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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사회주의 36년, 중국 지식인의 역할과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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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탈사회주의 36년, 중국 지식인의 역할과 한계

[차이나 프리즘] 중국은 여전히 '일당 독재국가'인가?

속을 들여다 볼 수 없어서 흔히 “블랙박스(Black Box)”라고 비유되는 중국의 정책결정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국가의 정책담당자인 엘리트 관료나 간부들의 역할만이 아니라 정책결정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지식인 집단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지식인하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인문적 지식인이나 체제 저항적 인텔리겐차가 아니라, 해당 정책과 관련된 전문적 지식을 갖춘 전문가 집단을 의미한다.
이 글에서는 “노동교양(勞動敎養)제도”와 “도시 유랑구걸인원 수용송환(城市流浪乞討人員收容遣送)제도”라는 중국 특유의 제도가 폐지되는 과정에 개입한 중국 지식인들의 행동을 살펴봄으로써, 개혁기 중국의 정책결정과정에 있어서 지식인들의 참여전략 및 의미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한다.

노동교양제도
건국 직후인 1950년대 초 중국은 ‘반혁명분자 진압운동’을 시행한다. 이 운동은 한국전쟁, 토지개혁과 함께 신중국 초기의 3대 운동으로 불리며 전국적인 범위에서 시행되었는데, 그 목적은 주로 제국주의, 봉건주의, 관료자본주의 잔존세력을 반혁명분자로 규정하고 전국적인 범위에서 이들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비교적 “경미한”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판단되는 반혁명분자들을 강제노동에 의해 교화시키기 위해서 노동교양을 실시하기로 한 것이 노동교양제도의 시초이다.

▲베이징 퇀허(團河)노동교양소 - 1986년6월12일 (출처: 텅쉰뉴스)
이후 1957년 8월 <노동교양문제 관한 결정>에 의해 정식 성립된 노동교양제도는 개혁기에 들어서 <치안관리처벌조례>를 위반한 인원에 대해서 각급 노동교양위원회의 심사를 거쳐서 최대 4년까지 인신의 자유를 제한하고 노동을 통해서 교육을 시키게 된다. 비록 범죄를 저질렀지만 그 정도가 비교적 경미하여 형사처벌을 필요로 하는 정도가 아닌 인원에 대해서 행정처벌의 형식으로 시행되는 것이다.
법원의 판결을 통해서 징역형을 살고 있는 인원에게 시행되는 노동개조(勞動改造)와는 달리, 이 제도는 법률에 기초한 법원의 판결을 거치지 않고 행정조례에 기초하여 사실상 공안기관(경찰)의 결정에 의해서 최대 4년까지 인신의 자유를 제한하고 강제노동을 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헌성과 인권침해 등의 이유로 해외에서는 물론 중국 내에서도 그 문제점에 대한 지적과 개정 및 폐지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어왔다. 무려 56년 동안 존재해온 노동교양제도는 2013년 11월 중공중앙에서 제출한 <노동교양제도 폐지에 대한 결정>을 동년 12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통과시킴으로써 마침내 폐지되고 수용인원은 전원 석방되었다.

도시 유랑구걸인원 수용송환제도
노동교양제도와 함께 인신의 자유를 제한하고 인권을 침해하는 제도로 거론되어온 것들 중의 하나가 바로 도시 유랑구걸인원 수용송환제도이다. 원래 수용송환제도는 1950년대 중반 농촌인구가 대량으로 도시에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만들어졌는데, 이것이 1982년 국무원 <도시 유랑구걸인원 수용송환방법>이라는 행정법규로 정식 확립되었다.
1980년대 초의 수용송환제도는 ‘도시 유랑구걸인원의 구제 및 교육과 수용을 위하고, 도시 사회질서와 안정단결을 유지한다’는 목적이지만, 실제로는 개혁기에 들어서서 농촌에 인민공사를 대체하여 향(鄕)정부와 촌민위원회가 들어서고 기존과 같은 정도로 농민을 토지와 농촌에 강력하게 결박시킬 수 없게 되자 농촌의 잉여노동력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진입하게 된 것에 가장 큰 이유가 있다.

