현아, 남편을 잃은 아내를 과부라 하고, 아내를 잃은 남편을 홀아비라고 하고, 부모를 잃은 자식을 고아라고 하는데, 자식을 잃은 부모는 그 심정을 표현할 방법이 없어서 단어가 없는 것이란다.

이제 엄마가 슬픔에서 벗어나시라고 네가 마지막 효도를 해야겠다.
담양 하늘에 빛나고 있는 별들에게 기도한다.
오늘 ‘진도 아리랑’의 진혼곡과 엄마의 애끓는 속울음을 네가 받아서 웃어 보라고.
그리고 그 차가워져가는 바닷물 속에서 모습을 보여 달라고.

▲ 성공회 생명평화도보순례단이 광주 5.18민주묘지를 찾았다.ⓒ성공회 생명평화도보순례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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