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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대 '노출' 의상 자율 규제는 '일베' 때문?

"학생 보호 목적" vs "남성 중심 담론 수용한 퇴행적 결정" 비판

대학가 축제가 한창인 가운데, 오는 24일 축제를 앞둔 숙명여자대학교의 축제 의상 제재안이 입길에 오르내리고 있다.

숙명여대 총학생회는 지난 21일 사회적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 '2014년도 청파제 규정안'을 올렸다. 청파제는 숙명여대 축제 이름이다.

총학생회는 "안전하고 건전한 숙명인의 축제를 보여달라"며 의상 제재 기준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가슴골 보이는 상의, △망사 및 시스루 등의 옷차림, △밑 위에서 무릎 뒷선 사이의 길이가 1/5 이하, △속바지 미착용 등이다. 의상뿐 아니라 '오빠', '자기'와 같은 선정적 단어를 이용한 홍보 또한 금지 대상 행위로 규정했다.
ⓒ숙명여대 총학생회 '라잇업'

총학생회는 지난 1일 총학생회, 단과대학 학생회, 각 학회장 등과 함께 전체학생대표회의(전학대회)를 열어 이같은 제재안을 마련하고, 위반 학생에 대해 벌금을 물리기로 했다.

숙명여대 박신애 총학생회장은 22일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축제가 진행되는 과정 혹은 추후에 생길 불미스러운 일을 방지하기 위해 학생들을 보호하자는 것"이라며 제재안의 취지를 설명했다. 총학생회에 따르면 축제 의상에 대한 규제는 전에도 있었으며, 전체 학생이 아닌 주점 운영자들에 한해 적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제재안에 대한 외부 시선은 대체로 곱지 않다. "복장 단속을 하던 유신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는 것이다. "성폭력 책임을 피해자에게 전가하는 논리를 수용하는 태도"라는 지적도 따른다.

"여자 다리 보고 싶으면 숙대 축제 가라"는 일베…공격 대상 되지 않으려는 결정

온라인 여론과 달리, 숙명여대 학생들은 제재안이 '필요악'이라는 입장이다.

전학대회에 참석한 한 단과대학 A 대표는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동아리, 학회 운영비 마련을 위해선 최대한 축제에서 이윤을 내야 하기 때문에 주점 홍보 경쟁이 치열해지고 더욱이 여대에서는 남자 손님을 끌어오기 위해 선정성을 내세울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술을 마시는 상황에서 생길 수 있는 돌발 상황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노출이 과한 의상을 강제 규정을 두어서라도 배제해야 한다는 게 학생들의 생각"이라고 했다.

상당수 학생들도 학교 커뮤니티 게시판, 익명 게시판 등을 통해 대체로 공감한다는 뜻을 나타내고 있다.

학교 온라인 게시판에서 지난해 벌금형을 받았다고 자신을 소개한 한 학생은 "주점 복장 규정 진짜로 검사하느냐는 글이 보이는데, 해요. 빡세게('빡빡하게' : 편집자)"라며 "우리 몸은 스스로 지키자는 취지에서 생겼으니 잘 지켜서 안전하게 축제가 마무리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학생들이 우려하는 것은 '현장 사고'뿐만이 아니었다. 그보단 학생들은 축제 때 교내에서 찍힌 선정적 사진이 여성 혐오를 부추기는 일부 온라인 사이트에서 회자될 것을 크게 염려했다.

학교 온라인 게시판에 올라온 "여자 다리 보고 싶으면 숙대 축제에 가라는 글과 함께 사진이 일베 사이트에 올라갔다고 한다", "일베에서 일 터진 게 있어 예민하다"는 글은 이같은 두려움을 보여준다.

숙명여대 재학생 B씨는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최근 1~2년 사이 '일간베스트'(일베) 같은 사이트에서 여대에 대한 모욕적인 이야기들이 많이 올라오는 것으로 안다"며 "축제 때 이상한 사진이 찍혀 자칫 학우들이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의상 제재는 감안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박 회장은 "규제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단순 권고로만 그칠 경우 나타날 부작용들이 크다"며 "학생들이 자율성을 포기하면서까지 자발적으로 제재안을 만든 배경을 이해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밝혔다.

▲지난 22일 웹사이트 '일간베스트'에 올라온 서울 시내 한 대학 축제 사진. 사진과 함께 "□□, △△대학이 더 (심)하다"는 글을 올렸다. ⓒ일간베스트

'일베'를 제대로 이기려면

전문가들은 숙명여대 축제 의상 자체 규제 논란을 계기로 대학 사회 문화 전반에 대한 성찰을 요구했다.

숙명여대 C 교수는 "대학 축제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이 필요하다"고 했다.

C 교수는 "결국 여대생들이 축제에서 남성을 고객으로 설정하고 술을 팔기 위해 성을 도구화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건데, 이런 상황이 과연 대학 축제 본질에 맞는 일인지부터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축제의 본질이라든가, 대학 내 성 상품화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등을 토론하는 자체가 '일베'식 대처를 이기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어 "만약 학생들의 자체 규제라는 게 이런 문제의식 없이 언론 등의 구설수를 피하기 위한 즉자적 반응 차원에서 나온 방침이라면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대학 문화 보수화…"'여성 노출이 문제'라는 남성 중심 담론 받아들인 퇴행적 결정"

여성학자 권김현영 성공회대학교 외래교수는 축제 의상 규제 방침은 숙명여대 문화의 보수화와 연결되는 문제라고 진단했다.

권김 교수는 "학생들의 자체 규제는 결과적으로 '노출했기 때문에 문제의 빌미를 제공했다'고 하는 남성 중심적 담론을 수용한 퇴행적 결정"이라며 "그런 담론을 받아들이는 가운데 자신들은 노출을 하지 않는 부류로 보이려는 욕망을 드러낸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숙명여대에서 6~7년 전부터 여성학과가 폐지되고, 학군단이 도입되는 등 보수화 과정을 겪었는데, 학생들이 이런 학내 분위기 속에서 보수적 사고를 내면화한 게 아닌가 한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숙명여대 D 교수는 "큰 문제라고는 보지 않는다"며 "다만 학생들이 의상 규정을 스스로 만들었듯,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스스로 조절하는 능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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