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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내전은 종식될 수 있을 것인가?

[분석] 미-러, 수니-시아파 대리전이 된 시리아 내전

최근 시리아 및 이라크 내전에 관한 저서 <이슬람 성전의 귀환(The Jihadis Return)>에서 영국 <인디펜던트>의 패트릭 콕번 기자는 시리아 내전에 대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초기의 진정한 민주적 요구, 즉 독재에 저항해 세속적이고 포용적이며 법에 의해 지배되는 민주국가를 건설하자는 시리아 국민들의 요구가 완벽하게 실패한 이유는 무엇인가?”

무엇이 2011년 봄 ‘아랍의 봄’에 의해 촉발된 범국민적인 민주화 요구를 수니 대 알라위라는 종파간의 무력 투쟁으로 변질시켰느냐는 질문이다. 답은 ‘외세의 개입’에 있다.

콕번에 따르면 초기 ISIS의 극적인 부상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다른 요인이 있다. 이라크의 한 고위 소식통은 “2011-12년 터키 군정보기관이 ISIS를 집중 지원했다. 이들은 미군의 이라크 점령 당시 게릴라전에 참여했던 경험 많은 이라크 전직 군 장교들에게 ISIS를 돕도록 촉구했다”고 말했다. 최근 ISIS에 잡혀 있던 터키 인질 49명이 풀려난 것을 두고 ‘터키의 구출이냐’ ‘ISIS의 석방이냐’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는데, 터키가 오바마 정부의 시리아 공습에 참여를 거부하고 있는 것과 연관시켜 보면 ‘ISIS의 석방’ 쪽이 맞는 것으로 보인다.

시리아 반군 세력을 도운 것은 터키뿐만이 아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요르단 등 걸프 왕정국가와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서방국가도 도왔다. 2013년 말 ISIS는 서방측이 지원하는 반군 자유시리아군(FSA)의 사령관 중 하나였다가 ISIS로 투항한 사담 알자말과의 인터뷰를 내보냈다. 그는 시리아 동부에서 FSA 사령관으로 활동했으며 아파드 알라술 여단의 지휘관이었던 인물이다. 그에 따르면 아파드 여단은 걸프 왕정국가들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았다. “혁명 초기에는 카타르가 관리하다가 이후 사우디아라비아로 넘어갔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FSA 군사평의회에는 사우디 아랍에미레이트 요르단 카타르는 물론이고 미국 영국 프랑스 정보기관의 대표들이 반드시 참여했다는 점이다. 터키 앙카라에서 있었던 FSA 군사평의회에는 사우디 국방차관 살만 빈 술탄 왕자가 참석해 “아사드를 무너뜨릴 계획이 있는 사령관은 무엇이든 필요한 무기와 자금 등을 얘기하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사우디의 대시리아 군사작전을 총괄했던 사우디 정보국(GID) 수장 반다르 빈 술탄 왕자의 이복형제다. FSA는 아사드 이후 시리아를 통치할 세력으로 미국 등이 집중 지원한 반군이다. 콕번은 “이 정도면 아랍 및 서방 정보기관들이 반아사드 무장세력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반문한다.

2011년 여름 시리아 내전 발발에서 2012년말까지 서방과 수니파 아랍국가들은 FSA가 아사드 정권을 무너뜨릴 것으로 기대했다. 당시 서방 지도자와 언론들은 축출된 아사드 대통령이 어디로 망명할 것인지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같은 전망은 완전히 빗나갔다. 2013년말이 되면서 시리아 내전의 교착 상태는 확고해졌고 ISIS가 반군 중 최강 세력으로 부상한다. ISIS가 시리아 내전의 최대 수혜자가 된 것이다. 그동안 미국과 사우디는 이른바 ‘남부전선’ 전략을 추진했으나 이 역시 실패하고 만다. 시리아 남부에 있는 요르단을 거점으로 해서 동북부에 거점을 둔 ISIS 등 알카에다형 반군과는 다른 무장세력을 동원해 아사드를 치겠다는 것이었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리비아에서 활동 중인 이슬람 무장세력 2만명이 요르단을 통해 시리아에 투입됐으나 결국 실패했다는 것이다.

