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주부를 '노동투사'로 만들어 버린 이랜드 사태의 본질은 무엇일까.
"공공부문 7만 명 정규직화 하겠다"더니…
바로 비정규직 문제다. IMF 이후 '비정규직'은 우리 주변에 너무도 흔한 이름이 되어 버렸다.
휴게실이 마땅치 않아 화장실에서 식사를 해야 하는 청소원, 개에게 물릴 뻔한 수도계량기 검침원, 사랑과 헌신의 마음으로 일하는 전문직이라 생각하지만 정작 병원과 환자들의 홀대의 눈빛이 섭섭한 간병인, 야간개장이 끝난 늦은 시간 미처 나가지 않은 손님이 없는지 여성의 몸으로 캄캄한 서울대공원을 돌며 공포에 떨어야 했던 매표소 직원 등….
퇴직금 조로 매달 10만 원을 떼어 가지만 1년 안에 퇴직하는 경우 이마저도 돌려주지 않는 업체의 횡포에 시달려야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우선 정부가 작년 8월 발표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보자. 상시업무를 무기 계약화해 저임금 문제를 완화하고, 핵심·주변업무를 구분해 주변업무는 외주화 하는 것이 이 대책의 골자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7437명의 직접고용 비정규직 중 1577명을 무기 계약화 한다는 계획을 정부에 제출했다. 그러나 지난 6월 정부는 서울시가 제출한 계획보다도 훨씬 적은 858명 만을 무기 계약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올 10월부터 공공부문 7만여 명이 정규직이 된다"는 이상수 노동부 장관의 말과는 달리 이번 대책은 7만 명을 '무늬만 정규직'인 분리직군 무기계약으로 전환했다. 결국 무기계약에서 탈락한 노동자들을 계약해지하고, 그 일자리를 대규모 외주용역으로 돌리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란 얘기다.
임금은 줄고, 노동조건은 악화되고
서울시의 비정규직 문제를 좀 더 적극적으로 검토하기 위해 6월부터 서울시 산하기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면접조사를 시작했다. 이미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실에서 면접조사를 진행한 적이 있기에 도움을 받을 수가 있었다.
1차 조사에선 총 8개 기관에서 112명의 노동자들을 만났다. 면접조사 대상자의 연령대는 40대가 40.3%로 가장 많았으며, 근속년수는 4~6년 이상이 48. 2%로 과반수에 육박했다. 고용형태는 용역업체에서 파견된 계약직 노동자로 대부분 간접고용 비정규직이었다. 이는 대부분 IMF 이후 외주용역화한 업종들이며, 1년마다 반복 계약을 하고 있었다.
일단 용역업체의 전횡이 문제다. 용역업체들은 서울시의 '최저가입찰제' 시행에 따라 입찰에 성공하기 위해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인력감축과 근로조건 개악을 단행하고, 법정 최저임금만을 지급하고 있었다.
수도사업소의 경우 용역 첫 해인 2000년에는 월급이 165만 원이었으나 지금은 116만 원으로 대폭 줄었다. 매년 계약을 갱신할 때마다 임금은 하락하고 노동조건은 더욱더 열악해 진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심지어 업무에 필요한 손전등이나 꼬챙이 등의 '비품'도 직접 구입해야 했다. 교통비, 통신비, 과징금까지 본인이 지불하고 있었다. 여성 검침원 노동자들은 "용역업체가 최저가로 낙찰만 되면 '로또'나 다름없는 이득을 본다"며 업체의 횡포와 중간착취의 부당함을 지적했다.
이들은 필자가 직접 만난 수많은 간접고용노동자들-비정규 노동자들과 다를 바 없는 노동환경에서 근무를 하고, 똑같은 고용불안을 느끼며 일했던 비정규 노동자들이다.
"겨우 의식주만 해결한다" 28.4%
이들의 하루 평균 근로시간은 8시간이 42.5%로 가장 많았으며, 10시간 이상도 17.2%나 됐다. 응답자 전원은 현재 담당하는 업무가 해당 기관에 꼭 필요한 업무에 해당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으며, 바람직한 고용형태로는 정규직을 뽑았다. 동일 직장 내에서 담당업무와 무관한 일을 하는 경우도 13.4%나 됐다.
현재 일하고 있는 직장에서 자신과 같거나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정규직이 있다는 응답은 14.6%였다. 동일한 직장 내의 정규직과 비교할 때 가장 차별받고 있다고 느끼는 것으로는 금전적 보상이 85.9%로 가장 많았다. 월평균 임금총액은 100~120만 원사이가 가장 많았고, 80만 원 이하도 7.5%나 됐다.
희망 급여액으로는 150~200만 원 사이가 69.4%로 가장 많았다. 회사에 기여하는 만큼 보상을 받고 있는지 여부는 68.6%가 "불만족스럽다"고 답했으며, "그렇다"는 응답은 겨우 12.9%였다. 현재 받고 있는 임금수준으로는 "매월 적자를 본다"는 의견이 절반에 가까웠으며, "겨우 의식주만 해결한다"는 답변은 28.4%였다.
현재 직장에 비정규직으로 취업하게 된 이유로는 "정규직 일자리를 구할 수 없어서"라는 대답이 58%로 가장 많았다. 최근 해고 위협을 받아 본적이 있는지 여부를 묻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경우도 33.7%나 됐다.
우리 모두의 삶을 지키기 위하여…
국민을 위해 일하는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화와 노동조건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공공부문이 개선의 노력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민간기업에서의 비정규직 확산도 결코 막을 수 없기 때믄이다.
투쟁하고 있는 이랜드 노동자들은 필자가 직접 만난 수많은 간접고용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다를 바 없는 노동환경에서 근무를 하고, 똑같은 고용불안을 느끼며 일했던 사람들이다.
파업으로 인한 '시민의 불편'을 토로하기 전에 나 자신, 그리고 우리의 형제, 가족, 이웃의 고용형태가 비정규직이 아닌지 먼저 돌아보자. 이랜드 노동자들의 싸움을 승리로 이끌지 못하면, 우리 자신의 삶 또한 지킬 수 없다는 섬뜩한 사실을 한번 쯤 돌아 볼 때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