▲노동교양 (출처: 텅쉰뉴스)
원래 이 제도의 대상은 도시의 유랑구걸 인원과 생활불가능 인원의 구제(救濟)였으나, 나중에는 변질되어 구제가 아니라 수용과 송환이 더 중시되면서, 수용송환소에서의 강제노동, 착취, 구타 등이 빈번히 발생하여 사회적인 문제가 되었다. 또한 수용대상이 점차 신분증, 임시거주증, 작업증 세 가지 증서를 모두 갖추고 있지 않은 ‘삼무(三無)’인원으로 확대되어, 2000년에는 전국적으로 연인원 293만 명이 수용송환될 정도였다.
이러한 수용송환제도가 중대한 전환점을 맞이한 것은 2003년 3월에 발생한 쑨즈강(孫志剛) 사건이었다. 쑨즈강은 광저우(廣州)에 와서 직장을 잡아 일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저녁 신분증을 가지지 않고 외출했다가 유랑구걸 인원으로 경찰에 의해서 체포되어 송환소로 보내졌고 그 후 치료를 목적으로 구호치료소로 보내졌다가 관리인원들의 구타로 사망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2003년 6월 국무원령으로 이 제도는 폐지된다.

지식인의 행동
이제 이러한 노동교양제도와 도시 유랑구걸인원 수용송환제도의 폐지에 이르는 과정에서 중국의 지식인들이 보여준 역할을 살펴보자. 중국의 지식인들은 문제점을 인식하고, 이 제도들의 개정 및 폐지에 관한 의견을 적극적으로 제기한다.
2003년 6월 베이징이공대학(北京理工大學) 교수 후싱더우(胡星斗)는 <노동교양 관련규정에 대한 위헌위법 심사 진행에 관한 건의서>를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에 제출한다. 후싱더우는 이 건의서에서 중화인민공화국 헌법, 중화인민공화국 입법법(立法法), 중화인민공화국 행정처벌법에 근거하여 법률이 규정한 근거와 절차에 의해서만 공민(公民)의 인신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서 노동교양제도의 관련 규정이 헌법과 법률에 위배된다고 지적하고 이에 대해 전국인민대표대회가 위헌위법 심사를 진행해줄 것을 건의한다. 2007년 11월에는 마오위스(茅于軾), 후싱더우, 샤예량(夏業良), 궈스여우(郭世佑)와 같은 저명 학자, 언론인, 법률종사자 69명이 연대서명으로 전국인민대표대회에 노동교양제도의 위헌위법 심사를 진행해줄 것을 건의한다.

▲도시 유랑구걸인원 수용송환소 폐지 - 2003년7월16일 허베이성 스자좡시 (출처: 차이나 데일리)
노동교양제도보다 이른 2003년 6월에 폐지된 도시 유랑구걸인원 수용송환제도는 1990년대 초반부터 인민대표대회에 이 제도의 폐지를 요구하는 요구가 잇달았는데, 1999년 베이징대학 사회학과 교수 왕쓰빈(王思斌)이 이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을 시작으로 해서, 쑨즈강 사건이 발생한 직후인 2003년 5월 법학자인 쉬즈용(許志勇), 위장(兪江), 텅뱌오(滕彪)이 위헌위법 심사를 인민대표대회에 정식 건의했다. 이후 전국적인 지명도를 가진 법학자, 법률종사자, 지식인들의 전문가 집단이 연대서명을 통해서 이 제도에 대한 위헌위법 심사를 건의하고, 중국청년보, 인민망, 광명일보와 같은 관방언론도 지지를 보냈다.