미국 등은 시리아 내전이 가다피 정권을 축출한 리비아 내전의 재판이 될 것으로 믿었다. 조기에 아사드 정권을 무력으로 제거할 것으로 기대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군은 물론 미국 등 서방세력은 가다피 제거의 결정적 원인이 나토의 공습 때문이었다는 점을 간과했다.
리비아 내전 당시 가다피의 리비아 군은 동부 벵가지에 거점을 둔 반군 세력을 전멸시키기 직전이었다. 리비아 군의 제공권을 완전히 무력화시킨 나토의 공습이 없었다면 반군은 수 주일을 버티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한다. 결국 2013년 말이 돼서야 미국과 사우디 등은 아사드 제거가 쉽지 않다는 것은 깨닫게 됐다. 현재 FSA는 미 중앙정보국(CIA)이 직접 지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바마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반군 5천명 양성 계획도 FSA를 기반으로 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미국과 사우디 등은 왜 시리아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종파간의 무력 투쟁으로 변질시킨 것일까? 시리아의 민주화를 돕기 위한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가다피 제거 이후 1700개의 무장세력이 난립하며 무정부상태가 돼버린 리비아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미국은 러시아 및 이란의 후원을 받고 있는 아사드 정권을 무너뜨리고 싶어 한다. 수니파 국가인 사우디와 카타르 등은 종파적 이유에서 시아파의 일파인(알라위파) 아사드 정권을 무너뜨리려 한다. 시아파 종주국이자 비아랍국가인 이란의 세력 팽창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1979년 이슬람혁명으로 이란에 시아파 신정국가가 탄생한 데 이어 2003년 미국의 침공으로 건국 이후 다수파이면서도 권력에서 소외됐던 이라크 시아파가 정권을 잡으면서(아랍권에서는 1187년 이후 820년만의 일이다) 사우디 등 수니파 국가들이 시아파의 발흥을 두려워하게 된 것이다. 사우디 유전이 몰려 있는 동부 지역에는 상당수 시아파 주민들이 몰려 있는데 이들의 동요도 우려되기 때문이다. 또 2011년 바레인 시아파 주민들이 민주화 시위를 벌이자 사우디는 자국 군대 1500명을 파견해 이를 무력 진압한 바 있다.

당초 이슬람 무장세력은 1980년대 아프가니스탄전쟁에서 소련을 무너뜨리기 위해 미국과 사우디, 그리고 파키스탄이 합작으로 만들어낸 조직이다. 미국이 30억 달러의 자금과 스팅어 등 첨단무기를, 사우디가 30억 달러 이상의 자금을 대고 파키스탄이 군사훈련을 맡아 아랍권 등에서 몰려온 이슬람 전사를 양성해낸 것이다. 1980년대에는 미국에서도 이슬람 전사들을 모집했을 정도다. 오사마 빈라덴은 미국 등에서 이슬람 전사 모집책의 역할을 했다. 1989년 아프간전쟁이 끝난 이후 이들 이슬람 전사들은 아제르바이잔, 보스니아, 코소보, 리비아 등에서 미국의 용병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하지만 이슬람 원리주의를 고집하는 이들은 소련을 반대하는 것만큼이나 미국에도 적대적이다. 2001년 9.11테러는 이들의 반미 성향이 극적으로 나타난 경우다. 9.11테러를 계기로 부시 행정부는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속내는 그게 아니었다. 반미 국가, 즉 미국식 시장경제를 받아들이지 않는 나라들을 차례로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9.11테러 직후 당시 나토 사령관이었던 웨슬리 클라크 장군은 “향후 5년 내에 제거해야 할 7개 국가”를 적시한 미 국방부 메모를 보았다고 하는데, 그 일곱 나라는 이라크를 비롯해 시리아, 레바논, 리비아, 소말리아, 수단, 이란이었다. 이라크가 첫 손에 꼽힌 이유는 1972년 석유산업을 국유화한 사회주의 국가인 데다 1988년 이란과의 8년 전쟁 끝에 승리를 거두면서 중동지역의 맹주로 떠오를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1991년 1차 걸프전으로 이라크를 쿠웨이트에서 몰아낸 미국은 이후 10여년의 경제제재를 거쳐 결국 2003년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렸다. 세속주의 후세인 정권은 이슬람 무장세력과는 대립되는 세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후세인이 알카에다와 연계가 있는 배후세력이라면 이라크를 침공한 것이다.

