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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권세'가 지배하는 세상, 생명의 길을 걷고 또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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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권세'가 지배하는 세상, 생명의 길을 걷고 또 걷는다"

['팽목항에서 광화문까지' 생명평화 도보순례·<3>] "세월호 침몰은 한국 사회 영혼의 침몰"

성공회 성직자와 신자들이 팽목항에서 광화문까지 도보순례를 한다. 일차적으론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독려하는 목적이다. 아울러 근대 이후 지금까지 한반도에 새겨진 분열의 역사를 되새기고, 역사적 진실을 마주할 내면의 용기를 회복하기 위한 순례이기도 하다.

순례단은 지난달 29일 서울에서 출발해 전라남도 진도 팽목항에 도착했다. 진도체육관에서 하루를 묵은 뒤, 도보순례를 시작한다. 지난달 30일 팽목항을 떠나 오는 18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 도착하는 일정이다. 이들은 순례 동안 매일 글을 쓰기로 했다. 그리고 그 글을 <프레시안>에 싣기로 했다. 도보순례단의 글을 소개한다. <편집자>

대지는 모든 이들을 받아들인다. 키 큰 사람, 작은 사람, 잘난 사람, 못난 사람, 좋은 사람, 나쁜 사람…. 대지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그 위에 숨 쉬고 살게 하고 마침내 그 속에서 영원히 쉬게 한다. 그래도 한번도 자기의 것이라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인간(human)이라는 말의 영어 어원이 흙(humus)에서 왔나보다. 그런데 겸손(humble)이라는 말 역시 흙에서 왔다고 한다. 역시 흙을 밟고 사는 모든 사람들은 겸손해야 하고, 대지와 같이 너그러워야 하나보다. 그 대지에 사람들은 길을 만들었고 서로가 소통하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가 소통을 하려면 겸손해야 하고 너그러워야 하나보다.

세월호 유족들을 광화문에서 만나고 다시 진도체육관에서 만났다. 사뭇 느낌이 다르다. 광화문에서는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이라는 목표로 모였는데, 진도체육관에서는 아직도 가족 품에 돌아오지 않은 실종자들의 가족들이 길고 긴 기다림의 싸움에 지쳐있는 모습이어서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순간 난감했다. 그 분들은 기억하고 함께 해주기를 간곡히 바랐다. 또한 4월 16일 이후 변한 것이 없는데 세상인심은 무섭게 변했다고 한다. 귀찮은 대상으로 보는 것을 넘어 이제는 혐오하거나 증오하는 사람들까지 생겨난 것에 마음의 상처가 무척이나 큰 모양이다.

올해 이른 봄에는 아주 이상하게도 전국적으로 종목을 가리지 않고 동시에 꽃들이 만발했었다. 남쪽으로부터 서서히 북쪽으로, 일찍 피는 꽃에서부터 늦게 피는 꽃으로 순차적으로 피고 지는 것이 아니라 꽃들이 전국적 봉기를 하듯이 피어나고 한꺼번에 스러졌다. 그래서 그랬나? 마침내 세월호에서 꽃들이 한꺼번에 스러졌다. 모두가 흐느끼고 분노하고 약속했다. 꼭 잊지 않겠다고…. 길거리에는 노란 리본이 물결쳤고, 사람들 가슴마다에는 세월호 리본이 달려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길거리에 퇴색한 리본들처럼 사람들의 마음도 퇴색했다. 유행을 어지간히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의 비극 이벤트였던가? 이제는 세월호의 ‘세’ 자만 나와도 경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보상금, 온갖 특혜들을 나열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 진실이 이렇게도 왜곡될 수 있구나…. 참혹한 영혼의 실종이요 대량 학살이다.

그래서 길을 걷기로 했다. 세월호 특별법이 만들어져서 진상규명이 되는 것이 일차적인 간절한 소망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우리 사회공동체의 영혼이 부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4월에 수많은 사람들이 배금주의 물신숭배 관피아 비리 등등에 대해 침이 마르도록 성토하고서는 다시 소위 ‘민생’이라는 물질로 유족들을 침몰시킨다. 완전한 구조 포기이다. 그래서 세월호의 침몰은 한국 사회의 영혼이 침몰했다는 것을 희생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1km, 2km, 3km….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 가면 갈수록 발에는 열기가 나고 다리는 뻐근해진다. 역시 아스팔트는 겸손하지도 너그럽지도 않은가보다. 그래도 입을 꽉 다물고 기도한다. 미안하다고, 기억하겠다고, 변화되겠다고…. 내가 길 안으로 들어가고, 길이 내게로 들어온다. 그리고 길이 내게 묻는다. 왜 걷느냐고. 걸어서 뭐가 이루어지느냐고…. 그래서 답한다. 이것은 발로 하는 기도라고…. 온 몸으로 기억하는 것이라고…. 머리로 하는 기억은 쉽게 잊혀 진다. 고등학교 때 달달 외웠던 수학 공식들은 지금은 그런 것이 있었는지조차 가물가물하다. 시험 치르기 위해서 머리로만 외웠기 때문이다. 가슴으로 기억하는 것은 오래 남는다. 가슴에 못이 박힌 한 마디를 평생 잊지 못하는 경우이다. 그런데 깊이 없는 가슴으로 느끼는 것은 시간이 흘러가면 봄바람에 눈 녹듯이 슬그머니 사라진다. 여기저기 흐느끼던 사람들이 이제 와서 냉랭하게 표변한 것을 보면 그렇다. 그러나 온 몸으로 기억한 것들은 잊혀 지지 않는다. 많은 것들이 변화되기 때문이다.

진도체육관을 나와 걷고 또 걷다보니 드디어 진도대교가 보인다. 이제 저 다리만 건너면 사건의 현장에서 멀어질 것만 같다. 역시 소문대로 물길은 엄청 빠르다. 마치 홍수가 나서 세차게 흐르는 계곡물 같이 빠르게 흘러간다. 그리고 회오리를 친다. 그 세월호를 삼켜버린 맹골수로도 저렇게 빠를 것이라는 짐작을 할 수 있다.

진도대교 앞 울돌목을 바라보며 이순신 장군이 호령하는 듯한 모습으로 서 있다. 광화문의 동상과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무엇일까? 광화문의 동상은 박정희 대통령 때 정권 수호의 화신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진도의 이순신은 정권에 의해 내쳐져서 백의종군하여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라고 외치는 결기가 느껴진다. 국가와 백성들을 위해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는 모습니다.

죽음의 권세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세월호뿐만 아니라, 세 모녀 자살 사건, 임병장, 윤일병 사건, 하루에 40명씩이나 자살하는 한국사회는 가히 죽음이 지배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저마다 자기만 살고자 하는 정글이기 때문이었으리라.

예수는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갔다. 죽음의 길이지만 세상을 변화시키고 새 생명을 탄생시키는 길이었다. 사도 바울도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걸었다. 역시 그에게는 죽음의 길이었지만 세상에서는 새로운 공동체가 탄생하는 길이었다. 생명평화의 새 지평이 열리기를 간절히 바라며 팽목항으로부터 광화문까지 걷는다. 세월호의 영령들이 역사에서 부활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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