정책결정과정 참여전략
중국 칭화대학 공공관리학원 교수인 주쉬펑(朱旭峰)은 <중국 정책변화와 전문가 참여>(학고방, 2014)에서 중국 지식인들이 이러한 정책변화 과정에서 개입한 것을 “전문가 참여”라고 인식하는데, 그 참여전략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법학자, 지식인, 언론인들은 정부 관료에게 건의를 제출하는 것과는 달리 중국 공민의 이름으로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에 건의서를 제출했는데, 이러한 관련 정책에 대한 위헌위법 심사 요구는 전례가 없는 것이어서 광범위한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동시에 대중의 관심을 이끌었다.
둘째, 전문가들이 이러한 제도들의 위헌위법 심사를 건의한 것은 당시 정치적 환경에 부합되었다는 점이다. 2002년 4월 당시 국가주석 후진타오는 1982년 헌법 탄생 20주년을 축하하며 헌법과 그 권위를 존중할 것을 강조하는데, 이 전문가들은 그들의 건의서에 후진타오의 연설과 당시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위원장 우방궈의 연설을 인용함으로써 그들의 건의가 최고지도자들의 입장과 일치한다는 점을 강조했다는 점이다.
셋째, 현재의 법률틀을 이용해서 이 제도들의 문제점을 강조했다. 즉 헌법이 어떠한 법률도 헌법에 위배될 수 없다고 규정한 것을 인용하고, 입법법도 어떠한 행정법규도 헌법에 위배될 수 없다고 규정한 것을 인용했다. 노동교양제도는 법률이 아니라 행정조례로 인신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며, 도시 유랑구걸인원 수용송환 방법도 국무원이 제정한 행정법규로서 인신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여, 위헌위법 심사 진행을 건의한 것이다.
넷째, 이들 전문가의 행위는 입법법의 보호를 받는다는 점이다. 입법법 제90조는 “공민은 행정법규, 지방성 법규, 자치조례와 특별조례가 헌법 혹은 법률과 상호 저촉된다고 인식하면,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에게 심사진행의 건의를 서면으로 제출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즉 이들은 현행 정치와 법률의 틀 안에서 근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신중하게 표현함으로써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실현시켰다는 점이다.

정책결정과정 참여의 한계
한국에서 현대중국을 생각할 때 “공산당 일당 독재국가”의 이미지를 떠 올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미국과 함께 G2로 성장한 원동력이 된 경제적 파워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민주주의가 존재하지 않고 인권이 완전히 부재한 탐욕스런 대국 정도가 중국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인 것 같다. 쉽게 말하자면 사회주의 시기에서 경제만 계획에서 시장으로 바뀌고 특히 정치체제는 사회주의 시기 그대로인 나라. 그런데 생각해보자. 사회주의 시기보다 탈사회주의 시기가 훨씬 더 길다. 겉으로 보기에 설사 정치체제가 그대로라고 하더라도 탈사회주의 시장경제를 한 지가 36년인데, 이 시기 동안의 경제와 사회의 변화가 정치체제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았고 여전히 “공산당 일당 독재국가”이기만 할까?
앞에서 노동교양제도와 도시 유랑구걸 인원 수용송환제도의 폐지 과정에서 보이듯이, 탈사회주의 36년째를 경험하고 있는 오늘날의 중국은 “공산당 일당 독재국가”라는 인식만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역동적 변화가 생겨나고 있으며 그 변화의 원동력은 바로 개혁이 가져온 경제와 사회의 변화이다. 공산당과 국가도 이러한 변화의 요구에 대해 외면으로 일관하는 것만으로 체제유지는 물론 정책의 안정적 시행과 지속적인 경제발전도 불가능하다는 점을 잘 인식하고 있다.
이때 거대한 당-국가 체제에 사회경제적 변화에 조응하는 정책변화를 촉구하는 것이 바로 중국의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국가 정책의 입안과 시행은 물론, 일반 인민들의 사회경제적 삶도 점차 지배해가고 있는 법치주의 관념에 의거하고 자신의 전문적 지식을 동원하고 여론의 지원을 끌어내서, 위에서 살펴본 것과 같은 제도들의 폐지를 이끌어 낸다. 탈사회주의 시기 36년의 사회경제적 변화에 비롯된 중국 정책결정과정의 역동성을 제대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이들 지식인 집단의 역할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이들이 가진 한계도 명확하다. 이들은 주로 현행 헌법과 법률에 부합하는 “합법적인” 전략과 행동만을 구사함으로써 좀 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사실상 정책결정자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중국의 당-국가는 통치행위의 효율과 합리성을 제고하여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는 범위 내에서 이들 지식인의 요구를 받아들일 따름이다. “헌법은 있지만 헌정(憲政)은 없다”는 말이 있듯이, 당-국가는 체제에 일정한 균열이 수반되는 근본적인 민주주의와 인권 요구에 대해서는 침묵하거나 억압하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이들의 요구를 제기하는 형식은 “건의”이다. 비록 입법법 규정에 의해 전국인민대표대회에 제출된 건의에 대해서는 심사를 진행해야 하지만, 그러한 건의의 수용여부는 전적으로 당-국가의 의지에 의해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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