패트릭 콕번은 부시의 테러와의 전쟁은 시작부터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슬람 무장세력의 최대 후원 국가인 사우디와 파키스탄을 제재해야 하는데, 이들 국가가 동맹국이라는 이유로 눈 감고 있다는 것이다.

9.11 테러범 19명 중 15명이 사우디 국적이었고 현재 시리아 내전에 참가하고 있는 외국인 전사 가운데에서도 사우디 출신이 가장 많다. 또한 미국 의회의 9.11보고서는 2002년 CIA 보고서를 인용해 알카에다에 대한 자금 지원은 “걸프 왕정 국가, 특히 사우디의 다양한 기부자들에 의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9.11보고서 중 테러범과 사우디와 관련된 부분 28쪽이 부시의 명령에 의해 삭제된 채 아직도 공개되지 않고 있으며 이후 오바마 대통령이 공개를 약속했지만 국가안보를 이유로 여전히 비밀에 쌓여 있다. 또 2009년 위키리크스에 의해 공개된 미 국무부 외교전문에 따르면 힐러리 클린턴 당시 국무장관은 사우디가 수니파 무장단체에 대한 최대 자금줄이라고 불평했다. 또 다른 국무부 전문에는 “사우디아라비아, 반시아파 투쟁이 외교정책인가?”라는 제목이 있었다. 그러나 세계 최대의 산유국이자 미제 무기의 최대 구매자인 사우디를 미국은 어쩌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아프간.이라크 미 정부 특사였던 고 리처드 홀부르크는 미국이 벌이고 있는 테러와의 전쟁에 대해 “어쩌면 우리는 엉뚱한 나라에서 엉뚱한 적들과 싸우고 있는지 모른다”고 개탄했다고 한다.

현재 시리아 위기는 다섯 가지 차원의 복잡한 갈등이 얽혀 있다. 처음에는 잔인하고 부패한 독재정권에 대한 시리아 국민들의 민중 봉기였던 것이 금세 수니-알라위파의 종파 갈등으로 변질됐으며, 다음에는 미국 사우디와 수니파 국가들을 한편으로 이란, 이라크, 그리고 레바논의 헤즈볼라를 다른 한편으로 하는 중동 지역 전체의 시아-수니 대결로 진전됐고, 리비아 사태로 촉발된 러시아와 미국 간의 신냉전으로 확대됐으며, 여기에 다시 우크라이나 사태가 겹치면서 더욱 복잡해진 것이다.

현재 시리아 내전은 완전한 교착상태다. 시리아의 한 전직 장관은 “서방측은 그동안 아사드가 물러나야 한다고 너무도 노골적으로 주장해 왔기 때문에 자신들의 정책을 되돌리기가 매우 어려운 상태”라면서 “서방측이 (그것이 불가능함을 알면서도) 아사드 퇴진을 평화협정의 전제조건으로 고집하는 한 전쟁은 지속될 뿐”이라고 지적했다.

콕번은 “시리아 내전은 레바논 내전(1975-1990년)을 닮았다. 600 차례의 휴전 합의가 있었으며 모든 당사자들이 지칠 대로 지친 다음에야 평화가 이루어졌다”면서 “많은 시리아인들은 자신들의 내전의 결과는 미국과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에 달려 있다고 보고 있다. 아마도 그들이 옳을지 모른다”고 말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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